최근 잇따른 지하철 성범죄가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서울시가 9월부터 지하철에 여성만 탑승할 수 있는 안전칸을 시범 운행하기로 했다. 지하철 여성 안전칸은 지난 1992년에도 1호선과 국철구간 열차에 출근 시간대에 처음 시도된바 있으나 흐지부지됐다. 이에 따라 ‘전용칸’이 아닌 ‘안전칸’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역차별 논란을 잠재우고자 하지만 여전히 시민들은 미흡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라며 찬성과 반대로 의견이 분분해지고 있다.

성범죄 천국(?) 지하철
지난 7월 20일 자정이 조금 지난 시각 서울 지하철 5호선 송정역을 지나던 지하철 객차 안. 한 남녀가 주변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과감한 애정행각을 벌이고 있다. 남성은 여성의 목에 한쪽 팔을 두르고 다른 쪽 손으로는 여성의 몸 곳곳을 만지고, 때로 입맞춤까지 했다. 주변 사람들은 술 취한 연인의 애정행각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이를 유심히 지켜보던 A씨는 두 사람의 나이 차가 지나치게 많이 나는 점을 수상히 여겼다. 술에 취해 정신을 잃은 여성은 20대인데, 여성의 몸을 더듬고 있던 남성은 50대로 보였던 것.
A씨는 여성을 흔들어 깨운 뒤 “옆에 있는 남성을 아느냐”고 물었고, 여성으로부터 “아무 관계도 아니다”라는 대답을 들었다.
마치 애인인 척, 지하철에서 술에 취해 정신을 잃고 있던 여성을 성추행한 박모(53)씨는 서울 강서경찰서에 입건됐다.
경찰에 따르면 지하철에서 여성의 신체에 고의로 접촉하거나 휴대전화로 신체 일부를 몰래 촬영하는 등 성추행을 저지르다 붙잡힌 사람이 작년 한 해에만 1192명에 달한다.
직장인 최하늘(29) 씨는 “출·퇴근 시간 때마다 지하철은 항상 만원 이다보니 사람들끼리 부딪힐 수밖에 없는데, 가끔 나이든 아저씨들이 엉덩이 사이로 만지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어 상당히 불쾌한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지하철은 섞이는 공간이다. 어른과 아이가, 남자와 여자가 섞인다. 승객이 꽉 들어차면 몸이 부딪히고, 피부가 맞닿는다. 불쾌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성범죄가 발생한다. 일부 파렴치한 남성들이 여성들을 성추행한다.
서울메트로 2호선 담당관계자는 “지하철을 운영하는 당국은 이게 항상 골칫거리”라며 “안전한 지하철을 만들고 싶은데 성범죄가 끊이지 않아서 걱정”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지하철 성범죄가 2년 전보다 1.6배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당 전병헌 의원이 개최한 `지하철 범죄 대책 마련을 위한 토론회’ 결과에 따르면, 2008년 460명이던 지하철 성범죄 피의자가 2010년 1192명으로 159% 증가했다.
올해 상반기 검거된 피의자 1047명 중에서는 성범죄가 692명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폭력 201명, 절도 109명 순이었다.
발생시간대 별로는 출퇴근 4시간이 전체 성범죄의 63%로 가장 빈번했으며, 지하철 노선별로는 2호선에서 가장 많은 성범죄가 발생했다. 가해자 연령은 30대가 42%로 제일 많았으며, 20대(28%)와 40대(20%)가 뒤를 이었다.

지하철 여성 안전칸 성범죄 막는다?
이러한 지하철 내부 성범죄 사건을 통해 그동안 간간히 나타났던 성범죄에 대한 심각성을 깨닫게 하며 지하철 내부 치안제도가 시급히 필요하다는 사례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지하철에서 발생하고 있는 각종 여성대상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9월부터 심야 지하철을 대상으로 여성만 탑승할 수 있는 안전칸을 시범 운행한다고 7월 20일 밝혔다.
시범 운행되는 ‘여성 안전칸’은 오후 11시30분 이후에 운행되는 지하철 2호선 마지막 열차에 설치된다. 이 제도는 올 9월 1일부터 약 3개월간 지하철 2호선 마지막 열차를 대상으로 운영된다.
하지만 일부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찬성과 반대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먼저 찬성하는 입장에서 여대생 임효진(22·서울 관악구 신림동) 씨는 “이런 사건들을 접하면 여성들만을 위한 칸이 따로 있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든다”며 “만약 성추행 당했던 여성이 여성 안전칸에 탄다면 이런 일은 없지 않을까 생각 된다“고 말했다.
취업준비생 김서연(26·강남구 양재동) 씨는 “지하철 여성 안전칸이 생긴다면 남자들과 부딪힐 일 없어지니까 조금은 안전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며 “꼭 지하철 여성 안전칸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실효성에 대한 문제를 들며 반대하는 입장도 나타났다.
경찰 통계에 따라 올 들어 5월까지 적발된 지하철 성범죄의 65.5%가 출퇴근 시간에 일어나고, 반면 심야(오후 11시 이후)에 일어난 성범죄는 4.1%에 그쳤다는 점을 꼬집으며, 지하철 막차 시간 때보다는 출·퇴근 시간을 활용한 안전칸을 도입해야 되지 않느냐는 의견이다.
직장인 윤혜진 (37·성북구 미아동)씨는 “성추행 범죄는 복잡한 시간대에 일어나는데 막차에만 안전칸을 설치하는 건 무의미 하다”라며 “여성 안전칸에 타는 남성을 막을 강제 조항이 없다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회사원 서영희(30·강서구 방화동) 씨는 “심야에는 전철 칸 자체가 붐비지 않는다”라며 “성범죄 때문이라면 여성 전용칸으로 해결할 게 아니라 CCTV 등 증거를 강화한다던지, 법적인 처벌이 강화된다던지 해야 더 실효성이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일부 다른 시각에서는 요즘 여성들의 노출 심각성을 들며 여성들의 조심성 문제와 “일반 칸에 타는 여성은 성추행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한다. 김용기(65·성북구  정릉동)씨는 “아가씨들이 요즘 노출이 심하고, 밤까지 술 마시는 등 행실을 바로 하지 않고 다니는 것도 문제”라며 “스스로 조심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회사원 박태성(34·종로구) 씨는“만약 일반 칸에 여성이 타고 있다가 성추행을 당하면 ‘안전칸에 타지 않은 죄’를 드는 사람도 분명 나올 것”이라며 “지하철의 모든 차량에서 마땅히 지켜져야 할 일인데 굳이 보호칸을 두는 것은 ‘여기서만 지키면 된다’는 그릇된 인상을 심어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남성 김정민(36·인천시 화수동)씨는 “남자 승객을 모두 성범죄 혐의자로 모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하철에 경찰을 더 배치하고 차량에 CCTV를 설치하는 대책이 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성 안전칸이 생길 경우, 일반칸에 탄 여성은 더욱 난처한 상황을 겪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대학생 김은미(23) 씨는 “일반칸에 탄 여성이나 실수로 여성 안전칸에 탄 남성이나 모두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 생길 것”이라면서 “일반칸에 탄 여성의 경우 이번 사건과 같은 대담한 성범죄에 노출될 확률이 더 높아질 수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 씨는 또 “지하철 성범죄의 해결책은 남성과 여성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설득력 있는 운영방안과 당위성을 가져야 한다”고 덧붙여 말했다.
이런 우려에 대해 서울시 도시교통본부 교통정책과 관계자는 “여성 안전칸은 시범운행 전부터 운행 후까지 지속적으로 시민들의 의견을 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하철 범죄 근절위해 법적인 치안제도 강화
지난 8월 11일 국회 소회의실에서 열린 ‘안전한 지하철 이용을 위한 토론회’에서 현재의 서울경찰청 산하 지하철 수사대 조직으로는 늘어나는 지하철 범죄, 특히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의 증가에 대응할 수 있는 경찰법을 개정해 수도권 지하철을 포괄하는 별도의 지하철 전담 경찰조직을 경찰청 산하에 마련하자고 밝혔다.
현재 지하철 수사대는 서울경찰청 산하에 104명의 인력으로 운영되며 그나마 대부분이 사복으로 근무하는 수사관이어서 순찰에 집중하는 경찰관은 48명에 불과한 수준이다. 또한 지하철 수사대장의 직급도 경찰서장급이다.
전병헌 의원은 “수도권 지하철 시스템이 경기도와 서울시, 인천시를 포괄하며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상황에서 서울경찰청 산하 조직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인력을 대폭 증원하고 각 지방경찰청과 유기적으로 협조하기 위해 경찰청 산하기구로 신설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설되는 지하철 전담 경찰조직은 ▲유관기관 및 지역사회와의 유기적 협조, ▲항시적인 순찰인력 강화 ▲CCTV통합 관제센터 운영 등에 주력하면서 지하철에서의 범죄 예방과 치안대책 전반을 포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어 경찰대학 노성훈 교수는 3500여명이 근무하는 영국교통경찰과 450여명이 근무하는 미국 워싱톤D.C의 메트로 교통경찰서 사례를 들어 ▲지하철 경찰인력의 대대적 증원 ▲지하철 내부의 CCTV 설치와 효율적 활용 ▲지하철 이용객에 대한 지하철 범죄 정보 사전 제공 등을 지하철 범죄근절을 위한 정책대안으로 제시했다.
여성의 관점에서 지하철 이용 문제를 지적한 여성정책연구소 장미례 박사는 “여성의 관점에서 접근한 지하철 관리와 범죄예방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며 ▲지하철 역사의 여성 화장실 철저 관리 ▲여성안전을 위한 서비스 질 제고 ▲CCTV 등 안전시설 설치 및 관리 등의 방안을 제시했다.
토론에 나선 성폭력상담소 이윤상 소장은 지하철 성범죄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한 대규모의 실태조사를 촉구하면서 서울시가 내놓은 ‘여성 안전칸’ 정책에 대해 “‘여성 안전칸’은 과거에도 몇 번 시도했으나 별로 성과를 거두지 못한 정책이며 지하철 성범죄는 사람이 많은 출퇴근 시간대에 집중되어 있는데 심야시간에 전용칸을 운영한다는 방침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영국 철도경찰의 사례를 소개한 경찰대학 김학경 교수는 “런던 지하철을 전담하는 경찰관 수만 총 700여명에 달한다”며 “경찰인력 특히, 여성을 상대로 한 성범죄가 크게 증가하는 것을 감안해 여성경찰인력이 지하철경찰대에 배치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또 ▲경찰의 가시성증대를 위한 정복순찰의 확대 ▲지역사회와의 협력강화 ▲CCTV 통합관제센터 설치 필요성 등을 시사점으로 제시했다.
박기열 서울시의원 역시 “그동안 서울시와 지하철 운영기관이 추진했던 각종 정책들의 실효성이 크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향후 추진하려는 ▲지하철 보안관 제도 ▲여성 안전칸 운영 ▲CCTV 설치 등도 보다 면밀한 검토를 통해 정채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으로 이번 정기국회에서 지하철 전담 경찰조직 신설을 골자로 한 경찰법 개정안 등 지하철 범죄근절을 위한 대책 마련에 대한 내용을 검토하여 적극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공동취재/박선미 기자

문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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