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에 숯검정을 뭍히고 허름한 옷을 입은 그는 동대문역으로 향했다. 차디찬 새벽의 이슬을 온몸으로 맞으며 한 데서 몸을 구부리고 잠을 청하는 사람들의 곁으로 가는 것이었다. 그들이 왜 따뜻한 집이 아닌 어둡고 좁은 길 위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는지, 그들을 거리로 내 몬 것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했다. 사회생활을 갓 시작한 수습기자의 열정은 훗날 그가 사회복지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날의 노숙체험을 통해 그의 인생은 달라졌다. 그는 앞으로의 인생을 사회 밖으로 내몰린 노숙인들의 벗이 되어 살아가기로 다짐했다.

노숙인들의 집결지 ‘서울역’
서울역 다시서기센터 상담소에서 거리 노숙인을 지원하고 옹호하는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는 이정규 사회복지사.
2003년에 했던 노숙체험을 통해 그는 노숙인도 보통의 ‘우리 이웃 아저씨’였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사업을 했던 사람, 석사 학위를 받은 사람, 빚보증을 잘못 선 사람 등. 과거부터 계속 노숙을 했던 것이 아니고 IMF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가족이 해체 되어 집을 잃고 거리로 나온 사람들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 안하면 게으르다, 노숙은 선택한 거라고 말합니다. 노숙인들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충분한데도 왜 도와줘야 하냐고 말해요. 사람들 인식과의 싸움이에요. 무작정 서울역의 노숙인들을 공포의 대상으로, 서울역을 무법천지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여기도 사람 사는 동네에요. 정이 있고 커뮤니티가 있어요.”

그동안 수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이정규 사회복지사는 “요즘이 한계”라고 했다. 지난달 22일 코레일이  심야시간 노숙인 강제 퇴거 방침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용객의 편의와 서울역 이미지 재고를 위해서 퇴거조치를 내린 것이라고 하지만 ‘심야시간 대합실 안’이라고 퇴거 범위를 못 박은 것에 대해 논란의 여지가 많다.
심야시간 서울역 이용객이 많지 않고 갈 곳 잃은 서울역 노숙인들은 역 근처를 배회하게 되어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이정규 사회복지사는 “역 밖으로 내몰린 노숙인들이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른다”면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전통적으로 이분들 갈 곳은 서울역으로 자리매김해 왔는데요. 서울역이라는 거점이 있었기 때문에 노숙인들 관리가 가능했던 거죠.”
현재 서울시가 파악한 노숙 인구는 2800여명. 영등포역과 서울역 등 주요 역을 중심으로 조사한 결과이고 실제로는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예부터 서울역은 노숙인들이 자주 모이는 ‘교통의 요지’였다. 종교단체의 지원, 의료지원 영역 구축, 상담소 운영까지 노숙인들을 위한 자원이 풍부한 편이다. ‘서울역에 가면 굶지 않는다’는 말도 이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주거지 잃으면 삶의 모든 것 잃는 셈

노숙인은 주민등록이 말소되고 국민으로서 권리와 의무를 행할 수 없게 된다. 실제로 그는 어렸을 때 옆집에 살며 신발공장을 운영하던 아저씨를 서울역에서 보기도 했다. 그 아저씨를 통해 “오갈 데 없고 주거지가 없으면 누구나 노숙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사회 소통을 매개하는 것이 주거지에요. 주거지가 없으면 빈곤층에게 주어지는 국민기초생활보장급여를 안 줍니다. 건강보험료도 못 내고요. 의료 해택에서 배제됩니다. 하다못해 팔이라도 부러지면 병원 가서 3만~4만원이면 치료 받지만 이 분들은 70만~80만원씩 내야 되요.”
IMF 경제 위기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한 노숙인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1998년 ‘다시서기상담보호센터’가 지원사업을 시작했다. 서울역과 영등포역에 있는 상담소에서는 노숙인에게 ‘주소지를 살려주는 의미’로 임시주거지원사업을 펼치고 있고 노숙인의 자활을 위해 일자리를 제공한다. 24시간 아웃리치(out-reach)거리 상담을 통해 노숙인 쉼터 입소 연계 및 부랑인 시설 연계, 응급 질환 노숙인의 신속한 의료지원 체계를 갖추고 있다.  

희망의 길로 굴러가는 두 바퀴 자전거
그는 얼마 전까지 사회적 기업 ‘두바퀴희망자전거’에서 일을 했었다. 노숙인에게 지원됐던 일자리는 한계가 있고 대부분 일용직이었다. 자활근로는 용돈벌이나 현재 상태 유지 밖에 되지 않았다. 시설, 거리청소, 보조 활동 등의 일거리는 노숙인이 ‘일자리의 의미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정규 사회복지사는 2006년 노숙인이 일을 할 수 있는 사업을 개발하던 중 ‘자전거 재활용’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용산구에 버려지는 자전거가 많아 갈월동 다시서기센터 지하 주차장에 자전거 수리 공장을 만들었다. 그는 자전거포를 운영한 경험이 있는 노숙인을 섭외해 동네를 돌며 자전거 이동 수리를 시작했다.
주민들의 호응이 높아지자 자전거 수리하는 인원을 4명으로 늘리고 용산구청으로부터 부품비를 지원받아 학교 등 지역 사회에 자전거 400대를 기부했다. 이정규 사회복지사는 “아저씨들 눈빛이 환상적”이었다며 그때를 회상했다.
2010년에는 공장을 다시서기센터 지하에서 남영역 부근으로 옮겼다. 서울시에서 인건비를 지원 받고 기업과 파트너십을 맺게 되었다. ‘두바퀴희망자전거’는 노숙인 쉼터의 일자리로 모델링을 제시해주며 노숙인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있다. 
노숙인들과 울고 웃으며 서울역에서 7년이라는 세월을 보낸 이정규 사회복지사. 그의 소망은 사회복지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동지가 많이 생기는 것이다. “저는 노숙인 분야 사회복지사라는 책임감이 있습니다.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역량 있는 사회복지사들을 두고 그만두고 싶어요.”

 글/박선미 기자

 사진/문혜원 기자

문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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