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레일이 서울역 노숙인 강제 퇴거 조처를 처음 밝힌 것은 지난 7월 하순. 갈 곳 없고, 의지할 곳 없는 서울역 노숙인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강제로 퇴거조치 당한 이들은 주변 노숙인 쉼터에서마저도 규율이 엄격하고 받아들이는데 한계가 있어떠돌아 다니고 있다. 오랜 시간 계속해서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왔던 노숙인 문제가 이번 서울역 강제퇴거 조치로 인해 해결되어야할 사회문제로 이슈화 되고 있지만 그 해결책은 간단하게 정리되지 못하고 있다. 2개월이 된 지금 서울역 풍경은 어떠한지 찾아가 직접 현장 목소리를 들어봤다.

퇴거조치 당한 노숙인들, 가지각색
지난달 11일, 따뜻한 오후 날씨가 시작되는 오전 12시경. 서울역의 풍경은 여느 때처럼 많은 사람들이 역으로 이동하는 풍경이 이어지며 북적거린다. 그 가운데 서울역 13번 출구 방면의 노숙인들은 삼삼오오 모여 어디론가 줄을 서 이동하기 시작한다.
이윽고 그들이 멈추어 기다리기 시작하는 곳은 바로 노숙인들을 위해 점심식사를 제공하는 무료 쉼터인 ‘따뜻한 채움터’. 이곳에서는 대부분의 노숙인들이 식사 한 끼를 채우기 위해 매일 점심시간만 되면 줄을 선다.
먼저 식사를 마치고 나온 노숙인 나영국(가명·41) 씨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울역 인근 쉼터에서 생활했었지만 현재 쪽방촌에서 한 달에 19만4000원의 방세를 내며 생활하고 있다. 이른바 쉼터를 떠나 자립을 한 것이다.
나 씨는 그나마 강제퇴거조치 당한 노숙인 중에 생활이 어렵지 않은 편에 속한다. 구청에서 자활 프로그램을 알선 받아 청소 일을 하면서 돈을 벌기 때문.
하지만 한 달에 버는 38만4000원의 월급은 그가 살고 있는 쪽방촌 월세비를 내고 나면, 나머지 생활비는 턱 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나 씨는 “지난 8월 강제퇴거 당한 후, 시에서 마련해준 쪽방촌에서 살고 있지만 일을 해도 나아지지 않는 생활형편 때문에 버겁다”며 “쌀이나 생필품만 지원해줘도 생활하기에 문제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서울역 광장에서 만난 노숙인 구형길(가명·49)씨는 코레일의 노숙인 퇴거 조치에 대해 강한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구 씨는 “사실 나 씨처럼 퇴거조치를 당했지만, 생활환경을 배려 받아 사는 노숙인들의 수는 적다”며 “나 같은 경우 노숙한 지 3개월 되었는데, 이렇다 할 잠자리 해결을 하지 못해 낮에는 서울역에서 서성거리다가 밤이 되면 서울역 주변에서 눈치 보면서 숨어 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서울역 강제퇴거 조치 후 2개월이 지났지만, 시나 정부에서는 노숙인들을 무조건 강제 퇴거해 환경개선을 시도했다고 떠들어대고 정작 노숙인들의 개개인 사생활에서는 무심해 이렇다 할 좋은 대책은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머지 노숙인들도 구 씨가 목청을 높이자 주변으로 몰려들더니 동조하고 나섰다.
노숙인 최 씨는 “날이 점점 추워져 걱정이긴 하지만 역사 안으로 못 들어가면 역 주변 파출소 근처나 뒤편 구름다리로 모인다”며 “세상에 어느 국가가 노숙인이라고 역 안으로 못 들어오게 하느냐”고 소리치기도 했다.
지난 8월22일 코레일이 노숙인 퇴거 조치를 내린 지 2개월 째. 서울시와 코레일은 노숙인 강제 퇴거 조치로 노숙인이 줄었다고 밝혔다. 퇴거조치 이전 300여명이던 서울역 노숙인이 이달 초엔 184명으로 줄었고, 주변 환경도 많이 개선됐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현재 서울역 에서는 여전히 노숙인들이 줄지 않고 있으며, 정작 그들은 불편해 하고 있다.

서울역 노숙인 여전히 힘든 상황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노숙인은 1800여명. 이는 국민 1만 명당 3.5명 수준으로 선진국 대표 미국의 1만 명당 100명에 비하면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적은 숫자이다. 하지만 현재 한국 경제상황의 어려움을 반영하는 듯 그 수가 늘어가고 있는 것은 현실이다.
서울역 현장 봉사자들의 말에 따르면, 서울역 노숙인의 숫자가 줄지 않는 것은 이곳의 노숙 환경이 다른 곳에 비해 양호한 편이라고 했다.
서울역에서 노숙인 자립 쉼터인 ‘드림시티’를 운영하고 있는 우연식 목사는 “노숙인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서 술을 마시거나 잠을 자거나 시비를 거는 불량한 사람들로 인식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다”며 “개개인의 좋지 못한 사정으로 어쩔 수 없이 노숙하는 사람들과 사회적인 문제로 노숙하는 이들이 많은데 이를 일반사람들이 편견으로 인해 경멸하는 인식이 잘못되어 이 같은 문제가 생긴 것 같다”고 지적했다.
노숙자 무료급식소에 참여하고 있는 최성원 목사는 “노숙인 수의 직접적 지표인 무료 급식소 이용 인원이 매일 300~350명으로 이전과 변함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기존 노숙인이 빠져나가는 족족 새 인원이 유입된다. 무료 급식소가 있어 끼니를 걱정할 필요가 없고 행인이 많아 구걸하기가 쉽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드림시티에서 생활하고 있는 노숙인 박대창(51)씨는 “복지단체 및 교회 등에서 노숙인 지원을 하고 있어 굶어 죽을 걱정은 없으나 강제퇴거조치의 눈치를 살피며 눈칫밥을 얻어먹는 심정으로 생활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서울역 노숙인들에게 쉼터 입주 추진, 임시주거비 지원 같은 서울시의 대책은 마련되고 있지만 큰 대안이 되지 못하고 있어 서울역 노숙인들의 상황은 여전히 열악하기만 하다.
박 씨는 “시가 운영하는 쉼터는 규율이 너무 심해 들어가기가 꺼려지는 게 현실“이라며 ”시에서 4개월 동안 월세를 대주는 쪽방도 나처럼 일할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림의 떡이니 이번 가을 겨울도 서울역에서 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역사 내 단속 및 노숙인 돕는 배려 필요해
서울역은 최근 서울역 이용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노숙인이 야간에 잠자는 행위를 금지한 조치에 대해 75% 이상이 찬성한다(“매우 동의한다” 30.4%, “동의한다” 44.8%)는 결과가 나왔다고 밝혔다. 19.4%는 “잘 모르겠다.”고 하였으며, “반대한다”는 의견은 5.5%였다. 이번 조치에 대해 “아이와 동행 시 노숙자를 보니 불편과 두려움이 느껴진다.”, “수도 서울의 관문인 서울역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관리가 필요하다.”라는 의견과 함께 “노숙자에 대한 보호관리가 무방비 상태로 놓여 있다.”, “공공시설로서의 책임감을 갖고 퇴거조치를 하기보다 서울시와 함께 노숙인 보호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라는 이용객들의 의견이 나왔다.
우 목사는 “미국 같은 경우 노숙인들을 관리하는 체계가 매우 엄격하지만, 모든 노숙인들을 강제퇴거하지는 않고, 소란 떨거나 주위의 시민들에게 불편을 주는 행동을 할 경우 법적인 처리로 강력하게 단속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노숙인들이라고 해서 무조건적인 방치와 퇴거보다는 경찰이 적극적으로 단속하기도 하고 주변 피해를 막을 수 있도록 노력한다면, 구지 강제퇴거조치와 같은 억지 방법을 쓰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즉, 그의 말에 따르면 서울역과 코레일이 ‘노숙인’을 특정해 시행한 이번 조처가 명백한 차별에 해당하며, 노숙인이나 일반 이용객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해결책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어 우 목사는 “음주·소란·폭행 따위 문제를 일으키는 일부 노숙인에 대한 민원 해결이 이번 조처의 주목적이었다면 코레일은 ‘해당 행위’에 대해 단속할 것임을 분명히 했어야 했다. 다시 말해 ‘노숙인’이라는 특정인을 규정함으로써 사회 약자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조장해 낙인을 강화하거나, 일반 시민과의 대립 구도를 만드는 방식은 아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범죄의 위협으로부터 시민의 권리를 찾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의견과 노숙인들을 예비범죄자로 낙인찍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공역사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차별하는 것은 인권침해라는 의견의 팽팽한 가운데 앞으로 시는 응급보호 상담반을 두 차례 운영하고, 시설입소를 꺼리는 노숙인들이 보다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자유카페’를 만들어 내부에는 냉·난방 샤워시설과 TV, 영화, 인터넷, 전화, 서적 등의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또한, 역주변의 여관, 여인숙, 고시원 등을 활용해 노숙인 50여명이 이용할 수 있는 응급 구호방 10곳을 만들고, 근로능력이 부족한 거리노숙인 700명에게 노숙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서울역 광장과 거리 청소 등의 일자리를 제공하며, 100명에게는 최대 4개월까지 임시주거비를 지원하면서 상담원으로부터 건강관리를 받도록 하겠다고 대안책을 내놨다.
노숙인 문제는 오래된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로 근본적인 치유가 필요한 것이며 서울역에 노숙인들이 머무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따라서 서울역에서 노숙인들이 승객들에게 불편을 주거나 위협을 가하는 행위는 근절되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노숙인들에게 사회와 가정으로 복귀하는 것을 돕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 정부, 자치단체 그리고 관계기관이 서로 협력하여 실효성 있는 대책을 수립하는 것이 급선무라 하겠다.

  공동취재/ 문혜원·박선미 기자

문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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