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여성이 경험한 이야기를 연극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극단이 있다. 바로 장애인 여성 공감(사)의 부설 극단 ‘춤추는 허리’가 그 주인공. 그들은 장애여성의 성, 가족, 연애, 사회적 관계 등 무겁고 어두운 문제를 다소 연극을 통해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감동 있게 그려내며 관객들에게 직접 찾아가는 공연을 펼치고 있다. 그들만의 진실 된 이야기를 독특한 끼와 재능으로 풀어내는 특별한 연극단체를 만나 새로운 감동을 찾아봤다.

우리는 배우, 연극은 더 특별해
“장애여성 삶의 극단적인 현실을 연극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결성했습니다.”
국내유일의 장애여성극단 ‘춤추는 허리’는 장애여성의 어려운 현실을 사람들에게 간접적인 효과를 통해 직접적인 공감을 얻고자 탄생되었다고 이진희 단장은 설명했다.
춤추는 허리는 2002년 먼저 공연 퍼포먼스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당시 공연내용은 장애여성 ‘난장’이다. 문화제에서 열려 작은 규모로 진행된 이 연극은 네 명의 장애여성이 안테나를 꽂은 모자를 쓰고, 통제당하는 장애여성의 일상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이것은 곧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이 연극은 춤추는 허리 극단이 정식으로 알려지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2003년에 사단법인 장애여성 공감으로부터 극단을 만들어보자는 제의가 들어옴에 따라 결성하게 되었어요. 그 후, 장애여성의 배우들 10여명을 뽑아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춤추는 허리는 처음 결성했을 당시 무대도 없고, 조명도 열악하고 공연을 올리기에는 턱 없이 부족한 환경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은 오로지 연기한다는 열정으로 똘똘 뭉쳐 함께 해 왔다.
“꾸준히 공연을 해오면서 저희가 어느 순간부터 정말 배우로서, 예술인으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우리의 미래는 어디까지인가? 등 수많은 갈등과 고민을 하게 되었죠. 그러다가 무대에 오르는 것만 진정한 배우가 아니다 싶어서 가까운 인근 공원이나 거리 공연 같은 것도 하게 되었죠. 어떤 날은 공연 준비를 다 마치고 연극을 시작할 때 쯤 갑자기 폭우가 내리기도 해 연극을 취소했던 적도 있고..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날은 많았습니다.”
이 단장은 어려운 극단 현실을 배우들과 극복하고 이것을 오히려 계기로 삼고 어떻게 하면 제대로 된 공연을 보여 줄 것인가 고민을 했다.
그리하여 2004년부터 워크샵을 통해 만들어지는 춤추는 허리의 정기공연을 매년 연말 무대에 오를 수 있도록 했으며, 장애여성의 독립, 폭력, 섹슈얼리티 등 누구도 들려주지 않았지만 장애여성의 삶과 맞닿아 있는 진지한 주제들을 배우들과 함께 풀어나갔다.
1회 정기공연 ‘갑자기’를 시작으로 ‘여기에 있긴 있는데 여기 있는게 안보여?’, ‘너 지금 어디야, 무슨 춤을 추고 싶니?’, ‘나 여행간다’ 등의 정기공연을 꾸준히 펼쳐왔다.
“일반인과 다른 그들이지만, 그들 모두 다르다는 생각을 버리고, 그저 ‘배우’라는 직업 아래 자신의 능력을 펼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장애인이 연극한다’라는 편견과 동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겠지만, 연극하는 당사자 모두 그저 연극하는 배우들일뿐입니다”

친밀하고 유쾌하지만, 불편한 진실들
춤추는 허리는 예술영역의 주변인으로만 머물던 장애여성을 예술 생산의 주체, 연극 생산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장애여성 연극교육, 장애여성 중심의 이야기 창작, 장애여성 배우로 이루어진 연극 창작 등을 진행하고 있다.
“2008년부터는 1기 장애여성 연극 전문아카데미를 시작했습니다. 우리 극단이 전문적인 힘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죠. 매해 새로운 장애여성이 끊이지 않게 모였고, 고전희곡 읽기부터 안무연습, 연기 실습까지 교육 프로그램을 짜 장애여성들과 직접 대화를 나누고, 서로 고민을 하면서 그것을 연극으로 만들어지기까지 참여를 목적으로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사회에 부딪히는 다양한 장애여성에 관련한 문제들을 어렵고 복잡하게 그려내지 않는다. 머리 아프고, 가슴 아프고 모든 것이 상처투성이지만, 우리내 일반 사람과 다를 것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결코 일반인과 다르지 않는 문제들을 꼬집으며 이것으로 인해 생기는 어려운 문제들을 유쾌하게, 진실 되게 보여줌으로써 자아를 찾는 과정을 보여준다. 또 그럼으로써 관람객들에게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장애인들도 일반사람들처럼 생활합니다. 다만, 몸이 불편하다는 것이 다를 뿐인거죠. 우리는 그것을 연극을 통해 제시하면서 이로 인한 여러 가지 닥치는 어려움과 불행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하여 공감을 얻고, 서로서로 고민을 할 수 있는 문제라는 것의 화두를 던집니다.”
춤추는 허리는 장애여성의 삶과 현실을 문화예술로써 사회와 소통한다. 그리고 누구나 배우가 될 수 있음을 알고, 어떤 장애여성과도 함께 작업할 수 있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바로 관객과 함께 공연을 만드는 것이다.
그들은 공연을 통해 세상과 만나며, 사회적 소수자의 문제를 이해하고, 기존의 예술에 의문을 제기하며, 예술과 삶, 장애와 비장애, 젠더적 이분법의 경계를 물으며, 나와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 목표다.
“장애여성의 몸과 언어는 새로운 예술로써 그 가치가 있습니다. 다양한 무대 언어에 대한 도전으로 예술의 지평을 넓히고, 장애여성 당사자가 문화 생산의 독립적인 주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꾸다
6년째 춤추는 허리 극단의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서지원 팀장은 뇌성마비장애인 1급이다. 그녀는 관람객들이 편견 없이 그저 ‘배우’가 연기한다는 눈으로 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한 번도 연극할 동안 불편한 내색 없이 자신이 배우라는 것이 자랑스러워하며 열심히 연기 열정에 불태우고 있는 서 팀장은 내일도 모레도 앞으로도 오로지 연기만 하면서 언젠가는 좋아질 세상을 꿈꾸며 달린다.
“무대에 오를 때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됩니다. 저는 그것을 즐겨요. 어릴 때부터 연극에 관심이 있었지만, 제가 장애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기회가 오질 않았죠. 그런데 춤추는 허리 극단을 알게 된 이후 전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2004년 2기 배우로 들어와 지금까지 남다른 재능과 끈기로 연기에 열정을 쏟았다. 힘든 일도 많았지만, 오히려 이것이 나중에 큰 무대에 오를 수 있는 버팀목이 되리라 믿으며 꾸준히 극단 배우들과 함께 했다.
서 팀장 외에도 다른 배우들도 마찬가지다. 이곳에서 활동하는 여성 장애인 9명은 배우 꿈에 푹 빠졌다. 아직 크고 작은 실수도 많지만 무대에서 이들은 달력, 시계, 엘리베이터 등 `말하는 소품`부터 콜택시 직원, 라디오 DJ, 댄스테라피스트(무용동작치료사)까지 자유자재로 역할을 넘나들며 각자의 매력을 뽐내고 있다.
2003년 이후 공연을 한 지 8년 만에 정식 창단을 기념해 지난해 11월 열린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려는 장애인 여성들의 일상을 그린 연극 `거북이 라디오`는 300여 명의 관객이 몰려 대성황을 이루기도 했다.
이렇듯 춤추는 허리가 장애여성 공감 극단으로 입지를 다지게 되자 서울시에서 주최 및 후원을 받아 ‘나를 찾는 연극 여행’이라는 주제로 참여 퍼포먼스 식의 연극을 함께 펼치기로 했다. ‘나를 찾는 연극여행은’ 서울시가 신체장애인 60명을 대상으로 한 연극교육 프로그램이며 12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약 6개월간 진행한다.
“이 연극은 문화예술에 대한 접근성이 장애인들이 주체가 돼 자신의 삶·꿈을 소재로 만들고 무대에 오르는 경험을 통해 긍정적 자아 발견과 다양한 가능성의 경험, 예술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계획한 것입니다. 서울시 거주 19세 이상 신체장애인 중 연극에 대한 흥미를 가진 사람과 함께 참여식의 연극을 만드는 것이죠.”

연극 과정은 연기, 신체훈련과정, 극작, 연출 등 세분화된 6개의 프로그램이 마련됐으며, 각 과정 당 10명 내외로 3시간씩 총 35회 차가 진행된다. ‘연기교실’은 연극놀이, 즉흥극, 사물여행 및 연극 만들기 등의 내용으로 노들장애인야학 연습실(종로구 소재)과 장애인극단판 연습실(성북구 소재)에서 각각 진행되며, ‘장애여성을 위한 연기교실’은 몸 이해, 연극사, 장면 및 연극만들기 등의 내용으로 장애여성공감 연습실 (강동구 소재)에서 진행된다.
몸의 이해를 통한 ‘신체훈련 과정’과 대본 해석, 인물·공간 배치 등 공연 연출에 대한 탐구 및 제작 실습을 내용으로 하는 ‘연극 연출 교실’은 장애인극단판 연습실에서, 전문극작가의 안내를 받아 참가자들이 자신의 삶이나 꿈 등을 소재로 직접 극본 작업에 참여하는 ‘연극 극작교실’은 노들장애인야학 연습실에서 진행하고 있다.
춤추는 허리 극단은 그동안 언어, 운동기능 장애 등 각자 다른 어려움을 가진 다른 이들이 모여 호흡을 맞추려다 보니 연습하는 동안 어려운 고비도 많았다. 특히 대사를 매끄럽게 주고받고 동작 하나를 소화하는 데도 시간이 일반인들보다 많이 걸렸기 때문에 피나는 연습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 그러나 그들은 거의 쉬는 날 없이 강행군으로 이어지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극단의 총책임자인 이진희 단장의 앞으로의 각오가 남다르다. 그는 “`홀로서기`에 나서야 하는 장애인에게 일자리가 절실한 만큼 배우를 지망하는 장애우를 채용할 수 있도록 꾸준히 차별화된 무대 예술과 콘텐츠로 승부를 걸어 수익을 낼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리고 이어 “배우들에게 항상 힘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함께 하자는 얘기도요. 장애인들이 예술가로 산다는 것은 우리 현실에 아직까지는 무척 버거운 일이지만, 함께 인내하고 노력하고 그리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면 반드시 우리가 꿈꾸는 바로 그 세상이 올 것이라고 믿습니다.”라며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사진/장애인여성공감 극단 ‘춤추는 허리’

문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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