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Ⅱ _ 식당여성노동자 복지

엄마, 이모, 고모, 어이, 처제, 아줌마, 아가씨… 식당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을 부르는 다양한 호칭이다.  그들은 특별한 기술을 가지고 있어 남들에게 인정을 받는 것도 아니고, 하는 일이 뚜렷하게 명칭이 정해져 있어 한 가지로 불리는 것도 아니다. 그 호칭 속에는 일에 대한 낮은 가치가 담겨 있다. 서비스이기 때문에 손님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얼굴을 조아리고 속으로 울어야 하는 그녀들. 스스로도 “가진 건 몸 밖에 없어서…”라며 움츠러드는 식당여성노동자들.

여성문제전문가들은 손님들이 식당여성노동자를 되는대로 부르는 것이 노동자의 인격을 폄하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다고 말한다. 한국여성민우회는 최근 식당노동자 명칭 공모전을 실시해 식당여성노동자를 ‘차림사’로 부르자는 안을 제시했다.
여성민우회 관계자는 “차림사는 음식을 차려 손님에게 제공하는 담당자라는 뜻을 담고 있다”며 “공모전을 계기로 식당여성노동자의 인권 상승과 근무환경 개선이 가능해지길 기대한다. 올해부터 ‘차림사’ 부르기 운동을 실시하여 명칭 확산에 집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식당노동자의 현 주소 ‘노동환경 열악· 복지혜택 미비’
집에서 살림하다가 가정 경제에 보탬이 되고자 사회생활을 시작하려고 하는 기혼 여성들은 높은 취업의 문턱을 헤맨다. 자본이 있으면 사업을 시작하고, 기술도 그 무엇도 없으면 자신들이 그 동안 해온 ‘집안일’과 비슷한 식당 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돈이 많아 장사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보편적으로 이런 저런 일 하다 다 실패한 사람들이 제일하기 쉬운 게 식당 일이죠. 다른 도움 필요 없이 육체적으로 일 하기만 하면 되니까요.”
오 년 전 식당 주방에서 찬모를 한 오정숙(가명·55세) 씨. 그녀는 남 앞에 서는 것을 어려워하는 성격 상 처음부터 식당에서 손님들을 상대하는 홀에서 일하지 않고 바로 주방에서 일을 시작했다.
“홀 서빙은 성격이 맞아야죠. 상냥하게 사람들을 대하고, 외모도 받쳐줘야 하고, 또 젊어야 하고요. 주인들은 종업원이 나이가 많으면 홀에서 일하는 걸 싫어해요.”
홀 서빙은 손님 응대에 대한 스트레스가 있는 반면, 주방에서 하는 고된 노동을 하지 않아 몸은 그나마 편한 편. 오 씨가 식당에서 일하던 그 당시만 해도 4대보험이 가입되어 있는 식당이 없었다.
“한 고기뷔페 식당 사장은 대기업 건설사에 있던 사람이었어요. 4대보험 드는 것에 대해 직원들에게 선택하라고 했어요. 하지만 직원들은 대부분 원하지 않았죠. 일이 워낙 힘드니까 언제 그만둘지 모르는데 한 달에 몇 프로씩 월급에서 나가는 게 아까웠던 거죠.”
식당여성노동자들은 4대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채 도돌이표처럼 이 식당, 저 식당을 돌고 돈다. 그래도 식당 일은 거의가 비슷하기 때문에 몇 달 일하다 또 한 두 달 쉬다가 식당으로 다시 돌아오는 케이스가 많다.
정찬희(가명·56) 씨는 인력도우미 알선 업체인 가사원에 가입해 일당으로 일하고 있다. 어느 한 식당에서 고정적으로 일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날에 맞춰 일할 수 있어서 다른 식당종사자들에 비해 비교적 자유롭게 일한다.
그동안 그가 다녔던 소규모 식당의 위생 상태는 혀를 내 두를 정도였다. 오죽하면 정 씨는 아들에게 ‘식당 밥 사먹지 말라’고 말할 정도였다. 관리구청 위생과에 신고하고 싶었던 식당이 한 둘이 아니었다고. 
“사람들이 대기업을 선호하듯이 이쪽 계통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큰 식당을 선호해요. 소규모 식당들은 체계가 잡혀있지 않은 곳이 많아요. 아무래도 손님을 하나라도 더 받아야 하니까 주인이 주방을 소홀하게 관리하죠. 홀은 화려하게 꾸며도 주방으로 들어가면 대충 음식만 만들 수 있게 해 놓는 경우가 많아요. 어떻게 음식 장사를 이렇게하나 할 정도였어요.”
어느 식당에서는 식재료를 깨끗하게 씻지 않고 홀로 내 보내는 경우도 있었다. 이 밖에 지저분한 집기류 사용, 유통기한 지난 식재료 사용, 무허가 제품 사용 등 식품위생상태가 엉망인 곳이 많았다. 이런 곳들은 주인이 관리감독 하에 철저하게 주방을 관리하지 않았다.

근무 만족 보단 ‘생계’가 앞서는 일
결혼과 육아로 인해 경력이 단절된 기혼 여성들은 재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취업난 때문에 대졸 이상의 고학력자들이 요식업 계로 취업하기도 한다.
“보험은 실적이 있어야 하고, 그 일이 맞는 사람이나 하지 어렵잖아요. 간혹 가다 종업원 중에 자기가 배운 사람이라며 으스대는 사람들이 있어요. 대졸자나 되가지고 그게 더 창피한 일이죠. 식당 일이 나에게 맞아서 하는 사람 없어요. 그냥 쉽게 가서 돈 벌 수 있으니까 하는 거지. 일에 대한 만족도 드물어요. 어쩔 수 없이 일하는 사람이 많겠죠.”
정 씨는 식당 일이 워낙 ‘힘들다는 걸’ 알고 갔기 때문에 일 자체에 큰 어려움은 느끼지 않았고, 4대보험에 가입되지 않아도 크게 문제라고 여기지 않았다.
“식당일이라는 게 장시간 일하다보니 육체적으로 힘들긴 하죠. 식당 다니는 엄마들은 집에 와서도 가사 일을 해야 되니까 체력도 달리고. 식당 종업원들은 보통 아침 열 시에 출근해서 밤 열 시까지 일 해요. 일주일에 한 번 쉬고 많이 쉬면 네 번 쉬고. 주말에는 무조건 못 쉬고요. 사무실이 근접해 있는 식당들은 주말에 쉰다고 하더라고요.”
작년 한국여성민우회가 전국 식당여성노동자 297명 설문 조사 결과 식당여성노동자들 대다수가 평균 12시간 가까이 일하면서 열악한 근무조건에 놓여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전일제 근무자의 하루 노동시간은 평균 11.6시간, 토요일 11.75시간, 일요일 11.67시간으로 주말이나 연휴에 더 노동시간이 가중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간당 평균 임금은 3400~3800원에 그쳐 작년 최저임금 4320원을 밑돌았다. 월 휴일은 4회(43.4%), 월2회(24.9%), 월3회(24.3%)로 보통의 ‘주5일제 근무’와는 거리가 멀었다. 4대보험 중 1개 이상 가입한 경우는 35%, 화상을 입어도 자가 치료한다는 대답이 67.2%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손님에게 겪는 애로사항으로는 무시·반말(27.3%), 재촉(24.6%), 맛 타박(17.4%), 서비스 불평(11.8%) 순이었고 성희롱(2.2%)도 있었다.  
“T뷔페는 한식, 중식, 양식 파트별로 나뉘어져 있었고, 조리이사가 주방을 전체적으로 관리했어요. 외부에서 위생 검열 나오기 전에 자체 내에서 위생검열을 일주일에 한 번씩 했고요. 하수도까지 청소 했어요.”
정 씨는 지금까지 약 서른 곳의 식당에서 일을 해왔다. 그 중 T뷔페처럼 “체계가 잘 잡히고 식당종업원들에게 복지를 제공하는 곳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T뷔페는 주방 직원들을 파트별로 세분화하여 자기가 맡은 파트만 일할 수 있도록 전문성을 강화했고 일반 회사처럼 복지체계를 잘 갖춰놓아 직원들이 4대보험은 물론이고 월차도 쓸 수 있고, 보너스까지 받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주방 관리만 하는 총책임자(조리사)가 있어서 조직이 체계적으로 구성되었다. 홀 서빙을 맡는 젊은 아르바이트 학생들을 제외하곤 그만 두는 사람도 드물었고, 1년 이상 오랫동안 근속하는 직원들이 대다수였다. 각자가 맡은 역할이 분명하게 정해져 있어 일의 정체성이 뚜렷해 직원들은 책임감을 갖고 일을 열심히 했다.
‘일의 전문성, 복지여건, 철저한 감독관리’가 합해져 식당노동자의 근로환경이 잘 갖춰진 보기 드문 케이스였다. 그러나 이러한 식당은 ‘거의 없다’는 것이 정 씨와 주변 식당노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식당여성근로자 고질병 ‘허리 다리 어깨 통증·손관절’
식당에서 근무하는 것은 힘들다는 관념은 식당여성노동자들도 체감하는 바여서 4대보험이나 월차 같은 복지혜택에 대해서 커다란 의미를 두지 않는 편이었다. 그보다도 ‘근무여건’ 즉, 주방환경이 쾌적하고 주방동선이 잘 잡혀져 있는가, 주방에 세척기가 있는가가 주요 관심사였다.
최자경(가명·54) 씨는 십 년 넘게 식당에서 일했고 한 삼 년 동안은 자신의 가게를 꾸려 일하기도 했었다. 그녀는 식당에 취업할 때 가장 먼저 고려 사항에 넣었던 것이 ‘식당 시설’이었다. 되도록 큰 규모의 식당, 세척기가 구비되어 있는 곳을 선택했다.
“요즘 엄마들은 주방에 세척기 없으면 안 가려고 하죠. 세척기 한 대가 한 사람 몫 해요. 인건비도 줄고요. 세척기가 식당 주방에 보급된 지가 불과 3~4년 밖에 되지 않았어요. 소규모 식당은 세척기 한 대만 두고 사장이 혼자 주방에서 일하는 경우도 있어요. 식당종사자들에게 어쩌면 4대보험은 중요하지 않아요. 쉬고 싶을 때 쉬고, 마음이 맞지 않으면 그만두기도 하니까요. 한 곳에서 1~2년 이상 일하는 건 드문 일이죠.”  
혹독한 노동으로 몸 여기저기가 고장이 나는 일은 흔하게 일어난다. 홀 서빙 종사자가 주로 허리, 다리 통증을 호소하고 주방 종사자는 어깨와 팔 통증, 특히 손 관절이 심하다.
휴식 시간도 식당에서 취급하는 메뉴에 따라 달라진다. 설렁탕, 갈비탕 등 탕 종류를 전면에 내세운 식당의 종사자들은 휴식 시간이 따로 없다고 봐야 한다. 손님들이 식사 때에 맞춰서 몰리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부담 없이 식당에 들어와서 식사메뉴를 주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규모 식당(백반집)같은 경우에는 손님이 몰리는 식사 시간을 피해서 휴식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어떤 손님들은 종업원들을 막대하기도 하죠. 말도 함부로 하고요. 뭐 하나 갖다 달라고 하는 것도 반말하고요. 다들 맘 상해해도 손님 앞에서는 내색 못하죠.”
가장인 최 씨는 ‘이 일 아니면 안 된다’는 정신력으로 식당 일을 버텼다. 내 몸 하나 힘들다고만 생각하고 자식들을 떠올리지 않았으면 수십 번도 그만뒀을 거라는 그다.
노동은 가치를 생산하는 일이다. 사회적으로 식당 일이 엄연한 ‘노동’이며 주요한 ‘생계수단’이라는 인식, 열악한 노동 환경 속에서 일하는 식당여성노동자들에 대한 배려가 요구된다. 김원정 서울대 여성연구소 연구원은 “노동친화적인 식당을 만들기 위해 사업주를 대상으로 노동법 교육을 시켜야 한다. 5인 미만 사업장에도 근로기준법을 적용해 음식점에 대한 정기점검을 실시하고, 사회보험료를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식당여성노동자들이 없으면 손쉽고 편하게 식당에 가서 음식을 사 먹지 못한다. 그들이 있어 내 몸을 따뜻하게 할 양식을 섭취하고 에너지를 얻는다고 생각하면 되려 고마움을 느낄 수도 있는 일이다.
한 사람의 노동자이기 이전에 한 집안의 가장이고 아내이며 어머니인 그들의 삶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글/ 박선미 기자 자료/한국여성민우회

박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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