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명 vs 16만명. 여성선택권자들 vs 태아 생명권자들이 주장하고 있는 지난 2010년 낙태 시술 건수다. 이들은 임산부 결정권이냐? 아니면 태아 생명권이냐?를 두고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다. 여성단체들은 “낙태 처벌은 명백한 위헌”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정부 측에서는 “태아의 생명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현행법 270조는 ‘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또는 약종상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한국여성민우회가 낙태경험 여성들을 실제로 인터뷰한 내용을 토대로 한국사회에서의 낙태를 고민해 본다.

미혼모냐? 낙태냐?
지난해 12월 2일 경기도 일산의 한 뷔페에서 특별한 돌잔치가 열렸다.
시한부 미혼모가 아기와의 마지막 추억을 남기기 위한 돌잔치였다.
미혼모 박지영(26, 가명) 씨는 폐암을 진단받고 항암치료 중 임신을 해 딸 민지를 낳았다. 출산이 임박해서야 임신사실을 알았다. 지영 씨의 폐암은 3기로 진행됐고, 심지어 뇌에까지 암세포가 퍼지게 됐다.
결국 병원으로부터 시한부 선고를 받은 지영 씨는 언제 자신의 아기와 이별해야 할 지 모르는 상황이다.
지영 씨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우리 아이에게 엄마의 흔적이라도 남겨주고픈 마음에 돌잔치 행사에 응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돌잔치가 열리는 2일은 지영 씨의 아이가 아직 9개월 밖에 되지 않는 시기였다.
지영 씨는 자신의 미래를 위해 낙태를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사회적 편견인 미혼모라는 꼬리표를 붙이고도 아이를 낳았다.
현행법상 낙태는 죄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 사회 각계각층에서는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해 11월 10일 헌법재판소에서는 낙태처벌 위헌성 공개변론이 있었다.
법무부 측은 ‘태아의 생명권’을 강조하며 낙태에 대한 처벌 필요성을 주장한 반면, 출산을 원치 않는 임신부에게 형사처벌을 통해 출산을 강요하는 것은 자기결정권 침해라는 헌법소원 청구인 측간에 열띤 공방이 벌어진 것이다.

낙태는 여성의 이기적인 결정이 아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낙태를 경험한 여성들은 낙태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 낙태라는 단어는 너무 거부 반응이 들어요. 아이 떼러간다. 너무 쉽게 얘기하는데, 낙태는 살인이라 하지 말고 낙태는 ‘원치 않는 임신’이라고 바꿨으면 좋겠어요.
# 그 때 얘기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그게 저는 참 지금도 아쉬워요. 만약에 저희 엄마가 그런 얘기를 들어줄 수 있는 상황이었으면 조건이었으면 내지는 제가 할 수 있는 조건이었으면 참 얼마나 좋았을까… 이런 말을 했을 때 엄마가 받을 충격에 저는 그게 너무 싫었어요. 지금도 말 못 하고 있지만 충격 받으실 거고 너무 걱정 많이 하실 거고 그렇게 됐을 때 분명히 결혼하라고 하실 것 같고.
# 낙태가 살인 이라는 생각은 안 들고요. 그거는 건강하지 않은 죄책감이잖아요. 우선 나도 살아야죠.

백영경 여성민우회 이사는 “흔히 낙태를 여성의 이기적인 결정이라고 이야기하곤 하지만, 인터뷰 과정에서 만난 여성들에게 낙태는 자기 자신에 대한 배려나 태어날 아이에 대한 배려였다”고 말했다.
백 이사는 또 “동시에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 대한 배려인 경우도 있고, 단지 자기실현을 위한 여성의 욕심 때문이 아니라 여성에게 낙태가 최선은 아니더라도 차선이나 차악의 결정이라고 느낄 수밖에 없게 만드는 사회적 상황이 있기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백 이사는 한국사회에서 낙태를 논하기 전에 재생산 행위의 연장선 상에서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아이를 낳는 것만큼이나 낳지 않는 것, 사회가 아이를 낳길 바라는 사람과 낳길 바라지 않는 사람의 구분 역시 중요한 재생산 문제가 된다”고 지적했다.
낙태를 경험한 여성들도 이같은 주장을 토로하고 있다.

# 아이의 부모가 누군지 부모가 어떻게 임신했는지, 혼인여부, 성적취향, 학력 등등 애가 태어나자마자 이제 차이를 느끼잖아요. 아이가 축복받지 못하고 차별과 편견 속에서 자랄 거라고 생각이 된다면 누가 낳으려고 하겠어요. 이렇게 뭐 갖다 버리는 방법을 오죽하면 썼겠어요. 그 여자들이….
# 돌이켜서 생각해보니까 너무 웃기는 게 남자친구 여동생이 저를 데리고 만나서 낙태하라고 설득을 했어요. 그니까 여동생이 보기에는 오빠나 자기 집안은 괜찮은 거 같은데 상대적으로 언니 될 사람이 학벌이나 경제적인 조건이 딸리고, 제가 oo공단에서 공장에 다녔으니까. 뭐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 결혼을 했는데 다른 사람의 아이를 임신하면 어떻게 하겠어요. 선택은 대부분 낙태거든요. 그리고 만일에 남자친구가 있는데 다른 사람이랑 했어. 낙태거든. 정말로 내가 낳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할 수 있는 상황 자체가 결혼한 상황 말고 별로 없잖아요. 결혼 등 일방적으로 인정된 어떠한 가족의 시스템이 아니면 인정을 할 수 없잖아요. 낙태도 결국은 가족주의 자체, 결혼제도에 대한 문제제기를 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장애여성은 임신·낙태 모두 비난 받는다
재생산을 둘러싼 압박은 장애 문제에서 더욱 크게 다가오게 된다.
여성들은 장애가 있는 자녀를 출산하는 경우 비난의 화살이나 져야 될 책임에 대해서 두려움을 느끼며, 이는 종종 ‘고위험군’이라고 생각하는 여성들이 낙태를 결정하게 만든다. 
# 그 때 나이가 마흔이었을 거예요. 나이도 있고 술 담배 많이 했었고. 내가 임신해서 제왕절개하고 이런 문제가 걱정 되는 게 아니고, 애가 건강하지 않을까봐 가장 걱정이 되었어요. 정말 난 애를 좋아하고 애를 낳고 싶긴 하지만 싫었어요.

장애아동의 출산만큼이나 환영받지 못하는 것이 장애여성의 임신이다. 낙태에 대해서도 비장애여성이라면 듣지 않았을 비난도 감수해야 한다.
한 장애여성은 한 살 터울로 임신을 하자 병원에서 왜 자꾸 애를 갖냐고 혼내더라는 것이다.
2007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 예비후보는 장애인 낙태발언으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이명박 후보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낙태에 대해서) 기본적으로는 반대인데, 불가피한 경우가 있단 말이에요. 가령 아이가 세상에 불구로서 태어난다든지, 이런 불가피한 낙태는 용납이 될 수밖에 없는 거 같아요.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낙태도 반대 입장이에요”라고 밝혔다.
이런 발언이 알려지자 장애인 단체 소속 회원들은 “불구, 낙태 발언을 한 이 후보의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하며 이 후보의 사무실을 점거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는 “이렇게 쉽게 장애인에 대해 불구, 낙태를 운운한 것은 후보자의 인식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된다”며 “그가 대통령이 되기를 원한다면 이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얘기하고 공개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장애인 20여 개 단체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이명박 후보는 낙태를 반대한다는 표현으로 마치 모든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으나 불구자는 낙태가 용납될 수 있다는 즉, 장애인의 생명은 존중될 가치가 없다는 발언을 한 것”이라며 “장애를 불구로 표현하며 비하한 것도 모자라 장애인의 생명은 아예 가치가 없다는 발언은 대통령 후보로서 도저히 용납될 수 없다”고 분개했다.
그러자 이명박 예비후보 공보팀은 보도자료를 통해 “이 전시장의 발언은 결코 장애인을 비하하기 위한 의도의 발언이 아니다. 낙태는 반대라는 전제하에 산모와 태아의 생명이 심각하게 위협을 받을 때, 아주 엄격한 제한 하에 아주 신중하게 법과 의료적인 판단에 따라 낙태가 허용될 수도 있다는 의미”라고 해명했다.
지금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남아선호사상도 낙태를 종용하고 있다.
특히 법 적용에 앞서 사회적인 시각이 큰 문제시되고 있다.
일례로 지난 2010년 ‘그녀는 낙태 중’이라는 노래를 부른 래퍼 데프콘은 여성단체 언니네트워크로부터 ‘2010 꼬매고 싶은 입’ 2위 ‘대바늘상’으로 선정됐다.
이 노래는 인터넷 성인 방송을 진행하는 여성에 대한 비판을 담은 노래로 ‘원치 않는 임신’과 ‘낙태’가 몸을 ‘막굴린’, ‘인생포기’한 여성들이 당하는 결과라는 의미의 가사로 ‘여성비하’가 곧 ‘사회비판’인 것으로 착각하는 마초 문화의 전형을 대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데프콘은 이러한 비판이 일자 “물질 만능주의 외모 지상주의에 대한 불편한 시선 그러한 상황들 속에서 점점 더 무뎌지는 의식의 절단이나 파괴를 낙태에 비유한건 아닌가란 생각들은 왜 안해보셔요?”라고 반문했다.

여성도 성행위를 하는 존재다
백영경 이사는 한국 사회가 여성에게 낙태할 수 있는 권리를 허용하느냐 허용하지 않느냐를 넘어서, 과연 성행위를 하는 존재로서의 여성을 인정하고 있느냐의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그때는 이십대 초반이었어요. 그리고 그 때 내가 여전히 그런 죄의식 같은 거 가지고 있었던 거 같아요. 혼전 관계라던가. 아기를 낳아서 데리고 있다는 거는 그거를 만천하에 증명하는 거잖아요. 내가 고백하기 전에는 모르는 내 속에 있는 낙인이지만….
# 당연히 지금도 누구한테도 말 못하는 건 그거잖아요. 남자친구와 성관계를 가진다는 이야기는 서로 어떻게 암묵적으로 알 수도 있지만 임신하면 왠지 ‘어 나 원래 섹스하고 다녔어.’라는 건데 이게 왠지 이중적이잖아요. 그때는 그걸 극복하기가 힘들고….

이들은 낙태한 여자를 처벌하는 것에 반대했다.
이들 중 한 여성은 “불법화 자체가 누구를 위한 불법화인지를 사실 모르겠다. 가끔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 인구가 뭐 어쩌고저쩌고 출산율이 저조하고 그래서 불법으로 하는 거면 사회를 위한거지 그 아기를 위하거나 엄마를 위한 건 사실 아니잖느냐”고 꼬집었다.
백 이사는 “한국 사회에서 진행되는 현재의 낙태 논의는 국가가 단지 낙태만을 문제시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혼인여부에 상관없이 성행위를 하고 살아가는, 성적 존재로서의 여성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여성 시민권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낙태를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니라, 원하지 않지만 생길 수도 있는 일로 보면서 여성들의 경험이 정책 속에서 의료 현장 속에서 존중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 그것에 따라서 이 땅에서 이루어져 왔던 많은 낙태의 의미도 변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영경 이사는 “여성들에게도 이미 경험한 낙태를 평생의 멍에나 죄의식의 근원이 아닌 개인적으로나 시민으로서도 성장하는 계기로 되살려낼 수 있을 것”이라며 “이후 사회에서 원하지 않는 임신과 낙태, 출산을 줄여가는 노력의 밑거름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김인수 기자

                                                사진/대한사회복지회 외

문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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