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Ⅲ _ 실업계고교 진로

실업계고등학교는 시대가 변함에 따라 명칭이 달라졌다. 실업계고교-전문계고교를 거쳐 특성화고교, 마이스터고교까지. 1960년대에는 상업고등학교와 공업고등학교가 우리나라 경제 산업의 근간이 되는 인력을 양성하는 곳이었으나 1990년대 이후 제조업 분야보다는 서비스 분야가 각광받기 시작하고, 대학 진학률이 높아짐에 따라 실업계고교의 입지가 좁아졌다.

취업인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인 실업계고교에서는 취업률보다 대학 진학률이 더 높은 현상이 일어나고 일부 학생들은 대학을 가기 위한 수단으로 실업계고교에 입학하기도 한다.
충북 충주의 D특성화고교의 이소원(31·가명) 교사는 “남학생은 취업하기가 어렵다. 산업체에서는 오랫동안 근무 가능한 사람을 원하는데 남학생은 입대 문제가 걸려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병역특례 업체가 아닌 이상 대부분 아이들은 회사를 그만두고 입대한다”며 “여학생은 삼성 반도체 등 대기업에서 취업의뢰가 많이 들어오는 편이지만, 남학생들은 대기업에서 취업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한 대기업에서 여학생 열 명을 추천해달라고 학교로 요구가 들어오면 그에 끼워 맞추듯이 남학생 한 두 명 정도 추천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실업계고교는 지역에 따라 취업률의 편차가 있다. 이 교사는 “중소도시인 경우 학부모의 성향이 보수적이어서 학생이 졸업하고 바로 취업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대도시의 취업률이 높은 학교는 공부 잘 하는 학생이 취업하는 경우가 많고, 취업이 결정되지 않은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정부는 2013년도 특성화고 취업목표율을 당초 50%에서 60%로 조정했다. 주요기업, 기관, 단체와 업무협약을 체결해 고졸 채용 분위기를 넓히고 있다. 지난해 9월 지식경제부 산하 60개 공공기관이 550명 채용 계획을 발표했다. 올해 1월 고졸채용 협약 현황은 지자체 단위 10건, 경제 직능단체·기업·관계부처 7건이다. 향후 3년간 금융권에서는 8700명 채용하기로 했고, 지난해 하반기 16개 그룹에서 1만4200여 명을 뽑았다.   

사전 준비 없이 ‘고강도 저 임금’ 노동 현장 내몰려
실업계고교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다각적으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얼마 전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에서 주 58시간 일하던 현장실습생이 뇌출혈로 쓰러지는 일이 발생하면서 실업계고교의 취업 현실에 대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노동환경연구소(소장 임상혁)가 국회에서 발표한 ‘실업계고교현장실습생 실태조사’에 따르면 현장 실습생은 주당 49.6시간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근로기준법에는 근로시간이 휴식시간을 빼고 1주일에 40시간, 하루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고 명시되어 있다. 열악한 근무여건 속에서 현장 실습생들은 폭언과 폭행, 성희롱 등 비인격적 대우를 받는 경우도 있었다. 이번 조사에서 학생 18.3%가 폭언을, 5.8%가 폭행을, 3.8%가 성희롱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실업교육위원회 이성주 정책국장은 “우리나라 기업의 88%가 중소기업이고, 대부분의 학생들이 열악한 환경에 놓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현장 실습생들은 학생임과 동시에 근로자인데도, 지금은 학생도 근로자도 아닌 상황이다.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한 취업률 올리기에 연연해하지 말고 학생에게 도움 줄 수 있도록 내실을 쌓아야 한다”고 말했다.

 

실업계고교 학생들은 3학년 2학기 때부터 수업을 받지 않고 회사로 출근한다. 졸업하기 전까지는 일반 회사의 인턴처럼 현장실습생이 되어 일한다. 현장실습제도란 학생이 학교에서 배운 기술을 산업현장에서 실습하면서 현장 적응력을 높인다는 취지에서 1960년대 도입되었다. 이러한 직업교육훈련 제도는 학생들의 노동력 착취와 인권유린, 학습권 침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정부는 취업률이 높은 200여 개 학교에 취업 관련 예산을 지원하고 있으며, 실업계고교에서는 정부 지원금을 받기 위해 현장실습에 대한 사전준비와 취업교육 없이 학생들을 취업현장에 보내고 있다.

# 현장 실습 나가면 여학생은 성희롱이나 성추행 당하기도 하고, 남학생은 열악한 환경 예고 없는 잔업에 낮은 임금을 받아요.

# 취업 상담이라는 게 따로 없어요. 자리 나는 대로 바로에요. 선생님은 이것만 물어봐요. ‘취업 할 거야? 안 할 거야? 한다고 하면 ‘어디가 괜찮은데 가 봐’. 취업을 무조건 하루 만에 결정해야 돼요. 아니면 취업 자리는 끝이죠.

# 얼마 전에 취업 나간 애가 갑자기 학교에 왔어요. 선생님이 왜 그러냐고 했더니 성희롱 당했다고 했대요. 그때 선생님이 뭐라고 했냐면 ‘임신 안 했으면 그냥 다니라’고... 전체 300명 중에 100명 정도는 학교로 돌아왔을 거에요. 일 그만두고 싶어도, 선생님한테 혼날까봐 일 못 그만둬요. 취업률 나오는 4월에 다시 얘기하자고 그래요.
 
현장 실습생들은 회사에 따라 근무환경과 조건, 급여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회사 방침이 2교대나 3교대 또는 야간근무가 일반적이라면 실습생이어도 그에 따를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아이들은 아직 성인이 아니고 기술 습득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지만 회사에서는 그들에게 다른 직원들이 하는 것처럼 일을 해내기를 바란다. 현장 실습생들은 어느 곳에서도 노동자로서 누려야 하는 권리에 대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현장의 룰대로 일하게 된다.
올해 충청권 소재의 S정보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인터넷 쇼핑몰 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강의명(19·가명) 양은 “취업 나간 학생들의 반이 돌아왔다”고 말했다. 회사를 그만둔 학생의 대부분은 3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너무 힘들어요. 일을 못한다고 팀장님이 집에 가라고, 학교 가라고 욕 했어요. 솔직히 자격증이 있어도 학교에서 배운 것과 회사에서 하는 것은 차이가 있으니까요.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고 선생님처럼 설명해주지도 않으면서 혼자서 하라고 해요. 나이가 어리니까 더 무시해요.”
이 교사는 “대졸자들은 아이들이 일하는 곳으로 취업하지 않는다. 산업체에서는 아이들에게 낮은 급여를 주고 가르친 후에 일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회사에서는 아직 성인이 아닌 현장 실습생들의 상황을 이해하고 당장의 이익보다는 먼 미래에 회사를 이끌어 갈 인재에 투자하는 기업 마인드가 필요하다.
박동렬 직업능력개발원 연구위원은 “기업에서 고졸도 성장할 수 있다는 비전을 심어주고, 체계적인 직업훈련을 위한 기반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취업vs진학, 방황 중인 아이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조사에 따르면 고졸 출신들이 첫 직장을 그만둔 이유로 적성이 맞지 않아서(18.3%), 보수가 적어서(11.1%), 근무조건이 나빠서(10.3%)를 들었다. 50~60%가 중소기업에서 다른 중소기업으로 이동,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이동한 경우는 10% 남짓이었다.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된 케이스는 첫 번째 이직 시 12.3%, 네 번째에는 7.8%로 줄었다. 고졸 출신들이 저 숙련 직종으로 취업하는 것도 취업조건이 나빠지는 한 이유였다.
한 취업담당교사는 “고3 학생 300명 중 대학 진학이 55%, 취업이 35%인데, 취업 나간 아이들 중 상당수가 1년 안에 회사를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지적했다.
실업계고 졸업생의 71.1%가 진학을 선택하고 있지만 그들이 막상 대학에 들어가면 또 다른 벽에 부딪친다.
이 교사는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취업을 권유하는 이유도 공부습관이 몸에 배어 있지 않아 대학에 진학하면 오랜 시간 앉아 수업 받거나, 리포트를 쓴다거나 하는 것들에 적응을 하지 못한다. 대학을 자퇴하는 아이들도 있다”고 했다.
강 양은 지난해 여름 취직 했다. 취업하고 처음 겪는 사회생활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그만두고 싶어도 학교 눈치에 또 자신은 어디로 가야하나에 대한 고민을 풀지 못했다. 
실제로 강 양은 자신처럼 또래 친구들이 “방황을 많이 겪는다”고 말했다. 아이들 눈에 어른들은 학생들 보단 취업률만 신경 쓰는 학교 선생님, 성인처럼 일을 해내라고 강요하는 독단적인 회사 사람들로만 비쳐졌다. 
강 양은 미래에 어린이집 교사가 되고 싶은 소망이 있다. 이를 위해 회사에 다니면서 야간대학에 갈 생각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그녀의 발목을 붙잡는 것이 있었다. 회사도, 학교도 아닌 바로 ‘공부’였다. 어린이집 교사가 되려면 수능을 치러야 하는데 그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고 염려했다.
실업계고교 학생들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법한 고민. 취업이냐 진학이냐를 떠나서 진짜 나의 꿈은 무엇인지, 지금 고민은 무엇인지 물어봐주는 어른이 없다는 것이 그들이 방황하는 가장 큰 이유처럼 보였다.
“술도 많이 마셨어요.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다보니까 풀길이 없어서요. 그러다가 몸도 많이 상했고요. 그럴 때마다 ‘아, 누가 나 좀 말려줬으면, 나를 좀 붙잡아줬으면’하고 생각한 적이 많아요”
현장실습생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어엿한 직업인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무시와 차별을 겪는 아이들. 힘들어서 그만두고, 그 보다 못한 조건 하에서 젊음을 혹사시킨다. 학벌 위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힘겨움과 두려움 때문에 아이들은 깊은 성찰 없이 대학에 진학하고 적응을 못하는 등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한 실업계고교 교사는 “여전히 학교에서 산업 현장에 필요하지 않은 교재를 사용하고 있다. 산업체와 학교의 협력이 절실하다. 장기적으로는 학벌 체제를 허물어야한다”고 지적했다. 
 글/박선미 기자
 자료제공/한국직업능력개발원 외

박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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