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국 경제는 위기로 치달았다. 위기의 고통은 일차적으로 비정규직, 중소기업 근로자, 자영업자, 청년, 여성 등 노동시장 약자에게 집중되고 있다. 실직과 빈곤 위험을 동반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사회안전망의 보호가 제대로 미치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우리 경제의 위기의 원인과 일자리 정책관련 문제를 꼬집어보고, 이에 대한 적절한 대책 방안에 대해 알아봤다.

대학 나와도 취업이 안돼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3%대에 머물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 속에 중장기 성장도 낙관적이지 않다. 지금까지는 제조업 중심의 ‘추격형(catch up)’ 성장전략으로 고도성장을 구가해 왔지만 이제 그 전략도 한계에 이른데다 인적자원의 질적 저하, 생산성 부진 등의 덫에 걸려 큰 위기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대기업 취업지망생인 장규화(30) 씨는 서울의 내놓으라 하는 정도의 명문대는 아니지만, 중간 정도하는 상위권 대학을 나왔다. 그러나 졸업한 지 4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취업을 하지 못해 불안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현재 그는 간간히 아르바이트 일을 하며 용돈을 벌면서 취업공부에 매진 중이다.
장 씨는 “전기전자 분야를 전공해 큰 대기업의 IT계열로 취업하기 위해 열심히 문을 두드렸으나 잘 되지 않았다”며 “현재는 포기를 하고 다른 중소기업 쪽으로 취업을 알아보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사실 중소기업을 알아보고 있지만, 10년 가까이 공부한 게 아까워서 마음은 무겁다”며 “취업하기 힘든 지금의 사회현실이 그저 기가 막힐 뿐”이라고 고백했다.
지난달 7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주최한 ‘한국 경제의 재조명’ 1차 공개토론회에서 경제 석학들은 세계 경제가 침체 국면에 빠지고 정치권이 좌·우로 갈려 이념 논쟁이 판치는 사이에 한국 경제에 위기가 고조되면서 청년층 일자리 문제에도 지장이 생겼다고 주장했다.
이날 고영선 KDI 연구본부장은 ‘덫에 걸린 한국경제, 탈출구는?’이라는 제목의 주제발표에서 한국 경제 최대의 덫으로 질(質) 높은 인적 자원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꼽았다. 그는 대학 진학률이 80%를 넘을 정도로 고학력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막상 대졸자 가운데 취업을 해서 근로를 하거나 교육이나 훈련에 참가하지 않는 사람이 24%에 달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이는 정부 책임도 있지만, 대학과 교수들의 책임도 크다는 지적이다.
고 본부장은 “대학생들에게 일자리를 위해 어떤 교육이 필요한지 조사해 본 교수가 얼마나 되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라고 말했다. 저학년 교육 문제도 제기됐다.
조순 전 부총리는 “사람 교육이 우선인데 우리는 초등학교 교육부터 잘못됐다”며 “자라기도 전에 조폭의 일원이 돼 가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대학에서 광고디자인을 전공한 윤성호(31)씨는 유명광고회사에서 일을 하려고 했지만, 지방대학을 나왔다는 이유로 번번이 거절당했다. 각종 공모전에서 독특한 아이디어로 승부해 상도 많이 받은 경력이 있지만 인정받기는 어려웠다. 윤 씨는 “지금은 마음을 비우고 조그마한 광고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다”며 “취직이 잘 되지 않았던 예전에는 호텔아르바이트, 치킨배달원 등 다양한 일을 전전했었다”고 말했다.

청년층 ‘쉬었음’ 인구 늘어
서울시 양천구 화곡1동에 사는 김경훈(28)씨는 대학 졸업 후 3년째 ‘백수’다. 졸업 후 3개월까진 여기저기 취직자리를 알아봤지만 변변한 면접 기회조차 잡지 못하자 구직활동을 포기하고, 호주로 떠나 지인을 통해 청바지 장사를 배울 준비를 하고 있다.
이처럼 김 씨 뿐만 아니라, 대학 졸업 후, 원하는 직장에 합격하지 못해 방황하거나 아르바이트 등 하층업계의 일로 뛰어드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 즉, 청년실업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것.
지난달 16일 통계청이 발표한 것에 따르면 20대 ‘쉬었음’ 인구가 관련 통계 작성을 시작한 2003년 1월 이후 최대치로 증가했다. 또 20대 중 취업 경험이 전무한 ‘취업 무경험 실업자’도 지난해 같은 달보다 24.1% 급증한 것으로 나타나 청년실업이 고착화되는 양상이다.
올 1월 비경제활동인구 중 20대 ‘쉬었음’ 인구는 33만7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27.3% 증가했다. 고용통계상 15세 이상 인구는 경제활동인구(취업자 및 실업자)와 비경제활동인구로 나뉜다. 비경제활동의 이유는 육아, 가사, 재학, 장애, 취업준비 등 다양한데 ‘쉬었음’은 특별한 이유 없이 구직활동을 하지 않고 일자리를 구할 의사가 없는 사람을 뜻한다.
통상적으로 ‘쉬었음’은 은퇴한 50대 이상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올 1월에는 이례적으로 20대 ‘쉬었음’ 인구가 급증했다. 이 때문에 전체 ‘쉬었음’에서 50대 이상 비중은 60.2%(2011년 1월)→57.6%(올 1월)로 줄어든 반면에 20대 비중은 14.1%→16.7%로 늘었다.

일자리 양극화 현상 극대화
현대경제연구원은 전체 일자리를 171개 직종으로 분류하고 시간당 평균 임금(2001년 기준) 수준에 따라 다섯 등급(상위·중상·중간·중하·하위)으로 나누어 분석한 결과 지난 10년간 상위와 하위 일자리는 많이 늘어난 반면, 중간 일자리는 속도가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것을 밝혔다. 이른바 일자리 양극화 현상이 나타난 것.
통신업종의 사무직 종사자 평균 임금은 상위 20%에 해당돼 다섯 등급 중 가장 높은 ‘상위’, 제조업 기능직은 하위 20~40%에 해당돼 ‘중하’ 수준의 일자리로 분류했을 때에 2001년 일자리 현황을 비교했더니 10년 전에 비해 상위와 하위 취업자 수(일자리)는 각각 101만1000개(37.5%), 105만3000개 (37.6%) 급증했다. 중상도 94만7000개(37.4%) 급증했고,
반면 중하 일자리와 중간 일자리는 각각 32만5000개(11.7%)와 60만5000개(22.1%) 증가하는 데 그쳤다. 임금 수준이 좋거나 나쁜 양 극단의 일자리만 늘어나는 ‘리본형’ 구조로 국내 고용시장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다른 기준으로 분석한 결과도 일자리 양극화 추세를 뚜렷이 보여줬다. 2001~2011년 전체 임금 소득자 중 중간 임금 소득자(중위 소득의 66~133%) 비중은 43.5%에서 35.4%로 줄어든 반면, 임금이 그에 못 미치는 하위 임금 소득자는 23.2%에서 26.7%로, 임금이 그보다 높은 상위 임금 소득자는 33.3%에서 37.9%로 각각 늘어났다.
문제는 새로 창출되는 상위 일자리는 기존에 직장을 갖고 있던 경력직이나 소수 청년층의 몫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많은 청년층이 중간 일자리를 노리지만, 그런 일자리는 많지 않아 결국 하위 일자리에 취업하고 만다.
이준엽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청년들이 사회의 상위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일자리 사다리가 끊어지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일자리 양극화는 결국 소득과 사회 양극화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다. 2001년 이후 우리나라는 고소득층과 빈곤층이 모두 늘고, 중산층은 갈수록 줄고 있는데 그 근본 원인이 일자리 양극화에 있다는 게 현대연의 분석이다.
김천구 연구원은 “중간 일자리 비중이 감소하면서 중산층 비중이 줄어들고, 근로자가 일을 통해 경제적인 지위를 높이는 일도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중산층 비중은 2000년부터 2010년까지 71.7%에서 67.5%로 줄고, 빈곤층 비중은 19%에서 20%로 증가했다.

구조적 빈곤층 해결에 복지정책 초점 맞춰야
지난달 15일 은행회관 2층에서 열린 한국경제의 재조명 2차 토론회에서 경제개발 이후 성장과 소득 분배가 적절히 조화를 이뤘지만 최근 빈곤층 상황이 급격하게 악화되고 빈곤이 장기화되는 구조적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 됐다.
1996년부터 2010년까지 소득 하위 10% 가구가 차지하는 소득 비중은 78.2% 감소했다. 2000년대 들어 27.4%가 장기적이면서도 반복적으로 빈곤을 경험했다. 또 저소득층 경제활동 참가율이 빠르게 감소해 1996년 이후 저학력 남성의 경제활동참가율 감소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14.5배 수준에 달한다.
윤희숙 한국경제개발원(KDI) 연구위원은 이날 “저개발국가와의 경쟁으로 경공업이 급속히 붕괴됐고 서비스업 비중이 급증하면서 저임금 일자리가 확대되면서 저소득층의 근로의욕 자체가 낮아진 것이 원인”이라고 말하며 이 가운데 우리나라 복지제도는 대상자 보호에 중점을 두고 있어서 자립이나 조기 빈곤탈출을 돕는 데에는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윤 연구위원은 이어 “취업지원 서비스도 고용보험 가입자 위주로 운영돼 취약계층이 구직을 위한 도움을 얻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며 “대부분의 빈곤 아동들도 열악한 환경에 방치돼 사회경제적 불리함이 대물림되는 구조”라고 말했다.
최근 정치권에서 쏟아지는 각종 복지 공약들도 실용적이지 않은 담론 수준에 불과하다고 분석했다. 이어 장기 빈곤층의 고착화를 막기 위해서는 인적 역량을 강화하고 자립을 지원해 가능성을 재분배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연구위원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기간을 제한하고 고용지원서비스의 틀 안에서 지원해야 한다”며 “저소득층 아동들이 계층이동을 할 수 있도록 공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확대되고 있는 구조적 빈곤층을 일으켜 세울 복지정책으로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윤희숙 연구위원은 발표를 통해  장기적 빈곤층 형성이라는 초유의 도전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을 중심으로 한 복지 논쟁은 실용성을 결여한 담론 수준에 매몰돼 있다고 비판했다. 우리가 직면한 도전으로 ‘취약계층 몰락의 구조화’를 꼽았다.
그는 “실제로 장기·반복적 빈곤가구의 비율이 전체의 27.4%에 달한다”며 “성장의 과실로부터 소외된 구조적 빈곤층 형성은 경제개발 이후 초유의 도전”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를 해결할 복지담론은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즉 정치권은 선진국 수준의 복지지출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복지지출 총량은 복지 수준에 대한 극히 단편적인 지표에 불과하고, 서구 국가들이 복지지출 총량을 줄이기 위해 전력하고 있는 것은 선진국 수준의 복지가 복지지출의 벤치마크가 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무상 복지정책은 방향성을 상실한 채 흘러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보육정책을 제시했다. 보육지원의 목표는 자녀양육이 부모의 경제활동에 장애가 되지 않으면서 자녀가 필요한 돌봄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임에도 경제활동 여부와 상관없이 무상보육을 확대해 ‘시설에 안보내면 손해’라는 의식이 형성되고 있다는 것.
윤 연구위원은 “그 결과로 1대1 양육의 중요성이 큰 0~2세의 보육시설 이용률이 50.5%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그룹에 진입했다”고 지적했다.
또 “보편적 복지인지 선별적 복지인지는 선험적으로 선언되는 것이 아니라 영역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며 “국민 모두가 양질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한 부분은 보편적 복지로 접근하되 현금 지원은 취약계층에 정조준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기 빈곤층의 고착화라는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복지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소득의 사후적 재분배’ 뿐 아니라 ‘가능성의 재분배’를 위한 국가의 역할이 강조돼야 한다는 것. 현재는 재정지출이 직접 일자리 창출에 집중돼 있고 광범위한 저임금 근로자층에도 불구하고 공적 부조 보장액은 법정최저임금을 상회하면서 취약계층을 주저앉히고 있다는 지적이다.
윤 연구위원은 “노동시장 성과를 개인의 몫으로 남기고 정부는 사후적 재분배에만 개입하는 모델에서 시장소득이 결정되기 전 단계와 패자부활 단계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특히 “저소득층 아동들이 타고난 불리함을 극복하고 계층 이동을 이룰 수 있는 인적 역량을 제고할 수 있도록 통합지원서비스를 확대하고 공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취업 지원이나 직업 훈련이 필요한 시점에서 누구나 쉽게 도움을 얻을 수 있도록 고용지원서비스 인프라를 확충하고 재원도 고용보험에 의존하지 말고 일반회계 기여분을 확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양질의 일자리 정책 개선돼야
최근 정부에서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전면에 내세운 새 정강정책을 발표했다. 올 4월 11일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의결한 당 헌법격인 정강정책 개정은 ‘절체절명’에 빠진 당의 위기를 극복하고 국민신뢰를 회복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다.
정안은 기존의 전문과 18개 조항으로 구성된 나열식 구조에서 전문과 10대 약속과 23개 정책으로 변경해 세분화, 구체화 됐다. 1대~2대 약속은 ‘복지국가’와 ‘일자리 걱정 없는 나라’를 명시하고 있다. 또한 3대 약속인 ‘공정한 시장경제 추구’는 ‘경제 민주화 실현’을 명시하고 있다.
제1대 약속인 복지 조항은 평생 맞춤형 복지를 한국형 복지모델로 정했다. 보편과 선별주의를 아우르고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위한 맞춤형 복지인 것.
이는 국민의 생애주기별로 사회보장 혜택을 받을 권리를 부여하는 동시에 국가가 사회보험 보장성 확대 등을 통해 이를 보장토록 했다. 이는 아동ㆍ여성ㆍ노인ㆍ장애인ㆍ다문화가정ㆍ탈북자 등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복지ㆍ고용 서비스다.
일자리 2대 조항은 기존의 ‘성장률’ 대신 ‘고용률’을 경제정책의 핵심지표로 설정했다. 또 청년 일자리 정책을 핵심정책으로 삼고, 노인ㆍ장애인에 대한 맞춤형 일자리 대책을 추진토록 하는 한편 근로시간의 적정화로 일자리를 창출토록 했다.
경제 민주화 실현과 관련된 ‘공정한 시장경제’(3대) 조항은 “경제세력의 불공정 거래를 엄단해 공정한 경쟁풍토를 조성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공정경쟁과 동반성장을 촉진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확대 한다”이다.
정강정책 개정을 주도한 정책쇄신분과위원장인 김종인 비대위원은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국민이 원하는 데로 일자리 부분을 앞으로 보냈다”며 “헌법 119조 2항 경제민주화 조항을 넣었다”고 강조했다.
이뿐만 아니라 앞으로 노동 시장의 불평등과 양극화 해소를 위해 고용정책의 기조를 ‘양질의 일자리’ 정책으로 전환하는 것도 시급하다. ‘1 대 99 사회’로 상징되는 불평등 문제는 신자유주의에 기초한 현행 자본주의체제를 뿌리째 뒤흔들고 있다. 일을 해도 빈곤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 ‘나쁜 일자리’는 일시적으로 고용지표를 좋게 만들지는 모르나 노동자의 삶의 질 개선과 사회 통합력 제고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을 통해 안정적으로 생계를 꾸려 갈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가 중요하다.

문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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