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인 학습지 TV광고에서 보이는 교사들은 말끔한 차림을 하고, 아이들 앞에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친근한 이웃인 마냥 학습지를 대변한다. 하지만 현실 속의 학습지 교사들은 추운 길바닥에서 천막을 치고 노숙을 하면서 따뜻한 봄을 기다리고 있다. 거리에서 부조리한 현실과 맞서 싸우는 학습지노동조합 재능교육지국 학습지 교사들. 그 힘든 투쟁을 여전히 지속하고 있는 현장 속의 그들을 만나 목소리를 들어봤다.

시위 1500일째 되는 날
영하 5℃의 추위가 계속되던 지난 1월 28일 오후 2시. 서울 시청역 재능교육 본사 앞의 하얀 천막이 쳐져 있다. 이 주변에는 ‘농성시위 이제는 끝내야 된다’부터 ‘노조탈퇴 거부해서 해고되고, 살림살이 압류당하고..용역깡패 폭행·성희롱..치 떨리는 탄압에도 당당하게 투쟁 한다’ 등 다양한 플래카드가 여기저기 공중에 소리 없는 외침으로 떠 있다.
천막 안에서는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유명자 재능교육 지부장 씨부터 여민희(39) 조합원 등 3명의 선생님들이 늦은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식사가 끝난 뒤 밤샘농성을 지속하여 피곤한 몸을 이끌면서도 바깥에서 시위를 시작하게 될 참가자에게 따뜻한 커피를 타주며 웃음을 지었다. 이날로 농성투쟁 1500일째 맞는다는 그들은 지친 투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포기하지 않을 기세로 당당히 거리에 서 있었다.
유명자 지부장은 “학습지 교사는 거의가 사회적 약자인 주부 사원 여성들이다. 그 전에는 주부 교사들이 가정 경제에 보탬이 되고자 일을 시작했지만 경제가 어려워진 5~6년 전 부터는 집안 가계를 책임지는 ‘가장’이 대부분”이라며 “남편 실직으로 가정이 깨지고 아이를 키우는 이들이 바로 주부 교사인 것이다. 지금은 힘들어도 더 이상 빼앗기는 삶을 사는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에 투쟁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 조합원은 “원직 복직과 단협 체결 외에 교사들의 권리를 되찾을 길이 없다는 생각에 투쟁을 멈출 수 없다”며 “노동자로 인정받기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고 말했다.
여민희 조합원은 1998년 2월 재능교육 교사로 입사해 5년 동안 일을 해왔으나 회사의 방침이 바뀌면서 특수고용노동자로 전락하자 부당한 대우에 대한 잘못됨을 세상에 알리고 정당한 대우를 위한 싸움에 가담하였다.
그들은 이윽고 오후 3시가 되자 민주노총 서비스연맹과 학습지노조 재능교육지부, 쌍용자동차 희망텐트촌 등 노동계와 진보신당, 사회당 등 제 정당, 시민사회단체 회원 등 300여 명의 참여자와 함께해 ‘재능투쟁 1500일. 승리를 위한 집중투쟁 재능교육을 점령하라’라는 이름으로 집중 집회를 펼쳤다.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들은 지난 2007년 12월 21일부터 특수고용노동자 노동기본권 쟁취, 단체협약 원상회복, 해고자 원직복직 등을 내걸고 1500일간 노숙농성, 1인 시위, 공조단식 등을 벌여 왔다. 회사 측은 학습지교사는 특수고용노동자에 해당하기 때문에 노동조합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며, 해고자 선별, 순차 복직과 단체협약 원상회복 불가 등을 주장하고 있어 4년이 넘도록 노사 간의 갈등이 해결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사회의 유령 학습지교사
“일방적인 계약내용 변경으로 급여는 깎이고, 가짜회원을 만들어서라도 실적을 채워야 하며, 밀린 교육비는 대신 물어내야 합니다. 퇴직금 한 푼 없이 쫓겨나야 하구요. 4대 보험 중 그 어느 것도 보장받지 못합니다.”
지난 2001년 처음 재능교육 회사 측과 단체협약을 맺었으나 매번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변명으로 미루다 간간히 진행된 협상은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노동자로 인정만 해주면 되는데, 왜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대로 행하는지 정말 너무한다고 여 조합원은 소리 높여 말했다.
본래 학습지교사들은 정규직이었다. 그러나 IMF가 터진 후, 재능교육측은 월급개념에서 수수료제도로 바꿨다. 장기근무 교사들의 수수료(일종의 임금)가 10만~100만 원 이상 삭감됐다. 새로운 회원을 유치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회사 수익 발생이 덜하게 되자 학습지교사들을 ‘특수고용노동자’로 전환시킨 것이다. 밀린 교육비도 회사가 아닌 교사 개인이 대신 물어내라는 방침도 만들었다. 안되면 퇴직금 한 푼 없이 쫓겨나야 했다. 학습지선생님의 90%가 가임기 여성이지만 생리휴가, 산전후휴가, 육아휴직 등 기본적인 모성의 권리조차 없다. 일하는 여성노동자라면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모든 권리를 누릴 수 없는 것이다. 정부와 자본은 학습지 선생님들이 노동자가 아닌, 개인사업자라고 했다.
재능교육의 노동조합 말살정책은 극에 달해 조합간부에 대한 부당해고에 이어, 단지 조합원이라는 이유하나로 2010년 12월 31일자로 현장의 조합원 전원을 해고하였다.
유 지부장은 “특수고용자들은 사회의 유령”이라며 “우리를 개인사업자라고 하지만 이건 말도 안 된다. 우리는 100% 회사의 지휘 감동 아래 있고 대부분의 일은 100% 영업실적이다. 연봉, 근속 년수, 호봉 개념, 퇴직금도 없다. 가장 큰 문제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이 스스로 정확하게 자신의 신분에 대한 답을 갖고 있는데, 조직력에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일전에 단체협약을 맺은 내용은 교사가 안정적으로 오래 근무할 수 있는 환경과 급여개선, 퇴직금 없어도 오랜 기간 교사가 안정적으로 근무하면 퇴직금을 받도록(수수료를 접목하여) 했으며, 그만두는 회원이 생겨도 일방적으로 교사책임이 아니라는 ‘퇴회면제제도’도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유 지부장은 “또 한 회원을 오랜 기간 학습할 수 있도록 유지하면 인센티브 받게 했으며, 근속 년수에 따라 정규직 전환도 가능하게끔 했었다”며 “시골이나 주택 등지에 수업하러 나가는 선생님들에게 ‘장거리유지비’ 명목으로 기름 값을 지급하도록 했고 영업에만 치우치지 않는 인수인계 조항을 넣었으며, 휴가비도 단체협약 넣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이행은 2004년까지 되다가 2007년 5월 계약시키면서 2008년부터 휴가비가 해지 되었고, 회원들에게 어린이날 선물 지급이 폐지됐다. 회사 측에서는 고용비용을 절감하려 특수고용을 도입했던 것인데 회원 수에 비례해 임금의 총파이가 올라갔던 것. 이후 2007년 5월 완전 계약제도가 된 것이다. 수수료제도에 대해서도 회사 측이 주장하는 건 우리가 ‘노동자’가 아니라 ‘노동조합’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유 지부장은 “특수고용자도 다른 노동자와 똑같이 ‘노동자’다”라고 말했다.

노동자로 인정받기 위해 오늘도 싸운다
해고된 재능교육 학습지교사들은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간간히 아르바이트 과외, 녹즙배달 등을 하며 농성시위 참가에 열연이다. 대답 없는 메아리와 같은 힘겨운 투쟁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그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부당한 대우에 대한 권리를 인정받기 위해 매일 아침, 점심, 저녁으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으며, 저녁 7시만 되면 시청 앞에서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한 문화재 공연을 펼치기도 한다.
그러나 회사는 단체협약 일방파기, 구사대를 통한 살인적인 폭력, 깡패 동원 여성조합원 상습폭행·언어 성폭력, 조합원 구속, 손배 가압류, 고소고발 남발 등 노동조합을 죽이기 위한 탄압으로 일관하고 있다. 또한 정부는 오히려 이러한 사태에 대해 침묵으로 방치하며, 어떠한 대책도 마련하지 않을 기세다. 현재 학습지회사의 회장들은 대한민국 주식부호 대열 윗자리에 당당히 올라 있다. 대교 회장 6548억 원(6위), 구몬 회장 6327억 원(7위, 부인 9위), 웅진 회장 5529억 원(26위), 재능 박성훈 회장 1196억 원(48위) 등 모두 수천억 원 대의 주식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시위를 벌이고 있는 학습지 교사들은 “더 이상, 재능교육은 교육기업이 아니다. 재능선생님들의 목줄을 죄이며 사회적 살인을 저지르고 있는 반 교육 반여성 반 노동 기업, 재능교육은 반드시 퇴출되어야 한다”며 “반드시 이들의 잘못된 점을 바르게 잡기 위해서라도 투쟁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라고 외쳤다.
이들은 특수고용 노동자, 학습지 노동자들을 노동기본권, 인권의 사각지대에 몰아 놓는 이 사회를 고발하고, 모든 노동자들에게 노동기본권, 4대보험이 당연히 인정되듯 학습지교사도 당당한 노동자로 인정받는 그날까지 그들은 싸울 것이다. 

문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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