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외면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우리나라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시행된 지 올해로 12년이 되었으나 세월이 무색하게 가장 기본적인 사회안전망이라고 할 수 있는 기초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사람들은 아직도 4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더구나 중증장애인들은 일반인들보다 불안한 삶을 살고 있는 가운데, 기초수급을 받을 수 있는 장애인들의 조건이 제한적이어서 많은 장애인들이 적합한 처우를 받지 못해 어려운 실정이다. 특히 부양의무제로 딱한 사정에 있는 장애인들이 국가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논란이 되고 있다.

생활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장애인
현재 우리나라 기초법의 부양의무자 기준은 한국 빈곤의 문제를 그 가족에게 떠넘기고 있는 것으로 기초법의 취지에 어긋남에도 10년째 기초법 사각지대 형성의 일등공신으로 자리하고 있다. 부양의무자 기준은 가난을 되물림 할 뿐만 아니라 부양능력이 없거나 부양할 의사가 없는 부양의무자에게 부양능력을 간주함으로써 가족 간의 관계까지 단절시키고 있다..
2009년 정부발표에 따르면 빈곤층임에도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가 되지 못해 사각지대에 방치된 사람들은 410만 명으로 전인구의 약 8.4%나 된다. 이는 기초생활수급을 받는 인구의 2.5배가 넘는다.
지난해 10월에 발생한 장애인 자녀를 둔 50대 아버지의 자살 사건이나, 새해 벽두에 있었던 60대 수급자노부부의 동반자살 사건 등에서도 알 수 있듯이 빈곤 사각지대로 인한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는 양상이나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비현실적 규제로 인하여 수급자 수는 10년째 3% 수준에서 변화가 없는 실정이다.
특히 소득과 재산이 모두 현행 기초생활보장 수급기준에 해당하는데도 부양의무자 규제로 인해 수급자가 되지 못하는 사각지대는 1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실제로 7,000여 가구를 표본가구로 매년 실시하는 <한국복지패널>의 2009년 분석 자료에 따르면 수급신청자 본인의 소득과 재산은 기준에 부합하나 부양의무자로 인한 수급신청 탈락비율이 58.3%에 달하고 있다.

지난달 15일 종로구 명륜1가 소재 장애인임대아파트에서 사는 하상윤(40) 씨는 뇌성마비장애인1급으로 기초생활보장법 부양의무자 기준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그는 구청에서 지원하는 장애인 일자리지원으로 매주 화, 수, 목, 금요일마다 5시간 일하고, 월 25만9000원을 받으며, 장애인 연금 매달 9만원을 받고 있지만, 이 돈으로는 턱없이 생활하기에 부족하다.
게다가 현재 지내고 있는 장애인임대아파트도 기간이 1년으로 정해져 있어 앞으로 살 주거지를 또 찾아야 하는 상황이 다가 오고 있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 씨는 “아버지가 경비 일을 하고 계시는데 소득 100만원을 받고 있다”며 “이러한 이유로 부양의무자 기준에서 제외되어 오로지 아버지 월급과 연금, 저의 월급으로 생활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아버지께서 나이가 들면 더 일할 수 없는 상황이 올테고, 제가 또 자립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니 말도 안되는 부양의무제 때문에 여러모로 피해를 보고 있다”고 고백했다.

지난달 20일 종로구 동숭동 소재 노들장애인야학에서 만난 뇌병변장애인1급 이영애(47) 씨도 기초생활법기준 부양의무제에서 제외되어 피해를 보고 있었다.
이 씨는 “부모 및 형제가 있고, 동생이 끌고 있는 차도 있는데, 그런 이유로 기초생활수급자 혜택에서 제외되어 전혀 도움을 못 받고 있는 상황”이라며 “팔도, 다리도 쓸 수 없는 상황에서 아무 일도 못하는데, 겨우 연금 14만원으로 매달 생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연금도 2년 전 받은 것으로 활동보조인 쓰는 조건으로 개인 부담 5만원을 내고, 학교 학급비(노들야학) 4만원 등 각종 생활비를 쓰고 나면 정말 돈이 없어 불편하다”고 고백했다.
현재 이영애 씨는 활동보조인을 옆에 두며 활동하는 데 도움을 받고 있는 처지다.
이 씨의 활동보조인 주혜원 씨는 “영애언니와 같이 뇌병변장애인 분들은 몸을 쓰지 못하기 때문에 반드시 활동보조인이 필요하다”며 “탈 시설에서 벗어나 자립의 힘에 도움을 받아야 이들은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주 씨는 이어 “하지만 대부분 뇌병변장애인들이 이러한 활동보조인을 옆에 두기 위해 개인부담을 조금 씩 하고 있다. 이것도 장애인의 따라 부담액수가 다르다”며 “언니 같은 경우는 학교에서 장학금을 받고 있어 이 것으로 대신 생활비로 쓰고 있는 상황이다. 뇌병변장애인들은 또 활동보조기기 충당하는 개인 부담도 적지 않으므로 여러모로 돈이 나가야 되는 상황인데, 이것을 정부에서는 제대로 파악하지도 않은체. 기초생활법의 기준 적용을 만들어 장애인들에게 불리한 조건을 내세우고 있다”고 주장했다.

부양의무자로부터 소득 받는 수급자는 절반에도 못 미쳐
결혼한 지 6년 동안 해마다 한 번씩은 기초수급자 신청을 한 장애인 부부 박금자(가명?70), 김형석(가명?75) 씨. 시댁재산이 있고, 부양의무자라는 이유로 기초수급자 선정에 탈락됐다. 그들은 “보통 상식선에서 생각해 봐라. 비장애인들 같은 경우에 40살이 된 아들이 부모님을 모시지, 부모님이 아들과 며느리를 먹여 살리는 개 같은 경우는 없을 것이다. 우리 장애인들도 그 상식선에서 살고 싶다.”라는 내용으로 2010년 12월 청와대 부양의무제 폐지 탄원서를 제출했다.
그들은 작년까지만 해도 1년에 2. 3번은 시댁부모가 생활비를 보태주었다. 하지만 올해 들어 시댁부모들이 건강이 나빠져 생활비를 보내주지 못하고 있는 상황.
박 씨는 “자식이 되가지고 보태드리지는 못할망정 어떻게 거기다 대고 돈을 내놓으라고 할 수 있겠냐”며 “그분들의 평생 피땀 흘려 이룩한 재산도 어떻게 달라고 할 수 있겠냐. 그런상황에서 자식된 도리도 형제간에 우애도 지킬 수 없는 삶을 우리는 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복지 법이 달라졌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아도 힘든 삶을 사는 사람들의 한이 더 이상 깊어지지 않도록 정부가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말했다.
또 다른 지체장애인 김우열(48) 씨는 “2년전 아들이 있다는 이유로 수급이 탈락되었다”며 “아내는 장애4급이었는데 암으로 투병하다 제대로 치료도 못 받고 사망했다. 작년에 택지개발지역 무허가 건물에 살고 있는데 계고장이 12번 날라 와서 당장 쫓겨날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2년 전에는 아들이 있다는 이유로 탈락이 되었는데 알고 보니 아들도 어렵게 살고 있던 것으로 확인
되었다. 현재 가족은 4명이며 경기도 안양에서 전세 6000만원의 집에서 어렵게 살고 있다. 작년 3월에 다
시 신청을 하러 갔다가 어머니가 17평짜리 아파트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수급 신청을 거절당했다.
2005년 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수급권 탈락 사유의 약 25%가 부양의무자 기준에 의한 것이지만 절반 이상이 ‘부양의무자’로부터 사적이전소득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2009년 기초생활권리행동과 곽정숙 의원이 공동 시행한 ‘기초생활보장 수급가구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신청탈락가구의 경우 부양의무자기준으로 탈락한 사례(43%)가 가장 많았다. 이어 소득기준(23.8%)과 재산기준(19.0%)으로 인해 신청 탈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중도 탈락한 가구의 경우 본인가구의 소득증가로 인해 수급 탈피한 경우가 가장 많았고(50.0%) 이어 부양의무자가구의 소득 혹은 재산의 증가로 탈락한 사례가(22.2%) 뒤를 이었다. 수급탈락의 사유 중 부양의무자기준이 큰 영향을 미쳤다.
장애인권익연구소 관계자는 “부양능력이 없거나 부양을 할 수 없더라도 부양의무자의 존재 때문에 수급에서 제외되는가 하면, 수급을 받는 경우에도 기초보장제도에서 설정한 간주부양비와 실제 부양비에 격차가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또한 현행법에서는 부양의무자 가구의 소득 및 재산의 소득환산액 기준이 비현실적이어서 수급자와 부양의무자의 동반추락을 방치하거나, 시행령에 행방불명, 부양기피?거부 사유를 포함한 부양의무자가 있어도 부양을 받을 수 없는 경우에 관한 규정을 행정청의 재량에 맡기는 등 사각지대를 더욱 확대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빈곤에 대한 부양의식 여론조사에 따르면 빈곤한 사람은 ‘정부’에서 일차적으로 부양해야 한다는 의견이 74%가 넘었으며, 선지원 후 보장비용을 청구하는 구상권의 행사에 대해서도 찬성의 비율이 반대하는 비율보다 높게 나타났다.
현행법은 부양의무자의 실제소득이 최저생계비의 130% 이상인 경우 부양능력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비현실적인 최저생계비와 연동되어 있는 부양능력 판별기준은 그 기준 자체가 아무런 근거가 없을 뿐 아니라 국가가 보호해야 할 빈곤층을 가족이 책임지라고 하는 것에 있다. 빈곤으로 인해 가족 관계가 취약해져 있는 조건에서 부양 의무자 기준은 가족관계의 파탄까지 야기하는 요소로 빈곤층에게 이중삼중의 고통의 요소가 되고 있는 것.
빈곤사회연대 관계자는 “부양의무자 기준은 폐지되어야 마땅하며, 가족의 책임이 아니라 개인에 대한 사회의 책임으로서 기초법이 기능할 수 있도록 변화하여야 한다”며 “그동안 부양의무자 기준의 완화 조치들은 꾸준히 있어왔다고 하고, 복지부도 올해 기준 완화를 계획하고 있다고 하지만, 완화조치 이후에도 수급자 추이에는 별 변동이 없었던 상황을 볼 때, 소폭의 완화조치가 아니라 부양의무자 완전 폐지가 필요함을 다시 한 번 강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애인 자립의지 마저 꺾고 있는 기초생활법
중증장애인의 경우 장애인연금이 최대 15만원까지 지급되지만, 이로써는 장애에 따르는 비용 충당도 어렵다. 대다수의 중증장애인이 현재의 노동시장에서 소득활동을 하기 어렵기 때문에 소득은 전무한 실정. 기초생활수급자격이 장애인에게 확대되어야 함에도, 부모가 있다는 이유로 수급신청을 하지 못하여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상태에 있는 장애인들이 많고, 시설에서 나오고자 하더라도, 주거 문제와 더불어 가장 큰 장벽이 되는 것이 소득이 없다는 것.
지역사회에서 장애인이 자립생활하며 함께 살아가기 위한 제반 조건이 갖춰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기초생활보장법 부양의무자 기준은 장애인들을 절망의 빈곤에 내모는 주된 요인이 되고 있다.
또한 자립생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자생적으로 생겨나고 있으나, 구체적인 자립생활서비스와 자립생활센터에 대한 체계적 지원이 부족한 실정이다. 특히 기초생활수급제도가 장애인의 취업 의욕을 꺾는 요인으로 작용되고 있다.
전문가들의 설명에 따르면, 자산 및 소득수준이 낮아 기초생활수급권자로 선정되면 한 달에 100만원 안팎의 돈을 받을 수 있는데 소득이 생기면 수급권이 박탈되는 경우가 많아 굳이 취업을 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
아울러 취업자 중 무급으로 가족의 일을 돕고 있는 장애인이 9%나 되고, 단순노무(34%)와 농림어업숙련근로자(19.7%)에 종사하고 있는 이들이 취업자의 절반이 넘는 등 취업의 질도 크게 떨어지고 있어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한국장애인연맹 김대성 사무총장은 "취업을 하면 의료지원도 못 받고 임대아파트 입주 대상에서도 제외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취업을 하더라도 어느 정도 자립기반이 마련될 때까지는 기초생활수급자에서 제외하지 않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부양의무제 기준을 폐지하고 실질적인 대책 강구해야
최저생계비는 법에 규정된 국민의 소득?지출수준과 그 격차가 점점 벌어져 1999년 계측된 최저생계비는 같은 해 도시근로자 평균소득의 40.7%였다가 2008년에는 30.9%까지 떨어진 상황이다. 물가 폭등으로 인해 생활고가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실질적인 생활지원의 효과가 점점 떨어지고도 있다.
지난 2월 임시국회에서는 민생현안이 가장 큰 의제라고 알려져 있다. 여러 시급한 민생현안이 있지만, 가장 가난한 이들의 생존을 보장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이렇게 광범위한 사각지대를 방치하고 있는 상황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기본부터 바로세우지 못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노들장애인야학 한명희 관리인은 “가난의 책임을 이제는 가족에게 떠밀지 말고 우리 사회가 좀 더 책임질 수 있어야 할 것”이라며 “특히 임시국회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 혹은 대폭 완화하여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도록 힘을 기울여 주기를 당부 한다”고 충언했다.
노들장애인야학을 비롯한 빈곤사회연대단체에서는 정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요구하고 있다.

▶부양의무자 기준폐지
현행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부양의무자 기준을 법으로 명시하고 있다. 기초법은 국가와 사회가 빈곤한 국민을 책임지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이다. 형편에 따라 따로 사는 부모나 자녀에 대한 생계지원을 하는 것은 상식적인 일이지 법으로 강제할 문제가 아니다. 더구나, 다른 가족을 지원할 수 있는 소득 기준선을 법으로 정해놓는다는 것은 가난한 이들에게 오히려 더욱 큰 짐을 지워주는 결과를 낳는다. 수많은 가난한 이들이 이 조항으로 기초생활수급을 받지 못하는 이들은 말 그대로 비참한 현실에 놓여있다. 또한 수급자이면서 다른 가족이 소득이 있는 경우에는, 실제로 생계비를 지원받고 있는 것도 아니더라도 간주부양비가 책정되어 수급비가 줄어드는 상황이 발생해, 빈곤층의 안정적인 자활지원이라는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 부양의무자 기준은 시급히 폐지되어야 한다.

▶ 최저생계비 현실화와 상대빈곤선 도입
최저생계비는 ‘국민이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하여 소요되는 최소한의 비용’이라고 법에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오히려 수준이 낮아져 “바닥 생존”만을 강요한다고 비판받아왔다. 지속적인 상대적 수준의 하락을 막고 가난한 이들에 대항 실질적인 지원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평균소득’ 등을 기준으로 하는 상대빈곤선 도입이 절실하다.
지금의 계측방식인 전물량 방식은 자의적이고 주관적인 측면이 강하다. 생활을 위한 최소한의 재화조차 포함하고 있지 못하다는 비난을 면치 못해왔다. 또한 지역별, 연령대별, 장애유무 및 유형별 등 가구 특성에 맞는 생계비 계측과 적용이 필요하지만 실제로 이러한 문제들이 고려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사회지표가 될 만한 상대빈곤선 기준선을 도입하여 최저생계비를 현실화하고, 수급권자의 가구유형, 생활실태, 개인 특성을 고려한 최저생계비 결정방식을 도입할 것을 촉구한다.

빈곤사회연대단체 관계자는 “활동보조를 비롯한 의료 서비스나 복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며 “당장 자립생활을 보조할 서비스가 필요할 것이고, 건강관리나 재활치료 등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연계해 제공받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5조에서는 부양의무자가 있어도 부양능력이 없거나 부양을 받을 수 없는 자는 예외로 한다"라고 하고 있는데, 대부분 장애인들이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시행령 제5조의 부양을 기피하거나 거부한 경우로 실제로 부양의무자의 혜택을 받을 수 없어 취소에 대하여 억울한 경우가 된다”며 “정부의 법해석이 직권에 의한 이의신청을 배제하고 신청자의 행위를 전제로 이의 신청권을 인정하는 것은 너무나 과도한 해석이니 반드시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료도움/전국장애인차별연대, 노들장애인야학

문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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