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테니스 선수로 활약하다 ‘휠체어 성악가’로 변신한 테너 황영택(45) 씨. 그는 자신의 어려움을 음악으로 대신하며 삶을 극복해 많은 장애인들에게 꿈과 희망의 메신저 역할을 하고 있다.
따뜻한 감동이 숨어 있는 그의 아름다운 인생이야기를 직접 만나서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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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의 사고, 그리고 장애인
“‘휠체어 성악가’라는 이름은 저를 대변하는 이름이기도 하죠. ‘휠체어’를 앞에 명명한 이유는 ‘장애인 아티스트’라는 뉘앙스로 사용하기 위해서 붙여졌습니다. 그 이름에 대한 속뜻은 제 2의 삶을 살아가겠다는 제게 있어 어떤 삶의 극복 결정체라는 의미도 있죠.”
지난달 9일 경기도 부천시 소재 황영택 씨의 개인 사업하는 가게에서 그를 만났다. 황 씨는 자신을 사람들이 ‘휠체어 성악가’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오히려 자랑스러워했다.
그는 사실 선천적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아니다. 20대에 불의의 사고를 당해 하반신이 마비되어 후천적 장애를 안게 되었지만, 거기에 굴하지 않고 오뚝이처럼 일어나 휠체어 테니스 국가대표를 거쳐 성악가로 새 삶을 살고 있다.
황 씨의 고향은 경북 울진이다. 그 곳에서 자라나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1987년 포항제철(현 포스코)에 입사했다. 포항제철에서 1년 정도 다니다 형이 운영하는 건설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자신의 힘으로 회사를 키워 보겠다는 일념으로 형의 일을 돕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건설회사에 다니면서 지금의 사랑스러운 아내를 만나 결혼도 했다.
하지만 건설현장에서 크레인을 조종하던 그에게 불의의 사고가 닥치고 사고 후유증으로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았다. 이때가 그의 나이 25세가 되던 해이다.
“사고 났을 때 장애인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한 6개월 정도 치료하고 부러진 뼈만 붙으면 무사히 퇴원할 줄 알았죠. 사고를 당한 것보다 더 절망적이던 것은 제가 장애인이 되었다는 사실이라는 것이죠. 인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퇴원 후, 6개월간 페인처럼 술로 살았다. 몇 번 자살 시도도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삶의 의욕을 다시 살릴 용기를 가지기 위해 마음을 다지기 시작했다.
“아내가 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안 이후로, ‘내가 이러면 안되겠구나’하고 마음을 고치게 되었습니다.”
자립의 힘, 운동을 택하다
사랑하는 아내와 그리고 그의 아들(용이)을 태어나는 모습을 보는 순간, 그는 새로운 힘을 얻게 되었다. 또한 병원에 입언해 있는 동안 사회복지사의 도움으로 그는 자립의 꿈을 꾸게 되었다.
무엇보다 가장에 대한 책임과 진정한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역할을 다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던 것. 이후 황 씨는 매일 마시던 술을 끊고 재활을 시작했다. 재활운동으로 선택한 것은 테니스였다.
“제가 장애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잊기 위해 과격하고 힘 있는 운동을 선택해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테니스는 딱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테니스 라켓 한번 제대로 잡아 본 적이 없었지만 운동을 하는 동안에는 장애인이라는 것을 잊을 수 있었습니다.”
1993년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한 그는 2년여 동안 재활운동을 하면서 테니스 치는 재미에 푹 빠져 버렸다. 휠체어 테니스 국가대표 선수로 황 씨는 승승장구했다. 제13회 방콕 아시안게임 휠체어 테니스 남자단식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장애를 극복하고 테니스로 국가 위상을 높인 공로를 인정받아 2001년 대통령 표창도 받았다.
그날을 회상하며 이야기 한 황 씨는 눈시울을 살짝 붉혔다.
“그 때 전 제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다는 기쁨과, 아내와 아들에게 모처럼 좋은 선물을 했다는 감격 때문에 올림픽공원에서 부천에 있는 집으로 가는 내내 울었습니다.”
프로 휠체어 테니스 선수로 본격적으로 활동을 한 그는 세계 각 국을 다니면서 대회에 참가하며 꾸준히 운동에 몰입하다 새로운 꿈에 도전하기 위해 그는 은퇴를 하게 된다.
제2의 삶으로 새로운 도전 시작
황 씨는 휠체어 테니스 국가대표에서 은퇴를 한 뒤, 2002년부터 ‘성악가’의 꿈을 꾸기 위한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된다.
“사실 특수체육을 공부해 후진을 양성하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러나 내면적인 상처와 아픔을 회복하는 데에는 ‘노래’가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노래가 좋아 ‘성악’을 택하기 시작한 그였지만, 타고난 재능으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 아니기에 다른 사람보다 2배, 3배의 노력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노래를 부른 것의 그의 경력은 교회에서 찬양대 생활이 다였다고.
본격적으로 진로를 바꾼 후, 그의 나이 37세에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기 위한 또 다른 자신과의 싸움을 하게 된다. 당시 어린 학생들과 경쟁하기 위한 공부를 시작하려니 너무 힘들었다는 그는 먹은 것을 다 토할 정도로 힘겨운 투쟁을 했다고 회상했다.
수능 공부를 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주위 사람들의 도움이 들어왔다. 황 씨가 다니던 고등학교 교감 선생님이 서울대에 다니는 제자 2명을 소개해줬으며, 어떤 한 고등학교 교사는 수능 참고서를 가득 가져오기도 했다. 또 연세대 음대에 다니는 한 대학생은 성악 실기 지도를 자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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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해 보면 전 인복이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힘들 때마다 정말 좋은 분들이 자처해 도움을 주었으니까요.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에 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느지막이 시작한 그의 수능시험 공부 생활은 힘들었지만 좋은 사람들의 도움 곁에서 다시 힘을 돋우는데 발판이 되었다. 새벽부터 밤까지 수능 공부와 실기 연습으로 꽉 짜여진 스케줄로 1년 동안 죽기 살기로 공부했다.
혹독한 수험생 생활을 잘 견딘 황 씨는 드디어 2003년 성결대 성악과에 입학하는 영광을 안게 되었다.
희망의 메신저 성악가
입학한 후, 대학 생활도 쉽지 않았다. 운동은 장애를 안고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 반해 성악은 신체적 조건에서 힘들다는 점을 알았기 때문이다.
특히 발성이 문제였다. 앉아서 노래를 불러야 하는 까닭에 호흡을 끌어올리는 것이 어려웠다.
“성악은 횡경막 호흡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하체가 뒷받침되지 않으니 공중에 떠서 노래를 부르는 느낌이었습니다. 하체 도움 없이 발성 밸런스를 잡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그나마 전 운동을 했던 몸이라서 호흡 훈련을 받으니까 차츰 좋아졌습니다.”
장애 학생이 성악을 한다고 그랬을 때 교수들은 어떻게 발성을 지도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황 씨는 절대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각오로 자신에게 맞는 발성법을 찾기 위해 교수들과 머리를 맞댔다. 대학 4년 동안 그는 다른 데 관심 두지 않고 오로지 연습에만 열중했다. 이른 아침 7시부터 밤 11시 까지 훈련을 거듭했다. 그러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마침내 발성 밸런스를 잡는 데 성공했다.
“교수님들과 학생 동기들이 많이 또 도와줬죠. 그 분들에게 너무 감사해요. 그러한 분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제가 일어서는데 많은 힘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을 졸업한 뒤 황 씨는 ‘장애인 인식 개선 희망 나눔 콘서트’를 통해 희망 전도사로 거듭났다. 지금까지 그가 참여한 희망 나눔 콘서트는 100회를 넘었다.
희망 나눔 콘서트를 관람한 많은 사람들이 장애를 극복한 황 씨를 보며 삶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됐다. 지난해 4월에는 타이틀 곡 ‘넌 할 수 있어’ 등 희망을 나누는 노래 10곡이 수록되어 있는 1집 앨범도 발매했다. 앨범 발매는 희망 나눔 콘서트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졌다. 지난해 12월에는 장애인들과 병상에 누워 있는 환자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전하는 ‘휠체어 성악가 황영택과 함께하는 희망콘서트’도 열었다. 색소폰 주자 심삼종, 소프라노 허진설과 함께한 희망콘서트는 연일 객석이 만원을 이룰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
또한 올해 3월 5일 한국신체장애인복지회에서 주관한 ‘희망나눔콘서트’에 출연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하는 특별한 콘서트에 함께 하기도 했다.
“앞으로 제가 가지고 있는 재능으로 나눔 음악 활동을 꾸준히 펼칠 생각입니다. 저처럼 힘든 시절을 보냈던 사람들에게 작은 희망이 되어 주고 싶으니까요. 그들에게 제가 ‘희망의 메신저’라는 아이콘으로 항상 마음에 새겨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황 씨는 보다 많은 사람들과 희망을 나누는 일에 자신을 투자하고 싶다고 했다. 우리나라 뿐 만 아니라 세계의 어려운 나라에 직접 가서 병원 재활시설, 장애인단체, 종교단체 등 기관에 방문해 노래를 가르치고 싶다고 뜻을 밝혔다.
문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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