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_저소득층 아동 정서치료

관심과 사랑이 부족한
저소득층 아동의 내면 들여다보는 정서치료

자신을 사랑하는 법은 생애 초기에 부모와 사회로부터 학습된다. 아동·청소년 시기에 가정과 사회로부터 적절한 돌봄을 못 받은 아이들은 자존감이 형성되기 힘들다. 정서의 결핍은 행동으로 표출되기도 하지만, 내면에 쌓여 정신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지역아동센터에서 이뤄지고 있는 정서치료 프로그램이 저소득층 아동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아보았다.

그림 속에 상처받은 마음이 드러나
대전의 지역아동센터 열 곳에서 스물일곱 명의 아이들에게 미술치료 수업을 하고 있는 이숙영(가명· 46) 미술치료사는 그림을 통해 아동들의 마음을 읽는다. 아이들은 그림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울고 웃으며 감정을 정화한다.
“아이들은 1~2가지 편중된 색을 써서 그림을 그립니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색이 참 많은데 말이죠. 그럴 때마다 ‘색 체인지!’라고 말하며 한 가지 색을 고집할 수 없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 교사의 말대로 세상에는 수많은 색이 있고, 더 많은 가능성, 더 많은 희망, 그리고 꿈이 있다. 아이들은 꿈을 키워나가야 할 시기에 한두 가지 고정된 색만 쓰며 성장할 기회를 잃는다.
그 기회를 아이들 스스로 찾기에는 한계가 있다. 자신이 누구인지, 내가 왜 힘든지에 대한 인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문제 행동을 일으키는 아동에게 다가가 꾸짖으며 행동에 대한 벌을 주면 아이는 상대에게 마음을 털어 놓지 않는다. 마음은 처벌과 단속으로 열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가난한 집에서 소외된 생활을 하는 아동일수록 마음의 문은 무겁게 닫혀있다.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아동·청소년 정서질환의 계층별 증가율 조사 결과 건강보험료 납입금 상위 50만 가구의 행동 및 정서장애 아동 수는 1만 명당 140.7명(2008년)에서 119.7명(2010년)으로 14.9%가 줄었다. 반면 1,2종 의료급여가구는 1만 명당 151.9명에서 188.4명으로 24% 증가했다.
기분장애 증가율도 상위 가구에선 1만 명당 64.2명에서 52.3명으로 18.5% 감소했고, 저소득층 아동은 66.1명에서 96명으로 45.2% 늘었다.
지난해 기준 아동 1만 명당 환자 수는 상위 50만가구의 환자 수를 1로 했을 때, 저소득층은 행동 및 정서장애에서 1.6배, 기분장애 1.8배, 정신발육지연 13.2배, 정신발달장애 2.1배 등으로 높게 나타났다.
행동 및 정서장애 치료의 본인부담금은 고소득층 28%, 저소득층 209% 증가했다. 정부와 시·도 교육청의 아동·청소년 정서질환 관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16개 시·도 교육청 중 ADHD 전수조사를 실시하는 교육청은 5곳뿐이다.  
순천향대병원 정신과 황재욱 교수는 “소득이 낮은 가정이 문제 발생 시 빨리 조치를 취하지 못해 발병 위험이 높다. 이러한 질환들은 사회적응 문제로 나타나 조기 치료를 못하고 방치할 경우 악순환을 낳는다”고 지적했다.

정규(가명·12)는 미술치료 수업 시간에 갑자기 ‘아, 나 오늘 술 먹고 싶다’고 말했다. 이 교사는 아이를 즉각 혼내지 않고 ‘왜 생각나니? 무슨 스트레스가 있니? 술은 누구랑 마셨니?’라고 질문했다. 아이는 학원공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고, 엄마는 정규의 말을 들어주지 않고 있었다. 평소 아버지가 술 드실 때면 정규도 같이 한 두잔 받아 마셨던 적이 있었던 터라 술 먹고 싶다고 수업 시간에 툭 말을 내뱉은 것이었다. 이 교사는 나중에 엄마에게 잘 말해 보겠다고 하며 아이를 안심시켰다.
민호(가명·9)는 어느 날 손에 붕대를 감고 왔다. 이 교사는 아이에게 왜 손에 붕대를 감고 왔냐고 묻자 엄마가 옷걸이로 아이의 손바닥을 때렸더라는 것. 그녀는 ‘괜찮니? 속상했겠다’라며 즉각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수시로 분노를 표출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과연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뭘까 생각하다가 ‘안아주는 것’부터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미술치료 수업을 받는 아동 27명 중 22명이 남자 아이들이다. 안아주려고 할 때마다 아이들은 선생님을 ‘변태’라고 하면서 도망쳤다. 한 여자 아이로부터 ‘레즈비언’이라는 소리도 들어봤다.
이 교사는 이에 굴하지 않고 아이들에게 ‘사랑한다’고 하며 지속적으로 안아주었다. 각각의 아이들에게 ‘은매(은근히 매력 있다는 뜻), 볼매(볼수록 매력 있다는 뜻), 엉뚱녀, 내 사랑’ 등의 별명을 지어주며 관심을 보였다. 아이들은 어디에서도 자신을 그런 식으로 안아주는 어른을 접해보지 못했다.

지역아동센터의 아동들은 자존감이 낮고 피해의식 때문에 자기 이야기를 쉽게 드러내지 않았다. 교사와 아동 간 신뢰를 형성하고 친밀한 관계를 맺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책을 많이 접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창의력이 떨어졌다.
“미술치료에는 자기인식이 중요합니다. 무의식 속에 있는 고통과 상처가 그림으로 나타납니다.”
막 미술치료수업을 마친 반 책상 위에는 ‘짜증나는 일’에 대해 그린 그림들이 놓여있었다. 오빠에게 맞아서 짜증난 아이, 교회에서 게임에 져서 아이들이 놀려서 속상했던 아이 등. 작은 거 하나에도 마음에 생채기가 일어나는 어린 아이들이 그림을 통해 맺힌 감정을 쏟아냈다. 
아이들은 색모래, 글라스데코, 점토 등으로 그림을 표현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림이 왜 좋냐고 묻자 민지는 “상상력이 키워져서”라고 말했고, 수연이는 “그림을 그릴 때 신비해요. 부드럽고요”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짜증이 없어졌다”는 아이, “앞으로도 계속 하고 싶다”는 아이, “그림 그리기 전과 후 기분 차이가 크다”는 아이도 있었다.
이 교사는 “미술치료 수업을 받은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이나 의견을 잘 표현하고, 친구들과의 관계형성이 좋아졌다”고 언급했다.

대전시 대덕구의 주보라지역아동센터의 정옥주 사회복지사는 그림을 통해 아이의 정서 상태를 살펴볼 수 있는 미술치료수업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그는 “아이가 문제 행동을 보였을 때 어른들이 유심히 보게 되지 겉으로 문제를 드러내지 않으면 아이의 상태를 알 수 없다”고 밝혔다.
저소득층 가정보다 한 부모, 조손 가정이 아동을 과잉보호하여 문제를 키우는 경우가 있었다. 아동을 제대로 보살필 수 없는 부분을 무조건적으로 받아주는 것으로 상쇄시키려는 가정이 많았다. 그러한 가정의 아이가 지역아동센터에 오면 ‘엄마가 나만 먹으라고 했다’고 이기적인 행동을 보이거나 또래관계 형성에 있어 애로사항을 겪는 경우도 있었다.
이밖에도 스트레스, 폭언·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가정환경, 생활고 등 문제를 야기하는 것들이 복합적으로 나타났다. 보통 부모들은 아이에게 ‘치료’가 필요하다고 하면 거부반응부터 보인다. 통념 상 아직도 우리나라는 정신과를 찾으면 문제가 큰 사람으로 비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행동이 노출되어 지역아동센터로 상담 받으러 오는 부모들을 보면서 정 사회복지사는 “기초생활수급권자들은 상담치료 비용이 많이 들어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저학년 위주로 미술 치료가 진행되고 있지만, 앞으로는 대상을 학년별로 나눠서 수업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자존감과 꿈이 자라나는 글쓰기 시간              
독서·논술수업을 끝나고 민주(가명·4학년)는 이금자 독서지도사에게 “엄마한테 밖에 할 수 없는 이야기인데 해도 되나요”라면서 말을 걸어왔다. 이어 “사람들은 왜 자살하고, 외로울 땐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고 물었다.
엄마와의 관계도 좋고, 지역아동센터에서 모범적인 행실로 인정받는 민주였다. 어른들 눈에는 그저 착한 학생이었던 아이에게도 남모를 외로움이 있었고, 속마음을 털어 놓을 사람이 없었다. 
“생애 주기를 생각할 때 아동기 때 필요한 터치를 해주지 않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의 감성을 끌어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면 부모님과의 관계 뿐 아니라 친구 관계까지 좋아집니다.”
이금자(61) 독서지도사는 서울시 강동구 암사동에 위치한 숲과나무 지역아동센터에서 월요일과 금요일 초등학교 1학년부터 4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독서·논술 지도를 한다. 이 교사가 처음 수업을 시작할 때 대주제로 삼은 것이 있다. 바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것. 그는 “요즘 아이들이 자존감도, 꿈도 없다. ‘너’를 찾아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책읽기가 습관 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무조건적으로 책을 읽으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독서에 대한 거부반응을 줄이고 책과 글쓰기에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해 아이들의 생각을 끌어내는 방법으로 지도했다. 아이들에게 인상 깊었던 책을 추천받았고, 일기쓰기 실습내용 쓰기 등 실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내용을 말하고, 쓸 수 있도록 수업을 구성했다.
이 교사는 저학년일 때 상상력을 길러줄 수 있는 만화를 자주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대신 책 읽는 시기를 정해 너무 만화에 심취해 있지 않도록 ‘어른들이 적절하게 터치를 해주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수업 시간에 방관적인 태도를 보이고 그림을 그렸던 한석이 같은 경우에는 억지로 글을 쓰게 하지 않았고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놔두었다. 하지만 수업에 이탈되지 않도록 그림 그리고 있는 한석이에게 다가가 “지금 생각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기도 하고 그림에 관심을 보이기도 하면서 아이가 글을 쓸 수 있도록 시간을 주었다.
이 교사는 아이들을 대할 때 완곡한 말투를 쓰고 부드러운 자세로 다가갔다. 어떤 아이든 칭찬할 만한 것이 있다고 생각해서 아이의 장점을 칭찬해주었다. 그러한 노력은 시간이 흘러 한석이가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으로 보상받을 수 있었다.  

저소득층 아동들은 지역아동센터에서 실시되고 있는 정서치료 프로그램을 통해 자존감을 회복하고 정서적 결핍을 완화하고 있다. 이러한 프로그램을 통해 사회적 돌봄 서비스를 받아야 할 아동은 180만~240만 명으로 추산되는데 지역아동센터나 방과후 프로그램을 이용하고 있는 아동은 30만 명 정도이다.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정책국 박경아 국장은 “지역아동센터 아동들은 장애 판정을 받지 않았지만 ‘경계급’에 있는 아이들이 많다. 장애 판정이 힘든 아이들은 부모가 양육능력이 없어 아이의 생활을 적절하게 챙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러한 경우 인력이 필요하고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확충해야 하는 등의 어려움이 있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할 시스템과 인프라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글·사진/박선미 기자, 자료제공/국민건강보험공단

박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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