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양극화 추세로 최근 다시 늘기 시작한 노숙자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서는 안정된 주거 공간 제공이 최대 관건이란 주장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서울역 노숙인 퇴거조치가 시행된 지 8개월이 지나고 그에 대한 대책으로 노숙인 및 저소득층에게 일시적으로 생계비나 교육비 등을 지원하는 긴급복지 대상을 지원키로 지난 1월 20일 복지부에서 밝혔으나 실상은 제대로 이루어지지지 않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기댈 곳 없는 삶 이어가다
지난달 2일 서울시 서대문구 소재 한 홈리스자활학교. 오전 11시경 매일 이 곳을 찾는 노숙인 이성진(47) 씨는 홀로 삶을 살아가기 위한 자립을 위해 컴퓨터 및 영화토론 등 생활교육을 받는다.

그는 어릴 적 이산가족으로 가족과 헤어진 이후부터 고아원에서 자랐다. 고아원에서 가르쳐 준 기술직을 연마해 19세 나이에 자립하여 사회생활을 시작 했으나 하는 일 마다 보수가 적고, 부당한 이유로 해고 되는 등 어려운 일을 겪었다.
그는 호프집 웨이터, 구두닦이, 건물관리, 기계돌보는 일 등 안 해보는 일 없이 닥치는 데로 돈이 되는 일이라면 열심히 했으나 그때 마다 돌아오는 것은 여의치 않는 보수로 인해 생활하는 것이 어렵다는 현실밖에 없었다.
이 씨는 “열심히 나름대로 잘해 볼려고 했는데, 부모 없이 학력 없이 사회생활을 한다는 것이 지금 우리사회에서는 힘들게 산다는 교훈만 알게 됐다”며 “매일 방세를 내며 살아가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팍팍한 하루가 무섭고 싫었다”고 토로했다.
이 씨는 “공원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이 나를 도와주겠다며 신분증을 주면 일자리도 마련해주고, 방도 마련해주겠다는 말에 신분증을 줬는데, 이것이 화근이 되어 신용불량자로 낙인찍히고 말았다”고 고백했다. 즉, 신분증 위조하는 ‘작업 대출’ 사기꾼에게 당한 것. 그 후 그는 원래 살았던 고시원에서 쫓겨나고 매일 잠잘 곳, 기댈 곳 없이 거리를 전전하며 방황하게 되었다. 그러다 영등포역에서 노숙생활을 하다 아는 사람으로부터 쉼터를 소개받아 주거비 한 달 지원, 수급자 신청하게 되어 매달 50만 원 씩 지원받고 있다.
이 씨는 “지금은 예전보다 안정되었다. 개인파산신청 중이고 조만간 신용불량자에서 벗어날 것 같다. 현재 자활학교에서 받는 교육을 꼭 이수해서 사회에 다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라며 “하지만 주거지원이 한 달 밖에 안돼서 다시 또 나가야 되는 상황이 오니 걱정”이라고 말했다.
거리에서 숙식하는 노숙인이 지난해 기준 1500여명으로 추정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전국의 노숙인 상담보호센터와 홈리스연구회 등 민간단체가 서울과 부산, 대구 등 전국 6개 도시의 노숙인 실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1차에서 1516명, 2차에서 1458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특히 서울에서는 용산구가 1차 조사에서 409명(2차 478)으로 최다 밀집구로 조사됐다. 이어 중구 206명(2차 170명), 영등포구 125명(2차 164명), 송파구 88명(2차 82명), 종로구 66명(2차 12명)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노숙인이 자주 모이는 곳은 서울역과 영등포역, 용산역, 을지로입구역, 송파구 가락시장 주변 등이 꼽혔다.
노숙인 중에서도 이 씨처럼 수용시설인 ‘쉼터’에서 생활하는 노숙인은 서울 81.1%, 부산 52.9%, 경기도 49.8%로 나타났다. 나머지는 일정한 주거 없이 생활하는 거리 노숙인으로 경기도의 경우 전체 노숙인의 50.2%가 이에 해당됐다.

실직·노숙인 긴급복지 지원 그러나?
노숙인, 실직 등 갑작스런 위기상황으로 생계유지가 곤란한 저소득층에게 일시적으로 생계비나 교육비, 주거지원 등을 지원하는 긴급복지 대상이 확대된다고 보건복지부가 지난 1월 30일 밝혔다.
복지부는 현실적으로 빈번하게 발생하는 ▲ 실직 ▲ 휴·폐업 ▲ 출소 ▲ 노숙 등을 위기사유에 추가해 빈곤계층 유입 차단 기능을 강화하기로 했으며, 실직의 경우 6개월 이상 근무 후 실직하였음에도 고용보험에 가입되지 않아 실업급여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근로자와 65세 이상의 근로자 등이 지원을 받을 수 있게 한다고 명시했다.
또한 출소를 했으나 돌아갈 가정이 없고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자, 경제적 상황 등으로 노숙을 할 수 밖에 없는 6개월 미만의 초기노숙인 등도 지원한다고 규정했다.
이에 일정예산 범위 내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자율적인 판단절차를 거쳐 지원하는 방안도 추진한다고 했으며, 아울러 보다 많은 위기가구에 주거지원이 가능하도록 주거지원대상을 예금, 적금 등의 금융재산이 300만 원 이하인 가구에서 500만 원 이하인 가구로 확대한다고 언론에 보도했다.

그러나 지난달 9일 오전 10시 30분. 보건복지부 정문 앞에서 열린 ‘거리노숙인 기만하는 긴급복지지원제도 규탄 기자회견’에서 위와 같은 정책은 현재 시행되지 않고 있으며, 생색내기에 불과한 정부의 행태를 비난한다고 나섰다.
이날 노숙인 및 홈리스행동, 시민연대 등 공공역사 홈리스지원 대책 마련을 위한 공동대책위윈회 단체 3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실시했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집행위원장은 “개정 긴급복지지원제도에 대해 당시 많은 언론들이 실직·노숙인들도 긴급지원을 받는다며 노숙인 복지에 있어 중요한 전기가 될 것 인양 보도했지만, 실상은 시행 한 달 이상이 지난 지금 ‘노숙’을 사유로 한 긴급지원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며 “정책 대상은 넓어졌음에도 예산은 작년과 다름없이 진행하는 등 정부의 시행의지가 의심되는 상황이다”라고 외쳤다.
이 집행위원장은 “총리지시로 긴급지원제도의 개정에는 속도를 냈으나 노숙인의 현실과는 동떨어지고, 구체적인 실무 지침조차 없다”며 “지원이 필요한 이들은 제도의 설명을 듣지도 못하고, 가까스로 지원을 신청한 이들 역시 구청의 지원불가 통보에 발길을 되돌리고 있다”고 안타까운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첫 번째 발언에 나선 김선미 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 책임간사는 “현재 노숙인들은 대다수 서울역 강제퇴거조치이후 쫓겨나 불가피하게 쪽방, 찜질방, 만화방 등에서 전전하며 생활하고 있는데, 정부에서 말하는 긴급복지지원제도에서 노숙인을 위한 주거방침 기준은 애매모호하게 정해놓고, 어느 시점으로 노숙인을 판단하고, 노숙인 기간을 정해놓는 건지 알 길 없다”라며 “복지부에서는 이러한 기준조차 제대로 명시하지 않고 있으며, 아무런 지시조차도 내리지 않고 있는 상황이니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이어 규탄에 참여한 한 노숙인은  “너무 힘들다. 춥고 배고프다. 그런데 정부는 외면하고 있고, 사람들은 우리를 그저 세상의 부랑자로만 취급 한다”며 “부탁이니 제발 이러한 문제를 빨리 해결 해달라”고 울며 호소했다.

두 번째 발언에 나선 김잔디 서울복지시민연대 간사는 “선거를 통해 복지국가, 복지국가 하며 외쳤는데, 생색내기에 그치는 복지제도 공약만 언급하는 모습은 스스로 그것을 얘기할 자격이 있는지 되돌아봤으면 좋겠다”며 “실제로 노숙인 등 빈곤층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모르면서 기초주거지 운운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 간사는 “노숙인의 기본법이 우선 보장되는 제도부터 개선하고, 작년과 같은 예산 588억에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을 더 부여한다는 설은 말도 안 되니 적정예산을 다시 지원해야한다”고 덧붙여 말했다.
이어진 기자회견문에서는 공공역사 홈리스지원 대책 마련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동자동사랑방 엄병천 대표가 긴급지원제도 개선 요구사항을 읊었다.
첫째, 노숙기간 6개월 미만 기준 적용을 개선해야 할 것. 둘째, 시군구청 등 지원신청통로를 확대해야 할 것. 셋째, 적정예산 편성과 세부 행정지침을 마련해야 할 것. 넷째, 지원 연장 판단기준 다변화 할 것 등이다.
이들은 기자회견이 끝난 후, 오전 11시 30분 경 보건복지부로 함께 들어가 면담을 통해 개정 요구를 구체적으로 전달하는 시간을 가졌다.

현실에 기초한 주거보장 우선시돼야
최근 노숙인에 대한 대책이 차츰 미흡하나마 주거지원에 대한 내용의 강조가 나타나고 있다. 주거우선은 일단 거주할 수 있는 독립주거를 제공하고 이에 기반 하여 심리사회적서비스를 연계하는 것이다. 주거준비는 지역사회에 거주생활이 가능한 수준까지 심리사회적 서비스를 통해 클라이언트의 기능수준을 끌어올리고 이후 독립주거를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노숙인 주거 지원정책은 노숙시설을 통해 자활단계로 상향이동 할 것이란 전제하에 임시거처 위주의 보호체계만 두고 있고, 지역사회 재정착을 위한 안정적 주거확보나 노숙생활 전락 예방책 등이 빠져있다는 지적이다.
남기철 동덕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숙인에 대한 기본복지를 제시하며 “기본권 존중과 사회참여를 통한 자활”을 목표로 “노숙인 보호의료체계의 강화, 직업재활사업 확대, 자립지원확대를 기본방향으로 하고 거리 노숙인에 대한 상담, 일자리사업, 주거지원 확대를 중점적으로 다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노숙인에 대한 주거지원은 특수한 상황의 극히 잔여적이고 제한적 서비스로 국한시켜 전반적 주택정책의 공공성 논란과 결부될 요소가 없도록 하는 것”이라며 “때문에 현재 전반적 주택정책의 공공성 수준을 전제하여 형평성을 감안하면, 노숙인에 대한 주거지원은 확장되기도 어렵고 서비스의 수준이 향상되기도 어렵다.
서비스 수준의 적절성을 확보하는 것과 사회적 형평성의 긴장관계는 결국 한국 주택정책의 공공성 확보 주장과 주거욕구의 인정 속에서 근원적 방향을 잡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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