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낳아 기르는 기쁨
가로막는 제도과 인식의 굴레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는 말이 있다. 어머니는 세상과 아기를 이어주는 유일한 끈이고 생애초기에 어머니의 보살핌 없이 아기는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다. 어머니가 처한 상황이나 환경과는 상관없이 한 생명을 품은 자로서 사회적으로 배려와 보호를 받아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가족이라는 테두리가 없이 임신한 여성은 그 모든 관심과 지원으로부터 철저히 배제된다.

 

해를 거듭할수록 출산율은 낮아지고, 해외로 입양 보내는 아이들은 많아지고 있다. 복지부(2005) 통계자료에 따르면 연간 낙태건수 35만 건 중 미혼여성의 낙태건수가 14만 건 정도로 전체 낙태 건수의 42%를 차지한다.
매년 약 3000여 명의 입양아동들 중 미혼모의 아동이 전체의 80~90%이상이다. 미혼모의 자녀양육 지원 부족으로 해외입양은 지속되고 있는데 정부에서는 출산율을 장려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혼외 임신 및 출산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미혼모들 스스로도 노출을 꺼리고, 정부에서는 이들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를 구축하고 있지 못하다.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의 권희정 사무국장은 “우리사회에서 미혼모가정이라는 말이 용납되지 않았다. 90년대 말 한부모운동이 일어나면서 미혼모가정이란 말도 쓰게 됐다”고 말했다. 혼인하지 않은 여성에 대한 모성을 사회적으로 수용하지 못하고 미혼의 여성이 아이를 가지면 낙태나 입양이 수순이라고 할 정도였다. 
“미혼모가정은 한부모가정과는 달리 ‘임신한 순간’부터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죠. 여성이 임신하면 정서적·육체적으로 취약합니다. 미혼모는 가장 어려울 때 가정과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습니다.”
한 미혼모는 “같은 한부모 집단 내에서도 미혼모 가정은 격하되어 있다. 사회적 편견이 밑바탕에 남아 짓누른다”고 말했다.

실상 반영 못한 미혼모정책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복지정책이 실수요자들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나이와 경제적 수입에 제한을 두고 있어 이 기준에 부합하는 미혼모들은 적고, 도움을 받아야 하는 미혼모들의 수는 많다.
미혼모가족에 대한 지원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과 한부모가족지원법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수급비를 지원받으려면 부양의무자가 없거나 부양의무자가 있어도 부양 받을 수 없는 사람으로, 개별가구의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 이하에 해당돼야 한다.
저소득 한부모가족 지원대상은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의 130%(2인기준 122만4856원)이하여야하고 자녀 나이가 만 18세 미만으로 양육비 월10만원을 지급한다.
24세 이하 청소년 한부모는 최저생계비의 150%(2인기준 141만3296원)이하 가족을 대상으로 하며 자녀 1인당 월 15만원의 양육비를 지급한다. 청소년한부모는 검정고시 학습비나 고등학교 수업료, 취업준비 활동시 자립촉진 수당을 지원한다.
이밖에 미혼모가족은 미혼모자시설, 미혼모공동생활가정에서 분만혜택과 숙식보호 등 시설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시설지원은 1년 이하 기간을 원칙으로 하고 연장 기준에 부합될 경우 6월 범위 안으로 연장 가능하다.
이러한 복지정책에 대해 권 사무국장은 융통성 있게 운영되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만 24세 이하 청소년미혼모가 아이를 키우려면 시설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설에서 주거제공하고, 직업훈련도 하고, 지원금도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양육의지가 높은 만 24세 이상 성인미혼모들은 시설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분위기에요. 고학력 직장여성들 같은 경우에는 24시간 통제받는 시설에서 있지 않으려고 하죠. 양육의지가 높은 집단을 집중적으로 돌봐야 정책의 실효성이 높아집니다.”
미혼모는 어리다는 편견이 있지만 전체 추정 미혼모의 대다수는 30대 이상 성인미혼모이며 청소년미혼모의 비율은 줄고 있는 반면, 성인미혼모들의 비율은 증가하고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따르면 10대 미혼모는 2000년 53%에서 2008년 30%가량 줄었고, 30대 미혼모는 2000년 2.8%에서 2008년 16.7%로 급격히 증가했다.
권 사무국장은 한부모가족지원법을 현재의 130%를 150%정도로 상향하고 지원시기를 임신 6개월부터 첫돌 맞을 시기로 개선하는 안을 제안했다. 미혼모가 정서적으로 가장 불안하고, 경제적인 지원이 필요한 시기에 건강한 출산을 사회적으로 보장하자는 것이다.

 
  
자립의 기본 ‘주거와 취업지원’ 절실
작년 봄 MBC다큐멘터리 휴먼다큐 사랑에 한 미혼모 이야기가 방송을 탔다.
그녀는 교도소에서 복역 중 딸을 낳아 기르다 석방되어 사회로 나왔다. 그녀 수중에는 영치금 십 여 만원 뿐. 아이의 아빠는 딸을 보려하지 않고 그녀는 부모에게로 갈 수도 없는 처지여서 지인의 소개로 경기도 소재의 한 미혼모시설에 입소한다. 공동생활 때문에 규칙을 철저하게 지켜야 하는 조건이었지만 오갈 데 없는 그녀와 딸에게는 그것도 감지덕지였다.
정부에서 놀이방 비용을 지원해줘서 아이를 맡길 곳이 생겨 다행이었지만 문제는 ‘취업’이었다. 출소한지 얼마 안 되어 신용등급 때문에 가사도우미도 못하고, 아이 교육을 생각해서 노래방도우미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백방으로 알아보다 한 업체에 취직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설 연휴를 맞는다. 연휴 기간 동안 아이를 돌봐줄 곳을 찾지 못해 직장까지 아이를 데리고 갈 수밖에 없는 힘겨운 모습들이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겼다.    
위의 이야기에서 본 바와 같이 한부모가족지원법 중 주거와 관련된 서비스로 미혼모에게 제공되는 시설이 있다. 모자보호시설(미혼모시설), 미혼모자공동생활가정(중간의 집), 모자보호시설(모자원)이다. 2010한부모가족지원사업에 따르면 미혼모 관련 시설이 2004년부터 2009년에 급증하였고, 미혼모자시설은 2004년 12개소에서 2009년 32개소로 꾸준히 증가했다. 미혼모자공동생활가정은 9개소에서 23개소로 2.5배 증가했다. 이 같은 시설 거주 기간은 1~3년 이내로 제한되어 있어 양육미혼모에게는 일시적인 주거공간이 될 뿐이다.
미혼모가 시설에서 나와 아이를 키우려면 우선되는 것이 ‘주거확보’다. 지역사회 저소득 미혼모를 위한 주거정책으로는 전세임대와 매입임대주택이 있지만 미혼모는 평가기준에 따라 동일 순위에 있는 여타 집단의 사람들과 비교하여 낮은 점수를 받아 실질적으로 저소득층 주거정책의 혜택을 못 받고 있다. 
미혼모의 양육 및 자립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양육미혼모의 주거실태는 자가, 전세 등 비교적 안정적인 주거형태 비중이 낮고 월세(33.8%)나 기타(47.6%)와 같이 불안정적인 주거 형태의 비율이 높았다. 46%가 부채를 안고 있었고, 평균 부채 규모는 1300만원 정도였다.
 양육미혼모의 자립기반에서 주거와 함께 중요한 관건은 ‘취업여부’였다. 양육미혼모 중 취업한 여성은 전체의 45%로 전체 여성취업률인 47.3%를 밑돌았다. 자녀 연령이 만 2세 이하 집단에서는 취업자 비중이 24%로 가장 낮았다. 일을 하면서 겪는 가장 큰 어려움으로는 ‘자녀양육시간 부족’(24.5%)를 들었다.
양육미혼모들의 직업훈련 수강 경험은 35.6%로 참여도가 높았고, 직업훈련 수강 경험자의 과반수가 ‘직업훈련이 자립에 도움이 된다’고 응답했다. 직업훈련 수강 시 가장 큰 어려움으로 ‘훈련시간 중 자녀 돌봄 문제’를 꼽은 응답자가 많았다. 직업훈련 미수강자에 대한 이유 조사결과 가장 많은 응답자(47.9%)가 출산 및 육아로 인한 시간부족을 들었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양육미혼모들이 취업지원서비스를 제공받을 경우 보육관련서비스를 함께 제공하고, 양육초기의 미혼모들에게는 아이돌보미서비스 긴급지원을 확대해 자녀양육 및 자립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미혼모는 “아이를 키우려면 부모의 직업적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미래를 생각하지 못하는 엄마들이 많다. 엄마가 업그레이드될 수 있도록 학원비를 지원해준다거나, 직업훈련 기간 동안 생계비라도 지원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미혼모가족 옭아매는 ‘인식과 관습’의 굴레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로 한 미혼 여성이 자원봉사를 하러 온 적이 있다. 그녀는 예전에 임신한 경험이 있었고 당시 사귀던 남자친구는 그녀에게 낙태를 종용했다.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던 그녀는 결국 아이를 유산하게 되었다. 그 후유증으로 직장생활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우리나라 남자들은 성관계가 임신-출산-양육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연결고리가 성교육을 통해 사회에서 철저히 교육되어야 하는데 단지 미혼 여성이 임신하면 낙태, 입양으로 이어지니 여성에게 ‘조심하라’고만 합니다.”
생명은 소중하다는 생명윤리를 논하기 전에 우리 사회가 생명을 낳아 기를 수 있는 토대와 인식을 갖추었는지부터 제고해야 한다. 권 사무국장은 조건이 갖춰져 있는 상태에서 ‘양육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경기도 미혼모부자가족 실태조사 및 지원방안 연구에 따르면 현재 미혼부와의 관계에 대한 질문 결과 전혀 연락하지 않음(69.0%)로 가장 많았고, 미혼부의 법적책임에 대해 그렇다(38.1%), 매우 그렇다(36.4%)로 자녀에 대한 미혼부의 법적 책임을 입법화 할 필요성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혼모는 ‘숨 쉬고 있는 매 순간 스트레스’다. 산부인과 병원에 가도 아빠, 엄마 이름을 기입해야 하고 하다못해 지하철에서 한 노인이 아이에게 ‘아빠는 어디있냐’고 물어오면 미혼모는 그 자체로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미혼모의 양육 및 자립실태조사 보고서에서 양육미혼모들은 관공서 관련 업무를 볼 때 가장 많이 차별 당한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조사됐다. 관공서에서의 차별을 살펴보면 취업자, 재가그룹, 20~30대 이상 성인미혼모, 고재 이상의 상대적 고학력층이 차별 경험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 이웃관계, 직장, 자녀 학교생활 등에서 차별을 느낀다는 응답분포가 평균을 웃돌았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미혼모와 아이는 자아존중감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열등감과 피해의식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미혼모는 맺힌 감정을 치유할만한 곳을 찾기 힘들다. 심리치료에 드는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시설에 있는 미혼모일 경우에만 심리치료를 받을 수 있다.
권 사무국장은 양육을 결심한 미혼모 외에도 아기를 입양을 보낸 미혼모에 대한 정서적지원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사회는 아이를 잊으라고 하지만 엄마는 평생 못 잊는다. 결혼이 잣대가 되기보단 사실을 고려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미혼모들에게 “여성 스스로 결혼과는 상관없이 모성을 가진 주체로서 권리를 가진다. 자기인식을 높여야한다”고 조언했다.  
 
 글/박선미 기자
 자료/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외

박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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