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되면 남녘에서 불어오는 꽃내음이 코끝을 자극한다. 자연의 거스를 수 없는 순리다. 이렇듯 性 또한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순리다. 그러나 자연의 순리인 성 욕구에서 우리는 젊은이들의 성생활은 인정하면서 노인의 성생활은 부정하며 금기시한다. 이렇다보니 노인들의 성생활은 자꾸만 음지로 숨어들고 있다. 성은 삶을 아우르면서 심미적인 격조를 세워주는 동력이다. 노인의 성은 생을 관조하면서 존재를 누릴 수 있는 특권이자 그러한 향연의 일부이다.

性은 살아 있음의 표현
“‘성’(性)이라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사랑’의 표현입니다. 나이가 많고 적음을 벗어나 그 누구에게도 있을 수 있는 살아있음의 표현입니다. 오히려 성에 대해 우리의 생각이 그 누구에게서도 밖으로 표현되지 못하고 음지에서만 머무른 다면 더욱 더 움츠려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서울노인복지센터 관장 청원 스님은 우리 사회가 ‘노인의 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이렇게 표현했다.
송인주 서울시어르신상담센터 실장은 “노년기의 성을 바라보는 시각은 단순한 성교행위로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보다 넓은 인격 전체와 관련이 있는 심리적인 면을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당사자인 노인들은 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상당수의 노인은 애인을 만들고 싶은 욕망이 있으며, 한 사람의 인간으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행복할 권리의 하나로 이성교제를 하고자 하는 것은 당연시 돼야한다는 것이다.
반면 노인세대는 스스로 조차 노인은 자신의 욕구를 드러내는 것이 부족하고 민망하며 주책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었다.

소통의 장벽이 性 장벽 이룬다
서울시어르신상담센터에 내방해 상담한 노인들의 성에 대한 고민을 들어봤다.

# 아내가 죽고 나서 6개월간 잠이 안와서 신경과 약을 먹었다. 내가 외기러기가 된 것 같았다. 그래서 친구들 모임도 안가고 아무 곳도 가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이성)친구 사귀어 보고 싶다. 함께 살면 좋겠다. 좋은 사람 만날 방법이 없겠는가? 혼자서 밥 먹는 것 싫고 돈은 있는데 밥도 좀 해주고 빨래 해주고 외롭지 않게 살 사람이 필요하다.(39년생 남성)

# 남편이 사망한지 4년이 됐고 20살 연상의 남자친구가 있다. 순수한 사랑에 빠지게 됐다. 남편이 죽었는데도 이성교제를 하거나 성적 접촉을 하는 것에 대해서 죄책감을 많이 가졌다. 교회에서 다른 지아비를 섬기는 것을 죄라고 한다. 그래서 마음의 짐이 되는데, 교회도 남자친구도 버릴 수가 없다.(70세 여성)

# 사회복지 기관을 이용하면서 만난 남성과 교제를 하고 있는데 남자 분을 만나고 여행가고 잠자리도 했다. 남자분과의 데이트 비용을 제가 다 내고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모습을 보이자 남자분이 거액의 돈을 요구하고 안주면 간통죄로 고소하겠다는 등 협박을 하는데, 돈을 주고도 이 남자분과의 관계를 맺고 싶고 파트너를 잃고 싶지 않다.(33년생 여성)

이상은 사별을 해 배우자가 없는 상태에서 이성교제를 희망하는 노인들의 성 상담 사례다.
송인주 실장은 “일반적인 노인에 대한 실태분석에서는 노인의 성에 대해서 성관계, 부부관계, 이성교제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그들이 상담자 앞에서 쭈뼛거리듯이 자녀들이나 다른 세대 앞에서는 자신 없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노인의 성은 중요하고 노인은 사랑하고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의식은 노인뿐만 아니라 노인세대를 둔 자녀들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된다”고 강조했다.
배우자가 있는 부부간에도 성 생활에는 고민이 있다.
상당수의 노인들이 남편은 관계를 맺고 싶으나 건강상으로 어려움과 아내가 거절하는 경우다.

# 뇌경색으로 1년 9개월 입원치료를 했다. 재활치료 중에 있다. 아내와 관계를 맺고 싶은데 아내는 징그럽고 아픈 사람이 왜 그러냐고 못하게 한다. 하고 싶을 때 못하면 자위라도 하고 싶은데 자위하는 게 자존심이 상한다.(43년생 남성)

# 부부가 멀어지게 된 것은 자신이 돈도 못 벌고 건강도 좋지 않아질 때 부터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감이 저하 돼 있었고 자신감 저하로 인해 다양한 사회적 활동의 제약, 정서적 위축을 경험하고 있었다. 하지만 생기는 성욕을 어디 다른 곳에서 해결할 수도 없는데다가 도덕적으로 엄격한 기준도 함께 가지고 있어서 부인에게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있으나 잘 되지 않았다.(37년생 남성)

# 아내와 싸우고 헐뜯으며 서로 관계가 나쁘다. 10년간 관계를 맺을 일이 없을 거라고 아내가 엄포를 놓기도 했었다. 아내와 잠자리를 함께 하고 싶은데 아내는 언제부턴지 마음을 열지 않고 성관계도 하지 않는다. 아내가 거부할 때 마다 딴 놈이 있는 거라고 윽박지르고 화를 냈더니 관계는 더욱 나빠지기만 했다.(27년생 남성)

송인주 실장은 “서로의 신체의 변화와 느낌의 변화에 대해서 가장 먼저 소통해야할 파트너에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이 노인들의 부부관계에서 드러났다”고 분석했다.
즉 안전하고 편안한 대화와 소통이 이루어져야할 부부관계는 편안하고 안전하지만은 못한 여러 가지 이유와 이해관계, 상호작용의 역사, 권위와 역할, 습관, 그리고 관심의 부족이라는 장벽에 가로막혀 있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송 실장은 “남녀가 삶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서로가 가지고 있는 소통의 장벽을 알고 이해하며 그 장벽에 대해서 대화하고 서로를 배려하고 연민하는 상호작용 속에서 단절된 부부간의 소통은 이루어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부모의 성 생활과 이성교제에 대해 자녀들의 걱정도 노인들의 원활한 성 생활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 72세의 어머니의 일이다. 자녀들은 모두 서울에 있고 시골에 혼자사시는 어머니가 열 살이나 어린 남성과 현재 동거를 하고 있으며 서로 좋아한다고 하는데, 이대로 둬야하나.(익명 요구)

# 92세의 아버지가 안 그러시다가 가사도우미에게 잠자리를 요구하는 통에 가사도우미가 일을 그만 뒀고 아버지는 누군가가 있으면 좋겠다는 것을 요구한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익명 요구)

송인주 실장은 “남성이건 여성이건 간에 외로움을 오래 견딘 개인에게서 성행위만이 아닌 이성의 보살핌과 따뜻함의 교류는 매우 중요하다”고 충고했다.
그는 “남성노인의 경우 성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겠다는 상담전화가 종종 있었지만, 자녀들이 이런 모습을 목격한 경우는 부모자녀간의 관계의 어려움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며 “부모님도 욕구를 가진 성인임을 수용하게 하는 것을 일차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性이란 이성교제 그리고 사랑과 섹스
최근 서울시어르신상담센터에서는 서울시노인복지관과 종묘공원, 탑골공원 등을 이용하는 327명 노인을 대상으로 한 성 실태 조사를 발표했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성’하면 떠오르는 것에 대해 ‘이성교제’ 29.7%(92명), ‘사랑과 섹스’ 22.3%(73명)로 가장 많았다.
일반적인 성에 대한 인식과 더불어 노인의 성에 대한 인식에서는 ‘이성교제’가 29.4%(89명), ‘사랑’ 14.9%(45명), ‘섹스와 성기능 약화’ 14.5%(44명), ‘힘·능력’ 9.9%(30명) 순이었다.
노인의 성생활 지장요인으로는 ‘나이가 들어서 성기능이 약화되어서’가 21.2%(129명)로 가장 많았으며, ‘건강을 해칠 거 같다’가 11.2%(68명), ‘즐겁지 않다’가 9%(55명), ‘창피하다’
가 (8.4%)51명, ‘이성과 만날 기회가 없다’가 8.2%(50명), ‘실패할까 두렵다’가 8.0%(49명)으로 뒤를 이었다.
성생활 지장요인을 1·2·3순위로 구분해 살펴본 결과 1·2·3순위 모두 ‘나이가 들어서 성기능이 약화되어서’라고 응답해 노년기 성생활에 있어 ‘노화로 인한 성기능 약화’가 가장 큰 요인으로 분석됐다.
성별에 따른 유배우자 노인의 성관계 횟수는 남성노인이 ‘1주일에 1회 이상’(9.9%), ‘1개월에 1~2회’(28.4%), ‘3개월에 1~2회’(13.5%), ‘6개월에 1~2회’(8.5%)에 응답했다.
반면 여성노인은 ‘일 년에 1~2회’(12.3%), ‘안했다’(55.4%)에 응답함으로써 여성노인에 비해 남성노인이 성관계를 더 자주하고 있었다.
성별에 따른 유배우자 노인의 성불만족 해결 방법으로는 ‘여성노인이 딴 일(운동, 취미)에 집중하며 해소한다’에 ‘그렇다’(55.8%)라고 응답했으며, 남성노인이 아니다(66.7%)에 높게 응답했다.
남성노인이 ‘자위를 한다’에 ‘그렇다’는 응답은 14.0%인 반면 여성노인은 100.0%가 ‘아니다’로 답했다.
‘이성친구(애인)을 만나 성관계를 갖는다’는 질문에서도 남성노인은 10.9%가 ‘그렇다’로 응답한 반면 여성노인은 100%가 ‘아니다’라고 답해 배우자 남녀노인의 성불만족 해결방법에 차이가 있었다.
성별에 따른 무배우자 노인의 성욕구 해소방법은 남성노인이 ‘성매매를 하여 해결한다’에 그렇다(8.1%)라고 응답함으로써 여성노인과 차이를 나타냈다.
무배우자 노인의 지난 1년간 성관계 횟수에서는 남성노인이 ‘1개월에 1~2회’(25.0%), ‘3개월에 1~2회’(8.3%)에 높게 응답한 반면, 여성노인은 ‘1주일에 1회 이상’(3.3%), ‘안했다’(88.5%)에 높게 응답해 차이를 나타냈다.
성매매 접근장소로는 ‘공원 근처’가 39.2%로 가장 많았으며, ‘지하철역 주변’(25.8%), ‘유흥가’(18.6%), ‘기타’(9.3%), ‘복지관 근처’(6.7%) 순으로 나타났다.
성별로는  남성노인은 공원 근처가 37.9%로 가장 많았으며, 지하철역 주위(27.3%),  유흥가(19.7%) 순이었다.
여성노인도 공원 근처가 41.7%로 가장 많았으며, 지하철역 주위(23.3%), 유흥가(16.7%)가 뒤를 이었다.
노년기 성생활과 삶의 만족도와의 관계에서는 남성노인의 경우 ‘약간 중요하다’(31.8%), ‘매우 중요한 일이다’(32.4%)로 성생활이 삶의 만족도에 대해서 중요한 일로 받아 들였다.
반면 여성노인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31.2%), ‘별로 중요하지 않다’(34.1%)가 높은 응답을 보여 남성노인보다 성생활이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性은 사랑하고 사랑받고자 하는 본질적인 욕구
한편 지난 3월 서울시어르신상담센터에서 주최한 노인의 성과 사랑 세미나에서 노인의 성은 평등해야 하며, 금기가 아니라 삶의 본질이라는 주장이 대두됐다.
김찬호 성공회대학교 문화대학원 초빙교수는 “노년은 잉여의 시간이다. 사회적 의무로부터 벗어나 생을 관조하면서 존재를 누릴 수 있는 특권이 거기에서 주어진다”며 “성은 그러한 향연의 일부이자, 삶을 아우르면서 심미적인 격조를 세워주는 동력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노인의 성은) 변덕스러운 충동에 혹사당하는 젊은이들이 동경해마지 않는 에로스의 연륜, 활력 있는 노후를 다양하게 예감하게 하는 심신의 코러스가 울려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영란 나무여성인권상담소 소장은 “노인의 경우 21세기 패러다임으로 요구되고 있는 양성평등교육, 성인지 교육에 대한 정보를 얻거나 교육을 받을 기회가 거의 없다”며 “전통적 사고가 강한 상태에서 새로운 교육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다보니 세대 간 격차가 심해지고 소통의 장애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노인이 원하는 성교육의 주제를 프로그램으로 구성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성이 단순히 성행위만 아니라 그 행위와 태도가 갖는 맥락과 가치를 이해하고 주체적인 성인식을 갖는 데 둔다면 요구도와 함께 노인 성이 지향해야할 가치가 무엇인지 점검돼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황재경 의왕시아름채노인복지관 관장은 “시설거주 노인도 역시나 성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어 노인 이 거주하는 시설에 대한 시사점을 제시한다”고 말했다.
황 관장은 “노인의 성에 대한 소통을 위한 프로그램의 필요성 등은 노인들이 생활하는 지역사회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하고 있는 우리 지역사회 기관들에게도 던져주는 시사점이 많다”고 덧붙였다.
정신숙 인구보건복지협회 과장은 “젊은시절의 성생활과 비교하지 말아야 하며 노화와 성을 자연스럽게 수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정 과장은 또 “성생활의 범위를 성교 중심에서 벗어나 다양한 성생활을 즐기라”면서 “상대방과의 관계형성, 즉 정서적인 측면에서의 성생활에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글/김인수기자
                                              사진/본지 자료사진 외

문혜원 기자  

<저작권자 © 복지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