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Ⅲ _ 감정노동자 처우 실태

서비스산업이 확대되고 고객만족을 우선하는 기업경영과 업체 간 과열경쟁으로 감정노동자들은 감정을 억눌러서 생긴 스트레스와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법 제도의 미비와 소비자 인식부족으로 고된 감정노동을 감당하고 있는 서비스노동자들의 실태를 알아보았다.

회사원 김 씨는 퇴근 후 시내에서 친구와 만나기로 했다. 지하철을 타고 내려 역 근처 백화점에서 옷과 신발을 구경했다. 친구를 만나 백화점 식당가에 있는 패밀리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고 식당가 아래층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친구와 헤어지기 전 백화점 옆에 있는 대형마트에서 생필품을 구입하고 집으로 향했다. 김 씨는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하루를 보냈다. 그 하루 동안 백화점, 식당, 대형마트, 편의점 등 김 씨가 가는 곳마다 감정노동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소비자로서 당당하게 그들의 친절을 기대했고, 자기기대가 미치지 못할 때는 불쾌감을 표시했다. 그 어떤 직원도 그에게 반론할 수 없었다. ‘고객은 왕’이라는 인식 때문에 감정노동자들은 손님을 응대하려고 자신의 감정을 숨긴다. 이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심하면 불안과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가사노동 비슷한 감정노동, 서비스종사자 반 이상 여성
감정노동은 업무상 요구되는 특정한 감정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행하는 일체의 감정관리 활동이 직무의 40% 이상 차지하는 노동유형이다. 간호사, 대형마트 점원, 판매원, 전화 상담원 등 대인서비스를 업무를 하는 노동자들이 이에 해당된다.
2010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취업자 약 2400만 명 중 도매 및 소매업에 약 340만 명(14.48%), 숙박 및 음식점 업에 약 180만 명(7.71%)으로 서비스 분야에 취업자 다수가 편중되어 있다. 여성은 전체 취업자 1400만 명 중 301만 명(30.02%)이 서비스 관련 직종에 종사하고 있으며, 서비스 종사자의 약 65%, 판매 종사자의 약 51%가 여성으로 나타났다.
정진주 사회건강연구소 소장은 “서비스업 노동은 가사노동과 성격이 유사하다. 문제는 기업이나 고객이 여성 직원에게 비인격적인 대우와 차별로 이들의 감정 노동 여건을 악화시킨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업무환경은 경력직원의 직장 포기와 기업의 손실로 이어진다”고 덧붙였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1년 4월부터 두 달 간 사업장, 노동조합 사무실을 방문해 여성 감정노동자 30여명과 심층면담을 통해 인권침해 사례를 조사했다. 조사 결과 여성 감정노동자들은 고객들의 무례한 행동과 폭언으로 굴욕감을 느껴도 대응할 수 없는 점을 가장 큰 어려움으로 들었다. 별도의 휴식시간이 없고 휴식공간이 부족한 점, 폭군형 고객, 기계적으로 친절을 강요하는 사업주의 태도 등이 여성 감정노동자들의 인격권과 노동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반해 감정노동자들에 대한 소비자들의 이해와 배려는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다. 인권위는 수도권 시민 303명을 대상으로 여성 감정노동자 소비자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결과 67명(22.3%)이 ‘여성 감정노동자에게 화풀이 한 적이 있다’고 답했고, 여성 감정노동자가 스트레스로 우울증을 앓거나 질병에 걸릴 수 있음을 인지한 응답자는 전체의 81.2%였다.
올해 초 대도시 거주하는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시민들은 47.2%가 ‘감정노동을 알고 있다’고 했으며 ‘감정노동 해소 방안을 법률에 넣자’는 안에 대해 68.0%가 찬성한다고 답했다.

강요된 감정노동 정신적 질병 발생, 산재 인정해야
지난 2010년 민주노총 민간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에서 실시한 서비스노동자 삶의 질 실태조사 결과 심리 상담이나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대상이 약 27%에 이르는 결과가 나왔다. 고도우울 증상은 비교집단 중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감정노동자들의 45.5%는 자신의 일이 감정적으로 노력을 많이 해야 한다고 인지하고 있었고, 기분과는 상관없이 항상 웃거나 즐거운 표정을 지어야 한다는 질문에 38.3%가 그렇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80%는 고객 상대 업무 시 회사에서 지속적으로 관찰한다고 대답했다. 감정노동을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은 인격무시(약 40%), 폭언(약 30%), 성희롱(9%), 폭행(5%)으로 나타났다. 가해자는 고객이 압도적으로 높았고, 상사가 그 다음을 차지했다. 병원 노동자와 비교했을 때 폭언은 감정 노동자가 적었지만, 성희롱이나 신체폭력은 서비스 노동자들이 더 심하게 겪는 것으로 조사됐다.
감정노동 문제의 심각성을 인정한 로레알코리아, 교보핫트랙스 등의 회사들은 직원들에게 월 3만~10만원의 감정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강원랜드는 물리치료실을 설치하고, 심리상담 전문가의 정기적인 진단을 받도록 하고 있다.
감정노동의 보상 외에도 감정노동의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위해서 감정노동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사회적 장치에 대한 필요성이 요구된다. 지난해 한국여성노동자회에서 주최한 ‘대안여성노동포럼-감정노동과 노동안전 토론회’에서 감정노동을 산업재해를 유발하는 위험요인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정진주 사회건강연구소 소장은 “그 동안 제조업중심의 안전보건 대책으로 감정노동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감정을 억제함으로써 심장질환과 고혈압, 암발생률이 증가하고 자기비하감, 우울증의 정신적인 문제까지 발생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 소장은 “정부는 감정노동을 산업재해를 유발하는 주요 위험·유해 요인에 포함시켜 노동안전보건관리 체계 내에서 관리할 수 있도록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에서는 제도 개선을 위해 표준적인 업무매뉴얼을 완성하여 기업에서 교육과 홍보를 실시해 소비자-고객-기업이 일치된 인식을 갖추는 방안을 제안한다.
지난해 12월 서비스연맹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지원과 인권위의 도움으로 감정노동에 대한 이해와 개선방안을 담은 감정노동 업무매뉴얼 책자를 제작했다. 책자에는 사업장 내 욕설 및 폭언 방지책, 성희롱 예방 방안, 임시업무 중지와 심리 상담실 운영, 고충처리위원회 구성 및 운영, 원칙과 규정에 의한 갈등 해결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감정노동자들은 회사에서 친절 교육을 받는다. 꾸며진 가짜 친절이 아니라 마음이 움직이는 진짜 친절을 베풀 수 있도록 사회도 이들에게 친절을 보여주어야 한다. 한 감정노동자가 말한 것처럼 이들이 바라는 친절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매너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서로 존중하면서”
 글/박선미 기자 
 자료도움/전국민간서비스산업 노동조합연맹

<특별법입법촉구 서비스노동자  1000인 플래시몹 현장 인터뷰>

“은행도 서비스업이고 빨간 날 다 쉬잖아요. 주1회 휴점 했으면...”

대형마트에서 일한지 9년째인 진현미(홈플러스 방학점 근무·43세)씨. 오 년 전 회사가 바뀌면서 고용불안을 많이 느껴 노동조합에 가입하게 됐다. 오전 여덟시부터 밤 열두시까지 3교대로 9시간씩 근무하면서 한 달에 받는 월급은 백여만 원 정도. 집진시설이 잘 갖춰지지 않은 마트에서 열 시간 가까이 근무하면서 감기에 자주 걸리고, 다리부종, 하지정맥류, 근골격계질환 등을 겪으며 힘겹게 일을 하고 있다. 협력업체 직원까지 오 백여 명이 넘는 인원이 이용할 휴게 공간은 식당과 식당 옆 휴게실 하나. 다리 뻗고 쉴 만큼 공간이 여유롭지 못하다. 식사 시간 이외에 아홉 시간 근무 중 쉬는 시간은 단 30분. 일이 몰리면 삼십분도 챙겨서 쉬지 못할 때가 많다.  
안 웃으면 안 웃는다고, 웃으면 웃는다고 항의하는 손님들을 상대하면서 어느새 부턴가 무얼 잘못했는지도 모르면서 ‘죄송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일을 하게 되었다.
“똑같은 사람이잖아요. 우린 여기서 일할 뿐이고요. 대형마트는 무조건 손님이 왕이라고 심어주니까 손님들은 직원들을 막대해도 되는 것처럼 무시하죠”
진 씨는 대형마트의 심야 영업이 없어지고 월 2회 휴무가 되어 다행이지만 서비스업 직종에 대한 사회적인 배려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월 2회가 아니라, 주 1회 휴점 했으면 좋겠어요. 은행도 서비스업이잖아요. 주말 다 쉬고 빨간 날도 다 쉬잖아요. 우리도 그렇게 됐으면 좋겠어요.” 

“다른 서비스업 직원들도 감정수당 받았으면 좋겠어요”

서비스업 분야에서 일한지 14년째라는 조윤희(현대백화점 천호점 로레알코리아 근무·36세)씨. 서비스유통업에 오랫동안 종사한 만큼 세월에 따라 환경도 사람도 많이 바뀌었음을 느낀다. 조 씨가 처음 백화점에 입사했을 때는 백화점 정기휴무가 매달 있었고, 저녁 일곱 시 반 폐점이었다. 어느 순간 근무 시간이 연장되면서부터 한계를 자주 느껴 몸이 자주 붓곤 했다. 몸도 힘들지만 무엇보다 고객 응대가 날이 갈수록 어렵다.
“고객이 원하는 대로 해줘야 하는 게 기준이 돼서 우리로서는 고객이 욕을 하고 횡포를 부리는 것을 다 받아들여야 하는 감정노동이 많아졌죠”
예전에는 직원이 친절하게 대하면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라도 해주었는데 지금은 직원의 친절은 당연하고 그 이상을 해주지 않으면 곧장 컴플레인으로 이어진다. 회사에서는 고객 편에만 서기 때문에 직원은 할 말이 없어진다. 기업이 모든 고객을 VIP 대접을 해주겠다는 브랜드 이미지를 앞세우게 되면서 직원들의 희생이 너무 크다는 것이 조 씨의 주장이다.
“고객은 직원이 쉬는 걸 이해 못해요. 빨리 밥만 먹고 오는데도 ‘내가 이렇게 기다리는데 왜 직원이 없냐’고 말씀하세요. 손님이 오면 손님 먼저 맞아야지 밥 먹을 생각을 하냐는 거죠.”
처음에는 고객에게 서비스하는 일이 당연하다 생각하고 자신이 하는 일이 감정노동이라는 것도 몰랐다. 그가 속해 있는 회사는 업계 최초로 직원들에게 감정노동 수당을 지급했고 일 년에 하루 감정휴일을 쓸 수 있다. 이로써 조 씨는 “우리의 감정을 팔아주고 서비스 부분을 보상받는 것이 조그만 약이 되었다”고 했다.
수고에 대한 보상을 받아보니 나머지 서비스업 직원들도 수당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생겼다. 노조 활동하기 전 동네 대형마트가 휴점하면 조 씨도 이용자로서 불만이 많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직원들이 하루 쉼으로 해서 마트 점검도 하고 에너지를 충족시키는 것이라 여기게 되었다. 조 씨는 “나라 법을 잘 조절해서 서비스업 계통을 생각해 주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회사도 직원에게 베풀 수 있는 기업이 될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미니 인터뷰>이성종 전국민간서비스산업 노동조합연맹 정책기획실장

“반사회적인 ‘감정·장시간·휴일 노동'해소돼야”

감정노동의 문제점은
감정노동자들도 본인들이 하는 일이 감정노동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전반적인 서비스산업, 병원, 유통매장의 판매직, 운수업 직종도 다 감정노동에 해당합니다.
연맹 소속의 유통업종업체와 실태조사 결과 내 일을 위해 감정을 숨기고 조절하고 있냐는 질문에 종사자의 90% 안팎이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현 사회에서 서비스노동이 있을 수밖에 없다면, 문제는 감정노동으로 인한 서비스노동자들의 스트레스가 크다는 것입니다. 스트레스가 누적되어 우울증, 대인기피증, 수면부족, 소화불량의 증상이 나타납니다. 이것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치유하기 위해서 사회적 비용이 듭니다.

감정노동 문제 해결책은
감정노동자는 감정노동을 어떻게 소화하는가에 대한 문제가 있습니다. 감정노동에 온전히 빠져버리면 내가 없는 것 같은 무력감과 자괴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자기존중감도 떨어지고요. 일에 대한 애착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기업에서는 노동자들에 대한 조치를 취해줘야 합니다. 직무만족교육을 통해 소비자교육대처매뉴얼을 만들어야하죠. 지금 기업들은 감정노동자가 잘못하지 않았어도 손님에게 무조건 가서 잘못했다고 말하라고 합니다. 당사자는 이로 인해 엄청난 스트레스를 느낍니다.
소비자는 감정노동자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필요합니다. 직원을 내가 무언가를 하는데 도와주는 고마운 사람으로 인식해야 합니다.
정부에서는 감정노동으로 발생하는 증상이나 질병을 치유할 수 있고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고, 감정노동을 산업재해로 인정해야 합니다. 일정규모 이상의 사업장에서는 감정노동자가 정신과적 증상이 나타나면 심리상담할 수 있는 정신과 전문의를 상주하게 하거나 전문가들을 수시로 접촉할 수 있도록 법제도를 만들어야 합니다. 사회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도록 정부의 노력이 특히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유통업체는 월 이틀 쉰다고 시민들에게 홍보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감정노동자들의 요구사항은 어느 정도로 이뤄졌는가
감정을 수단으로 하는 일에 대한 보상 차원으로 임금을 지급받는다거나 감정휴가를 받을 수 있도록 요구했습니다. 현재 7개 노조에서 5만~10만원의 감정수당을 지급받고 있습니다. 회사도 직원들이 감정노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는 겁니다. 감정휴가를 최초로 도입한 로레알코리아에서는 감정노동자가 필요에 의해 전문의 상담을 받을 수 있게 병원과 계약을 맺고 있습니다. 강원랜드에서는 단체협약을 통해 감정노동자들의 스트레스를 치유해주기 위해 마사지를 받게 하고 정신과 전문의 상담을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있습니다.  

근본적인 대안은
서비스노동자들의 감정노동, 장시간·심야노동, 휴일 노동이라는 ‘반사회적 노동’이 해소돼야 합니다. 감정노동은 실태조사와 산재처리 받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장시간 노동은 특별법 발의 중이고, 심야노동은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으로 완화되었으며 휴일 노동은 소비자 선택권을 존중해서 노동자가 감안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고 봅니다.
남이 아니라 ‘우리’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마음으로 우리 사회를 같이 살아가는 주체들이라고, 나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감정노동자는 기업의 영향을 받고, 소비자로부터 요구를 당하고, 정부는 어쩔 수 없다고 한다면 치유가 되지 않습니다. 조금씩 생각을 바꾸고 배려하면 변화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박선미 기자  

<저작권자 © 복지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