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대문구 신설동에 위치한 서울풍물시장. 소박한 옛 귀한 물품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을 방문하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60, 70년대 풍경으로 온 듯한 느낌을 받는다. 풍물시장에서 사고파는 물건들은 아무리 고장난 물건일지라도 다시 새롭게 탄생하고, 오래된 물건일수록 빛이 난다. 옛 항수가 젖은 골동품을 사고파는 풍물시장을 방문해 진솔한 삶의 현장을 담아봤다.

 

추억 창고의 보물을 담는 상인
지난달 19일 오전 12시, 풍물시장 거리. 지속된 폭염과 더불어 하루 전에는 폭우가 쏟아지는 등 오락가락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이날 다행히 날씨가 좋아 풍물시장 거리에는 부지런히 상인들이 발길을 옮겨 자신의 상가를 오픈하고 장사를 시작하는 등 그동안의 변덕스런 날씨와는 아랑곳없다는 듯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 중 풍물시장 정문 앞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길거리 한 가운데에 덩그러니 옛 음반(올드팝송·가요)만 진열되어 파는 곳. 또 지나다 보면 트럭을 놓고 오디오와 음반을 파는 곳도 있다. 음반 하나에는 2000원이라고 써져 있다.
음반 하나를 조심스럽게 꺼내 살펴보는 손님 류성오(69) 씨는 “나훈아, 남진 등의 옛 가요를 즐겨 듣는 편”이라며 “레코딩을 통해 음악을 듣고 싶으면 이곳을 찾는다”고 말했다.
오래된 물건이라 곳곳에 먼지가 쌓여있기도 하고, 골동품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사람들은 추억을 삼고 추억을 파는 이들을 찾아가 향수가 섞인 옛 물건들을 집는다.
이태리제 고급 가죽벨트부터 안경집, 지금은 찾고 싶어도 찾을 수 없는 옛 기종 카메라 등을 파는 가게도 있다.
10년째 풍물시장에서 물건을 팔고 있다는 상인 김성기(가명·43) 씨는 “풍물시장에 있는 상인들은 대부분 20년, 30년 동안 물건을 파는 베테랑 급 사람들”이라며 “옛 물건을 사고파는 것이 처음에는 취미로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귀하게 느껴지고, 이것이 곧 밥벌이가 되었다”고 말했다.
6.25 이후 중고 물품과 골동품 시장의 메카라고 할 수 있었던 지금의 서울풍물시장이 청계천의 변모와 더불어 2003년 동대문 풍물 벼룩시장이라는 모습을 거쳐 2008년 이후 현재의 신설동 자리에 터를 잡고 새롭게 출범한 것이 바로 ‘서울풍물시장’이다.
없는 것이 없는 만물 시장으로 오랜 세월 서울 시민들의 삶과 애환을 함께 해 온 풍물시장이 세련되고 현대적인 것만을 추구하는 현대의 젊은이들에게는 인기가 꺾였을지 몰라도 옛날의 향수를 추억하거나 백화점과 마트에서는 구할 수 없는 진기한 골동품과 아주 오랜 세월의 손때가 묻은 중고물품을 구하려고 하는 이들에게는 바로 이곳 서울풍물시장이 마지막 남은 추억 창고의 보물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곳 서울풍물시장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중고물품과 골동품들은 당장 쓸모가 없어 보이는 LP판, 비디오 테잎에서부터 타자기, 전화기, 교복, 책가방 등까지 망라하고 있어 실제 구매를 하지 않더라도 구경을 하는 것만으로도 근현대의 생활사 박물관을 돌아보는 것처럼 신기하고 재미와 감동을 주는 요소들로 가득하다.
한 방문객은 “팔리지 않을 물건들까지 전시해 놓고 손님들과 정감을 나누는 풍경들이 정감있다”며 “돈벌이만을 위해서 장사를 하지 않는 풍물 시장 사람들의 훈훈한 인간미를 느낄 수 있어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풍물시장에 가면 없는 것이 없고 못 만드는 것이 없다고 했던 예전 황학동 시절의 풍물 시장 전성기는 현대화의 물결과 더불어 다소 퇴색되었다 할지라도 옛것을 소중히 여기고 하나라도 아끼고 재활용했던 어른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 서울풍물시장은 단순한 시장으로서의 기능 뿐 아니라 서울의 역사와 과거가 함께하는 전시, 체험관으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다.

풍물시장 예전보다 발길 줄어들어
그러나 요즘 서울풍물시장에서 만난 상인들은 하나같이 “요즘은 ‘개시’라도 하면 다행”이라고 입을 모았다.
재래시장의 ‘불황의 그늘’이 여기 풍물시장에도 자리 잡았기 때문. 풍물시장 안에는 중고 의류, 골동품, 만물상 등 다양한 가게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지만 정작 손님은 그리 많지 않다. 그나마 방문하는 손님들은 나이가 든 어르신들이 대부분.
중고 의류 가게를 7년 째 운영하고 있는 최재영(65) 씨의 마음은 지난 7월부터 폭염이 지속된 날부터 계속 몸도 마음도 지쳐갔다. 최 씨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가게 앞 의자에 앉아 하염없이 손님을 기다리지만 요즘엔 장사가 너무 안돼 오후 6시만 되면 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가기 일쑤다.
최 씨는 “불경기와 겹쳐 계속 날씨가 폭염이 지속되어서 사람도 안 오고, 물건 양을 줄였지만 그마저도 다 못 팔고 있다”고 한숨지었다.
풍물시장에는 특히 ‘구제’라고 불리는 브랜드 중고 의류 상점이 많다. 소위 ‘명품’ 축에 속하는 중고 물품들을 취급하는 곳이다. 중개상인들이 미국이나 일본에서 컨테이너째로 물건을 들여오면 땡처리 상인들은 이 중 좋은 물건을 사와서 판매한다. 국내에서 소화되지 못한 물량은 동남아 등 해외로 되판다.
구제 상점을 운영하는 신영원(가명ㆍ57) 씨는 “불경기여도 구제는 인기여서 좀 팔릴 줄 알았는데, 도무지 장사가 안 된다”고 하소연했다.
땡처리 카세트테이프를 파는 김기수(가명ㆍ72) 씨는 “3~5년 전과 비교하면 매출이 ‘하늘과 땅 차이’”라고 호소했다. 김 씨는 “음반 제작자들이 도매점에 넘긴 테이프 중 팔리지 않아 반품된 물품들을 취급한다. 포장을 벗긴 테이프 알맹이만 사들이는 식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MP3 음원시장 탓에 아예 음반자체가 나오지도 않아 걱정이 태산”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오늘은 2만원어치밖에 못 팔았는데 예전에 비하면 10분의 1도 안 되는 매출이다. 공과금도 못 낼 정도”라고 말했다.
골동품 상점을 운영하는 박재형(68) 씨는 “예전에는 카페를 개업하는 사람들이 많아 장사가 좀 됐는데 요즘은 통 찾는 사람이 없다”며 쓸쓸한 기색을 내비쳤다. 박 씨는 아파트나 주택 단지들을 직접 돌아다니며 골동품들을 모아온다. 들여온 물건들이 팔리지 않으면서 박 씨 가게엔 골동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간다.
신완순 풍물시장 상인회장은 “풍물시장 안 894개 상가 주인의 열 중 일곱은 한 달 수입이 100만원도 안 된다. 이들은 생계를 위해 고리사채를 쓰는 등 빚을 지고 있다”며 땡처리 시장의 불황을 설명했다.
신 회장은 “날이 풀리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 열심히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볼거리, 먹거리 등 풍부한 문화의 장으로
‘서울풍물시장’이 올해 개장 4주년을 맞이했다. 그동안 서울풍물시장은 단순한 전통 벼룩시장의 개념을 넘어선 한국 고유의 먹 거리, 살거리, 전통문화가 어우러진 우리나라의 대표 풍물 한마당으로서 자리매김 하기 위한 많은 노력을 해왔다. 예전 벼룩시장에서 판매되던 전통 풍물 상품들과 각종 골동품 외에도 생활용품, 관광 상품, 토속상품 등을 다양하게 갖추었을 뿐 아니라 각종 전통 문화행사와 시민 참여 마당을 열어 내ㆍ외국인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시장내부에 설치된 `보이는 ‘라디오’에서는 매주 수요일 상인들이 직접 마이크를 잡고 시장 상인들과 내ㆍ외국 방문객들과 함께 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진행되며, 매월 마지막 주에 열리는 외국인 벼룩시장에서는 다양한 나라에서 온 외국인들이 사용하던 물건들을 직접 판매해 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서성만 서울시 도로행정과장은 “앞으로 향토기반의 특화된 상품공급을 늘리는 한편 시장간 공동협력 전략을 구사하여 시장 공동이벤트 및 지역행사 마케팅, 입점가 공동 행사 등으로 고객친화에 역점을 두어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 하겠다”며 또 “볼거리, 살거리, 체험 공간 등을 확충하여 서울풍물시장을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도심 속의 장터로 정착시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문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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