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노인들의 마음을 나누는 친구

독거노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 주어 힘을 북돋아 주는 노인서비스가 있다. 바로 동대문구에서 최초로 실시한 ‘실버시터’. 상담가가 직접 초기 상담을 통해 단절된 가족들과의 고통, 갈등 등 어르신들의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정신질환 위험군에 속하는 경우 동대문구정신보건센터와 연계해 노인들의 질환 예방에 크게 기여하고 있어 화제다.

보건소에 들리는 어르신들은 모두 친구
지난달 6일 오후 3시 동대문구보건소에는 실버시터 상담가 김영희 씨가 방문한 할머니 성춘자(76) 씨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김 상담가는 성 할머니와 오래전부터 알던 사이인 것처럼 다정하게 손을 잡고 웃음 지으며 인사하고, 말을 건넨다. 알고 보니 성 할머니는 15년 전부터 보건소에 꾸준히 방문하여 김 씨로부터 상담을 받고 한방치료를 받고 있었다.
성 할머니는 “옛날부터 무릎이 아프다가 최근에는 허리까지 안 좋아서 병원에 다니며 치료를 받았으나 수술비와 입원비가 비싸서 병원을 나와 일주일에 한 번씩 보건소에 들려 한방침을 맞고 있다”고 말했다.
김 상담가는 “할머니는 사실 협착증으로 인해 허리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연세가 많아 수술을 하면 위험하다고 하여 저희 보건소에서 한방침을 맞으면서 고통을 덜 수 있을 정도로 치료를 받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잠시 후 4시가 되자, 성 할머니는 한방침을 맞기로 한 시간이 되었다며 김 상담가의 부축에 힘입어 한방진료소로 향했다.
괜찮으냐는 김 상담가의 진심어린 걱정이 담긴 질문에 한방침을 맞은 성 할머니 허리를 만지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 “침을 맞으면 괜찮아 괜찮아”라고 오히려 위로의 말을 건넸다.
성 할머니는 이어 김 상담가의 두 손을 잡으며 “항상 고마운 사람”이라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
성 할머니는 그동안 과거 힘든 결혼생활과 경제력으로 시달려 왔으며, 갖은 고생으로 몸과 마음이 병이 들었다. 세상에 친구도 없었고, 희망도 없었다. 우울증이 걸려 불면증에 시달려 온 삶이 성 할머니를 너무 지치게 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동대문구보건소에 들려 건강문제로 상담을 받다 실버시터를 통해 작지만 큰 위로를 받아 현재는 꾸준히 지속적인 정신적 상담과 한방치료 및 고혈압, 당뇨 처방 등의 도움을 받고 있다.
성 할머니뿐만 아니라 보건소에는 다양한 사연을 가진 노인들이 방문해 실버시터의 도움을 받고 있다. 김 상담가는 항상 그래왔다는 듯 찾아온 노인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다정하게 이야기 나누는 것이 하루 일과다.
김 상담가는 “보건소에 방문하는 어르신들은 나이가 많든, 적든, 가난한 자이든 모두 손님이자, 부모님이다”라며 “어떤 분은 폐지 줍다가 자연스럽게 들려서 속을 터놓아 친해지기도 한다, 자신이 힘들어서 방문하는 어르신들이 대부분이지만 언제나 가도 편한 곳이고 맞이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이라도 위안을 얻고 가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작은 도움이 큰 위로가 되다
동대문구 용신동에서 거주하는 이옥진(가명·85세) 할머니는 동네부동산에서 내어주는 단칸방에서 홀로 지내고 있다.
방안에는 1인용 조그마한 냉장고, 오래된 냄비, 이불 등의 살림살이가 고작이다. 홀로 살면서도 연락이 끊긴 네 딸과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막내딸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삭감된 생계비 지원과 고추 따기로 어렵게 생계를 유지해 가고 있다. 기초 생활수급자이지만 지원되는 생계비마저 제대로 지원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 것.
이 할머니는 위장 수술 후 병원에 가지 못해 소화가 안 되어 소화제를 받으러 지난 3월 보건소 방문하였다가 김 상담가를 만나 임의 상담을 통해 지속적으로 상담 및 약을 타고 있다.
김 상담가는 “정부보조금이 20만원에서10만원 받는 것으로 삭감되어 그 돈으로 월세를 내고, 고추 따기를 통해 벌이 하신 돈으로 나머지를 채워 또 월세를 내시면서 근근히 살아가시고 있는 분”이라며 “실버시터 상담 이후 정기적으로 한방치료를 받고, 관절통 약을 받으면서 겨우 건강을 유지해 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김 선생님이 도와줘서 지역종합복지관을 통해 도시락을 제공 받고 있고, 구청 사회복지과를 통해 휴대폰도 제공 받았다. 또 관공서 통지서 등 모르는 문제가 생길 때 언제든지 보건소에 가면 김 선생님이 해결책을 알려주기도 하고, 어려운 사연을 듣고 자주 집에 방문해주며 좋은 친구가 되어주고 있다”고 고백했다.
이 할머니는 김 상담가를 통해 도움 받은 실버시터에 대해 힘들었던 마음에 따뜻한 위로가 되어주었고, 살아가는데 조금이나마 큰 도움을 받고 있어 그저 ‘고마울 뿐’이라고 말했다.

착한 나눔 노인복지서비스
동대문구보건소에서는 생활이 어려운 노인들을 돌보는 실버시터를 지난 3월부터 운영하면서 노인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아이돌보미를 뜻하는 ‘베이비시터’에서 착안한 실버시터는 보건소를 찾을 여력도 안 될 정도로 취약한 노인들이 당연히 누려야 할 복지 ‘권리’를 알려 주고 필요한 곳에 연결시켜 주는 찾아가는 복지 서비스를 하는 도우미이다.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다양한 상담과 지원을 해 주는 일을 한다. 사업을 시작한 이후 약 4개월 동안 120여건의 신규 상담을 비롯해 재상담 74건, 전화상담 60건 등 250여건의 상담 실적과 20여건의 전문기관 연계 등 290여건의 실적을 이뤘다.
실버시터는 보건소를 찾은 외로운 할머니들에게 10분이고 20분이고 계속해서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고 맞장구를 쳐주는 등 대화 상대도 돼 준다.
김 상담가는 “독거노인에게 가장 큰 고통은 바로 사회적 단절에서 오는 외로움”이라면서 “이분들 얘기를 들어 주는 것만으로도 절반은 하는 것이란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취약한 노인들을 직접 발굴해야 하고, 치매나 우울증 등 건강상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어려운 점”이라면서 “지역복지회관에만 대상자 발굴을 맡기지 않고 실질적인 도움이 필요한 대상자에게 공적 지원의 손길을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우리 국민 가운데 최근 1년 동안 정신 질환을 앓은 비율은 16%에 달하고 있고, 평생 한번이라도 정신질환을 앓은 비율 27.6%로 이는 우리나라 성인 6명중 1명은 평생 동안 한번 이상 자살을 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3.2%는 실제로 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31.2명으로 OECD 국가 중 1위를 기록하고 있고, 서울시 26.2명인데 반해 동대문구의 경우 31.3명으로 비교적 높은 것으로 나타나 이에 대한 대책이 절실한 실정이다.
이에 따라 동대문구는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거나 신체적 질환 등 급격한 부적응 현상을 경험하면서 우울증 또는 자살사고에 노출되기 쉬운 어르신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보건소 진료상담을 통해 실버시터 사업을 전개하게 된 것.
안승준 동대문구보건소 보건정책과장은 “실버시터 자격증 소지자를 보건민원실에 배치해 상담창구를 운영하고 있다”며 “사업의 성과에 따라 14개 동 주민 센터로 확대해 어르신들의 우울증 치료와 자살 예방을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글·사진/문혜원 기자

문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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