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_책 읽어주는 엄마들

바쁜 삶 가운데서도 정기적으로 모여 소설, 인문학 분야 등 다양한 독서활동을 벌이고 홀로 책 읽기를 넘어 책을 ‘읽어주는’ 일을 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강남구 수서동 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의 동아리 ‘책 읽어 주는 엄마들(이하 책엄마)’. 대체 어떤 점들이 그들을 이토록 책 읽기 활동에 빠져들게 만든 걸까.

아동 서적 읽기에서 깊이 있는 공부로
8년이 된 책엄마 동아리는 자녀들의 나이대로 나뉘어져 약 열 세 명씩 세 그룹이 활동을 하고 있다. 책엄마의 회장 고은정 씨와 총무 김남식 씨는 서로 다른 그룹에 속해 있고 각 모둠은 청소년 책을 읽거나 인문학 공부를 하는 등 다른 활동을 한다.
“처음에는 엄마들의 작은 소모임으로 시작했는데 8년 가량 흐르면서 이렇게 커질 수 있었어요.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고 봉사활동도 하고 자기 개발도 하니 좋죠.”
김남식 총무는 책엄마의 창립취지를 그렇게 설명했다.
고은정 회장은 아이들이 초등학생이던 시절, 어떤 책을 읽어줘야 할까 고민하다 책엄마에 들어왔다고 한다. 하지만 자녀들이 고등학생이 된 지금은 자신의 독서 활동에 초점이 집중됐다.
“책엄마 활동 취지는 각자 느끼기에 따라 달라요. 아이의 책 때문에, 엄마들 각자의 성장 때문에 등 이유는 다양하죠.”
아이책 읽기로 시작했던 활동은 이제 성인도서로 확장되고 깊이 있는 공부를 하기에 이르렀다.

‘나’를 찾게 해 준 책 읽기 활동
“이 모임에 오면 내 이야기를 하게 돼요. 예전에는 아이가 중심이었는데 이제는 ‘어떻게 하면 아이와 내가 함께 행복할 수 있을까’로 변한 거죠.”
고은정 회장은 책엄마와 함께 한 시간을 회상하며 그렇게 말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정말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는 걸 알았어요. 내가 내 개발을 하고 성장해야 해요.”
책엄마 멤버들은 한명 씩 돌아가며 책을 읽고 느낀 점, 줄거리, 이야기 할 점 등을 숙제 삼아 발제해 온다.
이런 활동을 통해 멤버들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김남식 총무는 “책엄마 활동을 하면서 점점 발전하고 성장하는 느낌이 든다”며 “아는 만큼 보이지 않느냐”고 말했다.
고은정 회장 역시 책을 접하는 자세가 달라졌고 이전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인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드라마만 봤다면 이제는 다큐멘터리를 더 좋아해요. 신화에 관한 내용이면 신의 이름이 들려요. 미술 전시회를 가도 그림을 받아들이는 느낌이 이전과 다르고요.”
그에게 그런 변화는 삽시간에 일어나지 않았다. 책 읽는 활동을 하면서 아주 서서히 찾아왔고 어
느새 자신도 모르게 생활이 달라져 있었다.
“책엄마 모임을 하면서 나와 타인의 다름을 인정하게 됐고 그러면서 어른이 되어가는 느낌이에요.”

책 엄마 활동 통해 아이와 즐거운 소통 늘어
“강남이란 동네에 살면서 엄마들끼리 모이면 전부 아이들 공부, 학원 얘기였어요. 그런데 책 엄마는 어떻게 해야 우리 아이가 행복할까를 생각해요. 그게 정말 좋아요.”
김남식 총무는 강남엄마 답지 않게 말한다.
고은정 회장도 과거에는 아이에게 지식을 주입시키려 책을 읽혔지만 이제는 아이가 싫어하는 책을 억지로 권하지 않는다.
또 엄마가 집에서 책을 읽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면 그런 기운이 자연스럽게 흘러가 아이들도 영향을 받게 된다. 아니나 다를까 책 엄마 가정의 자녀들은 공통적으로 책읽기를 좋아한다.
책엄마는 이 년에 한 번씩 회고집을 출간하는데 이번에 나온 4번째 회고집에는 멤버들의 자녀들도 그림과 글로 참여했다.

기쁨으로 참여하는 일석이조 봉사활동
책엄마는 일 년에 한 번씩 책 바자회를 연다. 그동안에는 거기서 생긴 수익으로 도서관 책 구입이나 환경 구성 등을 했으나 지난해에는 108만원 가량을 아픈 어르신을 위한 긴급의료비로 썼다.
“일차적으로 할아버지께 도움을 드려서 정말 기쁘고 이차적으로는 좋은 책을 많은 사람이 사가서 보니 좋아요.”
책엄마 멤버들은 바자회 기획부터 시작해 책을 모으고, 닦고 가격표를 붙이는 일까지 모두 직접했다. 바자회 홍보도 하고 책을 파는 일 까지 모든 일을 자체적으로 진행했다. 바자회는 오전 9시 30분에 시작되는데 오후 1시쯤 되면 2000여권의 책이 거의 바닥났다. 그만큼 인기가 좋다. 한 권에 100원, 500원 정도 하는 책을 사가기 위해 어떤 이들은 바자회 오픈 전부터 기다린다.
“책을 오래 읽다보니 이제 어떤 책이 좋은 것인지 알아요. 엄선해서 고른 책들을 내 놓기 때문에 바자회가 시작되면 책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요.”
바자회에 이용되는 책은 책엄마 멤버들의 기증분도 있지만 지역 주민들이 기부하는 책도 있다. 그런 식으로 많은 사람들이 지역 사회 일에 참여 하게 되는 것이다.
책엄마는 대왕초등학교에서 방과 후 책 읽어주기 활동도 펼친다. 멤버들 중 시간이 되는 엄마 두 명이 학교를 찾아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책 내용과 연계해 그림을 그리거나 나눔을 한다.
두 명의 엄마가 여러 아이들과 그룹 활동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려움도 있다. 김 총무는 “봉사활동 나가시는 엄마들이 전문 선생님과는 다르기에 힘든 점도 있다고 하신다”며 “아이들이 말을 안 들어도 내 아이처럼 야단칠 수 없고 그렇다고 마냥 웃으면서 할 수도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스스로 부족함을 느끼는 것이라며 엄마들이 배워서 채워나가야 할 부분이라 덧붙였다.
더불어 복지관 1층 도서관에서는 책나무, 이야기 교실 이라는 이름으로 5~7세 아이들 대상 독후활동 봉사를 한다. 한 달에 한 번 진행되는 이 활동에서 고은정 회장은 지난 2년간 마녀 분장을 하고서 동화구연을 했다.
“아이들이 마녀를 무서워하면서도 또 와요. 그림 그리기 활동할 때도 마녀를 많이 그리고요. 그걸 보면 뿌듯하죠.”
독후활동 봉사를 하는 엄마들은 작품 선정부터 준비물까지 매일같이 고민을 거듭해야 한다. 봉사를 다녀 온 하루 이틀만 마음이 편하고 또 그 다음 부터는 다시 고민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 일을 몸소 겪은 고 회장은 엄마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
“봉사 같은 경우는 그게 일 순위가 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죠.”
박동산 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 선임사회복지사는 “복지관에서는 인력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런 일들을 책엄마 모임에서 기여해주신다”며 “감사한 부분이고 복지관 쪽에서도 좋은 영향을 받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책엄마 멤버들은 스스로 하는 게 없다며 한사코 봉사활동의 공을 복지관에 돌렸다.

한결 같은 모임으로 지내고 싶어요
고 회장은 “작년 책 바자회 성과가 그 전보다 좋았고 나날이 발전함을 느낀다”며 “책 엄마 인원도 늘었다”고 했다. 해가 거듭할수록 책엄마 모임은 쌓이는 지식처럼 단단해져가고 있다.
책엄마들은 2013년에도 지금처럼 한결같은 모임을 이어 나가고 싶다.
김 총무는 “지금의 봉사활동을 좀 더 현실적으로,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게끔 이어가도록 고민 중이다”라며 “대왕 초등학교 봉사도 시간이 되는 두 명의 엄마가 일을 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세 그룹의 엄마들이 모두 함께 모여 활동하는 시간을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 사회복지사도 추후 다른 방향으로 변경될 수 있지만 현재 인근 북한이탈주민 아이들과 저소득 가정 아이들을 대상으로 독후활동 프로그램을 하면 어떨까 논의 중이라 귀띔했다.
임원단이 뭔가 하자고 하면 물심양면으로 돕는 책엄마들. 함께 하면 더 기쁘다고 말하는 그들은 책을 읽고, 읽어주는 활동을 통해 개인적 성숙만 이룬 게 아니라 나누는 즐거움도 깨우친 듯하다. 앞으로 그들의 활동이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쳐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더욱 늘어나길 바라본다.

글/이가영 기자
사진 자료 / 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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