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Ⅰ _ 장애인야학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통과의례처럼 겪어야 하는 것이 있다. 부모님 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때가 되면 학교에 들어가고 학습하고 배우면서 사회에 나가기 위한 과정을 밟는다. 사회생활을 하고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면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한 사람의 몫을 다해나가는 과정의 첫 단추는 ‘교육’이다. 교육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했던 장애성인들은 장애인야학에서 그 갈증을 풀고 함께 살아가는 삶을 꿈꾸고 있다.

 

장애인야학, 지식습득 넘어 ‘장애운동’으로
오랜 기간 장애인들은 교육을 권리로서 보장받지 못했다.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아서 또는 학교로부터 입학거부를 받아서 ‘배움’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어려웠다. 교육에서 배제된 장애성인들의 현실은 초등학교 이하의 학력이 전체 장애인의 44.7%인 116만4123명(2011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이르는 것으로 증명된다.
장애성인이 받을 수 있는 학교형태의 교육은 법으로 제정되고 지원이 이루어지기 전 오랫동안 민간단체와 개인의 노력으로 실시돼 왔다. 학령기를 지난 장애성인들은 제도권 교육기관이 아닌 ‘장애인야학’에서 교육을 보충 받았다.
하금철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사무국장은 “학교교육이 담보하지 못해서 차별받은 경험을 스스로 인식하고 그것을 뛰어넘어 능동적인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하는데 장애인야학의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금철 사무국장은 “교사와 학생 간 민주적인 방식과 소통 중심으로 장애인을 둘러싼 문제를 이해하고 사회의 불합리한 부분을 개선해 나가고자 하는 역동적인 움직임을 야학에서 갖고자 했다”고 부연했다.

갈수록 학생 늘지만 야학 여전히 생존투쟁 중 
2008년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제34조(학교형태의 장애인평생교육시설)에 의해 법적 근거가 생겼다.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초·중등교육을 받지 못하고, 학령기를 지난 장애인을 위하여 학교형태의 장애인평생교육시설을 설치·운영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시설과 설비를 갖추고 등록을 마치면 운영 경비를 지원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소속되어 있는 학교형태의 장애인평생교육시설은 전국의 30개소. 교육과학기술부 조사에는 50개소가 등록되어 있다. 법적 근거가 마련됨에도 구체적인 예산 지원이 수반되지 않아 장애인야학에선 운영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작은자야간학교는 1981년 인천시 부평구 십정동의 장애인생활시설 성촌의집 내에 가건물형태로 설립됐다. 부평구청에 의해 1995년 자진철거 통보를 받았고, 2006년 2차로 철거 통보를 받았다. 장애인시설이 재건축에 들어가야 할 처지에 놓이고 교사와 학생 간 학습 공간에 대한 문제를 공감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2008년 인천시 교육청을 상대로 장애성인 교육권 확보에 대해 요구하는 시위와 농성을 시작했다.
2009년 교육청으로부터 야학전세자금을 지원 받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작은자야간학교는 한 명의 상근자를 제외한 나머지 35명의 교사들은 자원봉사자로 구성돼 있다. 시청과 교육청으로부터 프로그램 운영비를 지원받고 200여 명에 이르는 정기후원자들의 후원으로 야학을 운영하고 있지만 매달 빠듯하기만 하다. 게다가 올해 교육청 지원 예산은 책정돼 있지 않아 어려움이 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장종인 작은자야간학교 교사는 “교육청에서는 평생교육법은 지자체 관할이라고 하고 시청에서는 장애인이니 시설로 등록해 특수교육법에서 다뤄야 한다면서 서로 등 떠미는 식”이라고 비판했다.
점점 학생 수는 늘어나고 있지만, 해마다 예산에 대한 걱정을 놓지 못하는 상황이다. 장 교사는 “자립생활을 시도하는 장애인들이 많아지고 있다. 글을 모르면 사회생활을 할 수 없어서 야학을 다니는 장애인들이 많다”고 말했다.
작은자야간학교는 장애·비장애인 통합으로 운영돼 현재 6:4 비율로 비장애인이 더 많은 수를 차지한다. 장애인 중에는 지적장애인 수가 많고 이들은 대다수 한글반에 등록돼 있다.  학생 수가 많아질수록 욕구도 다양해지고 있다.
장 교사는 “한글과 기초학력수업 외에 자립생활교육과 문화예술 교육 등 해야 할 수업이 많다”면서 “어떻게 하면 질 좋은 교육을 학생들에게 제공하고, 학력으로 인정받게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다”고 했다.

이러한 장애인야학 현장에서 겪는 교사와 학생간의 어려움은 지난해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소속 33개 기관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통해 구체적으로 나타났다. 설문조사에는 교사 총436명, 학생770명이 참여했으며, 야학 교사 연령이 40대가 29.7%로 제일 높아 과거 노동야학에서 대학생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것과 차이를 두었다. 교사활동연차는 0~2년이 64%로 높아 야학에서 교육의 안정성을 떨어뜨리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수업진행 불편사항에 대해 교사는 성인장애인에 맞는 교재부족이 40.2% 학생은 보조교사 부족이 30.6%였다. 교사와 학생 모두 통학문제와 편의시설부족 문제에 대해 개선해 주길 바랐다.
이에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에서는 ▲장애인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에 따라 학령기 특수교육대상자에게 제공되고 있는 특수교육 관련 서비스를 ‘학교형태의 장애인평생교육시설’을 이용하는 장애성인으로 확대 ▲장애인야학 활동가들의 기획 하에 의한 장애성인 교재 개발 ▲특수교육관련 학습기자재와 관련된 다양한 정보 공유 필요 ▲<제4차 특수교육발전5개년계획>의 학교형태의 장애인평생교육시설 현대화 사업, 운영여건 개선사업에 대한 제대로 된 집행 등을 요구하고 있다.
장애성인 특성에 맞춘 교육시스템 필요
장애인야학은 주로 검정고시 교육, 기초학력 교육을 중심으로 운영해 왔다. 최근 들어 야학은 학력 보완 교육 외에 여러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장애성인들의 다양한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추세다. 
장애인야학협의회 설문조사에서 졸업자격 중요도가 학생은 53.6%, 교사는 33%인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야학 연차에 따라 중요도 인식은 차이를 보이기도 했다. 연차가 늘어날수록 졸업자격이 매우 중요하다고 답한 비율이 줄어드는 것으로 드러났다.
학생은 야학을 통해 최종적으로 배움(44.3%), 직업(20.1%)을 얻고자 하였고, 교사는 학생들이 자립(45.8%)과 배움(30.5%)을 얻길 희망했다. 학생들은 야학활동이 대인관계를 넓힐 수 있는 부분이 도움이 된다고 답한 수가 제일 많았다.
야학에서 진행하길 바라는 교육으로 교사는 인문교양(27.8%), 학생은 문화예술(22.9%)로 차이를 보였다. 장애인야학이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서 교사와 학생 모두 ‘교육을 함께하는 공간’으로서의 역할에 기대하는 부분이 높았다.
장애인야학 별로 설립된 시기가 다르고 개인별로 의견차가 있지만, 제도권 교육이나 검정고시 교육을 그대로 장애성인에게 도입하는 것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장애성인의 특성에 맞춘 평생학습교육의 필요성을 공감하는 목소리가 많아지고 있다.
하금철 사무국장은 “중요한 건 장애성인이 자기 삶을 꾸려 나가야 하는 것”이라며 “중증장애인이 노동에 참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사회 전반에 대해 이해하고 다양한 사회참여를 할 수 있는 교육 인프라와 컨텐츠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에 몇몇 야학들이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천지역의 장애인야학들은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연극 교육을 진행하여 연극을 통한 사회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이밖에 장애인 인권교육, 문화예술교육 등 장애인 당사자의 욕구를 반영한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야학 간 정보를 나누고 공유한다.
작은자야간학교에서는 검정고시와 기초학력 수업 외에 미술과 연극 수업을 작년부터 진행하고 있다. 사회성과 자기표현이 부족한 편인 지적장애인들은 미술교육을 통해 감성을 표현하고 연극을 함으로써 자신의 목소리를 세상에 내보는 연습을 하고 있다. 야학에서는 이러한 사회성 훈련을 장애인 교육의 일환으로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또한 장애인야학은 노동시장에서 중증장애인이 살아남기 위한 대안으로 장애인이 일할 수 있는 작업장을 만들고, 장애인 극단을 사회적 기업으로 등록하는 등 장애인의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고 이를 직업적으로 안정화시키기 위한 시도와 노력들을 기울이고 있다.
장종인 교사는 “장애인들은 현실의 벽 때문에 취업 욕구가 당장 강하지 않다. 자포자기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야학을 나와서 나이 40의 고졸학력의 중증장애인이 취직하기 어렵다. 이러한 상황이라면, 장애인이 새롭게 배우고 자기발견해서 교육적 가치를 만들 수 있는 평생교육프로그램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글/박선미 기자
 자료/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작은자야간학교

<미니인터뷰> 주 숙 희 작은자야간학교 학생회장

“배움은 ‘내가 깨어지는 과정’ 야학 때문에 다시 삶을 살게 됐어요”

자립생활을 시작하는 장애인들에게 장애인야학은 사회와 만나는 첫 번째 문이다. 집과 시설을 떠나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설렘도 있지만, 두려움이 더 큰 것이 사실이다. 지금과는 다른 삶을 바라고 자신이 원하는 꿈을 그리기 위해 힘겨운 시작을 내딛은 그들에게 야학은 동반자 역할을 자처하며 지지하고 있다. 야학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소망을 갖게 됐다는 주숙희 씨의 이야기를 듣는다. 

주숙희 씨(뇌병변1급·46)는 작은자야간학교에 다닌 지 올해로 6년째 접어들었다. 주 씨는 서른아홉 되던 해까지 부모님과 살다가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자 자립했다. 여동생의 권유로 야학을 알게 되었던 그는 공부를 한 번도 해 보지 못했던 터라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안정이 되어 초등부를 거쳐 고등부 검정고시 과정까지 이수하게 됐다.
작년 4월에 야학을 졸업 했지만, 아직 대학 갈 실력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 들어 작년부터 다시 영어와 수학 보충 수업을 받고 있다. 증명하기 위해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족으로, 순수하게 배움이 즐거워서 공부하고 있다.
6년이라는 시간 동안 주 씨는 야학에서 많은 변화를 경험했다. 무엇보다도 글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은 그에게 ‘자신감’을 심어주었고, 야학에서 만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사회생활에 눈을 뜨게 됐다. 
“집에 혼자 있을 땐 하루 종일 TV 보는 것 밖에 없었어요. 모든 게 어두웠죠. 부모님에게 속 얘기를 꺼내봤자 상처만 받을 뿐이었고요. 여기 와서 많은 사람을 알게 됐어요.”
주 씨는 ‘조금 더 일찍 야학을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어렸을 때 열병으로 장애를 얻은 그는 오랜 시간 가족에 의지해 생활했다. 학교 가는 동생을 보며 학교에 보내달라고 매일 같이 울었다. “배우는 게 꿈”이었을 정도로 공부가 절실했다. 주 씨의 어머니는 경제적 상황이 여의치 않아 딸의 병을 고칠 수도 없었고, 업어서 등교시킬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집 안 세상이 전부였던 그는 자신을 감추고 누군가 자신을 향해 쳐다볼까봐 바깥외출을 할 수가 없었다. 이제 컴퓨터도 할 줄 알게 된 주 씨를 보며 어머니는 “어떻게 네가 할 줄 아냐”고 하면서 놀라곤 하신다고.
야학 때문에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주 씨는 야학 활동을 통해 자신이 그동안 모르고 지냈던 것들을 알게 되어 자신이 ‘깨어졌다’고 말했다. 동주민센터에서 서류 떼는 방법 등 사소한 일상 업무까지도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아도 스스로 해결할 수 있게 됐다.
작은자야학은 장애·비장애인들이 함께 모여 배우는 곳이기 때문에 같은 학생의 신분으로서 차별 없이 서로 잘 어울리며 생활하고 있다. 주 씨는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같은 사람이다. 단지 장애인이 몸이 아플 뿐이며 정신은 똑같다”고 말했다. 이어 “오히려 비장애인 중에 정신이 아픈 사람이 더 많은 거 같다”고 덧붙였다.
주숙희 씨는 간절한 꿈이었던 배움의 끈을 놓지 않으며 여행을 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며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이루며 살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박선미 기자  

<저작권자 © 복지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