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이웃 _ 유영복 어르신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봉사할 겁니다

국내에서 가장 오랜 기간 극장 영사기사로 일 한 분이 있다. 은퇴 후 현재는 중랑노인종합복지관에서 봉사활동 중인 유영복 어르신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60여 년간의 영사기사 생활을 마치고 남은 여생을 타인을 위해 쓰고 있는 유 어르신. 그 따뜻한 마음이 웃는 모습에도 한 가득 흘러넘치는 유영복 어르신을 만나보았다.

일 밖에 몰랐던 젊은 시절
유영복 어르신은 14살, 명치좌극장에서 영사기사 일을 시작했다. 당시에는 흑연을 이용해 빛을 내었던 까닭에 필름에 곧잘 불이 붙어 일하는 내내 앉지도 못하고 서서 지켜야 했다. 어르신은 17세가 되던 해 영사기사면허를 따고 약초극장으로 이직했고 그 후 동양극장, 용산극장 등 다양한 극장에서 영사기사로 일했다.
유 어르신은 극장에서 하는 것은 수도, 전기까지 고칠 정도로 어릴 적부터 손재주가 있었다. 기계장비를 보면 어떻게 다루면 되는지 직감적으로 생각이 났고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며 장비를 다루다보면 어느새 기술이 늘어있었다.
어르신은 어렸을 적 청계천 선반 공장으로 자주 갔다고 한다. 책을 깎으면 용수철처럼 말려나오는 게 재미있어 학교 끝나면 바로 공장에 가 구경을 했다. 어르신은 거기서 이뤄지는 모든 작업을 유심히 봐 두었고 그러길 몇 년 하다 보니 기술이 하나하나 머릿속에 습득됐다.
그게 도움이 돼 훗날 시네마코리아라는 극장에 취직했을 때 비싼 부속을 계속 사 달라하기가 어려워 선반을 구입해달라고 해 손수 부속을 깎아 쓰기도 했다. 기술을 계속 연구했고 결국 극장 안의 모든 것을 직접 관리할 수 있었다.
어르신은 선반을 가지고 다니면서 기계가 고장이 나면 그 즉시 맞는 부속을 깎고 수리 했다. 다른 극장은 그런 사람이 없기 때문에 업체에 일을 맡겨야 했는데 그러면 시간이 며칠씩 걸렸다. 하지만 어르신은 한, 두 시간이면 수리를 했기 때문에 영화를 무사히 상영할 수 있었다고 한다. 특히 명절이나 일요일에는 기계고장이 잘 났는데 휴일이라 기술자들이 놀고 있어 마땅히 고칠 사람이 없었다. 그럴 때 각 극장들이 동대문 극장의 유부장을 찾았다. 유 어르신은 무사히 수리를 해 준 후 그에서 얻는 보람으로 매우 기쁘고 행복했다고 한다.
어르신은 “사람이 수천 명 씩 극장에 드나드는데 기계가 하루만 고장 나도 손해가 컸다”며 “그게 아까워 계속 해서 일을 하러 나갔는데 그래서 이름이 난 것 같다”고 기억했다.
극장 영사기사. 결코 쉽지 않은 일인데도 긴 시간 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르신이 느낀 뿌듯함이 그만큼 컸고 그 일이 천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르신은 노는 법을 잊어버릴 정도로 일 년 열두 달 계속 일을 했다. 유 어르신은 그렇게 70년 동안 일했고 나이가 너무 많아 아랫사람들과 서로 어렵겠다고 판단이 돼 78세를 맞았을 때 은퇴를 하게 됐다.  

제 2의 삶, 복지관 봉사 활동
“잠실 롯데월드에서 은퇴를 한 후 2,3일 놀고 나니 못 견디겠더라고.”
퇴직 후 유 어르신은 직장생활의 빈자리를 메꾸기 위해 배드민턴도 쳐보고 여러 가지를 해봤지만 생전 쉬어보질 않았던 터라 어찌 시간을 보내야 할지 몰랐고 심심하기 짝이 없었다고 한다.
그때 어르신의 친구가 중랑노인복지관을 소개해 주며 봉사할 일이 없는지 찾아가보라고 했다. 유 어르신은 13년 전 막 개관한 복지관을 찾아 사무실로 갔다.
여직원에게 봉사를 하고 싶어 왔는데 전직이 영사기계통이라 영화나 음향 기계 계통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어르신은 총무과 국장을 만나 사정을 말했고 총무국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구세주를 만났다며 어르신을 반겼다. 막 문을 연 복지관에는 음향, 영상 등 모든 설비가 되어 있는데도 그걸 다룰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어르신이 복지관의 기계를 보니 장비가 어마어마한 극장에 비하면 장난감 같은 수준이었다. 결국 그 이튿날부터 잠겼던 방송실 관리를 유 어르신이 하게 됐다.
유 어르신은 “그 제의가 처음에 거절됐다면 다른 곳에도 가고 싶지 않았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어르신은 “복지관에서 봉사한지 이제 십 삼년이 됐다”며 “막 개관한지 얼마 안 돼 사람이 없을 때 내가 찾아 왔으니 나 같은 사람이 일 하게 된 것이다. 운이 좋게 맞아 떨어졌다”고 말했다. 
복지관 가까이 거주하는 어르신은 그동안 영화 상영을 돕다가 현재는 영화 프로그램이 없어져 주 5일 각종 수업의 음향기계를 다루는 일을 맡고 있다. 강의를 통해 다른 어르신들이 수업을 들을 때 어르신은 방송실에서 무선 마이크나 음향 등을 조작해주는 것이다.
복지관 강당 위에는 작은 방송실이 있다. 어르신은 바로 그곳에서 볼륨 댄스나 합창반 등 일주일에 열다섯 개 정도의 수업을 돕고 있고 조명까지 담당하고 있다.
각종 기계들이 고장이 나 장비가 제대로 안 돌아가면 어르신이 바로 내려가서 고쳐주는데 그걸 본 다른 어르신들이 박수도 쳐주고 고맙다며 악수를 청하기도 한다. 이런 소소한 일들이 유 어르신에게 재미가 되고 감동이 되는 것이다. 
가끔 어르신도 봉사를 그만 두고 싶을 때가 있지만 여전히 이런 일이 천직이라고 느끼고 있고 멈출 생각도 없다.
얼마 전에는 오토바이 사고가 나 입원을 했는데 그때에도 어르신은 계속 복지관에 연락을 했고 퇴원하자마자 바로 다시 일을 했다. 쉬어 본 적은 평생에 그 때뿐이라는 어르신은 정말 일을 하고 봉사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

끝날 까지 의미 있는 인생을 위해 산다
어르신은 “나 같은 사람이 돈을 받겠다면 누가 쓰겠나, 봉사 해준다고 하니까 쓰는 것”이라며 “돈 안 받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일 해주는 게 봉사”라고 언급했다.
어르신에게 봉사라는 것은 본인이 건강해서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 누군가들에게 아는 게 있으면 알려주고 필요한 걸 해주는 일이다.
유 어르신은 “내가 안하면 할 사람이 없다는 건 아니지만 내가 맡은 일이니까 끝까지 해야 한다”며 “그게 책임감이다. 또 놀아 봤자 뭐하겠나”라고 말하며 웃었다.
고령의 나이임에도 봉사하는데 체력적으로 힘들지 않다는 유 어르신은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났을 적에 일을 하며 살려고 태어났지 대충대충 생활하고 술이나 마시며 놀다 죽으라고 태어난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렇기에 유 어르신은 힘이 있을 때 봉사활동을 하고 남을 도와주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 삶이 바로 보람 있는 인생이라 확신한다.
또 어르신은 자신의 봉사활동을 복지관 사람들이 매우 좋아해주는 것들이 기분 좋고 고맙다. 자신의 존재를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알아주는 것이 기쁘고 감사한 것이다.
어르신은 더 많은 노인들이 복지관에 찾아오길 바란다. 유 어르신은 “복지관이 생활에 활력을 주고 있다. 내가 처음 왔을 때는 할머니들이 힘이 없고 잘 걷지도 못했다”며 “그런데 여기 와서 춤도 추고 무용도 하니까 점점 건강해지고, 옷 입는 것도 달라지더라”고 말했다.
어르신 스스로가 봉사 활동을 하며 더 건강해지고 활기 있어진 것을 경험한 덕에 다른 노인들이 집에서 무료하게 있지 말고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기를 바라는 것이다. 어르신은 인터뷰를 마치며 “복지관이 많이 늘어나기를 바라고 봉사자들도 많이 생기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여러 매체에서 취재 요청이 쏟아지고 구청장 상을 수여하는 등 유명인사가 되었지만 인터뷰 내내 겸손한 모습이었던 유영복 어르신. 아무쪼록 지금의 정정함을 유지하여 더 많은 이들에게 기쁨을 선사하고 스스로도 행복하시길 바라본다.
 글·사진/이가영 기자

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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