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이웃 _ 김가희 강사

지구촌 세상, 글로벌이란 단어가 널리 사용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에는 다문화가정과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편견이 존재한다. 언어, 문화 차이로 모든 것이 낯선 결혼이주여성들에게 편견의 시선은 칼날보다도 날카로운 비수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적 시선을 딛고 결혼이주여성들의 롤모델이 되고 싶다는 이를 만났다. 어느덧 한국 생활 12년차에 접어든 결혼이주여성 김가희 강사다.

이주여성의 삼중고…언어, 문화차이, 편견
결혼이주여성이 한국 사회에서 가장 많이 겪는 삼중고가 있다. 바로 언어, 문화차이, 그리고 사회적 편견이다.
결혼이주여성인 김가희 강사 역시 한국 생활 초기 이 세 가지 고충을 모두 겪었다.
현재는 한국 국적으로 귀화했지만, 김 강사의 원래 국적은 중국이었다. 그녀는 2002년 한국인 남편과 결혼하며 한국 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김가희 강사가 결혼할 당시 해외 여성들의 위장결혼 문제가 화제가 되며 괜한 오해를 받기도 했다. 김 강사가 남편을 만난 곳은 한국도, 중국도 아닌 일본이었다. 일본에서 어학공부를 하던 시절, 지금의 남편을 만나 순수하게 사랑을 키웠다. 그런데 오해 섞인 시선은 언어 문제와 문화 차이보다 더 그녀를 힘들게 만들었다.
“오해와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서 내가 한국사회에 적응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어요. 일단 언어가 통하지 않으니 매사 거대한 장벽에 부딪치는 것처럼 느껴져 한국어 습득을 최우선으로 결심했죠.”
김가희 강사는 조선족이었지만 중국 한족 학교에서 수학했기 때문에 한국어를 거의 구사하지 못했다. 그녀는 한국 생활에 하루라도 빨리 적응하기 위해 한국어 공부에 매진했다. 그 결과 한국어능력시험과 한국어 토픽 6급에 응시해 합격했다.
그러나 언어 문제만 해결되면 한국 생활에 적응할 수 있을 거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언어의 벽보다 더 힘든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편견과 무시에 직면해야했다.
결혼 초기, 김 강사는 비자 연장 문제로 홀로 출입국사무소를 방문했는데 담당자가 시종일관 반말로 응대했다. 그녀는 담당자의 무례한 태도를 인지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혹여나 비자연장에 대한 불이익을 받을까 걱정한 것이다.
김 강사는 “세월이 흘러 지금은 웃으며 말할 수 있지만, 여전히 이주여성에 대한 편견과 무시가 존재하고 있어 안타깝다”고 전했다.

꿈이 있는 엄마는 당당하다
김가희 강사는 현재 컴퓨터 강사와 중국어통역사로 활약 중이다. 화원종합사회복지관에서 이주여성정보화교육을 담당하는 강사로, 부천시 소사보건소에서는 중국어 통역사로 활동한다. 게다가 틈틈이 이주여성들을 가가호호 방문해 컴퓨터 수업을 진행하는 IT 방문교육도 하고 있다.
결혼 후 출산과 육아, 살림에만 전념하던 그녀가 갑자기 사회활동을 하게 된 이유가 궁금했다. 자신의 꿈을 갖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묻자, 김 강사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바로 “아이에게 당당한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사회활동에 더욱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아이의 평범한 엄마이기도 한 그녀는 아이가 자랄수록 고민이 많아졌다. 엄마가 이주여성이라서 아이가 놀림 받거나 상처 받을 것을 염려했다. 고민 끝에 그녀는 아이에게 자랑스러운 엄마, 당당한 엄마가 되기 위해 자신을 꿈을 그려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기로 결심했다.
사회활동을 결심한 그녀는 2008년부터 자비로 컴퓨터 학원을 수강하며 실력을 쌓았다. 워드프로세서와 컴퓨터 활용 능력 자격증을 취득했고, 더욱 용기를 내어 한국정보화진흥원에서 모집하는 이주여성 대상 IT 방문 교육 강사로 지원했다. 방문 교육은 배움에 뜻이 있지만, 아이가 어리거나 개인 사정으로 강의에 참석할 수 없는 이주여성들을 직접 방문해서 1:1로 강습을 해주는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소사보건소에서 일주일에 3일씩 중국어 통역을 시작했다.
김 강사는 “한국어를 알지 못해 자신이 받을 수 있는 복지 서비스 혜택을 받지 못하는 여성들을 위해 일을 시작한 것”이라며 “이주여성들이 겪는 어려움을 잘 알기에 한국생활을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밝혔다.
특히 화원종합사회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이주여성정보화교육은 수강생들의 반응이 매우 뜨겁다. 사실 이 프로그램의 초기에는 한국인 강사가 수업을 진행했다. 그런데 아직 한국어에 익숙하지 않은 이주여성들이 한국인 강사의 수업을 쫓아가기에 어려움을 느꼈다. 게다가 평소 생활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생소한 컴퓨터 용어들을 배워야 했기에 한국어가 능숙한 이주여성도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어했다. 이에 복지관 측에서는 원활하고 효율적인 수업 진행을 위해 중국어가 가능한 김가희 강사에게 수업을 맡긴 것이다.
정혜선 사회복지사는 “김가희 강사님이 수업을 시작한 후로 의사소통 문제가 해결됐다”며 “이주여성들은 언어 때문에 프로그램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강의는 한국어와 중국어를 모두 사용해서 참여자들의 열의가 대단하다”고 전했다. 정 사회복지사는 “김 강사님의 수업 장점은 단순히 언어문제 해결만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이주여성을 강사로 고용함으로써 수업을 듣는 이주여성들에게 한국 사회에 정착할 수 있는 롤모델로 제시할 수 있어 일석이조”라고 했다.

변화, ‘기다리는 것’ 아니라 ‘만드는 것’
어느덧 한국 생활 12년차에 접어든 김가희 강사. 그동안 한국 생활을 하며 이주여성이란 사실 때문에 부당한 대우나 속상한 일을 겪은 경험도 많다. 한국 생활에 대한 고민과 걱정거리도 여전히 남아있다.
그러나 김 강사는 자신이 직면하게 된 부정적 상황이나 고민에 대해 낙담하거나 남을 탓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 스스로의 역량을 높이기 위해 더욱 노력한다.
김가희 강사는 통역과 강의 활동을 하며 많은 이주여성들을 만난다. 그녀에게 고민 상담이나 한국 생활 적응에 어려움을 토로하는 이주여성들을 만날 때도 있다. 이런 경우, 김 강사는 이주여성들에게 “어서 언어를 배우고 새로운 것을 많이 배우려 노력하라”고 당부한다. 그녀는 “사회적 시선은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이 아니다”라며 “이주여성 스스로가 자신의 역량을 높여 당당하게 행동하며 서서히 편견을 바꿔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회의 시선이 변화하기만을 기다리지 않고 자신의 역량을 차곡차곡 쌓아가며 변화를 만들어가겠다는 김가희 강사는 요즘 새로운 도전을 준비 중이다. 김 강사의 새 목표는 통역안내관광사자격증 취득이다. 관광통역에 관심이 높아서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인 목표인 의료관광코디네이터 국가 자격증을 위한 중간 과정이다.
배움과 도전을 즐기며, 이주여성이 아닌 사회 구성원으로서 당당한 삶을 살고 싶다는 김가희 강사. 사회의 변화를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 행동하라는 그녀가 사회에 바라는 딱 한 가지 바람이 있다.
“이주여성들이 자신의 역량을 키울 수 있는 도움의 손길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역량을 발휘해 일을 할 수 없다면 무용지물이죠. 앞으로 이주여성들이 사회구성원으로서 지속적으로 일 할 수 있는 사회 환경이 조성되길 바랍니다”
 글·사진/정지영 기자

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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