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이웃 _ 마포FM ‘행복한 하루’ 김도환 DJ

‘ON AIR’에 빨간 불이 켜졌다. 분주하게 녹음 준비가 한창이던 작은 라디오 부스가 순간 조용해졌다. 마침내 편집 PD가 손짓으로 신호를 보내자, 은발의 DJ가 멘트를 시작한다. “안녕하세요. 마포FM ‘행복한 하루-나의 삶, 나의 길’ DJ 김도환입니다” 7년째 마포FM에서 DJ로 활약하며 색다른 인생 제2막을 연 김도환 어르신을 만났다.

900명과의 인연, 900개의 삶
“동요 ‘둥근 해가 떴습니다’ 작곡가가 누군지 아세요?”
다소 엉뚱한 질문에 한참동안 고개를 갸웃 거릴 수밖에 없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본 동요지만 작곡가를 아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김도환 어르신은 그 답을 알고 있었다.
‘둥근 해가 떴습니다’의 윤택수 작곡가부터 연기자 최불암 씨, 목사, 무속인, 서예가까지. 도무지 공통점을 찾을 수 없는 이들은 모두 김도환 어르신이 진행하는 ‘행복한 하루-나의 삶, 나의 길’에 출연했던 게스트다.
마포FM의 ‘행복한 하루’는 어르신들이 꾸리는 라디오 프로그램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방송되며, 요일마다 다른 코너로 꾸며진다. 김 어르신은 금요코너인 ‘나의 삶, 나의 길’을 진행 중이다. 김도환 어르신이 진행하는 ‘나의 삶, 나의 길’은 게스트와의 대담 형식으로 진행되는 코너다. 그렇다보니 지난 7여 년간 방송을 통해 김 어르신이 만난 인연은 무려 900여 명에 달한다.
매주 초대하는 다양한 분야의 게스트는 김도환 어르신이 직접 섭외한다. 1회부터 지금까지의 게스트 목록, 방송일자를 손수 정리한 파일은 그가 방송에서 만난 인연 하나하나를 얼마나 소중히 생각하지는 엿볼 수 있다. 게스트 섭외뿐만이 아니라 자료조사, 기획, 대본, 진행까지 담당하는 일인다역이다. 게다가 게스트와의 대담을 위해서 그 분야에 대한 공부가 필수다. 그렇다보니 방송은 일주일에 단 하루지만 방송준비는 일주일 내내 공들여야 한다. 꽤 번거롭고 힘든 일 같아 보이지만, 김 어르신은 요즘 그 어떤 일보다 DJ 활동이 가장 애착이 간다.
“많은 게스트들을 만나고, 그들의 삶을 간접 경험하고 공부하죠. 단순히 만나고 방송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삶을 사는 것과 같아요.”

“DJ 김도환입니다”
마포FM은 반경 약 5km 정도만 주파수가 전달되는 지역공동체 자치 방송이다.
김도환 어르신이 이곳에서 DJ로서의 삶을 시작한 것은 지난 2006년부터다. 33년 동안 국가 공무원으로서 살던 그는 은퇴 후 새로운 삶을 계획했다. 편하게 쉬면서 은퇴 후 삶을 보낼 수도 있었지만 김 어르신은 보람 있는 일, 새로운 삶에 대한 도전을 선택했다.
“라디오 진행자, 시니어 안전 지도자, 수필가, 글로벌 시니어 봉사대, WE CAN NWES 기자, 청계천 역사 문화 해설사…은퇴 후 한가해진 게 아니라 더 바쁜 삶을 살고 있죠.”
김도환 어르신의 다이어리는 그의 바쁜 일정을 대변하듯 빼곡하게 차있다.
정년퇴직 후 많은 활동에 도전하다 청계천 역사문화 해설사를 하게 된 김 어르신은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통역을 거치지 않고 직접 설명을 하는 것이 훨씬 유용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곧바로 마포노인종합복지관의 외국어 수업 수강을 신청했고, 수업을 듣기 위해 복지관을 오가다가 게시판에서 공고 하나를 발견했다. 바로 노인 일자리사업으로 마포FM에서 근무할 시니어온에어 참가자를 모집한다는 내용이었다. 공고를 본 그는 망설임 없이 바로 신청했고, 4개월의 교육과정을 거쳐 마포FM ‘행복한 하루’의 진행자가 됐다.
“‘나의 삶, 나의 길’이 초기엔 25분 방송이었는데,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를 듣기엔 턱없이 부족했죠. 그래서 방송 시간을 늘리자고 건의했고 한 시간 방송으로 바뀌었어요.”
마포FM 개국부터 함께 해온 ‘행복한 하루’와 김도환 어르신. 긴 시간동안 방송 진행을 하며 눈앞이 아찔했던 방송 펑크도 발생했었다.
생면부지 외국인 노동자를 위해 1500만 원이란 큰돈을 선뜻 기부한 할머니의 이야기를 신문에서 발견한 김 어르신은 곧바로 수소문에 나섰다. 할머니는 망설임 끝에 방송을 수락했는데, 결국 방송 녹음 당일 방송을 취소했다. 녹음 방송으로 진행되더라도 방송 바로 전날 녹음을 진행하기 때문에 게스트가 갑작스레 취소를 하면 방송 펑크가 날 수밖에 없다. 김도환 어르신은 첫 번째 방송 펑크를 교훈 삼아 요즘은 방송 이틀 전으로 녹음 일정을 바꿨다.

내 인생의 목표 숫자 ‘901000’
김도환 어르신은 현재 라디오 진행자로 인연을 맺게 된 마포FM의 이사로도 활동 중이다. 마포FM의 이사이자 라디오 진행자로서 그의 바람은 두말 할 것 없이 방송국이 잘 되는 것이다.
“마포FM이 승승장구하는 것이 바람이죠.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마포FM과 같은 소지역 자치방송국이 활성화되는 것 또한 바람입니다.”
일본의 경우 마포FM처럼 작은 지역 방송국이 250여개에 달한다. 지난 2011년 3월 일본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사고 소식을 전하는데 이러한 지역 방송국의 역할이 컸다. 반면 우리나라에는 마포FM을 포함해 단 7개뿐이다.
김 어르신은 자신이 맡은 프로그램의 매력과 프로그램에 대한 애정도 빼놓지 않았다.“마포FM과 같은 지역 자치 방송에서는 우리가 만든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 동네 이야기를 직접 전하고 만들 수 있죠. 그게 지역 자치 방송과 우리 프로그램의 가장 큰 매력이에요. ‘행복한 하루’를 함께 만들어가고 있는 어르신들 모두가 같은 생각으로 자부심과 애정을 갖고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어요.”
방송에 대한 애착이 누구보다 깊어 보이는 김도환 어르신. 앞으로 그의 계획이 궁금했다. 그러자 김 어르신은 빙긋 웃으며 숫자 하나를 적어 보여줬다.‘901000’
암호 같아 보이는 숫자는 언뜻 봐서는 도무지 그 뜻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김도환 어르신의 설명을 듣자, 방송 진행자로서 그의 애착이 얼마나 큰지 짐작해볼 수 있었다.
“901000, 90과 1000이에요. 90살까지 1000회 방송이 제 목표랍니다.”

글·사진/정지영 기자

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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