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복지사 97 _ 백성혜 보광동주민센터 사회복지담당 공무원]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후보들은 국민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복지’를 공약에 빠짐없이 넣었다. 대선 이후 사람들의 복지수요와 기대는 높아졌고, 사회복지전달체계의 가장 기초라고 볼 수 있는 동 주민센터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들의 업무 강도는 세졌다. 결국 과부하로 올해 초 네 명의 사회복지사가 자살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그 동안 복지서비스를 전달하는 인력-사회복지사들에게는 관심이 덜했던 것이 사실이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민심을 얻기 위해 남발하듯 등장시켰던 복지. 내뱉기는 쉬운 말이지만, 실현되기는 쉽지 않다. 주민들 가장 가까이서 공적인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백성혜 사회복지사를 통해 사회복지 담당공무원으로서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백성혜 사회복지사는 지난해 4월 용산구 보광동주민센터로 발령받아 일을 시작했다. 공무원이 되기 전 막연하게 ‘칼퇴근·안정적 직업’에 대한 기대가 있었지만, 막상 일을 접해보았을 때 실상은 전혀 달랐다. 이름 뒤에 공무원만 붙을 뿐 민간 사회복지사와 업무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전에는 아동학대센터에서 근무했었어요. 가해자들을 만나는 위험도 있었고 업무가 어려웠는데 공무원 쪽도 민원 강도가 크거든요. 수급자나 대상자 분들은 공공 서비스들을 당연하게 받아야 하고 못 받을 것에 대한 불안감이 높습니다.”
주민센터에서 사회복지 업무를 담당하는 인력은 일반 행정직까지 포함해서 총 4명. 보광동 전체 복지대상자는 기초생활수급자, 장애인, 한부모, 노령연금, 영유아 대상자 등 천 가구가 넘는다. 하지만 요즘 들어 보편적 복지가 확대되면서 백 사회복지사처럼 사회복지 담당공무원이 일반 시민을 상대하는 경우가 더 늘었다.

본업무 보다 일반 민원 일 더 많아
복지업무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올해 초 사회복지담당 공무원 네 명이 목숨을 끊는 일이 일어났다. 그들은 경험이 많지 않은 신규 공무원들이었다. 그 중 한 사람과 면접동기였던 백 사회복지사의 충격이 컸다.
“복지라고 이름 붙여진 사안들이 보건복지부로 이관되면서 동 주민 센터에서는 깔때기처럼 처리해야할 복지업무가 많아졌습니다. 인력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업무만 떨어진 셈이죠. 전달체계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사회복지 공무원의 본 업무는 기초생활수급자 가구를 가정방문 해 실태를 파악하고 문제 사안에 대해 서비스를 연결하고 관리하고, 복지사각지대를 발굴하며 독거노인·저소득노인 등 취약가구를 지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복지가 확대되면서 굳이 사회복지 공무원이 소득조사를 안 해도 되는 일반시민들의 민원까지 맡아서 하게 됐다. 민원 상대하고 해결하느라 본 업무를 미루거나 늦추게 되는 경우가 발생했다. 또한 사회복지통합관리망 사용 권한을 사회복지 공무원에게만 부여해 업무가 밀려들 때면 처리가 원활하지 않았다.
정부는 2014년까지 사회복지 공무원 7000명 인력 충원한다고 발표했지만 현재 필요한 사회복지 공무원 수에 비해 절반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행정직렬 인력을 복지업무에 배치하려고 해도 민원 상대하기가 어렵고 민원 건수가 많아 행정직 공무원들은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백 사회복지사는 올해 초 봄 스트레스가 많아지면서 몸도 약해지고 매일같이 병원에 다니는 날들을 보내야했다. 설 연휴 전날 근무, 잦은 야근, 주말 출근 등을 감행하면서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백 사회복지사의 노력으로 변화된 대상자들의 모습을 볼 때면 보람을 느껴 일을 손 놓지 못했다.
“한부모 가구는 국가장학금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자격이 되게 해 달라고 애원하시던 부모님이 생각납니다. 기간 내에 상담 내역을 조사팀에 넘겼고 등록금 지원을 받게 돼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 발령받고 일어난 일이라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이타심보다 중요한건 상대 이해하는 마음
일 년 넘게 일해 오면서 백 사회복지사 나름의 민원 대처요령도 생겼다.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주고 그 입장을 이해해주며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이미 화가 난 사람에게 맞불을 놓기 보다는 그 불이 스스로 꺼질 때까지 기다린다. 일단 불이 꺼지면 대화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민원을 상대하다보면 사회복지에 대한 인식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만들기도 했다. 백 사회복지사는 “(동 주민센터에) 오시는 분들은 나라에서 준다고 하더니 나한테 주는 것도 없다며 화내실 때가 있다. 정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복지공략을 내걸지만 실현되는 건 거의 없다. 시행 확정되지도 않았는데 언론에 미리 노출되면 주민센터에서는 일주일 내내 민원에 시달린다”고 말했다.
더불어 “사회복지의 방향이 자립·자활과 함께 ‘보편적’으로 가야 한다. 복지가 보편적으로 가면서 국민들의 기대가 높지만 실제 서비스가 제공되는 건 많지 않다. 철저히 조사한다”고 덧붙였다.
사회복지 공무원으로서 지나온 궤적보다 앞으로 밟아나가야 할 날들이 창창하게 남아있는 백 사회복지사. 착한 일, 좋은 일 한다는 세간의 인식에 비해 사회복지 담당자들은 고된 업무량을 소화해 내야하고 대상자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해결해 줄 수 없을 때는 강도 높은 민원도 감내해야 한다.   
“사회복지 업무는 강한 마음이 없으면 안 됩니다. 취업 때문에, 막연히 이타심 때문에 일을 하면 상처받아요. 그 분들(사회복지 대상자)이 이곳에 오기까지의 마음을 이해하면 됩니다. 중요한 건 ‘마음가짐’이에요.”

글·사진/박선미 기자

박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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