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속으로 _ 시각장애인 선로추락 사건 항소심 제기 기자회견

‘150만 원의 위자료 지급과 화해권고’ 지난해 9월 발생한 덕정역 시각장애인 선로추락사건에 대해 사단법인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한국철도공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의 재판부 결정이다. 이에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와 사고 피해자는 항소장을 제출할 뜻을 밝히며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시각장애인 선로 추락사건이 발생한 것은 지난해 9월 중순이다. 시각장애인 김정민 씨는 덕정역에서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 씨는 열차가 도착한다는 안내방송과 함께 반대편 선로의 열차를 자신이 타야할 열차로 오해하며 발을 헛디뎌 선로로 추락했다. 그는 선로 추락 당시 중상을 입었으나 다행히 큰 화를 면했다.
사고 발생 당시 덕정역에는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지 않았으며, 안전요원도 배치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에 대해 김 씨와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이하 연구소)는 한국철도공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손해배상 청구에 대해 재판부는 150만 원의 위자료 지급과 화해권고 결정을 내렸고, 지난 7월 22일 김정민 씨와 연구소는 서울중앙지방법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판결에 항소심을 제기하는 것을 밝혔다.
이날 항소심 제기를 선언한 원고와 장애인권익문제연구소 측의 요구는 다음과 같다. ▲장애인 외면하는 법원의 각성 ▲철도공사의 책임 인정과 재발방지책 수립 ▲장애인 선로추락 사고에 대해 국가의 대책 마련 등 이다.

“지하철이 무서워요”…스크린도어無
김 씨가 선로 추락 사고를 당한 덕정역은 사고 발생 당시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지 않았다.
나병택 실로암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스크린도어 설치를 촉구하며, 지하철 이용 시 시각장애인이 겪는 위험성에 대해 지적했다.
그는 “장애인들에게 스크린 도어가 없는 지하철은 매우 위험하다”며 “스크린도어는 시각장애인들에게 생명선이자 생명의 차단막과 같다”고 주장했다. 나 소장은 “나도 2번의 선로 추락 경험이 있다”며 “시각장애인은 지하철 이용 시 스크린도어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며 스크린도어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어 나병택 소장은 이번 재판부의 결정에 대해서 “150만 원이란 모든 시각장애인을 무시하는 것과 같다”며 “이와 같은 재판부의 결정을 철회해야한다”고 촉구했다. 또한 그는 “재판부가 항소심에서는 약자의 편을 들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고 당사자인 김정민 씨 역시 스크린도어 미설치를 지적하며, 당시 상황과 법원에 대한 입장을 발표했다.
김 씨는 “추락 후 주변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며 “승강장 구석 공간에 들어가서 몸을 피했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다행히 열차가 앞에서 멈췄다고 했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김정민 씨는 “스크린도어가 있었다면 절대 선로로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선로 추락으로 치골, 갈비뼈 등에 부상을 당했다”고 전했다.
김 씨가 사고를 당한 덕정역은 근처에 안마원이 있어 시각장애인들이 빈번하게 이용하는 곳이다. 김정민 씨의 사고 발생 3개월 전에도 시각장애인 2명이 동시에 추락해 그 중 한 명이 갈비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그는 “선로 끝으로 걸어서 나가야한다고 해서 3명의 부축을 받고 걸어 나가야 했다”며 “당신 때문에 열차가 출발하지 못한다는 막말도 들었다”고 했다. 김정민 씨는 “사고 후 스크린도어가 있는 역에서도 극심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 씨는 “사고 후 입원을 해서 학교에 출석하지 못해 퇴학당했다”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막막하다”고 호소했다.

장애인 안전 사각지대 ‘지하철’
이승철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연구원은 “시각장애인으로서 이번 소식에 매우 마음 아프다”며 연대발언을 시작했다.
그는 “지하철 이용 시 시각장애인들뿐만이 아니라 휠체어를 이용하는 지체장애인의 사고도 발생했었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원은 “안전시설 대비와 교육, 홍보 및 장애인을 위한 지하철 편의시설을 꾸준히 요구했었다”고 발언했다. 이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아직도 이렇게 무자비한 일이 발생한 것을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이승철 연구원은 재판부의 판결에 대해서도 우려의 시선을 보냈다.
이 연구원은 “이번 사건이 하나의 판례로 남는 것이 걱정”이라며 “판례로 남을 경우, 앞으로 장애인 사고가 또 발생해도 어떤 보상도 받기 힘들 것”이라고 걱정했다.
그는 “재판부가 사법기관으로서 우리 사회 마지막 정의를 지켜달라”며 호소했다.

사고 당했는데 책임도 피해자 탓?
2003년 5월 송내역, 2004년 11월 이수역, 2008년 7월 제물포역, 2010년 8월 주안역, 2012년 11월 부천역은 시각장애인 선로 추락 사망 사고가 발생한 곳이다.
이태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소장은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생명을 잃은 사고가 발생 중”이라며 “선로에 추락해 다치거나 심지어 목숨을 잃는 시각장애인들에 대한 무관심으로 비장애인 중심 세상 속에서 장애인이 위험에 처하고 있다”고 한탄했다.
이 소장은 “덕정역의 관리주체인 한국철도공사는 책임 있는 보상이나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기 거부했고, 이에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며 법원 결정에 마지막 희망을 걸었다”며 “재판부는 고작 150만 원에 합의하라는 화해권고결정을 내렸다”고 지탄했다.
그는 “시각장애인이 선로에서 다치거나 심지어 귀중한 생명을 잃는 일까지 끊이질 않고 발생한다”며 “법원의 장애인에 대한 부족한 이해와 시각장애인의 어려움을 모르는 미약한 인권인식에 깊은 우려”를 표현했다. 이어 “이 모든 것이 사고를 당한 사람만의 책임이라니 어린아이도 수긍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은 주최인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를 비롯해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실로암장애인자립생활센터, 희망을 만드는 법이 함께 참석해 재판부 결정을 규탄했다.
글·사진/정지영 기자

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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