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이웃 _ 최미라 사서 자원봉사자

누구에게나 시간은 공평하게 주어진다.
순간을 가치 없게 보내는 사람도 있고,
불꽃을 틔워가며 보내는 사람도 있다.
최미라 사서 자원봉사자는
내일이 없다고 말한다.
오늘만이 자신에게 주어진 최선이라
믿는 그는 책으로 가득한 공간에서
하루 종일 책과 부대끼며
순간의 불꽃을 틔운다.

9000권의 책을 소장한 부평중부종합사회복지관 내 4층에 자리한 늘푸른도서관.
최미라 사서가 자원봉사활동을 하는 곳이다. 매일 그녀는 10~20권 정도의 책을 분류작업을 하고 있다. 올해 7월부터 작업에 착수해 최미라 봉사자를 거쳐 간 책은 그중 30% 정도. 책 정리가 끝나지 않으면 관외대출도 어렵기 때문에 최 봉사자는 시간 가는 것을 아까워하며 최선을 다해 작업에 임한다.
도서관에서 일하는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결혼 전 병원에서 의학사서로 일하다가 아이 셋을 낳고 일과 멀어지게 됐다.
“지적장애인 둘째 딸을 돌보느라 15년을 매달리다보니 자원봉사가 돌파구였어요.”
5년 전 산곡1동 주민센터에 도서관 봉사자를 뽑는다는 공고를 보고 신청했고 사서봉사자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책과 인연을 이어가게 되었다.
최 봉사자는 규모가 작고 일이 많은, 그래서 자신의 힘이 더 필요한 도서관에서 일하기를 원했다. 재작년부터 올해 7월까지 부평1동주민센터 도서관에서 일하다가 자신의 역할이 더 필요하다고 판단되어 늘푸른도서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둘째 딸이 중부복지관에서 음악치료를 받고 있었고, 늘푸른도서관에서는 오픈 멤버로 참여할 수 있어 의욕이 생겼다.
지역의 작은도서관들은 주로 자원봉사자로 운영되고 있어 전문사서의 역할이 간절히 필요하다. 최 봉사자는 전문 역량을 발휘하며 늘푸른도서관 외 인천시 부평구 산곡1동주민센터 작은도서관에서 활동하고 있다.

일 많고 규모 작은 도서관에서 더 보람 느껴
“책은 저에게 위안을 줘요. 책을 들고 있는 자체가 행복해요. 책 정리해서 보고 있으면 뿌듯하고요.”
늘푸른도서관에는 기증받거나 후원받은 책이 많아서 분류작업은 필수적이다. 한 권의 책이 서가에 꽂히기까지 사람의 손을 다섯 번 정도 거쳐야 한다. 책을 분류하려면 책의 종류, 크기 등 기본적인 책의 정보를 컴퓨터로 입력하고 직인 및 라벨 작업을 들어간다. 일일이 수작업을 해야 하는 책 분류작업은 일반 봉사자들은 쉽지 않은 부분이다. 반대로 전문사서로서 경력을 갖춘 최 봉사자의 역량이 빛을 발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올해 안으로는 나머지 책의 분류작업을 끝내 내년에는 주민들에게 대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이나라 부평중부복지관 사회복지사는 “늘푸른도서관은 일은 많고, 이용자는 적어 보람을 느끼기 어려운데 오히려 이런 곳이 더 좋다고 말씀하신다”며 최 봉사자에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또 “신간이 별로 없고 기증받아 오래된 책이 많은데 책을 너무 좋아하시다 보니 책 귀한 줄 아시고 소중하게 생각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오로지 ‘살기 위해’ 봉사활동 매진
오전에 늘푸른도서관에 출근해서 오후 세 시까지 그 이후 산곡동으로 넘어가 저녁 일곱 시까지 최 봉사자는 직업인이 하는 일처럼 봉사활동에 매진한다. 하루의 대부분을 사서봉사자로 활동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작년 유방암 선고를 받고 수술하고 항암치료를 받았어요. 저는 ‘살려고’ 봉사활동 했던 거에요. 그래야 버티겠더라고요.”
열두 번 항암치료를 받으며 죽음보다 힘든 고통을 견뎌야했다. 최 봉사자가 지금처럼 밝은 미소를 짓는 것은 그 모든 시간들을 극복했기 때문이다. 빠졌던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나고 살이 오르는 등 외형적인 변화도 있었지만 전보다 더 긍정적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둘째 아이에 대해 가졌던 죄책감, 자책감을 내려놓았다.
“제가 감당할 수 있어 이 아이를 내게 주셨구나 생각했어요. 더 심한 장애를 가진 아이도 있는데요. (아이가) 걸어다닐 수 있는 것도 감사했죠.”
딸을 특수학교에 보냈고, 오후에는 장애인활동보조를 쓰면서 아이에게 매달리는 삶을 멈추었다. 도서관 자원봉사활동을 지속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나를 위한 길이 내 주변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매 순간 끊임없이 아픔이 찾아왔다. 고통은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사라지지 않았다. 생각하면 더 아팠고, 외부로 발산해내지 않으면 감당하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힘들어하는 딸의 모습을 가슴 아프게 지켜보셨던 어머니를 위해, 장애인 딸을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에 당당해지기 위해 최 봉사자는 자신을 일으켜 세워야 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외출할 땐 단장했고, 집에만 있기 보다는 집 밖 활동을 찾아가며 했다.
두 곳의 도서관에서 자원봉사일을 하는 것 외에 인천미추홀학교 학부모회 회장과 인천장애인부모회 회장을 맡았다. 사람들을 만나면 그 순간에는 아픔이 잊혀졌다. 열심히 삶에 매달리는 것만이 자신을 ‘보듬는 일’이라 여겼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오후 일곱 시 반까지는 아픈 줄 모르고 지내요. 전 내일이 없어요. 오늘이 최선인거에요. 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오늘 꼭 봐야하고요.”
매달 마지막 날이면 최 봉사자는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 유서를 쓴다. 마음의 준비를 하면서 죽음이 꼭 나쁜 것은 아니란 걸 깨달았다.
 “제가 가장 힘이 되는 말은 ‘넌 정말 대단해’란 것이었어요. 그렇게 살지 말자고, 나를 돌아보며 천천히 하자고 하면서도 앞으로만 가려고 해요. 시한부라는 걸 스스로도 생각하나봅니다. 하지만 이젠 한숨도 쉬며 호흡을 끊어가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글·사진/박선미 기자 

박선미 기자  

<저작권자 © 복지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