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새해를 맞이하는 ‘수험생의 메카’ 서울 노량진은 여전히 뜨거운 도전으로 가득 찼다. 한파의 매서운 바람처럼 현실은 고달파도 “무조건 올해 합격”이라는 다짐은 수험생 모두가 갖는 바람이다. 고시원 생활을 하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자신의 꿈을 향해 도전하는 노량진 수험생들을 만나봤다.

경쟁이 치열한 풍경 속에 숨은 인심
연말을 앞둔 지난해 12월 12일 정오. 이날 노량진은 눈이 내리는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컵밥을 파는 노점상 가게와 음식점 앞에는 끼니를 해결하기 위한 수험생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했다. 아직 많은 수험생들이 나오진 않았지만 대부분의 노량진 주변 음식점 가게들은 곧 붐비는 시간 때를 대비하여 팔 음식의 재료를 꺼내 분주하게 점심을 준비했다.
컵밥 노점상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오전 7시에 나와 음식을 준비하여 밤 9시까지 장사를 하고 있다”며 “보통 오후 1시 이후에 많은 수험생들이 나와 식사를 하고 간다”고 말했다.
노량진에서 싸고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할 수 있다는 이유로 인기가 많은 컵밥 값은 기본 2500원. 뜨거운 국물과 함께 먹는 길거리음식 컵밥의 메뉴는 다양하다. 김치와 햄, 참치 등 다양한 재료로 버무려 비벼 먹는 컵밥은 보통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볶음밥이지만 은근히 맛있고 배를 든든히 채워줄 수 있다는 장점이 수험생들에게는 안성맞춤으로 통한다.
컵밥 외에도 노량진 주변 식당 및 음식점 가게 대부분의 가격은 5000원 이하다. 물가가 하늘을 치솟는 요즈음 경제풍경 답지 않게 왠지 이 곳 노량진에서 만큼은 비켜가는 듯 모든 물가는 저렴하다.
노량진 학원가 골목에 있는 한 슈퍼마켓에서는 ‘대폭할인’이라는 문구가 문 앞에 써 붙여져 있다. 이곳에 있는 물품 가격은 대부분 수중에 판매하는 가격보다 더 저렴하다.
슈퍼마켓 판매원은 “아무래도 노량진에서는 수험생들이 많다보니 물건을 더 싸게 팔 수 밖에 없는 것 같다”며 “힘들게 공부하는 학생들의 경제적 부담을 이렇게나마 덜어 줌으로써 공부에 열중했으면 좋겠다”라며 인심 좋은 바람을 내비치기도 했다.
보통 공시촌(공무원을 준비하는 동네)의 골목이라 불리 우는 노량진1동 일대에는 학원 50여 곳이 밀집돼 있으며, 곳곳에 고시원 및 원룸들이 즐비해 있다. 이곳에는 하루가 특별히 다른 것은 없다는 듯 무심한 표정으로 이동하는 많은 젊은이들이 두꺼운 옷으로 중무한 채 몸을 움츠리며 걸어간다.
노량진 학원가는 1970년대 말 정부가 강북 밀집 해소책으로 종로에 있는 입시학원을 사대문 밖으로 이전하면서 형성됐다.
이후 노량진1동은 고시학원, 입시학원 등 각종 대규모 학원이 많이 분포하고 학원생들을 유치하기 위한 고시원과 고시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저렴한 가격의 식당이 골목마다 들어서 있게 됐다.

꿈을 위해 도전하는 수험생들
사회복지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정준하(가명·28) 씨는 올해로 1년 반째 공무원 시험 준비 중이다. 정 씨는 현재 집(정릉동)에서 학원으로 오가며 공부를 하고 있다. 보통 아침 7시까지 학원으로 와서 동영상 강의를 들으며 공부한다. 정 씨는 ‘안정적’이라는 이유로 공무원 시험을 택했지만 어려운 이웃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사회복지사가 되는 꿈을 갖게 됐다.
정 씨는 “저 같은 경우는 부족한 수업을 보충하기 위해 학원 수업을 병행하고 있다”며 “내년 3월경에 있을 시험을 대비해 열심히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씨와 마찬가지로 같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장현미(가명·30) 씨도 내년에 있을 시험에 “꼭 합격하겠다”라는 목표로 열심히 고군분투 중이다.
장 씨는 횟수로 4년째 노량진에서 공무원 시험 준비 중이다. 시험 준비 전, 장애인재활시설에서 근무하다 보다 포괄적으로 좀 더 많은 대상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 공무원 시험을 택했다.
장 씨는 고시원에서 약 6개월 생활을 하다 금전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거처인 인천에서 학원을 오가며 시험 준비에 여념이 없다.
장 씨는 “고시원에서 공부했을 때에는 책을 더 한자라도 볼 수 있고, 체력적으로 덜 딸린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집에서 다니며 공부했을 경우에는 금전적인 부분은 덜지만, 체력적으로 좀 힘들다”라며 “공무원 길은 이래나 저래나 멀고도 힘든 것 같다”고 토로했다.
직장인으로 있다 공무원 시험을 뒤늦게 준비한 박수현(가명·34) 씨도 내년에 있을 사회복지공무원 시험 합격을 위해 열심히 도전 중이다. 박 씨는 거처가 경기도 남양주시다 보니 공부에만 열중하고 싶어 가까운 고시텔을 얻었다. 먹고, 자는 기본적인 생활을 하고 있지만, 가끔 식사 값에 대한 부담을 덜고자 다니는 교회에서 해결하기도 한다.
박 씨도 정 씨처럼 대부분 동영상 강의를 들으며 시험 준비를 하고 있으며, 보통 자율적인 공부는 학원과 독서실을 오가며 병행하고 있다.
정 씨와 장 씨, 박 씨 등 세 사람은 “앞으로 꿈은 시험에 합격하면 반드시 사회에 귀감이 될 만한 좋은 사회복지사가 되는 것”이라며 겸손한 의사를 밝혔다.

12월은 공시촌 성수기
연말을 맞이한 수험생들은 2014년 상반기에 집중되어 있는 시험 준비에 바쁘게 생활하고 있다.
노량진역 3번 출입구 주변의 한 학원가. 점심시간이지만 학원 복도를 비롯한 각 강의실과 자율학습실에는 수험생으로 가득하다. 오는 3~4월 실시하는 2014년 공무원 공개채용 시험이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수험생들 사이에는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복도에 있는 테이블에서 점심을 해결하는 학생도 있고, 잠을 쫓느라 자율학습실에서 쪽잠을 청하는 학생도 있다. 심지어 휴게실에 혼자 남아 뒤늦은 점심을 먹으면서도 책을 놓지 않는 수험생도 있다.
학원 출입문 마다 붙여진 쪽지에는 ‘올해는 합격. 집중력을 위해 조용히’이라는 문구가 심심찮게 보인다.
오후 2시가 되자 일제히 복도는 조용해진다. 학생들이 수업을 듣기 위해 강의실로 들어갔기 때문. 사회복지공무원을 준비하는 한 강의실에는 학생들의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고 수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학원에 있던 한 수험생은 “통상 12월은 노량진 성수기라고 불린다”며 “12월이 되면 신규 수험생의 경우 지방에서 상경하여 노량진에 둥지를 틀고 본격적으로 공시 족에 합류케 된다”고 말했다. 이어 “기존 수험생은 하던데로 하되, 오히려 노량진 생활에 익숙한 학생들이 지방으로 내려가 혼자만의 시간을 갖으며 공부하기도 한다”고 덧붙여 말했다.
서울 노량진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에게는 ‘메카’다. 일반 행정직 공무원을 비롯해 경찰공무원, 소방공무원, 검찰직 공무원 등 그 응시 분야는 다양하다.

공무원 시험 준비생 갈수록 늘어날 전망
2013년부터 공무원시험 진입 장벽이 낮아져 최근 20만 명이 넘는 사상 최대 인원이 공무원시험에 몰렸다는 조사결과가 최근 집계됐다.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 숫자는 정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지만, 통계청 조사에서 취업준비생 61만 명 가운데 31.9%가 공무원시험을 준비한다고 밝혔다.
학원가에서는 중복 응시 등을 감안하면 연간 45만 명 정도가 공무원시험에 응시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반면, 한때 5만 명을 넘어섰던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고시생은 현재 2만 명 정도로 감소한 것으로 추산됐다.
공무원시험 시장의 규모는 노량진에서 학원사업에 진출한 상장 합병기업의 자료를 근거로 추정했을 때 2010년 800억원, 2011년 900억원, 2012년 약 1000억원 규모로 해마다 10% 이상 성장세를 이어 가고 있다.
공무원시험은 빈자리를 채우는 임용시험으로 성격이 다른 데다 누구나 제한 없이 응시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정부의 목표라 공무원시험의 인기는 사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안전행정부 관계자는 “공무원시험은 산업구조의 변화로 괜찮은 직업이 줄어들면서 국민 생존의 거의 유일한 통로가 됐다”고 설명했다.   

문혜원 기자  

<저작권자 © 복지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