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이웃 _ 간병인 권복순 씨

보호자 대신 병상 옆 보조 침대에서 쪽잠을 자며 조금이라도 환자에게 이상한 기미가 보이면 바로 일어나 불편함을 해소시켜주는 사람이 있다. 바로 간병인. 환자를 보호하는 것은 가족이어도 쉽지 않은 일. 환자의 곁에서 동생처럼, 아기처럼 진심을 다해 간병하는 권복순 간병인의 일상을 따라가 본다. 

산업재해 장기 환자와 7년 동안 동고동락
권 간병인의 하루는 새벽 다섯 시부터 시작된다. 일어나자마자 환자의 열을 체크한 뒤 따뜻한 물로 머리를 감겨주고 몸을 씻긴다. 유동식을 넣은 통을 L튜브를 통해 코와 연결해 음식물이 위와 식도까지 닿게 하여 식사를 공급한다. 기관절개술을 한 환자의 목에 설치한 관 속에 석션카데터(가래를 빼주는 기구)를 사용해 가래를 추출한다.
누워서 지내는 환자는 폐가 위축되어 가래를 빼주지 않으면 폐렴에 걸릴 위험이 있다. 석션은 보통 한 두 시간 정도 간격을 두고 이뤄지지만 심한 경우 30분에 한 번씩 할 때도 있다.
권 간병인은 “밤에도 신경을 곤두서서 잠을 청한다. 자다가도 바로 일어나 석션을 한다”고 말했다. 석션은 그가 하는 주 임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호자가 석션을 제 때 해주지않아 폐렴이 발생돼 사흘 만에 중환자실로 옮겨진 경우도 봤다. 그렇기에 더욱 신경을 쓴다.
욕창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환자의 체위를 변경하고 3시간에 한 번씩 등을 두드린다. 면역력이 떨어져 있는 환자들은 피부가 약해 피부가 닿는 부위가 한 곳에 장시간 지속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인다. 
얼마 전 권복순 간병인이 돌보았던 재영 씨(가명)가 중환자실로 옮기게 되어 7년 만에 하던 일이 중단되었다가 다시 회복되어 재영 씨를 계속 돌볼 수 있게 됐다.
재영 씨는 맥박과 혈압이 안정적이었다가 갑자기 폐렴이 생기고 3일 만에 급격하게 확산되어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열이 38도 이상 올라가서, 권 간병인은 재영 씨의 열이 내려갈 수 있도록 수건으로 닦아주고 얼음주머니를 몸에 대어주었다. 그럼에도 염증수치가 줄어들지 않고 X-레이 검사 결과 폐렴이 확산되어 있었다.
권 간병인은 “모르는 사람이 보면 (재영 씨 상태가 악화된 것이) 간병인 탓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석션할 때면 몸 속 깊숙이 카데터가 들어가기 때문에 재영 씨는 힘들어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권 간병인은 재영 씨가 안쓰러운 마음에 “미안해”라고 말하곤 했다. 와상 환자들은 청력이 거의 손상되지 않아 권 간병인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재영 씨, 사랑해. 건강하게 잘 지내”라고 말을 걸고 뽀뽀도 해 주었다. 권 간병인이 하는 말을 알아듣는다는 듯 재영 씨의 눈동자가 커지는 등 반응을 보였다.
재영 씨는 7년 전 건설 현장에서 뇌출혈이 일어나 쓰러졌다. 산업재해로 판정 받아 월급의 70%와 간병비가 지급되고 있다. 보통 간병인은 일 년에 십여 명 정도 환자를 맡는데 재영 씨처럼 한 환자만 7년을 맡아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이다.

육체의 고통 뛰어넘는 ‘관계’의 어려움
간병인으로서 17년째를 맞이한 그는 병원에서 최고참 간병인이 됐다.
“다른 일은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나한테 맞다고 느꼈지요. 내 손길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면 보람을 느껴요.”
1990년대 후반 강릉시 차원에서 여성일자리를 창출 목적으로 간병인 양성 교육을 실시했고, 수강생들은 수료 후 바로 현장에 투입되었다. 권 간병인은 1996년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생계가 막막했을 때 지인의 소개로 강릉시 YWCA 여성회관에서 산모도우미와 간병인을 양성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처음 간병인이 되고 나서 보조침대에서 쪽 잠을 자며 24시간대기 상태에 놓여 있을 때, “등허리를 얹어 맞은 것처럼 몸이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환자를 간호하는 일은 육체적인 소모가 크다. 똑같은 동작을 매일 반복하여 손목과 어깨가 굳어 있었고, 스트레스도 관련이 있었다. 무엇보다 쉬는 날이 정해져 있지 않아 규칙적으로 휴식을 취할 수 없었다. 쉬고 싶을 때는 대타 전문 간병인을 따로 고용해야 했다. 짧으면 2~3일, 길면 5일 정도 대타를 쓸 수 있었다.
장기 환자를 돌보면서 허리 통증이 심해졌다. 병원에서 X-레이 검사 결과 척추 2개가 돌출되어 이대로 방치하면 디스크가 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한 환자는 하루에 설사를 20~30번 씩 해서 여러 번 옷을 갈아입히고, 시트도 갈아주어야 했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자 손목이 자주 아파왔다.
육체적인 고통보다 더 한 것은 ‘관계’의 어려움이었다.
다쳐서 병원에 들어온 환자들은 간병인에게 욕하고 폭력적으로 대하기도 했다. 치매 환자의 경우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해 간병인에게 끊임없이 소리를 지르고 욕하고 음식을 달라고 떼쓰기도 했다.
한 병실을 같이 쓰는 사람들끼리 겪는 관계의 어려움도 생겨났다. 5~6인 병실에 환자와 보호자까지 합치면 10여 명 정도가 공간을 공유한다. 서로 긴장되어 있고 신경이 날카로워져 너그러운 마음을 갖기란 쉽지 않다.
의식 있는 환자는 밤새 티브이를 보려 하기도 하고, 밤에 일찍 잠이 드는 환자는 빨리 불을 껐으면 하고 바란다. 에어컨을 작동하네 마네하며 실랑이를 벌인다. 각각의 사람들이 모인만큼 각각의 욕구가 다 다르다. 사소한 의견 차이에서 시작된 분쟁으로 간병인이 그만둔 경우도 있었다. 

간병인을 바라보는 인식의 날카로운 잣대 
“환자 측에서는 ‘내가 간병인을 돈 주고 샀으니 내 맘대로 하겠다’는 의식이 있어요. 간병인을 ‘인격적’으로 대하는 태도가 부족하죠. 천한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요양보호사 제도가 생긴 이후로 인식의 변화가 온 부분도 있지만, 간병인들이 일 함에 있어 걸림돌이 다 제거된 것은 아니다.
어느 날 권 간병인이 잠시 자리를 비운 적이 있었다. 그 사이 보호자가 찾아왔고 환자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신경을 다친 환자는 눈물샘이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않아 보통 때에도 베개를 조금만 높여도 눈물이 흐르는 경우가 있었는데 보호자 입장에서는 간병인이 제대로 돌보지 않아 우는 것으로 오해한 것이다.
권 간병인은 “보호자에게 나를 믿어달라고 얘기한다. 부끄럼 없이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모든 보호자들이 간병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 ‘수고한다’라고 말 한마디 따뜻하게 건네는 보호자도 있었고, 명절이면 보너스를 챙겨주던 가족도 있었다. 명절에는 특히 대타를 구하기 힘들었다. 병실에 환자와 있으면 허전한 마음은 감출 수 없었다. 가족이 교대를 해 주어 명절에 쉰 적도 있었다.
어려운 근무 여건이긴 해도 자신의 일에 대해 푸념을 늘어놓는 동료 간병인들을 보면 권 간병인은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는 “우리도 일 함으로써 돈도 받고 보람 있다고 생각한다. 간병인 중에는 봉사적인 마음을 갖고 양심적으로 일하는 사람도 있다. 험한 일 하지만, 돈 벌기 위해 어쩔 수가 없다. 간병인 스스로 자존감을 높이며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처음 일할 때는 24시간 근무가 일당 5만원이었다. 지금은 7만원으로 인상됐고, 한 달이면 간병비가 210만원이다. 일반 의료보험 환자 측에서는 부담이 큰 금액이다.
지자체에서는 자활차원으로 구성된 복지간병인을 고용해 국민기초생활수급자 환자에게 서비스를 지원한다. 복지간병인 서비스를 받는 환자는 간병비가 발생하지 않는다. 환자 돌봄에 있어서 역할의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비용이 청구되지 않으니까 복지간병인에게는 미안한 마음을 갖는다고.
“외국의 장애인돌보미 사례를 보면 국가가 장애인에게 돈을 지급하기 때문에 장애인은 당당히 서비스를 요구할 수 있었습니다. 서비스 제공자 입장에서도 장애인을 조심스럽게 대하고요.”
그는 간병비를 개인이 부담할 것이 아니라 간병인을 월급제로 일하게 해서 하루 여덟 시간 근무, 열 두 시간 근무로 일하게 하면 처우도 개선될 것이라 보았다. 또 “간병인도 환자에 메이지 않게 되고 당당해질 수가 있다”고 말했다.
향후 재가 쪽에서 활동할 생각으로 제2회 요양보호사 양성 교육을 등록해 요양보호사 교육을 이수 받고 자격증을 취득했다. 향후 독거노인 돌봄을 하면서 틈틈이 봉사활동 해 나갈 계획이다.
“특히 조손 가정의 아이들을 도와주고 싶어요. 소외되어 살아가시는 분들에게 말벗도 되어주고 싶고요.”

글/박선미 기자
사진/권복순

박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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