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이웃 _ 조민정 미술치료사

한 사람이 물에 빠졌다. 수영도 못하고 구명보트도 없고 심지어 물도 깊어 쉬이 사람이 들어갈 수도 없는 곳에서. 그런 모습을 주위 사람들은 안타깝게 지켜보거나,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또는 남의 일처럼 관망할 수도 있다. 그는 주변에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있음에도 물에 깊이 빠져버려 주위를 살피지 못한다. 만약 조민정 미술치료사라면 어땠을까. 그는 일단 물에 빠진 사람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렸을 것이다. 때로는 소리도 지르고, 불빛을 보내기도 할 것이다. 당신을 도와줄 사람이 ‘여기 있다’고.

마음극복하려 미술치료 입문 ‘내적자아’ 강해져
군포시노인복지관 지하 1층에는 어르신들의 정서지원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해피리본(Happy Re-born) 프로그램실이 있다. 바로 이곳이 조민정 미술치료사가 일하는 곳이다. 그는 사회복지사이면서 미술·웃음·원예치료 및 푸드 표현 예술치료, 레크리에이션과 건강 체조까지 진행하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 모든 일이 가능할 수 있었던 가장 첫 번째 이유는 그가 미술치료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부터였다. 
“제 마음을 극복하고 싶어서 미술치료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자격증을 따면서 내적자아가 강해지는 걸 경험했고요.”
말할 수 없는 아픔과 고통을 미술치료를 배우면서 무의식을 시각화하는 작업을 시도했다. 4년 전 안양과천교육지원청의 심성수련을 통해 학생들을 상담하는 자원봉사자를 하다가 알게 된 지인으로부터 군포시노인복지관을 소개받았다. 개인(성인)상담과 학생상담만 해 오다가 어르신들을 상대하려니 부담도 있었지만, 막상 어르신들을 대해보니 기우였음을 깨달았다. 집안에서 막내로 자란 조 미술치료사는 어른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경험이 있었고, 할머니와 같이 살았던 기억이 긍정적으로 남아 있었다.
처음에 어르신들은 미술치료를 어려워하거나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조 미술치료사는 어르신들이 좋아할만한 부분을 궁리하다가 노래와 율동을 프로그램에 가미하면서 활력을 불어넣었다.

믿음 보여주고 맘 열릴 때까지 기다림 연속
조민정 미술치료사는 어르신들이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프로그램 진행하면서 느꼈다.
아르헨티나에서 살다가 아내와 헤어지고 재산까지 잃은 한 어르신은 술에 의지해 살았었다. 조 미술치료사는 그 어르신의 삶이 얼마나 귀한 인생이었고, 최선을 다 해 살아왔는지 거듭 상기시켜 드렸다. 어르신은 조 미술치료사의 마음을 잘 받아들였으며 표정이 전보다 밝아지고 난타 활동을 하는 등 삶의 활기를 되찾게 되었다. 프로그램에 참가한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전보다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하게 됐다. 표현력이 좋은 어르신들은 치료효과도 빨리 나타났다.
“표현력이 좋다는 건 내가 귀한 사람이란 걸 아는 겁니다. 독거 어르신이나 경제적으로 힘들게 생활하시는 분들은 ‘내가 잘못 살아서 힘들게 한다’고 생각하시거든요. 자존감이 낮아 있는 상태죠. 작품 활동을 통해 자신의 욕구를 발견하세요. ‘내가 이런 거 하고 싶었고, 잘하고 싶었지’하면서 과거를 되돌리며 내가 괜찮은 사람이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프로그램은 게임 위주로 진행하되 서로 긍정의 말을 주고받으며 관계를 유지·발전시키는 부분을 강조한다. 치매예방에 도움 되고 재미도 느낄 수 있는 율동과 노래를 실시해 재밌는 수업을 하는 것에 초점을 둔다. 그가 특히 ‘재미’를 강조하는 이유가 따로 있다.
“한 어르신은 일주일에 웃을 거 해피리본에 와서 다 웃고 가신다는 분이 있습니다. 정말 즐거워하세요. 어르신들이 아주 즐겁게 지낼 수 있도록 기다려지는 시간이 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월·화·목요일 오후 두 시부터 한 시간 동안 웃음치료를 진행하면서 어르신들에게 미술치료를 병행하고 있다. 현재 조민정 미술치료사는 세 개의 반에서 34명의 어르신들을 만난다. 미술치료는 ‘내적인 성장’을 유도하는 부분이 크고 자신감 형성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프로그램에 빠지지 않고 넣는 편이다.
딸 뻘이라고도 볼 수 있는 조 미술치료사에게 어르신들은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는다. 처음부터 어르신들이 그에게 쉽게 마음을 연 것은 아니었다. 조민정 미술치료사는 어르신들의 관계에 있어서 ‘라포형성’이 중요하다고 보았고 어르신들에게 스스럼없이 다가섰다. 눈인사를 나누고 다정한 말을 건넸으며, 안아드렸다. 이런 식으로 어르신들이 조 미술치료사의 마음을 알 수 있도록 ‘표현’했다. 
어르신들의 변화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조 미술치료사는 어르신들의 삶을 지켜보면서 인생을 배웠다.
당시엔 고통스러웠던 일도 지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 내 어려움은 어르신들의 고통에 비하면 무겁지 않다는 것. 포기할 수 있었던 상황에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견디셨던 어르신들의 모습을 보며 귀중한 삶의 지혜를 배웠다.
“어르신들의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 안에 내적 에너지가 많다는 걸 느꼈어요. 또 레크리에이션 수업을 하면서 어르신들의 반응이 좋았습니다. 숨겨진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 거죠.”
프로그램은 보통 일 년 과정으로 진행되고 한 번 참가한 참여자는 재차 참여할 수 없다. 수업 종료 후 별다른 자극이 없다면 어르신들이 이룬 내적성장은 줄어드는 것이 아닐까. 이에 대해 조 미술치료사는 “미술치료는 때 되면 맞아야 하는 예방주사처럼 지속적으로 받는 것이 좋지만, 일단 새로운 것을 배우고 자극받은 부분은 잊지 않고 기억하신다”고 답했다.
조 미술치료사는 상대가 마음을 열기 전까지 먼저 다가가지 않는 편이다. 꾸준히 관계를 유지하며 마음이 열릴 때까지 기다린다.
“자기 문제의 답은 스스로가 알고 있습니다. 두려운거죠. 안 해봤던거니까. 저는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터치’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할 수 있다고 지지와 응원을 보냅니다. 실제로 많이 변화됩니다.”

미술치료사 ‘객관화하는 능력·강한 내적자아’ 갖춰야
정서치료는 미술치료 외에도 음악, 무용, 연극 등 범위가 다양하다. 조 미술치료사는 “미술치료가 그 중 사람의 내면에 가장 깊이 들어갈 수 있다. 음악치료를 함에 있어서도 미술치료를 병행하면 효과적”이라며 “그림을 그리면 무의식이 보인다. 이를 잘 해석해야 하는데 상대를 잘 알았을 때 그 해석이 정확하다. 개인상담 하려면 미술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미술치료는 미술활동으로써 드러나는 특징적인 점-상징적으로 나타나는 것들을 파악한다. 그에 따르면 엄마의 옆얼굴을 그린 아이의 내면에는 엄마를 좋아하지만, 미워하는 마음도 같이 있다고 했다. 또 잡지나 매체를 이용한 꼴라주 작업을 할 때 정면을 붙이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감추고 있는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미술치료 작업에 사용되는 ‘만다라’는 조 미술치료사도 힘들 때면 종종 사용한다. 도안에 색을 입히고 난 뒤 멀찍이 떨어져 바라보면서 느껴지는 점들을 해석해 본다.
미술치료사는 자기가 먼저 충분히 치유되어야하며 내적 자아가 강해야 한다고 말한다. 내적자아가 강해진다는 것에 대해 조 미술치료사는 ‘객관화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보았다.
상대의 입장이 되어보고 관찰하면서 직관력이 발달했다. 자신을 잘 알게 되면서 화가 줄어들었고 남에 대한 배려가 생겼다. 상대를 관찰하되 지나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인다. 조 미술치료사는 주로 이러한 훈련을 가족들에게 적용했다. 
“우리 엄마들은 아이에게 ‘동일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도 아이와 분리되는 작업이 힘들었지만, 아이의 삶이 있듯 저의 삶도 있는 거니까요. 이제는 서로를 바라봐 줄 수 있는 힘이 생겼습니다.”
내적 자아의 힘을 유지하기 위해 조 미술치료사는 자신의 위치와 지금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해 늘 생각하는 시간을 두면서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마음을 키워나가는 노력을 기울였다.
“지금의 삶에 만족해요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도움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 줄 수 있는 위치도 감사하죠. 관계 속에서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아 감사해요. 저는 위로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글·사진/ 박선미 기자

박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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