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년후견제는 지난해 7월 민법상 금치산제도와 한정치산제도의 문제점을 보완해 질병이나 장애, 노령, 그 밖의 사유로 인한 정신적 제약으로 법률행위를 수행하는 것이 사실상 곤란한 사람에 대해 법원이 후견인을 선임해 대리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하지만 사실상 제대로 정착되지 않아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는 문제제기가 나왔다.
지난달 1일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법무법인 율촌과 새누리당 김정록 의원, 새정치민주연합 최동익 의원이 공동주최한 ‘성년후견인 시행1년 점검 심포지엄’을 열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성년후견제의 성공적 정착을 위해서 친족 후견인을 위한 매뉴얼 마련, 피후견인의 비용에 대한 부담경감, 전문후견인 선임을 위한 보험제도 등 제도적 지원과 인식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상자 사회통합적 생활 가능한 인프라 구축 필요
제철웅 한국성년후견법학회 회장은 성년후견제도가 입법되는 과정에서 국회에 제출된 3개의 법안은 성년후견을 개시하더라도 행위능력을 제한하지 말자는 방안, 후견의 기한을 제한하자는 방안 등 좋은 방안을 담고 있었다라며 그러나 이런 요소들을 융합해 장점을 살리기보다 정부 안을 기초로 성년후견제도를 도입한 일은 아쉽다라고 지적했다.
제철웅 회장은 또 의사결정능력 장애인들이 사회에서 통합돼 생활할 수 있는 의사결정 지원 시스템 구축이 우선되어야 한다며 주장했다.
제 교수는 이어 호주와 영국, 일본 등 우리나라에 앞서 성년후견제를 시행 중인 외국 사례를 들어 성년후견제 대상자들의 사회통합적 생활이 가능할 수 있도록 사회적 인프라와 문화가 형성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성년후견은 피후견인의 행위능력을 제한하고 박탈하면서 후견인의 권한을 강화하며, 후견인의 후견 기간이 길다라면서 이 때문에 후견인이 도리어 피성년인의 인권을 박탈할 수도 있다라고 우려했다.
제 교수는 무엇보다 현행 성년후견제도는 의사결정능력 쇠퇴 정도가 아닌 개인 의사에 따라 후견인의 권한을 설정할 수 있다라면서도 특정후견, 임의후견을 제외하고는 행위무능력제도의 잔재가 남아 장애인권리협약을 위반할 소지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제 교수는 성년후견제도보다 임의후견 등을 포함한 후견 대체제도를 이용해 피후견인에게 다양한 선택권을 보장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제철웅 한국성년후견법학회 회장

친족 후견인 선임 91%, 전문직 선임은 미비
김윤정 서울가정법원 판사는 지난 11개월간 서울가정법원이 접수한 사건 발표에 따르면 후견별로 성년후견이 359건으로 가장 많았고 한정후견이 54건, 특성후견이 24건, 임의후견이 8건으로 모두 445건으로 집계됐다며 이중 121건이 인용됐고 9건이 기각됐다고 밝혔다. 김 판사는 재판부당 10건씩을 표본으로 뽑아 계산한 평균 처리기간은 성년후견 접수일로부터 확정일까지 약 5.5개월이 소요됐다고 말했다. 김윤정 판사는 일본은 2008년 통계 기준으로 2개월 내에 종국한 사건이 전체의 64%, 4개월 이내에 종국한 사건이 88.7%로 심리기간이 짧다며 이러한 신속처리는 감정생략이나 본인 심문 생략 등의 실무 정착이 원인으로 보이는데 성년후견제도가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고 피후견인의 의사와 복리를 존중하는 취지가 있다고 한다면, 본인 심문 생략화로 인한 사건 처리 신속화는 무조건 바람직하다고 평가할 수만은 없다고 언급했다. 김 판사는 일본 역시 친족이 후견을 청구하는 비율이 높다고 했다. 그는 현재 91%의 사건에서 친족후견인이 선임되고 있는데 이는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성년후견은 금치산이나 한정치산 제도와 달리 후견인에게 다양한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가능하고 재산목록을 비롯해 해마다 한차례씩 후견 사무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 등 후견인의 권한과 직무가 전문화·확대돼 전문 지식이 없는 친족들이 후견사무를 수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있어 체계적인 대책 마련의 필요성이 제기된다고 지적했다.
성년후견제도가 도입되면서 후견 청구인으로 추가된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참고할 수 있는 후견 신청 기준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지난달을 기준으로 현재까지 서울가정법원에 지자체장이 청구한 사건은 10건인 것으로 파악되었다. 기초생활수급자 등으로 친족이 없거나 친족과 연락이 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지자체장이 성년후견제도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2009년을 기준으로 전체 신청 건수 중 10%를 지자체장이 청구했다. 김 판사는 지자체장의 청구는 ‘성년후견의 사회화’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데 사회화가 얼마만큼 진행되고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지자체장의 청구 사건 수를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그러나 일본도 지자체 별로 편중돼 있고 신청의 전제가 되는 신청 매뉴얼 자체가 정비되지 않은 지자체도 상당수에 이른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재산 관련 부분은 워낙 복잡 다양하기 때문에 재산관련 장부를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고 회계적 지식이 필요한 사건은 따로 분류해 전문가 감독인의 감독을 받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김윤정 서울가정법원 판사

 

성년후견제도 중간 점검과 향후 과제
이현곤 법무법인 지후 변호사는 성년후견제도를 4개 유형으로 나누고 내부적으로 변용할 수 있도록 법을 만들었다. 이로써 다양한 후견 유형이 지니는 특징이 사라지는 문제가 있다라며 이 때문에 일반인과 법조인들이 성년후견제도를 이해하기 쉽지 않다. 유형별로 후견인이 어떤 권한과 제한이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 생긴다라고 우려했다.
이 변호사는 또 성년후견제도는 민법이라 법무부에서 담당하고 있으나, 금치산제도와 달리 법률후견에 사회 복지적 측면이 포함된다라면서 성년후견제도를 법무부가 관장하니 사회복지를 할 수 없는 처지다. 소관 부처가 아닌 보건복지부에서는 성년후견제도 담당자가 없고, 법무부는 복지 예산을 편성하지 못해 성년후견제도의 사회 복지적 측면이 약해졌다라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민법에 규정되지 않은 시민후견인을 양성해야 한다라면서 또한 피후견인 복지적 지원과 후견인 감독을 아우르는 특별법을 만들고 보건복지부가 이를 담당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라고 제안했다.
이 변호사는 이어 민법과 정신보건법의 불일치도 문제로 지적했다. 그는 개정민법은 후견인이 피후견인을 정신병원 등 시설에 격리입원시킬 경우 법원의 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지만, 정신보건법은 보호자의 동의만으로 정신병원에 입원이 가능하도록 규정돼 있다면서 정신보건법을 개정해 민법에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후견인, 피후견인, 금융기관 등 제3자 모두에게 예측이 가능하고 유익한 제도로 정착되려면 성년후견 업무지침의 표준화 작업이 시급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성년후견이 개시된 이후 후견인이 은행 업무를 처리할 때 금융기관에서의 처리 매뉴얼과 병원 입원이나 요양원 입소 등에 대한 표준화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 변호사는 현재 법원이나 법무부 기타 유관기관 어디에서도 성년후견과 관련한 표준화된 매뉴얼을 제시하지 않고 있어 현실에서 실질적으로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발달장애인 복지와 권리보호
고명균 한국지적장애인복지협회 사무처장은 지적 및 자폐성장애인에게 후견은 그동안 보는 사람의 시각과 경험, 가치관에 따라 다르게 비쳐왔다며 이제 성년후견제가 시행되고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으므로, 완전하지는 않지만 확실히 진일보한 발달장애인을 위한 정책과 제도가 시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후견지원 전담기구의 설립필요 ▲후견과 자기옹호 그리고 의사소통 ▲후견감독과 모니터링 ▲발달장애인권리보장법에 명시된 후견관련 조항 등을 내세워 향후 발달장애인의 의사소통 지원에 따른 정책정보의 작성 및 배표, 의사소통도구의 개발·교육 및 전문인력 양성 그리고 민원담당 직원에 대한 의사소통 지침 개발 및 교육 등에 관한 필요한 사항을 시행령에서 확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성년후견제가 다른 법률과 충돌하는 지점 개정할 것
반면, 홍성대 새정치민주연합 복지전문위원은 성년후견제도가 다른 법률과 충돌하는 지점에 대해 지적했다.
홍 복지전문위원은 성년후견제도가 이전 행위무능력제도에 있던 금치산, 한정치산을 대체하지 못했다. 금치산, 한정치산에 적용됐던 결격사유가 성년후견, 한정후견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라며 성년후견제도를 제대로 운용하려면 기존 금치산, 한정치산 관련 규정이 성년후견, 한정후견에 적합한 규정으로 대체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 복지전문위원은 정신보건법에서 정신장애인이 정신병원에 입원할 때 장애인 당사자의 동의가 없어도 입원할 수 있도록 규정된 것은 성년후견제도의 취지에 반한다. 당사자나 후견인의 동의를 얻도록 법을 개정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홍 복지전문위원은 이어 공직선거법상 후견을 신청한 사람에게 선거권을 주지 않는 문제도 있다. 후견인을 선정했다고 해서 자동으로 선거권을 박탈하는 것은 성년후견제 기본 취지에 어긋난다라며 본인 의사를 확인하거나 별도의 판단 절차를 마련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이 필요하다라고 제언했다.

성년후견제도의 취지에 따른 결격 조항 개정의 필요성
법무법인 율촌 표정률 변호사는 법무부는 민법을 개정할 때 결격조항을 포함해 관련 법령 정비에 참고할 수 있는 지침을 마련하고자 연구용역을 발주한 바 있다라며 안타깝게도 용역연구보고서에서 금치산, 한정치산을 인용한 316개 법률 중 236개 법률에 금치산, 한정치산이라는 표현을 단순히 성년후견, 한정후견으로 대체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한 실제로 많은 법률이 이처럼 정비된 바 있다 라고 설명했다.
표 변호사는 금치산, 한정치산을 성년후견, 한정후견으로 대체하고 결격조항을 유지하는 것은 성년후견제도 입법정신 구현에 한계를 보여준다라며 의사능력이 부족한 이들로 하여금 노동을 통해 잔존 능력을 발휘해 삶을 영위하도록 해야 한다. 이런 것을 결격조항으로 막아선 안 된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율촌은 지난 3월 공익목적 사단법인 ‘온율’을 설립하고 성년 후견제의 정착 및 확대 지원 등을 강화하고 있다.

 

문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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