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걸음을 딛고, 남한으로 꿈을 찾아 온 탈북청소년들이 있다. 부모와 떨어져 혼자 온 이도 있고, 부모와 동행해 온 이도 있다. 저마다 새로운 희망을 품고 넘어온 이들. 그들은 성공보다 ‘잘 살기 위한’ 다짐을 안고 남한에서 정착하기 위한 삶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터득해 나가고 있다. 그들이 직접 텃밭에서 땀으로 일군 방울토마토를 재배하여 지난달 9일 서울대학교병원 착한가게에서 판매한다고 하여 현장을 찾았다. 농약하나 뿌리지 않은 채로 건강하게 잘 자란 유기농 방울토마토. 어쩐지 주인공들과 닮은 것만 같아 더욱 애착이 간다.

싱싱하고 맛있는 방울토마토 팝니다
지난달 9일 오전 12시. 서울대학교병원 본관 건물 앞 ‘착한가게’앞 에서 “유기농 방울토마토 판매합니다! 맛보고 가세요!”라는 외침이 들린다. 이어 “저희들이 직접 재배한 거에요, 정말 싱싱합니다”라고 덧붙여 외쳐댔다.
외침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탈북청소년교육공동체 ‘셋넷학교’에서 온 탈북청소년들. 총 3명의 학생과 함께 옆에서 도움을 주는 봉사단체 ‘스파인2000’ 자원봉사자들도 함께 가담해 목소리에 힘을 가하고 속도를 붙여 판매에 집중했다.
방울토마토 한 팩에는 가격 5000원. 시중에 판매하는 유기농 농작물 가격치곤 싼 편이다. 지나가는 한 행인이 유기농방울토마토 맛을 본다.
“어머, 정말 맛있네”하며 감탄을 자아냈다. 그리곤 몇 팩을 더 사갔다.
맛있다는 말에 신이 난 탈북청소년들은 더욱 자신감이 붙어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 맛보고 가라며 방울토마토 한 개를 입에 넣어주기도 했다.
이윽고 1시간이 지나자 26개 팩을 가져온 것이 몽땅 다 팔렸다. 탈북청소년들과 함께 있던 자원봉사자들 모두 두 손을 번쩍 들어올려 “만세!”하고 외치며 다 팔린 것에 대한 시원함과 동시에 만족감을 표현했다. 이날 방울토마토 판매 행사는 오전 10시부터 시작해 오후 1시까지 이뤄졌다.
탈북청소년 이철만(26) 씨는 “판매를 다 한 것에 대한 기쁨보다 사실 오늘 이렇게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마음을 나눌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 행복한 하루를 보낸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철만 씨는 5년 전 혼자 남한으로 건너왔다. 처음에는 생각보다 쉽지 않은 남한생활로 인해 힘들어했으나 ‘공부를 다시 해서 새롭게 시작해야겠다’라는 굳은 다짐을 한 후, 탈북청소년공동교육학교 셋넷학교에 문을 두드렸다. 열린 마음으로 받아주는 셋넷학교의 도움으로 천천히 다양한 배움의 경험을 쌓으며 자신만의 꿈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또 다른 탈북청소년 금 향(26) 씨는 셋넷학교에서 추진하는 프로그램 중 방울토마토 재배에 자연스럽게 체험하다 직접 일군 토마토들이 잘 익어가며 열매를 맺어가는 모습을 보고 점점 자신감을 얻어갔다.
금 향 씨는 “순수하게 재배한 방울토마토를 가지고 직접 사회로 나와 팔아보니 재미도 있고, 유쾌한 경험을 한 것 같아 기쁘다”고 고백했다. 그녀는 셋넷학교에서 많은 경험을 쌓는 공부를 배우고, 졸업 후에는 세무회계 쪽으로 자격증을 따 사무직으로 일을 하고 싶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철만 씨와 금 향 씨는 함께 “우리 같은 사람들이 남한에서 크게 성공 한다기 보다 아무 탈 없이 평범하게 잘 살아가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내비쳤다.
박상영 탈북청소년교육공동체 셋넷학교 대표교사는 “낯선 환경에서 적응해 나가야 할 탈북청소년들이 남한의 시장경제 삶을 알아가고, 다양한 방식으로 배움의 훈련 및 체험을 통해 직접 자신만의 삶을 만들어나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참여한 것”이라며 “탈북청소년들이 남한사람처럼 쫓아가는 삶을 살기보다 자신만의 소신으로 이뤄나가는 행복한 삶을 꾸려나가길 기대한다고”고 말했다. 

꿈과 희망을 나누다
바쁘게 탈북청소년들이 방울토마토를 판매하는 동안 뒤편에서 묵묵히 지켜보는 이가 있다. 아이들이 혹시나 필요한 게 없는지, 판매할 때 어려움은 없는 지 등에 신경 쓰고 있는 건 바로 왕태윤(45) 스파인2000의 대표. 그는 목 아래로는 아예 움직일 수 없는 척수장애인으로 휠체어를 사용해야만 이동이 가능한 중증장애인이다.
휠체어에 앉아 아이들의 모습을 살피던 왕 씨는 판매가 모두 성공적으로 끝나자 진심으로 기뻐했다. 그는 함께 기념사진 촬영을 한 후 점심을 대접했다. 점심 메뉴는 짜장면. 자원봉사자들과 탈북청소년들은 맛있는 점심을 함께 먹으며 도란도란 농담 및 사소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즐거워했다.
왕 대표는 “그동안 수고했다”며 “오늘 점심 후원비는 강원래 씨가 마련해 준 것”이라며 “강원래 씨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점심을 맛있게 먹길 바란다”고 덕담 한마디를 던졌다.
왕 씨는 나이 24세 때 군대 제대 한 지 두 달 만에 불의의 교통사고로 손과 다리를 잃게 되었다. 좌절 끝에 오는 건 불행뿐이라는 생각에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한 길로 남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2000년부터 생겼다는 뜻에 숫자2000과 척수장애인이라는 뜻에 ‘스파인’을 합해 ‘스파인2000’이라는 이름으로 장애아동 돕기 봉사단체를 결성했다.
현재 스파인2000은 10년 넘게 장애인기관 및 노인요양원, 보육원 등 다양한 기관에 봉사활동을 나가고 있으며, 이밖에도 탈북청소년 돕기 및 저소득층 이웃을 상대로 한 물품봉사, 외국인이주노동자, 고려인동포 등을 위한 봉사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2005년부터 2006년까지 장애여성을 위한 성폭력특별법 개정운동에 참여하기도 해 국한되지 않는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왕 대표는 “이번 방울토마토 봉사활동 도움은 2달 전부터 강원도 원주에서 탈북청소년들이 처음 농사지은 것으로 남한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기 위한 목적으로 진행한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대학교병원 착한가게와의 좋은 인연
사실 이번 행사는 김종범 서울대학교 착한가게 담당자가 스파인2000의 다양한 봉사활동에 대한 소식을 듣고, 도움을 주고 싶다는 뜻을 밝혀 장소를 후원받아 이뤄지게 된 것이다.
김종범 씨는 “착한가게의 모토 중 사회공헌활동에 적합한 행사라고 판단이 되어 직접 스파인2000에게 연락을 한 것”이라며 “탈북청소년들의 착한토마토 판매 행사가 크게는 아니어도 조금이나마 좋은 보탬이 되길 바란다”고 소감을 말했다.
서울대학교병원 착한가게는 새로운 기부문화 구축을 위한 형태로 만들어진 것이며 후원인 이영술 씨의 기부로 만들어졌다. 지난 5월 14일 ‘착한 아티스트, 백 개의 착한 가방’ 전시·판매를 시작으로 월 2~4회 정도 행사를 개최하고 있으며 후원을 통해 가게를 설립하고 후원한 개인이나 단체에 기부금 영수증을 발급해주는 것은 물론, 판매를 통해 조성되는 기금 전액은 저소득층 환자치료비 및 사회공헌기금으로 사용하는 등 기부의 이상적인 모델을 구현하고 있다.
김종범 씨는 “앞으로도 스파인2000과 함께 착한가게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봉사활동의 도움을 지속적으로 후원해주기로 약속했다”며 “착한가게는 ‘선순환구조’를 만들어 의료계는 물론 사회적인 나눔 문화 확산에도 선도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한편, 탈북청소년들이 방울토마토로 판매한 수익금 반 정도는 서울대학교병원 저소득층 환자들에게 일부 전달해 훈훈한 나눔의 정을 과시했다.
왕 대표는 “사회약자들이 보다 나은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봉사활동을 계속 펼쳐나가겠다”며 “지난 1월에는 좀 더 체계적이고 흔들림 없이 봉사활동을 할 수 있도록 사단법인 스파인2000으로 새로 개정해 지금까지 봉사에 뜻이 있는 많은 사람들과 따뜻한 나눔 활동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문혜원 기자  

<저작권자 © 복지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