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Ⅲ _ 가족관 변화

일 년에 두 번 모처럼만에 온 가족이 모이는 시간. 추석과 설 명절에는 오랜만에 친척과 가족들을 만난다는 반가움과 연휴에 쉴 수 있다는 기쁨도 있지만, 한 편으로는 각종 질문 공세에 시달리는 피곤함도 같이 한다. 미혼의 성인남녀에게는 ‘언제 결혼하냐’는 질문이 자녀가 없는 부부에게는 ‘아이’에 대한 질문이 그것이다. 사회가 변화해도 가족에 대한 개념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직 통념 상 가족은 사진관에 걸린 오래된 가족사진 안에서 찾으려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를 거부하며 그 틀을 벗어나려는 시도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결혼·출산 반드시 해야 하는 시대 지났다
사회가 다변화하고 혈연으로 맺어진 전통적인 가족 관계가 약화되면서 결혼과 가족에 대한 인식도 차츰 달라지고 있다. 가족에 대한 개념이 친족으로 머물지 않고 확대되고 있으며 새로운 가족의 형태가 나타나고 있다.
여성들의 경제활동이 늘어나고 사람들의 의식 수준이 변화함에 따라 전통적인 결혼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고 있다. ‘가구·가족의 변동과 정책적 대응방안 연구(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3)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20~65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결혼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좋다’는 반응이 35.5%로 가장 많았고, ‘하는 게 좋다(34.6%)’, ‘반드시 해야 한다(25.6%)’ 순이었다.
결혼하지 않아도 남녀가 같이 살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그렇다’가 46.1%였다. 동거 반대 의견이 53.6%였으나, 젊은 층에서는 찬성률이 높았다. 30대는 59.2%, 20대는 53.1%가 동거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김유경 연구위원은 “동거, 무자녀가족, 1인 가구, 이혼과 재혼이 늘어나는 게 현실이라면 정책적·제도적 지원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직장인 이성희(가명·32) 씨는 독립하며 산지 12년째다. 대학졸업 이후 어학연수와 취직 등으로 20대의 대부분을 혼자 생활하며 보냈다. 결혼 적령기의 나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주변으로부터 결혼에 대한 부담감은 적은 편이다. 자연스럽게 결혼은 “하고 싶고, 감당할 수 있을 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이 씨의 눈에 결혼한 친구들은 아이를 위해서 사는 것 같다. 그는 “한국에서 애를 안 낳고 사는 건 정말 힘들다”고 말했다. 부부의 삶과 아이의 삶의 균형을 맞춰서 살아야하는데 쉽지 않다고 여긴다. 이 씨는 6개월 전부터 강아지를 기르고 있고, 자연스럽게 강아지를 가족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공부하며 강아지를 키우고 연애를 하는 지금의 삶이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회사원 강진아(가명·33) 씨는 서울로 취직되어 부모와 독립해 3년 째 혼자 살아가고 있는 1인 가구다. 강 씨는 “가족은 결혼을 바라지만, 친구들은 더 늦게 결혼하라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시댁과 겪는 어려움과 스트레스를 들으면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달아나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아이보단 부부 중심 삶 선택 늘어
결혼은 하되 자식을 갖지 않는 딩크족(double income, no kids)들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OECD에 따르면 2009년 한국의 조혼인율은 34개 회원국 중 3위(7.13건)로 OECD 평균(5.00건) 보다 높고, 합계출산율은 2010년 1.23명으로 OECD평균(1.74명) 보다 낮아 결혼은 많이 하지만 출산률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딩크족은 의도적으로 자녀를 두지 않는 맞벌이 부부를 일컫는 말로 개인의 인생과 즐거움을 만끽하는 부부를 뜻한다. 경제적·육아부담 외에도 개인의 개성과 자유를 중요시하는 분위기가 딩크족이 늘어나는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포털사이트에서 20~30대 맞벌이 직장인 608명을 대상으로 한 올해 자녀 출산 계획 조사(2010) 결과 응답자의 12명 중 1명(8.6%)은 자녀를 원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출산 계획이 없다고 답한 47.7%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여건 부족(45.5%), 경제적 부족(42.1%), 자녀 양육 부담(31.4%) 등 경제상황과 주변 여건이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이밖에도 출산 후 사회복귀의 어려움(15.5%), 인생의 목표달성 위해(28.3%),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다(13.4%) 등 개인과 부부 중심의 삶에 공감하는 젊은 부부들의 인식변화들이 조사됐다.  
결혼한 지 6년째인 정지민(가명·33) 씨는 아이를 낳지 않고 부부가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며 살아가고 있다. 정 씨는 “결혼 전부터 아이를 원하지 않았고, 남편과도 상의된 부분이었다. 결혼 초반에는 주변에서 아이에 대한 질문이 많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부부의) 의견을 존중하는 분위기였다. 그래도 아이를 바라는 부분은 여전히 남아있다”고 밝혔다.
이어 “결혼 전 남편은 아이에 대한 생각이 나처럼 확고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남편도 아이를 갖지 않는 쪽으로 많이 기울어졌다는 걸 느낀다. 예전에는 결혼하면 아이 낳고 사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살다보니 남들에게 보이는 삶 보다는 우리만의 삶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정 씨는 어렸을 때부터 고양이와 강아지를 기른 경험이 많다. 결혼 후에도 애완동물과 함께 하는 삶은 당연했다. 이완 다르게 정 씨의 남편은 집 안에서 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었다. 일 년여 동안 설득을 통해 고양이를 입양했고, 이젠 가족이라고 할 만큼 정 씨 부부에게 고양이는 중요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는 “앞으로도 죽 고양이와 함께 살아갈 것”이라면서 고양이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제도 벗어난 새로운 삶의 방식 생겨나
결혼과 출산에 대한 고정관념을 탈피해 개인의 가진 개성을 인정하며 소신대로 삶을 살아가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직장인 윤주영(가명·32) 씨는 비혼의 삶을 선택했다. 윤 씨는 “가족이나 결혼의 필요성을 못 느낀다. 상대방하고만 결혼하는 게 아니어서 이 점이 부담스럽다. 아이를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누군가를 챙길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3년 간 일본에서 체류하면서 생활한 적이 있는 윤 씨는 아무도 모르는 땅에서 혼자 살아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  
현재 혼자 살고 있지만 전에는 파트너와 같이 살았던 적도 몇 번 있었다. 동거를 했던 이유는 주로 ‘경제적’인 부분이 컸다. 윤 씨는 “경제적 여건만 되면 혼자 살고 싶다. 편할 때가 훨씬 많다. 가장 좋은 건 동생이나 파트너와 한 동네에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에서 가까운 거리에 친동생이 살고 있고, 자주 만나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이어 “사람은 동반자가 필요하다. 책임감이 요구되고, 내게 데미지가 있어도 감수할 부분이 있다. 지금은 내가 나의 동반자”라고 밝혔다.
지난 7월 3일 ‘새로운 가족, 제도의 모색’을 주제로 생활동반자에 관한 법률 제정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이 법률은 사회 환경, 문화, 인식의 변화에 따라 기존 혈연 및 혼인관계를 뛰어넘는 다양한 형태의 생활동반자관계에 대해 법률적 보호를 제공하는 것으로 결혼을 하지 않아도 생활동반자를 한 명 지정하게 되면, 소득세 공제, 국민건강보험 피부양자등록, 의료기록 열람권 부여 등의 권리를 제공받도록 관련법을 개정하자는 취지다. 상속권을 제외한 모든 권리를 결혼한 부부와 동일하게 가지며, 동성 간 생활동반자 관계에도 적용된다.
발제자로 나선 진선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결혼과 정상가족의 강요가 작동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1인 가구, 동거 가구, 이혼 가구, 동성커플 가구 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사회적 통합을 해치며 사회적 재생산을 어렵게 한다”고 주장했다. 진 의원은 결혼하지 않는 세태의 원인이 “사회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제도의 지체”라며 “결혼 제도 이외에 다양한 방식으로 사랑하는 이들의 관계를 인정하고 지원하는 방식을 만들어야 한다”고 피력했다.

글/박선미 기자
자료/한국보건사회연구원 외

박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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