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아이들에게 ‘참 좋은 어른 친구’가 되고 싶어요”

아이를 기르는 일은 한 생명을 지켜가는 일이다. 마치 촛불을 지켜나가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오랜 시간 지속적인 주의가 필요하다. 한 순간이라도 방심하면 아이들은 쉽게, 자신의 불꽃을 잃는다. 그 어떤 불꽃도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기에, 안세정 씨는 아이들 마음 속 불꽃을 발견하고 틔워주는 어른 친구가 되고 싶다.

엄마들과 ‘행복한 육아’의 꿈 갖다
안세정 씨는 두 아이를 낳고 난 이후부터 그 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만났다. 아이가 주는 행복감도 있지만, 세상과 중단되고 고립된 감정을 느꼈다.
출산과 육아로 인해 경력이 중단되고, 아이 키우는 일에 대한 가치를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데서 오는 자신감 결여는 많은 엄마들이 겪는 힘겨움이다.
부모의 시행착오나 실수는 고스란히 자녀들에게 이어지는 문제였기에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공’을 들여야 하고, 아이를 잘 키우고 있는 것일까에 대한 끊임없는 회의와 자책감이 들기도 한다.
나는 없고 ‘아이’만 있는 것 같은, 철저하게 아이의 패턴에 맞춰 살아야 하는 삶을 살게 되면서 우울감에 빠지는 경우도 생긴다. 세정 씨는 이러한 고충들의 악순환을 끊고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이 소중한 생명을 내가 맡았다. 아이들의 밝은 미래는 어떤 가치로도 환산할 수 없는 귀한 것이다’라며 스스로를 달래고 끊임없이 되뇌었다.
“이 때 엄마들에게 필요한 게 육아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이에요. 서로 힘든 점을 이야기하고 공감해주면서 함께 견뎌가는 것이 중요해요.”
첫 아이가 태어난 지 8개월쯤 되던 2009년 초. 품앗이 교육으로 딸 여섯을 키운 분의 강의를 듣게 되었다. 한참 육아스트레스로 힘든 시간을 보냈던 터라 그 강의는 세정 씨에게 새로운 삶의 활력을 불어 넣어 주었다.
“엄마들이 같이 모여 서로 힘을 나누면서 아이들을 키워나가면 얼마나 좋을까, 란 생각이 들었어요. 엄마들과 연대하며 ‘행복한 육아’를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어요.”
2012년 6월 도서관에서 열린 북꾸러미 행사에 갔다가 아이 또래 엄마들을 알게 되었고, 품앗이로 아이들을 책과 함께 키워보라는 행사 담당자의 권유를 받았다. 그때 3년 전 마음속에 품었던 비전이 샘솟는 것을 느꼈다. 자발적으로 온라인 카페를 만들었고, 이후 마을공동체 사업에 지원해서 모임을 확장해 나갔다.
품앗이 육아는 엄마들에게 힐링 시간이 되어 주었다. 육아로 지친 엄마들의 아픔을 달래주고, 육아의 기쁨을 다시금 맛보며 새로운 즐거움을 만들어 나가는 계기를 제공했다.

인생의 가장 큰 변화와 성장 안겨준 마을공동체 활동
바라고 꿈꾸던 마을공동체 활동이었지만, 안세정 씨는 살면서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은평 품앗이 육아’ 초대 대표를 맡으며 공동체를 바라보고 미리 한 발 앞서 계획하고 준비했다. 그것과 함께 내부에서 생기는 문제들도 조율하고, 외부의 지원도 알아보아야 했다.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았다. 힘들고 그만두고 싶을 때마다 마음속에 품었던 비전을 꺼내어 보았고, 회원들의 미소를 보면서 극복해 나갔다.
“비전을 통해 움직일 때 사람은 ‘초인적 힘’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저는 사실, 게으른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일이 내가 그 동안 열망하던 것이라 생각하니 게을러질 수 없었어요.”
공동체의 리더 역할을 하면서 전에는 몰랐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기쁨도 맛보았다.
마을공동체 사업을 진행하면서 주변에 도움을 청하고, 장소를 물색하고 사정을 알리는 과정을 통해 자신에게 리더십이 있고, 남을 리드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다.
특히 은평 품앗이 육아를 알리기 위해 사례발표를 하고, 지자체 공무원들을 만나는 일이 잦아지면서 긴장하지 않고 많은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이 가능해졌다. 전에는 의견을 달리 하는 사람을 불편해 하거나 피하는 편이었다. 지금은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보려는 노력을 하게 되면서 포용력이 길러지고, 공감능력도 향상됨을 느꼈다.
품앗이 육아는 안세정 씨에게 아이를 낳은 후 가졌던 꿈이었다. ‘부모교육과 아이들 삶에 희망을 불어넣는 사람이 되는 소망’이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맞벌이 하시느라 집에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소질이나 재능을 알아봐 주는 어른들의 관심이 부족했다. 그 아쉬움을 알기에 아이들의 재능을 발견하고 지지해주는 어른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게 됐다.
“언젠가 회원들에게 ‘부모는 자녀에게 돈을 물려주는 사람이 아니라 삶의 가치와 인생의 방식을 상속해 주는 사람’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 부모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점검하고 그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줘야 합니다.”
아이들이 자신이 잘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그 일이 이웃과 사회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세정 씨 의견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스스로 찾을 수 있게 기다려주고 지지해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보았다. 이에 아이를 홀대하지 않는 환경과 아이가 가진 특성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부모들의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통 이끌어내는 ‘글의 힘’을 믿다
아이를 낳은 후부터는 올바른 육아 방법을 모색하다가 책을 자주 접했다. 전부터 글 쓰는 것을 좋아하기도 했고, 글쓰기 관련 서적을 접하며 글의 힘을 느꼈던 안세정 씨는 마을공동체를 이끌어가는 과정에 있어서도 그 힘의 실체를 경험했다.
회원들 간 불화가 있거나, 활동 진행함에 있어 힘이 부칠 때면 세정 씨는 카페에 글을 올려 이야기로 풀어내곤 했다. 그때마다 회원들은 그녀를 이해하면서, 활동에 대한 전반적인 방향을 알아갈 수 있었다.
세정 씨는 마을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를 주변에 알리는 도구로 매체를 이용하자는 생각이 들었고, 우연한 계기로 인터넷뉴스 매체에 은평 품앗이 육아의 활동 이야기를 전하게 됐다. 매체에 실린 글을 보고 모임에 가입하게 된 경우도 점점 늘어났다. 세정 씨는 글을 기고하면서 품앗이육아 모임의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품앗이 육아 활동을 하면서 소모임으로 ‘엄마는 책벌레’ 활동도 병행했다. 은평 품앗이 육아 회원들 중 책을 좋아하고 글쓰기를 원하는 엄마들을 모았다. 2013년 4월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5월부터 책을 읽고 글을 쓰는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한 달에 한 번 정기모임을 갖고, 서로의 생각들을 나누며 만남을 지속해 오고 있다.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문학과 철학, 교육, 사회 분야의 책을 선정해 함께 읽는다. 세정 씨는 지난 10월 장자끄 상뻬의 ‘속깊은 이성친구’를 읽고 난 뒤 서로 다른 해석들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가 즐거웠다고 회상했다. 이밖에 엄마는 책벌레 회원들은 매 주 한 번씩 주제를 정해 온라인 비공개 카페에 글을 쓴다.
개인사정 때문에 혹은 선정 도서가 마음에 들지 않아 회원들의 참여율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세정 씨는 “모임을 지속해 가야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원이 많으면 더 풍성한 이야기꺼리가 나와 흥미롭고, 참여 인원이 적으면 깊고 의미 있는 이야기가 오고간다. 책 이야기 나눌 때 가장 중요한 건 공감”이라고 말했다.
엄마는 책벌레는 글을 기반으로 하는 독서모임이기에 서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부분이 크다.
“저는 글의 힘을 믿어요. 글을 쓰면 스스로 생각이 정리되고, 내 삶이 들여다보입니다. 회원들에게 ‘읽는 사람은 자신의 글로 누군가를 설득하거나 이해시킬 수 있는 힘을 길렀으면 좋겠다’고 말하곤 합니다.”
그 동안 읽은 책들을 하나씩 맡아 쓴 글을 묶어 지난 11월 간행물 1호를 발간했다. 결과물을 직접 마주하고 보니 회원들의 저력과 책과 글에 대한 사랑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저는 늘 꿈을 가지고 살아왔어요. 꿈을 가지고 사는 제 자신이 좋아요. 이웃의 아이들부터 사랑하고 존중하면서 ‘참 좋은 어른친구’가 되고 싶어요. 그 아이들의 이야기를 글로 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 제 꿈입니다.”

글/ 박선미 기자
사진/ 안세정

문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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