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지지와 돌봄에서 소외되고 사회로부터 단절된 남성 독거노인 대상으로 요리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새로운 활력소를 더해주는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경기 수원 소재 서호노인복지관의 ‘요리날다’. 참여를 한 남성 독거노인들은 요리를 직접 해먹으며 자신감을 얻는다. 또한 경제적·신체적 문제로 빈번한 결식과 이에 따른 영양결핍과 질병악화 등의 위험에 놓여있던 독거노인들의 건강도 회복해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고 있다.

오늘의 요리, 두부전 & 묵전
지난해 12월 10일 오후 1시 30분. 경기 수원 소재 ‘은진요리학원’. 남성 독거노인 9명과 함께 주부자원봉사자들 5명이 모여 요리를 위한 재료 준비에 열중해 있다. 오늘의 메뉴는 ‘두부전과 묵전’. 싱싱한 두부와 묵을 각 테이블에 놓고, 독거노인들과 함께 메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10분이 지나자, 요리 강사 이민진 원장이 요리과정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이민진 원장은 파를 쓸고, 홍고추를 어슷 썬 다음, 어르신들을 향해 “파를 쓸 때는 이렇게 옆으로 자연스럽게 쓸어내려가듯이 썰어주면 돼요”라고 설명했다. 이후 프라이팬을 뜨겁게 달군 뒤, 미리 푼 계란에 묵을 살짝 담근 다음 달궈진 프라이팬에 천천히 하나씩 올려놓았다. 이민진 원장은 숨소리를 잘 가다듬은 뒤 썰어진 실파와 홍고추를 묵 위에 조심스럽게 얹어놓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평범했던 묵에 꽃이 피어나듯 예쁜 모양이 연출됐다. 원장의 요리 과정을 지켜보던 독거노인과 자원봉사자들은 일제히 탄성을 질렀다. “와~ 정말 예쁘네요!”
실제로 보기에도 먹음직스럽고 예쁜 모양의 묵전이었다. 요리수업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욱 탄력이 붙었다. 곧이어 묵전과 두부전 만들기가 마무리 됐다.
오후 3시가 조금 지나자, 드디어 기다렸다는 듯 어르신들의 차례가 돌아왔다. 어르신들은 정해진 팀에 따라 자리에  서서 요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어르신들은 놀랍게도 아주 능숙한 솜씨로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러운 칼 솜씨와 함께 어설프지만 원장과 같은 예쁜 모양을 연출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약 2시간 동안 진행된 요리가 끝나고 마무리가 이어짐에 따라 완성된 두부전과 묵전을 한꺼번에 테이블에 놓아 평가했다.
이민진 원장은 “어르신들 솜씨가 갈수록 늘어나네요. 정말 훌륭히 잘 하셨어요. 그동안 수고많으셨습니다”하며 칭찬과 함께 박수를 쳤다. 마지막 요리시간에 대한 인사였다.
어르신들은 “오늘이 ‘요리날다’프로그램 마지막 시간인데, 너무 아쉽다”며 “다음에 또 프로그램을 했으면 좋겠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독거노인, 요리를 통해 자신감 얻다
부인과 사별 후, 20년 동안 혼자 지낸 곽노린(79) 어르신은 지난해 10월 서호노인복지관에서 하는 ‘요리 날다’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다.
곽 씨는 요리를 하기 전, 그동안 혼자 아무렇게나 해먹거나, 어쩔 땐 귀찮아서 끼니를 거를 때도 많았다. 하지만 ‘요리 날다’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부터 직접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고.
곽노린 씨는 “요리를 배우고, 배운 데로 집에서 해먹어보니 재미가 있었다. 또 스스로 해먹으면서 건강도 되찾게 되고, 즐거운 활력소를 얻게 됐다”고 소감을 말했다. 곽노린 어르신은 제일 자신 있는 요리가 된장찌개, 김치찌개 등 찌개 종류라고 자랑했다.
그는 그동안 꾸준히 서호노인복지관에서 하는 노인일자리 사업에도 참여했었다. 2014년까지 스쿨지원(인근지역 아동 범죄예방 위한 보초서기 등)에 근무한 경험도 있다. 곽 씨는 “앞으로 노인을 위한 일자리 사업 및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는 다양하고도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꾸준히 진행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말했다.
곽 씨와 마찬가지로 15년 이상 혼자 지낸 남신웅(71) 어르신도 요리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새로운 활력소를 얻었다. 남신웅 씨는 “평소에는 라면을 끓여먹거나 요리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간단하면서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요리를 배워보니 이렇게 좋은 걸 왜 그동안 몰랐나 싶을 정도로 정말 좋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특히 소스와 같은 양념 맛을 배운 게 재미있었다”라며 “우리와 같은 혼자 사는 남성노인들에게는 아주 용이하고,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프로그램에 참여한 성근영(가명) 어르신도 “평소 집에서 잘하지 않던 요리를 배움으로써 흥미가 생겼으며 이런 기회를 누릴 수 있게 된 것이 행운이고, 프로그램이 정말 즐거웠다”라고 말했다.
이민진 은진요리학원 원장은 “1~2년 전부터 복지관으로부터 프로그램에 도움을 달라는 요청을 받아 복지관과 함께 연계해 지난해 10월부터 오늘까지 9회차 요리프로그램을 진행했다”라며 “매주 수요일 오후 1시30분부터 2시간 동안 진행해 왔는데, 점점 어르신들의 요리 실력이 향상되고, 속도가 붙는 모습을 보고 매우 뿌듯한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민진 원장은 “되도록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을 위한 간단한 조리법의 메뉴를 선정해 영양을 고려한 요리법을 가르쳐 드렸다”고 소개했다.

고령화 남성 독거노인 ‘요리날다’ 프로그램
서호노인복지관의 ‘요리날다’는 KRA(한국마사회) 수원지사의 지원을 받아 남성 독거노인의 가사생활 자립을 위한 요리체험을 실시했다.
‘요리날다’ 프로그램은 2014년 10월부터 매주 수요일마다 남성 독거노인 1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으며, 일상에서 필요한 조리법을 배우고 직접 만든 밑반찬을 제공해 결식과 영양결핍을 예방하고 나아가 가사생활자립을 유도하고자 마련됐다.
김경사 사회복지사는 “이처럼 한국마사회 수원지사의 지원으로 시행하게 된 ‘요리날다’ 프로그램은 남성 독거노인들의 의식주 중에 ‘식’을 즐겁게 해주었으며, 어르신들의 만족도를 높이는데 큰 기여를 했으며 남성 독거노인들의 가사생활자립에 보탬이 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정영주 한국마사회 수원지사장은 “고령화 사회에서 노인자살과 고독사 등 많은 노인의 사회적 문제 개선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앞으로도 소외된 계층을 위한 사회공헌활동에 지속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라고 했다.

독거노인의 영양불균형 심각 고려
빠른 속도로 인구의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불편한 몸을 이끌고 혼자 사는 이른바 ‘저소득 독거노인’의 건강문제는 심각한 상황이다. 최근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국내 독거노인 가구 수는 2005년에 비해 2010년 31.4%가 증가하여 100만 가구가 넘었으며 이 중 남성 독거노인은 약 20%를 차지하고 있다. 남성 독거노인은 여성노인이나 노부부 가족에 비해 건강한 식생활을 유지하기가 힘들고, 2011년 식약청 연구조사에 따르면 실제로 여성노인에 비해 남성노인의 식품 위생 지식수준이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우리나라 노인(만 65세 이상)은 단백질, 인, 나트륨, 철을 제외한 모든 영양소의 섭취 수준은 낮은 반면 나트륨 섭취는 매우 많은 것으로 나타나 노화와 면연력 저하로 인해 식중독에 취약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변영재 서울여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영양교육과 요리교육을 통해 식품과 영양에 대해 바로 이해하고 요리를 직접 해먹으며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고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지지하는 프로그램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서호노인복지관은 지역 내 대단위 주거단지 조성과 아파트의 다수 건축으로 인해 농촌지역이 점차 도시화 되고 있다. 도농복합지의 만 65세 이상의 어르신 9만 244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특히 서수원 지역이 속한 권선구가 수원시 4개구 중 낙후성과 신흥개발에 따른 사각지역으로 분류됐다.  이밖에 영통구, 팔달구, 장안구 위주의 서비스 편중으로 복지서비스 부족과 불균형에 따른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판단돼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문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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