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구 서울시사회복지사협회 회장은 20년 넘게 사회복지계에서 일했다. 오랫동안 한 계통에서 일한 만큼 업무에 있어서 느슨해질 때도 됐지만, 그는 여전히 청년 같은 열의에 차있다. 사회복지현장 곳곳을 찾아가 복지 종사자, 서비스이용자의 이야기를 듣느라 바쁘고, 이를 바탕으로 좀 더 나은 복지서비스 구축 방안을 설계하느라 여념이 없다. 복지에 관한 진지한 고민 덕에 그는 의미 있는 깨달음을 하나 얻었다. 바로 ‘사회복지사들의 근로조건이 개선돼야 질 높은 복지서비스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행복한 마음은 알게 모르게 주변으로 퍼져 나가는 법, 행복한 사회복지사가 많아지면 행복한 클라이언트 또한 많아질 것이라고 그는 확신한다. 

사회복지사로서 탄탄한 기반 다지게 해준 첫 직장
장재구 회장은 중앙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다. 인간다운 삶에 대해 고민하는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면서 그는 자연스레 학생운동에 빠져들었다.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했던 것이다. 적성에 맞는 전공을 선택했다고 여겼지만, 막상 대학을 졸업할 때는 사회복지를 계속해야 할지 갈등했다. 그러니까, 현실적인 문제가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그때는 사회복지사 임금이 워낙 적었던 탓에 경제적으로 스스로를 책임지며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이었다. 그러나 고민의 고민을 거듭한 결과 가장 잘할 수 있고,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사회복지현장에서 역동적으로 사람들을 도우며 살고 싶었다. 그리하여 1993년, 노원구 상계동 북부종합사회복지관에서 재가복지서비스를 담당하면서 그는 사회복지사의 길에 접어들었다.
첫 직장인 북부종합사회복지관에서 그는 인생의 멘토, 김종길 관장님을 만나 많은 것을 배웠다. 당시만 해도 사회복지사가 활동하기에 여러모로 열악한 근무환경이었지만, 관장님이 옆에서 응원해주고 비전을 제시해줘서 어려움을 꿋꿋이 헤쳐갈 수 있었다.
관장님 나름의 업무방식도 그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매일 새벽 6시에 출근해 오후 4시에 퇴근하는 관장님은 웬만해선 야근을 하지 않았다. 직원들은 근무시간 동안 집중해서 업무에 임하는 관장님을 존경했다.
“일할 때는 열정적으로, 반면 쉴 때는 여유를 즐기는 관장님의 모습이 직원들에게 귀감이 됐어요. 누구도 야근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눈치 보지 않았죠. 그리고 이는 직원들의 업무 효율성과 직업 만족도를 높이는 결과를 낳았어요. 둘러보면 여전히 야근 때문에 고생하는 사회복지사들이 많아요. 이를 감안하면 당시 관장님의 업무방식은 상당히 혁신적이었어요.”    
현장에서의 기술과 지침을 알려주고, 나아가 사회복지사로서의 자부심을 일깨워준 첫 직장은 그에게 행운이나 다름없었다. 첫 직장은 그에게 20년이 넘는 세월을 사회복지사로서 살아가게 지지해준 발판이었다.

어르신들의 가슴을 울린 ‘영정사진 프로그램’
유락종합사회복지관, 송파구자원봉사센터, 한국사회복지사협회, 가양5종합사회복지관, 등촌4종합사회복지관, 기쁜우리복지관 등에서 그는 사회복지사로 활동했다. 다양한 사회복지기관에서 활동했던 만큼 수많은 프로그램을 기획, 실천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은 94~95년도에 북부종합사회복지관에서 어르신들의 영정사진을 찍어드렸던 것이었다. 재가복지서비스를 담당했던 그는 홀로 사시는 어르신들이 영정사진을 찍을 형편이 못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돌아가시면 대부분 주민등록사진을 확대해서 영정으로 썼다. 그 모습이 못내 안타까웠던 그는 해결책을 찾아 적극 발 벗고 나섰다. 우선 장례의식과 절차를 상담해주는 ‘명복의 전화’에 연락해 후원을 요청했고, 사진봉사자를 섭외해 본격적으로 어르신들의 영정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미용봉사자의 손에서 예쁘게 단장된 어르신들이 환하게 웃던 모습을 그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사실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만 해도 영정사진 찍어드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말하는 분들이 있었어요. 하지만 어르신들에게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하나의 위안이었죠. 영정사진을 찍어드리는 프로그램이 좋은 호응을 얻은 뒤에는 명복의 전화에서 전국 동사무소에 전화해 프로그램의 의미와 실천방법에 대해 널리 알렸어요. 그래서 이후 많은 사회복지기관에서 영정사진을 찍어드리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실천했던 것으로 알아요.”
어르신들의 영정을 찍어드리면서 그는 비로소 깨달았다. 프로그램의 아이디어는 클라이언트와 함께 생활하는 가운데 얻어지는 것임을. 그래서 사회복지사는 작은 것도 가벼이 여기지 말고 눈여겨 살피고 연구해야 한다.

사회복지사들의 권리 옹호 위해 투쟁한 시간
‘손해 보는 듯 살자’는 평소 그의 신념이다. 그는 자본?정보?아이디어 등을 독점하려기보다 나누고 교류할 때 나중에 더 큰 이익이 돌아온다고 믿는다. 그가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그동안 수많은 프로그램을 실천할 수 있었던 것은 곁에 나눌 줄 아는 후원자와 자원봉사자, 협력업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손해 보는 듯 살자’는 말이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환경을 인정하고 참아내자’는 뜻은 아니다.
그는 2000년 사회복지노동자들과 함께 ‘사회복지노동조합준비위원회’를 조직해 위원장으로 일했고, 2002년에는 사회복지노동자 임금 인상 및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사이버시위를 50일간 진행했다. 이처럼 2000년대 초반 그가 사회복지노조건설을 주도했던 이유는 사회복지사 스스로가 누려야 할 권리를 찾아야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가 사회복지사로 근무한지 6~7년 쯤 지났을 때, 함께 일했던 동료 70~80퍼센트가 다른 직업으로 이직해 있었다. 이에 그는 생각이 많아졌다. 오랜 경력을 가진 사회복지사가 많아야 복지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노하우와 전문성이 축적될 수 있었다. 높은 이직률은 사회복지계의 힘을 약화시킬 따름이었다. 사회복지사들이 이직하는 데에는 근로조건의 열악함 탓이 컸다. 적은 보수에 과도한 업무가 사회복지사들을 쉽게 지치게 만들었다.
“사회복지사들 사이에서 나도는 우스갯소리가 있었어요. ‘남성 사회복지사들에게는 세 번의 고비가 찾아온다. 첫 번째 고비는 첫 월급 탔을 때, 두 번째 고비는 결혼할 때, 마지막 고비는 첫 아이 낳을 때이다’ 아무래도 남성 사회복지사의 경우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이다 보니 적은 월급이 고민일 수밖에 없죠.”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회복지사들에게 무조건적인 이타심과 희생을 강조하는 분위기이다. 그래서 사회복지사가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면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기 일쑤다. 그가 그동안 다양한 사회행동을 펼친 데에는 이 같은 인식을 개선하고 사회복지사들이 겪는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그는 ‘권리 위에 잠자는 자, 보호받지 못한다’는 말에 깊이 공감한다. 권리는 누군가 챙겨주기 전에 스스로 찾아야 할 의무가 있다.        

행복한 사회복지사들이 전하는 질 높은 복지서비스
다행히 그가 펼쳤던 사회행동은 좋은 결과를 낳았다. 2002년 경향신문 메인뉴스로 ‘사회복지노동자 임금인상 및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사이버시위’가 다뤄지면서 정치?사회?학계가 사회복지노동자가 지닌 문제에 대해 진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수면 아래 잠자고 있던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와 본격적으로 논의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때 대통령 선거가 있어서 ‘사회복지사 근로조건 개선’을 많은 정치인들이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처럼 그가 사회복지사들의 근로조건과 처우 개선에 신경 쓰는 이유는 현장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들의 환경이 좋아져야 클라이언트들도 좋은 품질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사회복지사는 좋은 직업’이라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퍼져야 뛰어난 인재가 많이 모일 수 있다.
무엇보다 사회복지는 휴먼서비스이다. 때문에 서비스를 공급하는 사람, 즉 사회복지사들이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마음이 불편하고 생활이 힘든 사회복지사가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는 어렵다. 사회복지사들에게 평균 수준의 임금과 근로조건을 제공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가 11대, 12대 서울시사회복지사협회 회장을 연임하면서 가장 신경 썼던 부분 역시 사회복지사들의 근로조건과 처우 개선이었다. 물론 사회복지사들의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협회가 가야할 길은 아직 멀다. 그는 우선 여성 사회복지사들이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육아휴직을 쓰는 일이 눈치 보여 직장을 그만두는 여성들이 많다는 사실은 복지계에 몸담은 종사자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안겨준다. 육아휴직을 쓰는 일이 자연스럽도록 사회복지기관에서부터 분위기를 조성하고 싶다. 또 몇 년 안에 민간기관, 공공기관의 사회복지사 급여체계가 똑같도록 근로조건을 개선하려 한다. 그는 사회복지사 모두가 국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만큼, 그러니까 같은 일을 하는 만큼 임금 또한 동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거창한 목표를 잡기보다 항상 서울사회복지사협회의 본질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협회의 본질은 사회복지사들의 권리 옹호와 사회복지의 발전이겠죠. 그래서 조금 힘들더라도, 꾸준히 사회복지사들의 권리 옹호를 위해 힘쓸 거예요. 다방면에서 좋은 성과를 얻은 뒤, 그 성과가 전국으로 널리 퍼져나갔으면 좋겠네요.”

                                                                           글/사진 석수영 기자

문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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