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울었지. 밤 새워 울었지’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밤 새워 울었지”
지난 6월 25일 가수 장사익의 ‘찔레꽃’이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을 가득 채웠다. 6월 19일 서울의 한 고시원에서 죽음을 맞이한 故김운하 씨의 노제현장. 고인이 생전 좋아했다는 ‘찔레꽃’은 살아있는 자들의 가슴을 찢어지게 만들었다.
故김운하 씨는 사망한지 4~5일이 지나서야 발견됐다. 경찰은 고인의 연고자를 수소문 했지만 찾지 못했다. 고인은 무연고로 화장 처리됐다.

생활고로 인한 예술인들의 죽음은 비단 故김운하 씨 뿐만 아니다. 영화배우 판영진 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예비 시나리오 작가 故최고은 씨는 “창피하지만 며칠째 아무 것도 못 먹어서 남은 밥과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드려 주세요”라는 메모를 남긴 채 세상을 등졌다. 이 외에도 인디뮤지션 이진원, 배우 정아율과 김수진, 우봉식, 가수 김지훈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들이 가난을 이기지 못하고 죽어가거나,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특히 2011년 故최고은 씨가 32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을 땐 대한민국 전역이 충격에 휩싸였다. ‘예술가는 가난하다’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설마 하던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며 슬퍼했다. 그리고 2012년 11월 ‘예술인복지법’이 시행됐다.

예술인 월평균 수입, 100만 원 이하 ‘67%’
2012년 문화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예술인의 월평균 수입은 100만원 이하가 67%, 50만원 이하가 51%다. 한 달 최저임금도 받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이렇다 보니 많은 예술인들이 고시원에 살며 어렵게 생계를 유지해 나가고 있다.
소설가를 꿈꾸고 있다는 예비 소설작가 이장미 씨(33세, 가명). 그녀의 한 달 수익은 100만원 남짓, 그마저도 예술 활동으로 벌어들이는 비용이 아닌 최소한의 생계를 위해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로 번 금액이다. 장미 씨는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돈을 벌고 있다. 하지만 글을 쓰며 일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아 더 늦기 전에 예술 활동을 포기해야 하는지 고민 중이다”라며 “예술을 한다는 것이, 글을 쓰며 살고 싶다는 것이 죄도 아닌데 언제까지 이렇게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지…. 이제는 너무 지치고 힘이 든다”고 말했다.

화가를 꿈꾸고 있는 강진주 씨(30세, 가명) 역시 장미 씨와 다르지 않았다. 자신이 생각하는 최소한의 한 달 생계비인 60만원이 그녀의 한 달 수익이다. 현재 살고 있는 고시원비가 수익의 절반을 차지한다. 작업은 주로 선배의 작업실을 이용한다. 지금까지는 임대료를 내지 않고 있지만, 선배가 작업실을 지방으로 옮길 예정이라 이제는 그마저도 힘든 상황이다.
진주 씨는 “그림을 그리면서 다른 일을 해 돈을 버는 것은 쉽지 않다. 면목이 없어 가족들과도 연락이 끊어진지 일이년이 지났다”고 했다. 또 “지금까지는 작업실 한 켠을 얻어서 사용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어디서 작업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작품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지만 그로인한 수입은 생계를 유지하기에 터무니없이 적다”고 말했다.
연극배우를 지망하고 있는 지망생 한진건 씨(25세, 가명)는 “학교에 다닐 때는 어른이 되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내 생각과는 달리 많은 선배님들이 최저 생계비도 받지 못하며 일을 하고 있다. 세 달에 150만원을 벌었다는 분도 있었다. 그런 이야기가 자꾸 들릴 때마다 한시라도 빨리 다른 길을 택해야 하는지 고민스럽다”고 말했다. 

예술로 돈 벌어 봤으면….
수입은 예술 장르별로 편차가 크다. 문화예술인 실태조사 결과 문학인의 92%가 수입이 100만원 이하로 나타났다. 또 서울문화재단 서울연극센터가 발표한 ‘2013 대학로 연극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2년 대학로의 연극시장 규모와 현황을 파악한 결과 대학로 대표 연극인은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한 30대 미혼 남자 배우’로 월평균 114만원의 수입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 중 연극과 관련된 수입은 77만원에 불과했다.
국가에서는 생활고를 겪는 예술인들을 위해 예술인 복지재단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예산도 2013년 60억 원, 2014년 81억원에 이어 올해 110억원으로 매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존재한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유명무실 예술인 복지법
故김운하 씨의 죽음이 더욱 안타까운 이유는 예술인 복지법 적용 대상자였기 때문이다. 예술인 복지법 적용 대상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예술 활동을 증빙해 예술인으로 인정을 받아야 한다. 연극배우를 예로 설명하자면 만 3년간 프로무대·프로작업을 3편 이상 해야한다. 사망 전 ‘인간동물원초’에서 주연을 맡아 활동했던 故김운하 씨의 경우 예술 활동 증빙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홍보부족 등의 이유로 제대로 된 복지 혜택을 누리지 못했고, 얼마 안 되는 극단 월급과 막노동으로 생활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대부분의 예술인들은 이 조차 쉽지 않다. 예술인 복지법에 적용되기 위해서 증명해야하는 예술인 활동증명은 현실적으로 작품 활동을 못하는 예술인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예술인 복지가 선별적 복지의 성격을 띄고 있는 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예술인들은 한정돼있다. 이로 인해 복지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것이다.

예술인 일자리 만들기 프로젝트
지난 4월 13일 ‘2015예술인일자리박람회’가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개최됐다. 한국 예술인복지재단이 ‘예술인 일자리 만들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한 이번 프로젝트는 자신의 예술 활동과 무관한 부업(편의점, 호프집, 전단지 배포 등의 아르바이트)으로 생계를 이어 나가는 예술인들에게 자신의 예술활동과 병행 할 수 있는 부업을 연계해 주기 위해 실시됐다.
이 사업에 참여한 예술인은 일주일에 2~3일 자신의 예술 활동과 관계가 있는 부업을 하며 소득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은 자신의 예술 활동을 계속하면 된다.
이날 현장에는 약 5000여 명의 예술인들이 현장을 찾았다. 사람들의 관심을 높였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여러 곳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예술인들이 많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모습이 서글펐다.
 
해외 다양한 국가의 예술인 복지정책 참고해야
해외의 경우에는 어떨까? 예술인 복지정책을 이야기 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나라가 프랑스다. 프랑스는 비자발적 실업 상태에 놓인 비정규직 예술인과 예술관련 기술직 종사자를 위한 실업 보험 제도인 ‘앵테르미탕’을 운영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에는 1981년 예술인 사회보험법을 제정하고 1983년 예술인 사회금고를 만들어 공적 재원을 바탕으로 한 예술인 사회보험제도를 운영한다. 이렇듯 여러 나라에서 실시하고 있는 다양한 예술인 복지정책을 참고해 우리나라의 정서에 맞게 수정·추가해 나가야 한다.
고개만 살짝 돌려도 예술가를 꿈꾸는 많은 젊은이들을 만날 수 있다. 예술고등학교, 예술대학교 등의 배움터에서 학생들은 찬란한 내일을 보며 열심히 공부해 나간다. 그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는 이들에게 누가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는 예술인 복지의 불모지였다. 그리고 이제 막 그들을 위한 복지 첫발을 내딛었다. 이제 제대로 된 법안 마련을 통해 그들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적어도 가난으로 굶어 죽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

글/ 박미리 기자
자료/ 한국예술인복지재단, 2012 문화예술인 실태조사, 서울문화재단 연극센터 외

차은희 기자  cidmsl@bokj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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