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나 어디든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우리가 낸 세금으로 국가는 도로를 정비하고, 대중교통을 만들며, 교통법규를 정해 보다 편리한 이동을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하지만 이 ‘당연한’ 일이 장애인들에게는 ‘당연하지 않은’일이라는 불편한 사실을 아는가? 장애인의 자유로운 이동권에 대해 다시 한 번 고심해봐야 할 때다.

장애인, 대중교통 타고 시외활동 ‘불가능’
2014년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의 45.3%가 집밖활동에 불편을 느끼고 있으며, 집 밖 활동 시 불편을 느끼는 원인으로 ‘편의시설 부족’이 47.0%로 가장 높았다. 교통수단 이용 시 어려움의 주된 이유는 ‘버스·택시의 불편’이 61.0%로 장애인의 외출 시 주요 이동수단인 대중교통의 이용에 많은 제약이 있음을 알 수 있다.
2014년 12월 기준 전국의 시내저상버스 비율은 서울 33.1%, 대전 19%, 대구 16.9%, 광주 13.5%인 반면, 2014년 10월 기준 전국의 고속버스(1905대)와 시외버스(7669대) 중 저상버스 비율은 0%다.
교통약자를 위한 이동편의증진법이 제정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장애인의 시외 및 고속버스에 대한 접근성은 여전히 배제되고 있다. 장애인 등 교통약자의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2005년에 제정된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제3조에 따르면 “교통약자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하여 교통약자가 아닌 사람들이 이용하는 모든 교통수단, 여객시설 및 도로를 차별 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하여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법 제정 10년이 지난 지금, 전국에서 운행 중인 총 9574대의 시외 및 고속버스 가운데 리프트버스는 단 한 대도 없다.
특히 모든 교통수단을 교통약자가 차별 없이 이용할 수 있어야 하지만 시내버스를 제외한 고속버스, 시외버스, 마을버스 등에 대한 교통약자의 접근권은 장애계의 지속적인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단 1%도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해외, “장애인 이동권, 국가가 보장해야”
장애인의 시외이동권 보장은 우리나라만 이렇게 어려운 걸까? 외국의 경우 일정 비율 이상 휠체어 탑승버스를 도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여러 선진국의 경우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를 비롯한 교통약자가 접근할 수 있는 저상버스 보급은 단순히 개별 대중교통 운수업체의 책무라기보다는 국가의 기본적인 의무로 간주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1990년에 제정된 미국장애인법(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 ADA)를 통해 장애인의 이동권 확보를 위한 저상버스의 보급을 의무화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저상버스 보급률은 2005년에 52%에서 2012년에 88%로 증가했으며 정부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저상버스를 보급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장애인 이동권 보장과 관련해 국가나 지자체의 역할이 현저하게 미흡하다. 특히 최근 장애인 이동권과 관련된 법원의 판결을 살펴보면 버스회사 2곳에 휠체어 승강설비 등 승·하차 편의를 제공하라고 판시했지만 국토교통부와 지자체의 책임에 대해서는 기각했다. 이러한 법원의 판결은 장애인 이동권 보장과 개선에 대해 국가와 지자체의 기본적인 책무를 간과했다는 점에서 매우 아쉬운 판결이다.
미국의 ADA에 의하면 연방·주정부를 포함해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는 단체나 기관은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하며 특히 버스, 기차 등과 같은 대중교통을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불편 없이 이용하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법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미국은 장애인의 이동법과 관계된 여러 판례가 존재한다. 2004년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 거주하는 5명의 장애인들은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이 버스를 탑승하기 어려워 대중교통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어 디트로이트시를 상대로 미국장애인법 위반으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미시간 지방법원은 “디트로이트시는 ▲휠체어 장애인이 탑승 불가능한 버스 제거 ▲새로운 저상 버스 보급 ▲버스 운전사와 관리자를 대상으로 교육 실시 ▲장애인 고객의 불편과 차별을 담당하는 인력을 배치하라”고 선고했다.
미국에서는 장애인의 이동권과 관련해 접근이 어려운 대중교통을 명백한 장애인차별로 간주하고 있으며 이는 이동권의 보장을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사회참여·통합을 달성하는데 중요한 요소로 여기고 있다는 증거다.
한편 2013년 호주 연방법원은 “휠체어를 탄 장애인을 위해 시드니~캔버라 구간에 휠체어 탑승버스를 55% 비율로 도입하라”고 판결했다.
정부나 시의 책임을 명확하게 강조한 외국의 판결은 장애인 인식을 개선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대중교통의 접근성 확보와 관련해 정부의 역할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장애 문제는 단순히 개별 단체나 기관의 문제라기보다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해결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이 필요하며 장애 이동권을 보장하도록 국가나 정부의 적극적인 책임을 강조해야 할 것이다.

국가 책임 외면…장애계 “야만적인 현실”
장애인의 시외이동이 불가능한 현실을 알리고자 지난 2014년 3월 4일 장애인을 비롯한 교통약자 5명이 국토교통부장관을 비롯해 서울시, 서울시장, 경기도, 경기도지사, 고속버스 운수업자, 시외버스 운수업자 총 7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원고 측은 ▲국토교통부는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계획에 저상버스 등의 도입사항을 포함하라 ▲서울시와 서울시장, 경기도와 경기도지사는 지방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계획에 저상버스 등 도입계획을 반영하라 ▲고속·시외버스 사업자는 승·하차 편의제공을 위한 저상버스 등 도입하라 ▲모든 피고는 교통약자에게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상의 법률위반에 대한 손해 배상하라고 청구했다.
이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재판에서 피고 측은 ▲광역 간·시외 이동을 위한 저상버스의 표준화된 안전기준과 규격 등이 없다 ▲저상버스 등의 도입은 국가 및 지자체에 과도한 부담을 준다는 답변을 내놨다.
이에 법원은 피고에게 ▲제3차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 및 지방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에 저상버스 등의 도입에 관한 내용을 포함하라 ▲고속·시외버스 사업자는 장기적으로 저상버스 등의 비율을 늘려가도록 노력하라 ▲교통약자의 승하차에 편의를 제공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라는 내용의 화해권고결정을 내렸지만 양 측 이의를 제기해 파행된 바 있다.
한편 7월 10일 장애인 이동권에 대해 1심 최종 판결이 나왔다. 이날 재판부는 “버스회사 2곳은 휠체어 승강설비 등 승·하차 편의를 제공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지만 국토부와 지자체에 요구한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을 수립할 때 교통약자의 편의를 보장하라는 것에 대해서는 “저상버스 도입이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법상 의무가 아니다”라는 이유로 기각했다.
해당 판결에 장애계는 즉각 반발했다. 판결 직후 기자회견을 가졌던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는 “국가와 지자체가 교통약자에 대한 이동권의 책임을 회피했다”며 크게 분노했다. 박 대표는 “장애인 이동권 보장은 국가와 지자체가 책임지고 함께 풀어가야 할 문제다. 그런데 왜 이들이 책임문제에서 빠지고 민간사업자에게만 책임을 묻는가?”라며 책임을 민간업자에게 떠넘기는 국가의 태도를 꼬집었다. 또한 “교통약자법에 의해 법을 수호해야 할 법원이 이를 수호하지 않는 게 교통약자 이동권의 현실”이라며 “이러한 현실이 부끄럽고 야만적이다”라며 강하게 질타했다.
이동권 보장은 모든 국민이 누려야 할 권리다. ‘소수’이기 때문에 배제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 소수여도 우리나라의 국민이기 때문이다. 모든 국민이 당연한 권리를 누릴 그 날을 기대해본다.

글/ 차은희 기자
자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추진연대, 무장애연대 외

차은희 기자  cidmsl@bokj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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