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경이 아름다운 도시 서울, 밤이 없는 나라 대한민국. 하지만 그 이면에는 밤 낮 구분 없이 일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하루를 마무리 하는 사람들 사이 잠과의 사투를 벌이며 생계 전선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오늘도 대한민국의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노동하는 사람들의 하루는 고되고, 고단하다.

밤이 아름다운(?) 나라 한국
외국인들이 한국을 찾았을 때 감탄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밤이 없는 문화’다. 예쁜 조명과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야경이 아름다운 것은 물론, 새벽에도 야식을 배달하고, 여러 상점가에서는 늦은 시간까지 물건을 판매한다.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다.
최근 미국 온라인매체 버즈피드가 한국이 세계 최고인 이유를 나름대로 풀어내 전 세계인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밤새 영업하는 주점, PC방, 시장 등이 그 이유다. 지난 7월 18일 버즈피드가 공개한 ‘한국을 방문해야만 하는 이유’라는 영상에서는 “부산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백화점이 있고, 인천국제공항 주변에는 골프장, 박물관, 아이스링크까지 있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것은 한국의 ‘밤이 없는 문화’ 였다. 버즈피드는 “서울이 있는데 누가 뉴욕을 잠들지 않는 도시라 하는가”라고 말하며 밤에 즐겁게 놀 수 있는 클럽, 새벽에도 문을 열어 언제든 쇼핑이 가능한 동대문시장 등을 꼽았다.
또 재미있는 사실은 “대부분의 식당이 공원, 바다 가리지 않고 추가비용 없이 음식을 배달해 준다”며 “종업원에게 팁을 줄 필요가 없다. 그 돈은 음식을 사 먹는데 쓰라”고 설명하고 있다.
세계인들은 이 영상을 보며 놀라워했지만, 정작 한국에 사는 한국인들은 조금 다른 감정을 느낀다. 오늘도 노동자들은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하고, 또 이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각종 상점, 술집들이 문을 열고 영업을 한다. 그렇게 늦은 밤, 새벽까지 많은 사람들이 잠들지 못한다. 또 배달원들에게 팁을 주지 않는 문화는 현재 우리나라의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임금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인으로서는 이 영상이 씁쓸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밤이 아름다운 한국, 그 이면에는 심야의 시간까지 쉴 새 없이 일하며 바쁘게 지내는 노동자들의 땀과 애환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밤낮 없는 노동시간
물론 야간에도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 응급 환자를 치료하거나, 뜻밖의 화재에 대처하는 등 불가피하게 일을 해야 하는 경우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경우 어떠한가? 야간 노동을 불가피한 일 때문이라기보다 오직 기업의 이익을 위해 늦은 시간까지 일하는 경우가 많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야근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마트, 음식점, 술집 등도 늦은 시간까지 문을 열고 영업을 한다. 악순환이 또 악순환을 만드는 셈 인 것이다.
이것은 여러 조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10년 고용형태별근로실태조사에 따르면 야간작업 근로자가 약 127만 명으로 전체의 11.2%로 나타났고, 2008년 노동패널조사에서는 약 134만 명으로 전체의 10.2%를 차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영업자를 포함해 전국의 취업자를 대표하는 표본조사인 취업자근로환경조사의 경우 야간노동(22시부터 다음날 5시까지 최소 2시간 이상 일하는 경우)의 비율이 2006년 20.4%, 2010년 13.4%, 2011년 13.2%의 비율을 보였다.
현재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다는 박현주 씨(31, 가명)는 한국의 밤이 없는 문화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보냈다. 현주 씨는 “노동자들에게 끊임없이 일을 하라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예쁘게 포장돼 ‘밤이 없는 문화’를 양산했다. 개인은 존재하지 않은 채 직원들을 오직 일을 하기위한 부속품으로만 생각한다. 이런 문화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은 한국의 밤 문화가 그저 부럽고 좋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 이면에는 많은 노동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잦은 야간 근무 탓에 건강에 이상을 느껴 현재는 일을 쉬고 있다는 강민경 씨(29, 가명)는 “이전에는 늦은 시간까지 열심히 일을 하는 것이 스스로 책임감 있고, 능력 있게 느껴져 즐겁고 좋았는데, 막상 건강에 이상이 생긴 내 모습을 보니 오히려 일에만 몰두했던 자신이 초라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또 “회사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쳤지만 건강을 잃고 나니 다시 일을 시작하는 것이 두렵다. 지금은 내 자신이 껍데기만 남은 기분”이라며 울분을 토했다.
야간근무는 비단 젊은이들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다. 중소기업의 임원이라는 박상태 씨(50, 가명)는 젊은 시절부터 야근을 해야 했기 때문에 육아는 모두 아내에게 맡겼다. 지금은 아이들도 성장해 성인이 됐지만, 아이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지 않다 보니 지금은 서로 어색한 사이가 됐다. “아내와 아이들의 사이를 보면 나만 홀로 왕따가 된 기분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몇 십 년을 거의 매일 야근을 하다 보니 집에 오면 피곤해 쓰러져 잠들기 바빴고, 주말도 마찬가지였다. 생각해보니 아이들과 제대로 된 가족여행을 가본적도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임원이 된 지금까지도 회사 사정이 좋지 않아 야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칫하면 건강 해칠 수도
인간의 몸에는 생체리듬 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생물이 생득적으로 가지고 있는 자율적인 생물활동의 주기적 변동. 즉, 일정한 주기를 가진 변화로써 생체 내에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이를 통해 체온이나 호르몬의 농도 등이 조절된다. 그리고 이는 주로 햇빛에 의해 자극을 받게 된다. 아무리 인간이 적응의 동물이라지만 잦은 야간노동과 불규칙한 근무는 우리 몸의 생체시계에 교란을 만든다. 이로 인해 수면장애, 우울, 불안, 소화기문제 등 다양한 건강상의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며 심할 경우 혈압과 심장박동과 같은 심혈관계의 조율기능에 영향을 미치고 스트레스를 높여 뇌심혈관 질환 위험을 높일 수도 있다.
잦은 교대 근무로 인해 수면장애를 겪고 있다는 이상중 씨(42, 가명)는 업무의 특성상 주·야를 반복적으로 교대하며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주간에 생활하며 생체리듬을 정상적으로 맞춰 놓으면 이내 야간 근무가 시작돼 또다시 몸을 야간에 맞춰 적응 시켜야 한다.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불면증에 좋다는 차(茶)도 꾸준히 마셔보고 집에 암막커튼을 설치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쉽게 잠들지 못했다. 최근에는 너무 고통이 심해 병원까지 찾아 수면장애 치료를 받고 있다. 상중 씨는 “한 집안의 가장이다 보니 생계를 위해 일을 쉽게 그만둘 수도 없는 상황”이라 말했다. 상중 씨 외에도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잠들어 있는 심야에도 열심히 일을 하며 땀 흘리고 있다. 이것이 밤이 아름다운 대한민국을 막연히 아름답다 표현할 수 없는 이유다.

좋은 노동시간
국제노동기구(ILO)에서는 1999년 ‘좋은 노동(Decent work)’이라는 개념을 발표했다. 그리고 2004년 ‘좋은 노동시간(Decent working time)’에 대해 ‘노동시간의 배치는 건강해야하고, 가족과 친화적이어야 하며, 성별평등을 증진시켜야 하고, 기업의 생산성을 높여야 하고, 노동자가 스스로의 노동시간에 대해 선택하고 영향력을 가져야 한다’고 정의했다. 이 같은 상황을 우리 노동시장의 현실에 비교하며 현재 대한민국 노동자들의 현 주소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영화 ‘모던 타임즈’라는 작품을 보면 주인공인 공장 노동자 찰리가 컨베이어 벨트에서 부품의 나사를 조이는 일을 반복한다. 그리고 그는 끊임없는 반복된 업무로 인해 일을 하지 않을 때도 모든 사물을 조이고자 하는 강박이 생긴다. 이 때문에 지나가던 사람의 단추를 조이는 등의 이상증세를 보인다. 이 작품은 과거 미국의 산업화 시대를 배경으로 자본주의 현실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모던 타임즈’는 시대적 배경이 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기계의 부품처럼 취급되는 노동자들의 삶과 잘 맞아 떨어지고 있어 2015년의 현재에도 씁쓸함을 느끼게 한다.
물론 야간 노동자들을 위한 대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야간 근무를 최대한 줄이면 된다. 혹 어쩔 수 없는 경우에 처해 있다면 그 노동 시간을 줄이면 된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분위기는 그렇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원활한 사회를 위해서는 노동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누구나 알고 있듯 노동을 하는 이들은 모두 ‘사람’이다. 노동자이기 전에 사람이어야 한다. 오늘 하루도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일터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일을 하고 있다. 이들이 단순히 기업에 이익을 창출하는 기계의 부속품으로 다뤄져서는 안 된다. 어쩌면 당신이 겪고 있을, 그리고 당신의 가족이 겪을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글/ 박미리 기자
자료/ 고용형태별근로실태조사, 노동패널조사, 취업자근로환경조사, 국제노동기구(ILO), 서울경찰뉴스 외

차은희 기자  cidmsl@bokjinews.com

<저작권자 © 복지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