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민을 경악에 빠트렸던 영화 ‘도가니’를 기억하는가? 보호와 배려가 필요한 장애인을 위해 만들어진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일어난 극악무도한 범죄를 영화화했던 ‘도가니’. 상영 이후 ‘도가니법’이 만들어지는 등 장애인거주시설에 대한 정부의 엄격한 관리·감시가 있었지만 정작 장애인들에게 도가니는 아직 상영 중인 이야기다.

학대 확인했다vs학대 아니다…진실게임 이어져
최근 서울시는 인강재단 산하 장애인거주시설 송전원에서 직원들이 지속적으로 장애인들을 학대했다는 내용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인강재단 산하 인강원은 인권침해에 대한 의혹이 발생해 인권위의 특별조사 결과 “인권침해가 확인된다”는 결과를 받은 적이 있다. 동성 간 지속적인 성추행, 남성 장애인이 여성 장애인에게 성관계 시도, 거주 장애인을 식당청소·밭일 등에 임의로 동원, 직원의 지속적인 폭력 등의 내용이 거주 장애인의 일관성 있는 진술로 나타나 영화 ‘도가니’를 떠올리게 했다.
조사 결과 인권위는 시설장에게 ▲거주인 간 성추행 행위에 대해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장애인을 체벌한 해당 교사 징계 ▲성추행 피해자와 가해자에 대한 전문적 치유 프로그램 수립·시행 ▲개인위생에 관한 기본 용품인 생리대 충분히 공급 등을 권고했다. 또한 도봉구청장에게는 ▲장애인 보호 의무 소홀과 관련된 행정처분을 포함한 적극적 시정 조치 시행 ▲특별지도점검 실시 후 후속 대책 수립 등을 주문했으며, 서울시장에게는 ▲구청의 장애인 거주시설 지도점검 방식에 대한 특별감사 실시 ▲관련 공무원에 대한 인권교육 시행 ▲자립을 원하는 거주인의 경우 자유의사에 따라 탈시설 추진 등을 권고했다.
이에 인강재단 측은 “교사와 거주인 간 소리를 지르고 몸을 부딪힌 적은 있지만 폭행이나 체벌은 아니었고, 고구마와 감자를 심어 캐먹은 적은 있지만 노동을 강요할 만큼의 넓은 텃밭도 아니었다”면서 “대부분이 내용이 왜곡됐거나 사실과는 다르다”고 반박했다.
이러한 가운데 서울시가 지난 6월 특별 지도점검을 벌인 결과 이번엔 같은 산하의 송전원에서 인권침해 사례가 추가 확인돼 경찰에 고발조치했다고 8월 6일 밝힌 것이다.
송전원 종사자 A 씨는 상습적으로 시설 내 곳곳에서 거주인들을 폭행하고, 벌을 주거나, 밥을 주지 않고, 욕설을 하는 등 학대했으며, 정규 프로그램에서조차 배제시켰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거나 훈계한다는 이유에서다.
또한 거주인들이 싸웠다는 이유로 이들의 머리채를 잡거나 뺨과 머리를 수차례 폭행했으며, 이런 행위는 수시로 반복됐다. 이뿐만 아니라 거주인들에게 심한 욕설을 상습적으로 해왔었고, 같은 종사자들에게조차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여기가 월급이나 받아 처먹는 곳이냐”, “(거주인의 대소변 처리 업무를 비하하며) 평생 똥이나 치우세요”라며 막말을 해왔던 것으로 조사됐다.
또 다른 종사자 B 씨는 여성 거주인을 수시로 자신의 다리 위에 앉혀 성기를 거주인의 몸에 접촉케 하고 몸을 만지거나, 귀를 잡아당기는 등 성추행했으며, 거주인의 목을 잡아 아래로 짓누르는 등 장애인을 학대한 정황이 드러났다.
특히 연인관계였던 거주인들이 성관계를 가진 후 장애여성이 2달 간 생리를 하지 않자 의사 처방이나 당사자 동의 없이 강제로 사후피임약을 먹게 한 것으로 조사됐고, 이러한 사실을 확인한 시는 즉시 경찰에 고발 조치했다고 설명했다. 시는 서울지방경찰청과 공조해 압수수색을 실시했고, 지난해에 이어 송전원에서도 이러한 장애인 인권침해 사례가 추가로 발생함에 따라 인강재단 법인 설립허가 취소 등 강력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송전원 측은 이와 같은 내용에 강력히 부인하며 “사실 확인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혀 서울시와의 치열한 진실공방전을 예고했다.

도가니법 생겼지만 성범죄 증가 ‘아이러니’
시설의 인권침해 중 가장 심각한 것은 바로 성범죄다.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하거나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장애인들은 끔찍한 일을 겪고서도 그것을 알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지난 2011년 영화 ‘도가니’로 2005년의 광주 인화학교 사건이 드러나자 국회는 그해 10월 일명 ‘도가니법’(성폭력범죄의 처벌 특례법 개정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개정안에 따르면 장애인과 13세 미만의 아동을 성폭행 했을 경우, 가해자가 받게 될 최저 형량은 각 7년과 10년으로 늘어났고, 최대 무기징역까지 가능해졌다. 또한 사건인지가 어려운 장애인 성범죄의 경우 공소시효가 폐지됐으며, 장애인 보호·교육 시설 관계자의 성범죄는 법정형의 1/2까지 형을 더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법이 시행된 지 4년째, 장애인 성범죄는 오히려 늘어났다.
이상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법무부로부터 9월 2일 제출받은 ‘최근 5년 간 장애인 대상 성폭력 사범 현황’에 따르면 2010년 350명에서 2014년 1236명으로 약 3.5배 증가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수치로는 2011년 408건, 2012년 727건, 2013년 997건, 2014년 1236건으로 매년 꾸준히 증가했다. 도가니법의 실효성에 의문을 갖게 되는 수치다.
범죄는 늘어났지만 이에 대한 검찰의 기소율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장애인 대상 성폭력 사범에 대한 검찰의 기소율은 2010년 41.5%에서 2014년 37.1%로 감소했다.

 끊이지 않는 시설 학대…대안책 찾아야
장애인거주시설의 폭행·성추행은 소수 시설의 문제가 아니다.
인권위는 지난 6월 충북 제천의 한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이사장의 거주인에 대한 폭행·욕설 ▲거주인의 급여·장애수당 임의 사용 ▲거주인에게 노동 강요 ▲법인·시설 회계 위계·부당사용 등이 확인돼 특별지도를 지시했다.
또한 시설 교사가 거주인을 폭행한 혐의를 받은 인천 해바라기 장애인거주시설은 사실이 확인돼 폐쇄될 예정이라고 9월 3일 인천 옹진군청이 밝혔다.
지난 2011년 보건복지부는 장애인복지법 개정을 통해 장애인 복지 정책 방향을 탈시설·자립생활 지원으로 전환한다고 밝혔으나, 2015년 현재 달라진 것은 거의 없다. 개정 이전의 거주시설은 여전히 운영되고 있어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장애계는 “우리나라 장애인 거주시설은 모두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며, 재단의 전제와 사유화를 부채질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장애인을 보호해야하는 장애인거주시설이 대(代)를 잇는 족벌 경영, 보조금 편취를 위한 열악한 시설환경 방치 내지는 묵인, 학대와 감금, 폭행, 성폭행 등 온갖 비리와 부패의 온상이 되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정부의 책임 있는 관리·감독이 우선시돼야한다”고 입을 모았다. 문제가 된 시설들은 대부분 해당지역 공무원의 허술한 관리 하에 인권침해가 발생했다. 업무가 밀려서, 시간이 없어서 감독과 조사가 미뤄지는 동안 장애인들은 말 한마디 못하고 죽어갔다. 한 장애인시설장은 “장애인의 자립 위해 체벌은 필요하다”는 망언을 했던 적이 있다. 시설장은 물론이고 시설 교사·직원의 인권의식에 대한 교육이 필요한 시점이다.
더 이상 장애인들이 보호시설 속에서 억울하게 죽어가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정부의 엄격한 관리·처벌의지와 더불어 사건이 수면 아래로 숨어들지 않도록 국민들의 끊임없는 관심이 필요하다.
영화 ‘도가니’는 끝나지 않았다. 모든 장애인이 안전하고, 편안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이 눈과 귀를 모아야 할 것이다.

글/ 차은희 기자

차은희 기자  cidmsl@bokj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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