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를 탄 사람이 춤을 출 수 있을까? 간단히 손과 상체를 흔드는 것이라면 몰라도 전문 무용을 할 수 있을까? 많은 사람이 의아해 할 것이다. 춤이란 몸의 전체적인 움직임을 이용해 아름다움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국내 최고의 휠체어무용수 김용우 씨.
더위가 한 풀 꺾인 어느 초가을 날, 공연 준비에 한창인 그를 만나 보았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사고, 절망 그리고 받아들이기
사고는 한 순간이었다. 눈을 떠보니 두 다리에 감겨있는 붕대 그리고 움직이지 않는 다리. 다 큰 성인이 되어 찾아온 사고. 그 한 순간의 사고가 용우 씨의 두 다리를 앗아갔다.
1997년, 세계 시장의 큰 무대에서 놀아보라는 아버지의 권유로 떠난 캐나다 유학. 부푼 꿈을 안고 떠난 그 곳이 절망의 공간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사고를 당하고 병원에서 눈을 떴는데, 장애라는 생각을 못했어요. 그냥 ‘아, 내가 다쳤구나. 빨리 나아야지’ 이런 생각뿐이었죠. 내가 장애인이 될 거라는 생각을 전혀 못하고 있었으니까요.”
선천적으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경우 편의시설의 부족으로 인해 불편할 수는 있어도 신체적으로 낯선 불편함은 적다. 하지만 사고로 인해 후천적 장애를 가지게 된다면 익숙했던 많은 행동들이 어려워져 겪게 되는 불편함이 상당하다. 일어서기만 하면 잡을 수 있는 냉장고 문, 열 발자국만 걸으면 갈 수 있는 화장실. 예전엔 쉽게 할 수 있었던 많은 것들을 할 수 없게 되자 용우 씨는 혼란스러웠다. 처음에는 부정했고, 다음에는 극복하고자 노력했다. ‘노력하면 다시 걸을 수 있을 것’이라는 강한 믿음으로 안 해본 것이 없었다. 재활치료는 물론이고, 민간요법까지. 몸에 100개가 넘는 침을 꽂은 적도 있고, 부황이 온 몸을 덮은 적도 있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 시간이 3년이다.
“내가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아는데 마음에서 받아들이기까지 3년 걸렸어요. ‘나을 수 있다’라는 생각에 갇혀 3년을 보낸 거죠. 그러던 어느 날, ‘세상에 있는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는 법인데 내가 이런 모습인 것도 이유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이유가 있는 내 삶을 헛되이 보내는 시간을 그만 두자’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요. 그렇게 내 장애를 받아들였어요.”
사고 전부터 동양철학에 관심 있던 용우 씨는 존재의 이유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됐다. ‘비록 하반신이 움직이지 않지만 나는 지금 이 곳에서 살아가고 있고, 내가 살아가는 것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이다’라는 강한 믿음에 용우 씨는 다시금 삶의 의지를 불태웠다.

인생 제2막, 휠체어댄스스포츠를 만나다
장애를 받아들였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캐나다에 있을 동안에는 ‘장애인’이라는 것이 그리 특별할 것 없는, 단지 생활이 조금 불편한 사람이었지만 한국에서는 달랐다.
“캐나다에서는 내가 장애인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지 않았어요.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었기도 한데 무엇보다 사람들의 시선이 다르게 느껴지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공항에서부터 내가 장애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니는 것도 불편했고, 사람들의 ‘다른’ 시선이 느껴졌거든요.”
길가의 작은 턱 하나도 혼자 넘을 수 없어 도움을 받아야 하는 휠체어 장애인. 사람들의 시선처럼 면접을 봤던 회사의 시선도 그를 평범하게 보지 않았다. 많은 것을 배우고, 많은 일을 해보기를 수차례. 무엇이든 해보고자하는 삶의 의지가 강력했던 그는 어느 날 지인을 통해 ‘휠체어 댄스스포츠’에 대해 접하게 된다. 당시 우리나라는 휠체어댄스스포츠 도입국이 아니었다. 이제 막 들여오려고 하는 그 때, 용우 씨가 있었다. “외국의 휠체어 댄스스포츠 영상을 보고 충격 받았어요. 나처럼 다리를 못 쓰고, 휠체어를 타는 사람이 반짝이는 옷을 입고, 저렇게 빠른 음악에, 저렇게 신나게 춤을 춘다는 사실이 충격적이고 신기했어요. 바로 ‘나도 할 수 있다!’라고 생각했죠.”
처음 시작하는 휠체어 댄스스포츠. 국내에는 할 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용우 씨는 대학생 댄스스포츠 선수를 만나서 외국 영상을 보며 함께 연구하고 호흡을 맞추며 연습했다.
그리고 대망의 2005년, 홍콩에서 열린 아시아대회에서 ‘아시아 챔피언’에 오른다. 꿈같은 시간이었다. 자신의 삶 속에서 ‘무엇인가 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 이후로 4년 동안 용우 씨는 아시아챔피언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세계 대회에서는 4위까지 올라갔다.
“처음 시작하고 너무 좋았어요. 정말 너무너무 좋았어요. 안무 하나하나를 만드는데 너무 신났고. 제가 첫 시작이라 제가 외국 영상을 보고 익혀서 다른 사람들한테 알려줬어야 했는데, 그러다보니 더 열심히 하게 됐고, 열심히 하다 보니 아시아 정상의 자리에 올라가더라고요.”
인프라가 구축된 상태가 아니었기에 자신이 할 수 있는 몇 개를 집중적으로 파고든 용우 씨는 빠른 선택과 뛰어난 집중으로 단기간에 정상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러던 2009년 돌연 은퇴선언을 했다. 승승장구하던 휠체어 댄스스포츠계에서 내려오게 된 이유는 바로 ‘새로운 것’을 만났기 때문이다.

 

꿈꾸세요! 도전하세요! 시작하세요!
경기가 없는 시즌에 용우 씨는 무용단과 공연을 다녔었다. 그러던 중 몇 번 외국의 비장애인 무용단과 협력공연을 하고, 영국의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있는 무용단을 만난 뒤 휠체어무용에 욕심이 생겼다. 용우 씨는 하나에 집중하기 위해 은퇴를 선언했다. ‘도전’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2007년 영국의 현대무용팀이랑 같이 공연을 했는데, 그 팀에는 휠체어 무용수도 있었어요. 댄스스포츠 말고 현대무용을 휠체어 타고도 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우리나라에도 이런 무용단이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죠.”
무용단 설립을 위한 노력이 시작됐다. 많은 사람을 만났고, 몇 번의 실패를 겪은 뒤, 2008년 지금의 ‘빛소리 무용단’을 만들 수 있었다. 그저 장애인의 취미생활이 아니라 순수예술을 하는 정식 무용단. 누군가는 장애인이 무슨 예술이냐고 손가락질 했지만 그들은 현재까지 뛰어난 예술성을 기반으로 해외에서의 러브콜이 줄을 잇고 있다. 일본은 이미 여러 차례 방문했고, 매년 핀란드에서 초청을 받아 공연하고 있다. “거의 모든 무용이 가능해요. 발레, 현대무용, 한국무용. 해본적은 없지만 아마 힙합 같은 대중무용도 될걸요? 처음에는 저도 ‘안 될 것 같다’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하니까 되더라고요. 무슨 일이든지 그런 것 같아요.”
용우 씨는 원래 도전하는 것을 좋아했다. 새롭게 도전하고, 경험해야만 얻는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사고 이후, 그 생각은 더욱 커졌다. 힘든 시기를 이겨낸 지금, 그가 받아들이지 못하고, 시작하지 못할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후천적 장애인들은 이미 ‘장애’라는 큰 산을 넘었는데 뭐가 더 무섭겠어요. 나는 이미 내 삶이 너무나 소중하다는 것을 알고, 후회 없이 삶을 발전시켜야 하니까 내 앞에 다가오는 새로운 것들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거죠. 그래서 내 삶이 정체되지 않고, 내 가능성을 넓혀서 결국 내 삶을 발전시킬 수 있죠.”

김용우 씨와 아내 이소민 씨.

이런 도전적이고 활발한 성격으로 그는 무용단 활동을 하면서 지금의 아내인 이소민 씨를 만나 결혼하게 됐다. 비장애인 무용수로 처음 빛소리 무용단에 들어온 소민 씨는 너무나 열정적인 용우 씨를 보며 ‘장애인’이라고 느낀 적이 없었다. 그리고 용우 씨는 소민 씨의 하얗고 맑은 얼굴, 생글생글 웃는 모습, 마르고 긴 팔다리 그 무엇 하나 마음에 들어오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야말로 천생연분이다. 그들은 현재 빛소리 무용단에서 활동을 하며 많은 공연을 함께하고 있다.
“장애가 있으면 물론 힘들고 불편하죠. 못하는 것도 분명 있고요. 하지만 시작하지 않으면 할 수 있는지 없는지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일단 시작해봐야죠. 꿈을 꾸고, 도전하고, 시작해야 나 자신의 한계를 알 수 있어요.”
이제 7년차인 ‘빛소리 무용단’. 30년 넘은 외국의 무용단에 비하면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용우 씨는 큰 꿈이 있다. “장애인들이 무용을 할 때 취미가 아니라 예술로도 할 수 있다는 걸 알리고 싶어요. 그리고 개인적인 목표로는 제 창작공연을 열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 지금도 열심히 노력중입니다.”
노력을 두려워하지 않고, 삶을 발전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국내 최고 휠체어 무용수 김용우 씨. 힘이 넘치는 그의 춤처럼 그의 인생도 힘 있게 뻗어나가길 기대해본다. 

글/ 차은희 기자
사진/ 김용우, 빛소리무용단

차은희 기자  cidmsl@bokj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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