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높다. 바람이 살랑인다. 절대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무더위가 가고 향긋한 가을 냄새가 코끝을 스치던 9월의 어느 날, 서울의 한 대학교 캠퍼스에서 가을하늘처럼 맑은 청년들과 만났다. 때로는 진지한 모습으로 때로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으로 인터뷰에 임한 이들은 열정으로 똘똘 뭉친 아름다운 청년들이었다.

과거 자선바자회때의 모습.

챈스가 태어난지 벌써 ‘31년’
벌써 31년째다. 1985년에 처음 시작됐으니 현재 활동하는 30기, 31기 학생들이 태어나기 한참 전의 일이다. 그때부터 시작됐다. 서강대학교 교육봉사동아리 챈스(C.H.A.N.C.E, 이하 챈스).
챈스는 Concern and Help for the Advancement of Needy Children through Education의 약자로 30여 년 전 어려운 환경에 처해 제대로 된 교육의 기회에서 벗어나 있는 청소년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미국 아이비리그 교육봉사단체를 본떠 만들었다. 당시 이들은 장애인들에게 국어와 산수(수학)등을 가르쳤고, 불우 청소년들에게도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어려운 환경에 놓인 학생들을 위한 장학 기금을 만들기 위해 김국진, 이경규 등의 개그맨들과 김현철, 김광석, 박상민, 이소라, Re.f 등 여러 가수들이 함께 무료봉사를 하며 공연을 진행하기도 했다. 나눔을 몸소 실천할 수 있는 따뜻한 일 이어서인지 많은 연예인들이 적은 출연료로도 흔쾌히 함께 했다.
이때 모아진 기금은 현재까지도 남아있다. 학생들이 관리하기에는 다소 큰 금액이기 때문에 학교에서 관리하는 중이다. 그리고 챈스에서 1년에 한명씩 장학생을 선발해 이 기금으로 장학금을 지원한다.
워낙 대규모로 진행된 사업이다 보니 당시 언론에서도 이들에 대해 주목했다. 오래전, 챈스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다.

학생과의 만남 1:2
챈스는 현재 마포구 인근에 거주하는 저소득층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일주일에 두 번씩 튜터링 활동(고등학생과 챈스 선생님이 1:1로 만나서 한 학기 동안 활동을 지속하는 시스템)을 진행한다. 영어와 수학, 두 과목을 가르치기 때문에 학생 한명을 선생님 두 명이 담당한다. 매주 월요일, 목요일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 약 10여명의 학생들과의 수업이 진행된다.
특이한 것은 청소년들이 직접 챈스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 서강대학교를 찾아온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직접 방문해 진행하기도 했지만, 현재는 방식이 조금 바뀌어 학생들을 대학 강의실에서 만난다. 어쩌면 학생들에게 간접적으로 대학생활을 체험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셈이다. 초·중·고등학생들은 대학을 가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를 하지만, 실질적으로 청소년기 때의 대학교는 ‘일부러 시간을 내서 마음을 먹고 와야 하는 곳’이기 때문에 이런 방법들이 학생들의 학습 욕구를 높일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지도 모른다.
학생들은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다양한 연령으로 구성돼 있다. 때문에 챈스 회원들의 선호도, 경험 등 다양한 의견을 받아 학생과 선생님을 매칭 시켜 준다. 가르치는 과목 역시 마찬가지다. 선생님이 영어와 수학 중 더 잘 가르칠 수 있는 과목을 선택해 신청하면 그에 따라 자신이 담당하는 과목도 정해진다.
챈스의 홍보와 수익사업을 맡고 있는 현지석 씨는 “고등학생을 가르칠 때는 학문의 난이도가 높은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자료조사나 수업에 신경을 써야 하지만, 나이차이가 많이 나지 않아 진로에 대한 조언이나 대화를 나눌 때는 공감대가 더 잘 형성돼 좋다”며 “학생들을 만날 때는 누구를 만나든 그 자체가 즐겁다”고 말했다. 지석 씨 뿐 만이 아니었다. 챈스 회장을 맡고 있는 노유민 씨 역시 동아리 운영이 쉽지 않을 텐데도 학생들과 만남을 이야기 할 때는 연신 싱글벙글 이었다. 작은 표정에서 청년들의 진심이 느껴지는 따뜻한 순간이었다.

“선생님-학생 그 이상!”
유민 씨는 지난해 만났던 한 학생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작년에 튜터링 활동을 할 때 만났던 친구가 중학생이었는데 그 학생은 또래의 아이들보다 신체적인 성장이 조금 늦은 학생이었어요. 처음 만났는데 중학생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왜소하더라고요. (학생)어머니랑 통화를 하면서 알게 됐는데 많이 아파서 학교를 자주 결석하다 보니까 학습 의욕이 충분한데도 불구하고 지식이 중간 중간 빠져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것을 보충 하려고 온 친구였는데, 정말 열심히 하더라고요. 성격도 너무 밝고 좋아서 ‘선생님’보다 ‘언니’라고 부르면서 스스럼없이 다가오고요. 그 아이를 보면서 저도 제 나름대로 굉장히 뿌듯했고,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내가 무엇인가를 해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기분이 좋더라고요.”
지석 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앞서 소개했듯 고등학생과 함께 공부했던 지석 씨는 미술을 공부하는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과 함께 수업을 진행했다. 그런데 미술이라는 학문의 특성상 비용 때문에 고민하던 학생을 보며 자신이 고등학생 시절 그 학생과 똑같은 상황에 처한 누나가 떠올랐다고 했다. “제가 그때 알던 누나도 거의 비슷한 상황이었거든요. 비용이 많이 드는데 학원을 안다닐 수도 없고, 그렇다고 형편이 그리 좋은 상황도 아니었고요.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그리고 이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면서 제가 진심으로 해 줄 수 있는 이야기들이 떠오르더라고요. 그게 저는 가장 기억에 남아요” 지석 씨는 챈스에서 계속해서 공부하고 싶어 하는 그 아이에게 더 멀리, 넓게 볼 수 있는 길에 대해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강제성 없는 자유로운 활동
주요 활동은 학생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교육봉사이지만 이 외에도 다양한 봉사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대표적으로 한 달에 한 번 ‘프렌드쉽 활동’을 통해 아이들과 교감하는 시간을 갖고, 공강시간에는 조를 편성해 성인 지적 장애인 시설인 ‘바오로 교실’을 방문해 일손을 돕거나 말벗을 해 준다. 또 현재 KT&G 복지재단 협력동아리로 활동하고 있어 KT&G와 함께하는 벽화 그리기·나무심기 등 재단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특히 프렌드쉽 활동은 튜터링을 함께 한 학생들 중 가능한 학생들을 신청 받아 한강공원에서 연날리기, 아쿠아리움 방문 등 다양한 현장의 경험과 체험을 통해 문화적 평등을 지향하는 프로그램이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재주가 없어 튜터링 활동에는 참여하지 않는다는 부회장 박준범 씨도 프렌드쉽 활동은 꼭 참여하려고 노력한다. 준범 씨는 “저희동아리는 강제로 ‘튜터링 활동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어요. 그래서 그 외의 활동을 더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그리고 튜터링 활동을 하지 않아도 프렌드쉽 활동을 통해 아이들과 즐겁게 놀면서 친해질 수 있어요”라며 “누가 시켜서 하는 활동이 아니라 제 마음이 움직여서 하는 활동이니까 그만큼 의미가 있죠. 또 활동할 때 두 배, 세배로 재미있게 활동 할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어쩌면 ‘강제성이 없다’는 것이 챈스가 타 봉사 동아리들과는 다른 가장 큰 차별성 인지도 모르겠다.

청춘이니까 가능한 것들
교육봉사를 할 때 필요한 교재는 학생과 선생님이 상의해 신청하면 KT&G 복지재단으로부터 지원 받기 때문에 교재를 구매하기 위한 비용은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외에 다른 활동을 할 때는 진행비가 필요하기 때문에 여러 수익사업을 통해 진행비를 해결하려고 애쓰고 있다. 각종 공모전에 참석하거나, 축제 때 바자회를 진행하는 등의 방법이다. 특히 올해 학교 축제 때 꽃 도매시장에서 꽃을 직접 구매해 말리고 포장하는 수작업을 거쳐 드라이플라워를 만들어 판매하기도 했다. 마침 스승의 날을 앞두고 있던 참이라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때 직접 드라이플라워를 만드느라 저희 동아리방이 꽃으로 가득 찼었어요. 알레르기 있는 친구들은 들어오지도 못할 정도였거든요. 그런데 반응이 정말 좋았어요. 뿌듯했죠. 재미있었어요” 재미만을 위해 모인 사람들이 아니다. 튜터링 부(메인 튜터링 담당), 펀드 부(수익·홍보사업 담당), 프렌드쉽 부(문화체험 담당), 어카운팅 부(회계 담당) 등 4개의 부서로 이뤄져 어떤 단체보다 탄탄한 뿌리를 자랑하는 챈스는 그간의 전통 만큼이나 단단하고 가족 같은 분위기를 자랑했다.
31년간 350여명이 거쳐 간 챈스.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될 챈스의 이야기는 또 다른 기회를 만들고 있는 중이다. 

글/ 박미리 기자
사진/ 챈스(C.H.A.N.C.E)

차은희 기자  cidmsl@bokj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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