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은 돈이 많거나 가진 것이 많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밀알천사 남기철 대표의 말이다. 자폐성 장애인들과 매주 토요일 산행을 한다는 남기철 대표. 그는 벌써 20년째 자신이 할 수 있는 나눔을 계속하고 있다. 천사들의 행복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고민한다는 남 대표. 그의 곧은 신념과 따뜻한 마음은 주변 사람들까지 훈훈하게 만들었다.

20년 전, 밀알천사가 시작되다

1995년부터 지금까지 남기철 대표는 자폐성발달장애를 가진 아들과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아들의 상태가 조금이라도 좋아졌으면 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산행은 이제 아들과 비슷한 친구들이 하나, 둘씩 모여 함께하고 있다. 벌써 20년 전의 이야기다.

지금은 34살의 청년이 됐지만 처음 아들의 자폐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들의 상태를 받아들였지만 당시만 해도 하늘이 노랗고 눈앞이 깜깜할 수밖에 없었다. 좌절은 아버지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몇 년의 시간이 흘러 아들이 14살이 된 무렵 처음 아들의 고사리 손을 잡고 산에 올랐다.

처음에는 물론 쉽지 않았다. 산을 오른다는 것이 힘들고 어렵기 때문에 싫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아들에게 일주일에 한 번의 산행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상이 됐고, 즐겁게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아들의 상태가 좋아지는 모습을 보며 아내가 “산에 오를 때 범선(아들)이와 비슷한 아이들도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고, 아내의 의견을 받아들여 다른 친구들도 함께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사단법인 밀알천사가 시작됐다.

그래도 사랑한다

산행은 아들의 상태를 호전시키기 위한 이유도 있지만, 아이가 태어난 이후 평생 자신의 시간 없이 아들에게만 매달려 지내온 아내를 위한 이유도 컸다. “아내를 위해 산행을 시작하게 된 이유도 있죠. 자폐성발달장애인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은 정말 자기 시간이 없어요.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24시간 대기해야 하죠. 그런데 제가 아들과 둘이서만 시간을 보내면 그 시간에는 아내가 조금 쉴 수 있잖아요. 그 시간을 주고 싶었어요.”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더 부모의 손길이 필요했던 범선 씨는 아버지와 함께 한 산행에서 행복한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산에 오르기 시작하면서 아이가 많이 좋아졌죠. 처음 진단 받았을 때 치료법이 없다고 해서 여러 가지 교육을 했었어요. 그중 가장 좋았던 것이 산행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신체적으로 건강해 진 것은 물론이고 인내심도 생기고 많이 좋아졌어요” 범선 씨 뿐만 아니다. 남 대표 부자와 함께 산에 오르기 시작한 자폐성발달장애아이들 역시 매주 산에 오르면서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물론 부모와 떨어져서 아이만 산에 보낸다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터. 고민 끝에 굳은 결심으로 아이를 산에 보낸 부모들은 놀라운 아이들의 변화해 행복해 했다.

30년 가량 자폐성장애아들을 양육했던 경험. 그리고 그런 아들과 20년 넘게 함께 했던 산행으로 다른 아이들의 부모님들은 큰 걱정 없이 아이를 맡겼다. 남 대표는 “제가 무슨 큰 노하우가 있는 건 아니에요. 단지 저는 먼저 아이들을 키워본 경험이 있잖아요. 그 경험에 많이 의존을 하죠. 그리고 다른 곳에 보내는 것 보다 여기는 또래 아이들이 있고, 산행을 할 때도 돕는 봉사자들 역시 봉사를 1, 2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10년 이상 된 분들이 많이 계시고요. 그런 것을 보시고 믿고 맡기시는 거죠.”

매주 토요일 기적의 발을 내딛다

밀알천사의 산행은 매주 토요일 오후 2시 청계산을 오르는 것으로 시작된다. 매주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아이들은 최소 20명 이상 참여한다. 아이들 한명 당 봉사자 한명이 짝꿍으로 함께하니 산에 오르는 아이들이 20명이면 총 40명이 함께 산에 오르는 셈이다.

또 산에 오르는 다른 등산객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어 비교적 사람이 적은 등산로를 이용한다. “다른 등산객들이 이용하는 등산로와 그렇게 크게 차이나는 곳은 아니지만, 아이들에게 좋은 경로를 찾았어요. 그곳이 다른 곳 보다 사람이 적어 부딪히는 것을 줄일 수 있고, 계단이나 돌이 많지 않은 곳이예요. 조금 돌아가더라도 안전하고 아이들이 불편하지 않은 곳으로 가야죠” 맨 처음 등산을 시작할 때는 아이들의 돌발행동 등으로 다른 등산객들이 불편해 하는 경우도 있었다. “처음에는 돌발행동 같은 것이 있긴 했었죠. 그런데 지금은 최소 20명 이상 같이 가고, 또 우리 아이들도 이런 곳에서 뛰거나 사라지거나 하면 안 된다는 것은 알고 있어서 지금은 그런것에 대한 걱정은 크게 없어요.”

앞서 언급했듯 봉사자들 역시 10년 이상 된 사람들이 많다. 장기적으로 봉사하는 사람들은 밀알천사와 함께하는 시간을 ‘착한중독’이라고 표현한다. “한번 오면 중독이 된다는 것”이 이들의 말이다. 그 직업군도 다양하다. 자영업, 판사, 검사, 주부, 변호사, 에어로빅 강사 등 다양한 사회 구성원이 봉사자의 일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아무래도 밀알천사와 함께하는 시간이 기니까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게 돼요. 10년 20년이면 강산이 한 번, 두 번 바뀔 시기잖아요. 키도 작고 꼬마였던 아이들이 어느새 훌쩍 자라 성인이 돼 있는 것을 보면 가슴 뭉클하죠.”

자폐성장애인들이 만드는 따뜻한 빵 ‘래그랜느’

남 대표는 산행으로 아이들이 인내심, 지구력, 집중력을 얻은 아이들에게 제과·제빵 직업교육훈련을 통해 사회적 기업 ‘래그랜느’에서 빵을 만들고 일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들이 직접 빵을 만들기 때문에 포장 등의 마지막 단계에서 부수적인 일을 하는 여타의 장애인 작업장과는 조금 다르다. “지금도 옆에서 빵을 만들고 있어요. 가르쳐 주시고, 보조해 주시는 비장애인 분들이 옆에 계시고요. 직접 빵을 만드는 거죠. 위험할 수 있으니 오븐에 넣고, 빼는 것과 반죽만 옆에서 도와줘요” 실제로 깔끔하게 정리된 제빵실에서는 위생복을 입은 이들이 빵을 빚고 있었다. 오븐이나 불을 쓰는 위험한 것들은 비장애인들이 옆에서 지켜보며 자칫 일어날 수 있는 사고에 철저하게 대비하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맛있는 빵은 바로 옆 베이커리 카페에서 판매된다. 고소하고 맛있는 냄새가 이곳을 가득 채웠다.

남 대표가 만든 사회적 기업 래그랜느는 빵을 만드는 것 외에도 직업재활교육, 발달장애인들에 대한 인식 교육, 장애인 가족을 위한 콘서트 등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발달장애인들이 사회의 편견에서 벗어나 세상의 품에서 사람들과 발맞춰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나눔, 누구나 할 수 있어요!”

나 자신만 챙기기에도 힘든 각박한 세상이다. 하지만 남 대표는 자신을 위해서만이 아닌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있었다. “나눔은 내가 가진 것이 많아서 하는게 아니에요. 현재의 상태에서 나누는게 진정한 나눔이라고 생각 합니다. 산행 같은 경우는 자기 체력이잖아요. 시간과 체력을 나누는 거죠. 지금 제가 엄청난 부자이거나 하지는 않지만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는 거예요. 왜 그런 말이 있잖아요. ‘시냇물이 모여서 강이 되고, 강이 모여서 바다가 된다’ 이런 작은 나눔들이 모여서 커져야 더 큰 나눔이 되는 거예요.”

남 대표는 밀알천사의 활동이 세상을 완전히 뒤바꿔 놓지 못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작은 것이 모여서 큰 것을 만들 듯 이런 작은 활동을 통해 장애를 갖거나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믿는다.

“장애인은 ‘틀린’사람들이 아니에요. 조금 ‘다를’뿐이죠. 생각하는 방법이나, 행동하는 것이 조금 다를 뿐이지 틀리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우리의 더 많은 사랑과 관심이 아이들을 발전시키고, 좋아질 수 있게 만들 수 있어요.”

우리의 작은 관심이 자칫 세상과 벽을 쌓고 살아갈 수도 있는 아이들에게는 벽을 뚫고 나갈 수 있는 문이 될 수 있다. 아들 범선 씨와 만나면서 기적을 알게 됐다는 남기철 대표. 오늘도 그는 아들과 같은 자폐성발달장애인들과 발걸음을 맞추며 힘차게 걸어가고 있다.

사진/ 밀알천사

박미리 기자  shmr28@bokj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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