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날 것 같지 않던 긴 겨울이 마침내 지나고 따스한 봄날이 찾아왔다. 여기저기 화려한 봄꽃축제 역시 봄기운을 흠뻑 느끼게 해준다. 하지만 이런 들뜬 기분을 느낄 겨를도, 여유도 없이 아직도 매서운 찬 기운에 온몸을 떨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언제나 겨울'인 이들. 바로 장애아를 둔 죄로 목숨을 내놓고 단식투쟁에 나선 장애아동 부모들이다. 지난 3월 26일부터 국가인권위 인권상담센터를 점거하고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 이들의 요구는 한가지뿐이다. 바로 장애인 교육지원법을 제정하라는 것. 이들에게 있어 장애인교육지원법은 목숨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또는 장애인교육지원법 제정은 장애인교육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마지막 수단인 것이다.

화려한 봄꽃이 만연해 있는 요즘. 장애아부모들은 여전히 추운 겨울을 보내며 단식농성을 단행하고 있다.<사진 최경훈 기자>

장애인교육지원법이 뭐 길래

장애인교육지원법은 지난 3년여의 시간 동안 전국 각 지역의 장애아동 부모, 특수교사, 장애인당사자, 예비특수교사 등 장애인 교육 각 주체들과 함께 만들어진 법률이다.
낙후된 특수교육 환경을 대폭 개선하고 장애인교육의 전반적인 틀을 재규정하는 지원법은 유치원 및 고등학교 의무화, 특수학급설치 기준 강화 및 특수교사 확대 배치(현재 1인에서 2인), 통학 편의, 이동편의시설 지원 및 기숙사 설치 운영 등 관련 서비스 제공, 특수교육지원센터 설치 및 전담인력 확대 배치, 현장중심의 직업교육, 장애인 대학생의 학습권 보장을 위한 장애학생지원위원회 설치, 학칙에 장애학생 지원 근거와 차별 금지 명시 등 구체적 조항을 골자로 하고 있다.

특수교육진흥법이 제정된 지 30여 년이 지났지만 장애학생의 교육 현실은 여전히 참담한 실정이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해 시설과 가정에 살아가는 장애아동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학교 졸업 후 갈 곳이 없어 다시 가정과 시설로 되돌아가야만 하는 장애학생들이 수없이  많다.

또한 장애학생들은 치료교육을 받고 싶어도, 직업교육을 받고 싶어도, 원하는 보조원을 제공받고 싶어도 매번 학교장과 교육청으로부터 예산부족, 인력부족, 법적 근거 부족 등의 이유로 수차례 거절을 당해야만 하는 것이 그들의 현실인 것이다.

연대는 이런 특수진흥교육법을 폐지, 장애인교육지원법 제정을 위해 지난 3년여 동안 목숨을 담보로 거리로 나서고 있지만 정부와 국회는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전국장애인교육권연대 최준기 씨, 윤종술 공동대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도경만 특수교육위원장은 장애인교육지원법 제정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단행하고 있다.

윤종술 대표는 수척해진 모습으로 "조금 후에 한나라당 원내대표와 나경원 의원 등과의 면담에 참석하기 위해 국회로 방문할 예정이다"면서 "지난 2006년 발의된 법을 단 한 번도 논의하지 않은 채 사립학교법 재개정 문제 등으로 인해 국회 교육위원회가 제대로 가동되지 못하고 있었지만 이번에 사학법과 연계하지 않겠다고 했으니 한줄기 희망을 가져 보려 한다"고 전했다.

현재 당뇨병으로도 고생중인 윤 대표는 혈당을 유지하기 위해 포도주스와 사탕을 먹고 있었다. 당뇨병 또한 지난 2004년 단행했던 단식농성의 후유증으로 얻게 된 병이라 더욱 안타깝다.

윤 대표는 "이렇듯 반복되는 우리의 고통은 이사회, 교육부, 국회가 장애아동 부모들의 절박함을 모르고 있어 정확한 장애인교육의 문제점을 진단하지 못해 발생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단지 부모들의 요구를 하소연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것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과거에 비해 장애인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것 같다는 희망을 전하기도 했다.

한편 그는 단식 중 가장 어려운 점은 "부모들의 마음이 외면 당하는 것이라고 했다. 대부분의 장애아를 둔 부모들은 장애인교육지원법 제정을 절실히 필요로 하지만 막상 나서서 요구하기에는 힘겨워 한다. 많은 부모들이 동참해주면 더 큰 의지가 되겠지만 그렇지 못해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

윤 대표 역시 자폐증을 앓고 있는 초등학교 5학년 장애아이의 아버지다. 이번 집회에 참가하며 3주에 한번씩 집에 들르는 터라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이 눈에 밟힌다고 했다.
"일요일마다 아들과 목욕탕에 가는데 아들이 일요일만 되면 아빠를 찾는다. 솔직히 아들을 위해 이렇게 나선 자리지만 가장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어 너무 미안하고 안타깝다."

단식과 농성으로 지친몸을 버티면서도 그들은 장애인교육지원법 제정을 위한 활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 <사진 최경훈 기자>

"사회의 편견과 무관심이 지치게 할 뿐"

장애아 부모들은 자녀들이 특수학교나 일반학교의 특수학급, 통합학급에 진학하더라도 교육권 확보를 위한 싸움은 계속된다.
학교에서 돌아온 자녀를 다른 어머니들에게 맡기고 농성장을 지키고 있다는 뇌병변 2급 8살 장애아이를 둔 김남숙 어머니는 "이렇게 농성장에서 마음을 다해 함께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집안, 아이 교육, 치료, 남편에 대한 외조 등 특히 비장애인 형제에게 신경 쓰지 못해 너무 미안하다"고 말했다.

농성장을 찾지 않았다면 김씨의 일과는 이렇다. 휠체어를 타는 자녀를 위해 학교에 데려다주는 일로 하루 일과를 시작, 휠체어를 복도에 세워두고 아이를 교실로 이동시켜 자리에 앉혀주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다시 점심시간에 되기 전 학교로 돌아가 급식보조를 해주고 아이가 하교할 때 함께 치료실을 찾는다. 그러다 보면 이미 하루해는 저물어간다. 하루 하루가 자신을 돌볼 시간은커녕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르는 채 지나가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내 자식 일이기에, 내 목숨 같은 일이기에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의 희생으로 내 자식이 교육받을 수 있다면 이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 다만 사회의 편견과 무관심이 지치게 할 뿐이다. 아마도 장애아이를 둔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나와 같은 마음일 것이다"고 말했다.

부모들의 마음은 자신들의 힘든 몸보다 자신의 자녀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는 현 실정이 너무 안타깝기만 하다.
현재 초등학교 4∼50학급에서 특수학급은 1에서 많아야 2학급으로 보통 10명 정도가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수업에 참여하는 10명의 학생들 중에는 비장애아이들과 수업진도를 따라가기 어려워 따로 공부 해야하는 아이들, 정신지체, 자폐아 등 다양한 장애를 가진 학생들이 함께 생활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산만할 수밖에 없는 아이들에게 한 명의 교사로는 수업을 진행하기가 무척 어렵다.

김씨는 "이것은 단면적인 예 일뿐이다.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수업을 받으려면 어려움이 너무 많다. 가정의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농성장에 나와 단식투쟁까지 할 수밖에 없는 부모들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이렇게까지 외면할 수 없는 법이다. 장애인교육지원법 제정은 지금 당장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고 다음세대의 문제이기도 하다. 교육이 백년지대 계라고 하지 않았나. 장애아이들도 분명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고 호소했다.

다른 어머니들 역시 일반학급에 통합되어 교육적 지원이 없이 거의 방치되고 있는 장애아동들을 위해 적절한 교육적 지원 강화책이 시급히 마련 되야 할 것이라며 입을 모았다.

다음날 다시 찾은 농성장에는 장애인교육권연대 대표들과 부모들이 한자리에 모여 농성의 진행상황에 관한 회의를 열고 있었다. 회의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찬찬히 둘러보던 한쪽 벽에는 "단식하시는 분들께 힘이 되는 한마디"라는 문구의 종이가 붙어 있었다.

한바닥 적혀 있던 내용 중 "힘내세요. 우리 쓰러지지 말자구요. 학교 졸업하고 나면 갈 곳 없다는 사실이 절망스럽지만 이제 더 이상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법으로 우리 아이를 보호받을 수 있는 시간이 얼른 앞당겨줬으면 좋겠네요"라며 서로의 의지를 다지는 말들이 담겨있었다. 무엇이 부모들을 이렇게 독하게 만드는 것일까?

경남 사천에서 자신의 일까지 다 접어가며 단식농성에 참여한 최준기 씨는 회의 중간 살짝 자리를 비우고 나와 자신의 심정을 토로했다.
"아이들이 학교에 입학해 도우미도 없고 대신 의사를 전달해줄 사람도 없을 경우에 같은 또래 학생들에게 폭행을 당하기도 한다. 특히 정신지체나 발달장애 아이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렇지 않기 때문에 주변 학생들에게 폭행을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부모들이 얼마나 가슴이 메이겠냐.?" 최씨는 억울하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16일간 계속된 단식에 그의 모습은 초췌했지만 목소리에는 분명한 힘이 느껴졌다.
이런 그가 단식 농성을 벌이며 얻고자 하는 것을 무엇일까.

최씨는 "솔직히 왜 단식 농성까지 해야겠냐는 질문을 받지만 어느 누구도 미루기만 하고 해주지 않는 일들을 누가 해주겠냐. 아무도 제대로 나서주지 않으니 이렇게 부모들이 단식을 하고 인권위를 점거해가면서까지 강행하고 있는 것"이라며 "내가 하던 일을 접고 이렇게 이곳을 지키는 것은 오로지 자식을 위해서"라고 말했다.
"내 자식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아이들을 위한 일이기에 하루 빨리 법안이 통과되고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정해져 장애인 부모들에게 하나의 조그만 촛불이라도 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목숨을 바쳐서라도 이루고 싶은 심정이다."

단식농성에 참가하고 있는 장애아부모들을 위해 지지방문을 하는 사람들이 남긴 격려의 메시지.<사진/ 최경훈 기자>

"장애인 당당히 교육받고 싶다"

현재 장애인의 교육지원에 관한 법률안은 지난해 5월 8일 국회의원 229명의 공동발의로 국회에 발의하고 정부 역시 장애인교육지원법에 대응한 특수교육진흥법 전부 개정안을 2월 7일 제출한 상황이다. 하지만 지난 3월 29일 열린 교육위원회 상임위원회에서 특수교육진흥법 전부 개정안은 상정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부모들의 마음을 외면한 채 파행에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장애아 부모들은 말한다. 장애가 차별적인 요소가 아닌 존중되어야 할 개성으로 받아들여지는 교육 현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그들도 역시 자녀를 키우는 똑같은 부모들일 것이다. 더 좋은 교육 환경을 위해 이사를 하고 악착같이 번 돈으로 자식들 교육에 뒷바라지하고 밤을 새우는 자식과 함께 눈을 비비며 새벽밥을 지어 먹이는 부모의 마음처럼 똑같이 자식 잘되기만을 바라는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인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들을 그냥 부모로 놔두려하지 않는다. 매서운 겨울바람을 이기고 거리에 엎드려 삼보일배를 하고, 그것도 모자라 머리를 삭발하고, 목숨이야 어떻든 밥을 굶어가며 단식을 단행하는 등 그들은 이미 투쟁을 외치는 활동가의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물론 법 제정만이 전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아주 기본적인 권리만이라도 법으로 제정해 살아가게 해줘야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그들의 말처럼, 장애인교육지원법은 장애·비장애아의 완전 통합과 장애인이 교육 주체로서 교육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제공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아주 최소한의 법인 것이다.
이제 아주 최소한의 범위라도 법으로 아이를 보호받을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찾아오기를 기대해본다.

진선미 기자 websun@bokjinews.com

진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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