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여성플라자에서는 우리나라 장애운동의 흐름을 되짚어 보는 토론회가 열렸다.

 
우리나라 장애운동의 흐름을 되짚어 보고 장애인차별금지법이 향후 장애인들의 인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한 토론회가 지난 17일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열렸다. 20여년간 눈에 띄는 성과와 발전을 거듭한 장애운동은 이제 장애인 당사자들을 수혜의 대상에서 인권의 대상으로 변화시키는 새로운 전환점에 봉착해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로 장애운동은 경증장애인을 중심으로 자조조직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며 1990년대를 관통하는 시기에 기득권을 가진 집단속에서 직접적으로 활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노동권과 이동권, 교육권이라는 3대 권리를 중심으로 장애운동의 근간이 자리잡기 시작했고 주체가 점점 중증장애인의 참여 형태로 변화해 갔다.

2000년대 이후로 장애운동은 시설에서 거리로, 경증에서 중증으로 변화해 갔으며 이동보장법률과 장애인차별금지법, 장애인교육지원법 등의 굵직한 법제정 성과를 보였다. 20년 전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조직적이고 잠재적 역량이 풍부한 조직으로 거듭난 셈이다.

주제발표를 맡은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이성재 이사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이성재 이사(변호사)는 "과거 우리나라의 장애운동은 의료인, 사회복지사, 특수교사 등의 전문가 집단을 중심으로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보살피기 위한 방법적 운동이었을 뿐"이라며 "장애운동의 주체로서 장애인이라는 집단은 존재하지 않았고 단지 전문가가 주도하는 장애 관련 제도의 수혜자로 존재했을 뿐"이라고 전했다. 따라서 이 시기 많은 장애관련 제도와 정책이 만들어졌으나 대부분이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시설을 만드는데 그쳤을 뿐이라는 지적도 덧붙였다.

그러나 "더불어 늘어난 활동주체와 다양한 이해 관계 속에서 통일적 기조를 갖지 못하면 흔들리고 통일적 기조를 주장하면 대중적 지지를 받기 힘든 상황에 빠졌다"는 문제를 제기하며 "장애라는 범주 자체를 뛰어넘기 위한 주체변혁의 준비가 지금부터라도 고민돼야 한다"고 충고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준) 박경석 집행위원장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준) 박경석 집행위원장의 입장은 조금 달랐다. 이제 장애운동은 자신의 목표와 정체성을 정확하게 해야 한다는 말을 시작으로 "장애인은 모두 하나가 아니며 장애인단체가 하나로 단결될 수 없는 것은 여성주의라는 것으로 모든 여성이 하나로 단결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유했다. 장애인운동은 갈라져있고 갈라져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물론 "이권에 따라, 패거리적 인맥에 따라 분리되는 것은 아니어야 한다"는 전제조항을 잊지 않았다.

박경석 집행위원장이 말하는 갈라짐은 장애운동의 전망과 목표에 의한 것이어야 하며 장애민중들이 진실을 볼 수 있는 척도, 힘을 모을 수 있는 계기 마련을 이야기 한다.

따라서 "진보적 장애운동을 위해 노력해야 하며 진보적 장애운동의 목표는 자본주의 체제를 변혁하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효율성과 경쟁의 잣대를 장애인의 삶에 들이댄다면 장애인은 생존 자체를 위협받게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이런 위협은 장애인뿐만 아니라 노동자와 농민, 여성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성재 이사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신자유주의 폭풍과 FTA라는 직격탄에 장애인계가 그대로 노출돼 있음을 염려하며 "장애와 신자유주의, 장애와 FTA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이는 듯 하면서도 신자유주의로 인해 가장 먼저 목이 죄어지는 것은 장애인이다"고 강조했다.

사회양극화 현상의 가장 큰 피해자는 약자중의 약자인 장애인이라는 말이다. 이에 "장애운동의 활동가들은 사회현상에 대항, 고립적이고 부문적 운동에 한정되어서는 안된다"며 "전체의 흐름을 읽고 그 속에서 장애인운동을 어떻게 할 것이가를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장애인이 무엇인가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전제로 도와줘야 한다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은 더 이상 운동의 대상이 아니며 바로 이점이 장애운동의 방향성을 찾는데 지표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도 드러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여 년의 시간동안 장애운동은 커다란 수확을 건져 올렸다. 활동보조인서비스제도화, 자립생활센터 건립,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등이 성공했으며 특히 장애인차별금법제정 의의에 대해 토론자로 참석한 박종운 변호사는 △장애인당사자가 직접 제정운동을 펼쳐 쟁취한 점 △진정한 의미의 연대 운동의 결실이라는 점 △시혜로부터 인권으로 패러다임이 변화했다는 점 △장애인인권운동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게 된 점 △차별금지법 제정에 선구적 역할을 하게 된 점 △우리나라 법 제정 절차 및 방식에 있어서 바람직한 모델을 창출해 냈다는 점 등은 역사적 의미로 부각될 필요성이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장애를 이유로 차별 받은 장애인이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권리를 구제 받을 수 있도록 실질적인 조사 및 제재 권한을 가지고 △독립성과 당사자의 자기결정권이 담보된 장애인차별금지 및 시정위원회가 만들어져야 하며 △효과적인 권리구제수단으로 국가인권위원회법이 규정한 권리구제수단 이외에 시정요구/시정명령, 징벌적 손해배상, 입증책임의 전환, 집단소송, 교육 및 봉사 위주의 징벌제도등을 갖추어야 하는 한편 △이중 차별을 받고 있는 여성장애인을 위한 세심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점이 앞으로의 과제라고 덧붙였다.

 인권운동사랑방 박래군 상임활동가 역시 "이 법률이 온전히 실행에 옮겨지기 위해서는 현재와 같은 장애인 차별 구조가 해체되고 재구성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하며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면에서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장애인의 인간적 존엄을 침해하는 모든 의식구조를 바꾸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뜻을 같이 했다.

서희정 기자 hans@bokjinews.com

서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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