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은 돈으로 황제 같은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소문만으로 은퇴 후 이민을 꿈꾸는 고령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가정도우미를 두고 골프를 즐기며 선진국 수준의 문화생활을 저렴한 비용으로 즐길 수 있다는 것은 분명 구미가 당기는 장점이다. 그러나 동남아시아에 분포한 한인회 관계자들은 충분한 사전검토를 통해 자신의 욕구와 맞는지를 철저히 파악하고 외국에서의 삶을 극복할 용기가 없다면 이민에 대해 신중히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충고했다. 눈에 보이는 환상 때문에 정착해 살아가는 어려움 따위를 무시해선 절대 안된다는 이야기다.

동남아 은퇴 이민의 허와실을 짚어볼수 있는포럼이 지난10일 대한은퇴자협회의 주최로 전국은행연합회에서 열렸다.

대한은퇴자협회(회장 주명룡)는 지난 10일 전국은행연합회에서 각국 대사를 초청해 은퇴 이민 정책에 대해 직접 드는 자리를 마련했다. 필리핀과 말레이시아, 태국은 고령자들이 가장 선호하면서도 이민에 대해 깊은 관심을 드러내고 있는 국가다. 영어를 모국어와 함께 공용어로 사용하기 때문에 비단 고령자 뿐 아니라 30∼40대의 중년층의 관심도 증폭되고 있다. 하지만 현지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들은 환상을 버리고 객관적인 눈으로 자신의 상황을 파악하라고 충고하고 있다. 필리핀과 말레이시아 태국 한인회 대표들에게 동남아 이민에 대한 정보와 장단점에 대해 들었다.

동남아 이민자 급증 현상

현재 필리핀 은퇴청에서 은퇴비자를 받은 한국인수는 2004년 219명, 2005년에는 371명, 2006년에는 1181명으로 총 3000명 정도로 추산된다. 그러나 이런 통계수치로는 정확한 은퇴인구를 집계하기에 무리가 있다. 왜냐하면 은퇴비자 취득자 중에서 50세 이하로 거주 또는 자녀 교육 목적으로 비자를 획득한 사람도 상당수 포함돼 있을 것이며 은퇴비자를 발급받지 않고 단순방문비자로 이곳에 거주하는 가족들과 함께 동거하는 은퇴자도 많기 때문이다.

필리핀 한인회 이영백 회장은 "확실한 것은 최근 들어 은퇴를 목적으로 은퇴비자를 신청하는 수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라며 "이 같은 이유는 필리핀이 한국과 지리적으로 가깝기 때문에 이사를 가듯 비교적 쉽게 거주지를 옮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비행기로 3시간 반가량이 소요되는 필리핀은 영어권 국가이며 1985년에 '필리핀은퇴청'을 설립할 만큼 은퇴 이민자 유치에 관심이 많은 나라다.

말레이시아와 태국도 상황은 비슷하다. 말레이시아의 경우 도시환경이 깨끗하고 선진국 못지 않은 사회시스템을 갖춘 나라이기 때문에 태국과 필리핀 등 다른 동남아 국가보다 물가가 조금 비싼 편이지만 영어조기유학과 부동산 투자에 관한 주요기사들이 한국신문과 방송에서 보도된 이후로 현지답사를 위한 방문건수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에서 비행기로 5시간 거리에 있는 태국도 치안과 의료, 골프시설등이 잘 갖춰져 있어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동남아 이민이 갖는 장점

포럼에는 은퇴 이민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듯 많은 중,장년층과 고령자들이 참석했다.

 
은퇴자들이 남은 생을 외국에서 보내겠다고 결심하는데는 크게 4가지 요소를 꼽을 수 있다. 첫째가 저렴한 물가, 둘째가 온난한 기후, 셋째가 경제적 풍요, 넷째가 자녀교육 요건이다. 최근에는 거리상으로 가까운 요인과 은퇴자들의 이민을 유도하기 위한 각국의 홍보경쟁으로 보다 다양한 서비스를 지원받을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필리핀은 영어가 공용어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과 가사도우미는 100달러, 기사는 100∼200달러에 고용할 수 있을 만큼 인건비가 싸다는 점이 강점이고 말레이시아는 의료와 교육, 쇼핑분야에서 모두 합격점을 받을 정도로 환경평가가 장점이다. 게다가 이슬람 문화권이라 음주와 가무 문화가 거의 없어 그로 인해 발생하는 범죄율도 낮아 은퇴자들이 머물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태국 역시 치안과 의료, 골프시설, 병원시설 등이 잘 갖춰져 있고 파타야와 후아힌 등과 같은 도시는 신혼여행지로 꼽힐 정도로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인구 25만명, 조용하고 쾌적한 날씨 덕분에 세계베스트 5대 도시에 선정돼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각광받는 것은 각국 모두 한국보다 60∼70% 저렴한 생활비로 여유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장점 뒤에 가려진 단점

필리핀의 경우 1985년에 '필리핀 은퇴청'을 설립할 만큼 은퇴 이민자 유치에 관심이 많은 나라다. 그러나 은퇴자를 받아들여 사회경제적 발전을 도모하자는 목적이 있기 때문에 지정 은행에 일정액을 예치해야만 은퇴비자를 만들어준다. 다른 나라에서 한국인은 일단 외국인 꼬리표를 붙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한국 생활비의 절반으로 넉넉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부풀려진 광고가 문제점으로 지목되고 있다.

필리핀 한인회 이영백 회장은 "한 달에 200만원으로 황제같은 생활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아마 가정부, 운전기사, 간병인, 안마사들을 비교적 큰 부담없이 부릴 수 있다는 말일 뿐이다"라고 현실을 짚었다.

월 평균 생활비는 보통 300만원(임대료 100만원, 생활비 150만원, 인건비 50만원)선. 소형아파트, 자동차, 골프 회원권을 모두 장만했다는 전제하에서는 200만원으로 생활이 가능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그냥 편안한 생활을 말하는 것이지 호화로운 생활을 영위한다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태국 한인회 관계자도 "잠깐 여행 온 경우라면 월 200만원으로 황제 같은 삶을 살수 있겠지만 이민 온 경우라면 곤란하다. 한국 사람들이 동남아에 대해서 ‘물가가 저렴하다 살기 좋다’라고 알고 있는데 정확히 말하면 돈이 많아야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있다. 집을 하나 구입하더라도 태국 사람들은 외국인에게 싸게 주지를 않기 때문에 2∼3배 이상 비싸게 사야 한다"거 전했다. 또한 우기와 건기, 두 계절로 나뉜 날씨를 간과할 수 없다. 더위를 많이 타는 사람에게는 동남아생활이 고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 한인회 이광선 회장은 "한낮의 기온이 32∼33도, 아침 기온도 20∼23도에 달해 365일 무더운 날씨가 계속된다는 점이 힘들다"고 전했다.

한국과 달리 대중교통수단이 발달되지 않은 점도 어려움으로 꼽히고 있다. 또한 말레이시아의 경우 필리핀보다 더 대중교통수단 이용이 불편해 승용차 구입이 필수지만 자동차 구입비는 한국보다 3배가량 비싸다.

또한 외국이라는 환경적 영향 때문에 의사소통 문제도 걸림돌로 작용한다. 말레이시아 한인회 이광선 회장은 "언어장벽이 큼을 느낀다"고 토로했으며 태국한인회 관계자도 "사업하는 사람들이 태국 사람을 상대로 할 때 사기 또는 속임을 당할 수 있고, 언어소통이 안돼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뿐만 아니라 아무리 한국과 가깝다고 외국은 외국이라는 점에서 이민자들에게 외로움과 그리움을 느끼게 한다.

필리핀 한인회 이영백 회장은 "언어와 문화와 민족이 다르다는 것은 흉금을 털어놓고 마음을 나눌 가까운 친구가 없을 수 있다는 점을 말하기도 한다. 이따금 가슴깊이 찾아오는 외로움과 향수를 느낄때가 많을 것이다"라고 전했다.

환상버리고 공신력 있는 기관서 정보 얻어야

은퇴준비를 위한 5계명. 무엇보다 중요한건 정확하고 객관적이며 자신에게 맞는 정보제공이다.

은퇴 이민을 선택함에 있어 사전 자료조사만큼 중요한 사항은 없다. 특히 이민지를 선정하는 기준에서부터 준비를 위한 마음자세까지 환상을 버리고 객관적인 평가를 거친 후 자신의 조건에 맞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 은퇴 이민도 하나의 생활이며 언어와 문화가 다른 상황에서 모든 것이 생소한 도전적 삶을 살아가는 것과 같다. 그런 삶을 이겨낼 자신이 있는지 본인의 성격과 건강들을 체크해 볼 필요도 있다.

필리핀 한인회 이영백 회장은 "무조건 생활비가 싸다고 은퇴지를 선정하는 것은 위험 천만한 일이다. 은퇴지를 선정할 때는 최소한 5∼6차례 그곳을 방문하고 관련 자료나 주변의 이야기를 참고하는 것이 좋다. 또한 그곳에서 은퇴생활을 할 때 본인이 포기해야 하는 많은 것들에 대해 충분히 생각한 후 결정해도 결코 늦지 않다"고 당부했다.

말레이시아 한인회 이광선 회장도 "말레이시아는 가장 빠르게 경제 성장을 하고 있는 나라기 때문에 저개발국가로 저렴한 이민생활을 원해 말레이시아를 선택한다면 신중하게 검토하고 철저한 사전조사가 필요할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공신력있는 기관인 대사관, 한인회, 코트라에서 정확한 정보를 얻길 바란며 대사관이나 한인회 등록을 통해 보다 성공적인 이민생활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은퇴 이민을 준비한다면 물론 개인적 노력도 필요하겠지만 이민자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을 아우를만한 정부의 역할이 필요성도 강조되고 있다. 특히 한국 이민자들이 밀집해 살고 있는 곳은 그곳이 제2의 대한민국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정부기관의 도움이 절실하다.

객관적이며 정확한 정보를 이민 희망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정부기관의 설립내지는 보완이 필요하며 영리단체가 행하는 홍보에 치우쳐 자칫 이민 희망자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할 경우를 견제할 방법이 모색돼야 한다.

한인회 회장들은 경찰영사의 수를 대폭 늘려 이민자들의 안전을 지켜주고 이민자들을 위한 금융제도를 합리적으로 개선하거나 교민들이 한국내에서 국내은행을 이용하던 것의 연장으로 한국계 은행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등의 편의제도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사소한 것들을 해결하는데 번거로움이 발생하게 되면 암암리에 불법 거래나 편법이 늘어나게 되고 결국 손해를 보는 것은 외국인에 속하는 이민자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대한은퇴자협회 주명룡 회장은 "이민은 새로운 환경과 제도, 문호적 차이에서 오는 다양한 심리적·물리적 갈등이 있다"며 "생활비다 저렴하고 자연환경이 좋다고 무작정 선택하기에는 대단히 위험한 일"이라고 충고했다. 이어"은퇴이민에 대한 사회적 거품이 꺼지고 제대로  된 정부정책이 수반될 수 있기 희망한다"고 전했다.

서희정 기자 hans@bokj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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