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은평노인종합복지관 대강당에서는 황혼이혼을 주제로 모의재판이 열렸다. 서로의 입장에 대해 대립하고 있는 원고와 피고의 모습.

'당장이라도 이혼하고 싶지만 자식들 장가보내는 것은 봐야 부모 된 의무로서 죄책감이 없을 것 같다' 2006년 한국종합사회조사가 발표한 중·장년층의 이혼의식 결과에 따르면 이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이 남성과 여성 모두에서 과반수가 넘었다. 또한 지난해 통계청의 '이혼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이혼 건수는 줄었으나 50세 이상 고령층의 이혼은 증가해 황혼이혼이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황혼이혼 실태를 알리고 원인을 분석해 사전예방을 마련하고자 지난 22일 은평노인종합복지관(관장 고재욱)은 황혼이혼을 주제로 '어르신 모의법정'을 진행했다.

배심원과 참관인을 두고 진행된 모의법정은 노인들의 관심을 반영하듯 예상외의 인파가 몰렸으며 참관인들은 사건이 진행되는 모습을 흥미진진하게 관람하기도 했다. 

은평노인종합복지관 고재욱 관장은 행사전 "사건을 관람하며 누가 잘했고 잘못했는가 논쟁하기 보다 이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취지를 설명하며 "궁극적으로는 황혼이혼 예방과 가족해체 및 올바른 노후가족 정책방향 모색에 그 초점이 있다"고 전했다. 

또 "황혼이혼은 당사자에게 심각한 경제적 곤란을 안겨줄 뿐 아니라 인생의 막바지에서 이혼이란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는 노인들에 대한 사회시스템의 부재가 무엇보다 해결과제"라고 전했다. 

재판의 배경은 피고인 오철수(남편)가 해외여행을 마치고 귀가한 원고 이인자(부인)를 폭행하면서 붉어졌다. 대학 졸업 후 숨가쁘게 사회생활을 하다 자녀를 분가시키고 은퇴한 오철수씨. 가부장적 성격과 몇 번의 외도로 아내와 살가운 사이는 아니지만 가정을 깨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반면 부인 이인자씨는 여러번의 외도와 아내를 종부리듯 군림하는 남편의 태도에 이미 질린 상태고 여행에서 돌아와 집안꼴이 엉망이라는 잔소리를 늘어놓자 손찌검을 한 남편을 더 이상 용서할 수 없다. 이제라도 자신과 마음이 맞는 다른 사람을 찾아 남은 인생을 즐기면서 보내고 싶다는 것이 마지막 소원이기에 이혼소송을 청구한 상황.

상황을 검토하고 최종 결정을 내리기 위해 심사숙고하고 있는 재판장의 모습.

 서로에 대한 충분한 입장과 설명이 있은 후 배심원들의 판결은 120대 30으로 이혼반대가 우세했다.

이유인 즉 그래도 평생을 함께 한 배우자만한 사람이 없다는 동정 어린 시선이 많았고 두 번째로는 자식들과 이웃의 눈초리, 그리고 이혼하고 혼자는 한국노인들의 현실이 그리 밝지 못하다는 현실적 문제 때문이었다. 거기다 노인들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야 후세대도 그들을 본받을 거라는 의견도 있었다.

추최측은 "황혼이혼을 경험한 이들은 경제력을 상실한 나이에 혼자가 되면 더욱더 심한 빈곤상태에 시달리는 경우도 있으며 국가나 사회적으로 이들을 돌볼 만한 인프라가 없어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는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물론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꾹 참고 살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황혼이혼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제도나 상담, 프로그램과 같은 시도가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건강가정지원센터 오충순 소장.

 건강가정지원센터 오충순 소장 역시 "황혼이혼에 대해 무관심한 대처는 사회문제를 방치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과 같을 것"이라고 우려하며 "건강한 가정을 위해서는 부부와 가족간의 노력만큼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희정 기자 hans@bokjinews.com

서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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