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빈곤문제연구소 류정순 소장

통계청이 발표한 전국가구의 소득지니계수와 5분위배율 및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상대빈곤율, 빈곤격차율, 양극화지수, 등의 거의 모든 사회지표들이 최근의 양극화, 불평등 및 빈곤심화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대통령자문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는 지절대빈곤율이 2005년 11.7%에서 2006년 11.2%로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빈곤율은 통상 통계청, KDI,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 보건복지부 등의 기관이 발표하는데 대통령 자문기구인 위원회가 절대빈곤율을 발표한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왜 하필 위원회가 나서서 빈곤감소를 발표했을까? 만약 절대빈곤율 발표가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 고유의 업무였다면 이제까지 절대빈곤율이 높아졌을 때 가만히 있었던 것은 직무유기가 아닐까?

최저생계비(빈곤선)는 기초생활보장뿐만 아니라 각종수당, 모부자가정지원, 보육료감면, 자활사업, 의료급여, 장기요양보장, 국민연금 등의 거의 모든 복지정책의 선정기준으로 활용되는 대단히 중요한 지표이다. 그런데 이토록 중요한 빈곤선이 한국에서는 모든 생필품을 시장바구니에 담고 그 바구니 속의 필수품의 합계액수로 정해진다. 이 방법의 빈곤선 설정에 필요한 필수품의 종류, 양 및 질은 과학적으로 입증되는 것이 아니다.

즉, 빈곤선은 사회적 합의선인 것이다. 이 합의선이 중립적 기관이 아니라 정부기관인 보사연에 의하여 계측되고 있기 때문에 빈곤선은 정부의 의도에 따라서 낮출 수 있는 소지가 있다. 그러한 가운데 최저생계비 계측의 해인 올해 위원회가 나서서 절대빈곤율이 줄었다고 발표하게 되면 계측기관인 보사연이 빈곤율이 높아지도록 빈곤선을 높게 설정하기가 상당히 부담스러워 진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이러한 발표는 빈곤선 낮추기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필자(2004년)가 최저생계비 계측의 해인 ‘’88년, ‘94년, ’99년과 ‘04년의 통계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4인가구 최저생계비의 4인가구 평균소득에 대한 비율은 ’88년에 45.2%에서 지속적으로 낮아져서 ‘04년에는 30.5%에 불과했다. 즉, 지난 15년 동안 4인가구 평균소득에 대한 4인가구 최저생계비의 비율은 무려 15.0%p나 낮아진 것이다.  빈곤선이 낮아지면 자동적으로 빈곤율은 낮아진다.  

한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김안나(2005)씨가 추정한 최저생계비 계측 연도와 비계측 연도의 절대빈곤율과 상대빈곤율 자료를 살펴보면 [그림 1]에 나타난 바와 같이 상대빈곤율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약간씩 높아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절대빈곤율은 최저생계비 계측연도인 1994년과 1999년에 특히 높아졌다.

이와 같이 최저생계비 계측의 해에 빈곤율이 높아지는 이유는 비계측연도의 최저생계비는 단지 물가수준만 반영하여 3.0~3.5%만 조정했기 때문이다. 즉, 빈곤선 자체가 비계측 년도에 낮아지기 때문에 빈곤율이 낮아지는 착시현상이 생긴 것으로 해석된다.

[그림 1] 절대빈곤율의 불안정성

빈곤율이 지표로서 의미를 가지려면 빈곤선의 신뢰도가 높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이 지속적으로 빈곤선이 낮아지고, 특히 비계측 년도에 더 낮아지고 있다. 불안정한 지표로서 추정되는 절대빈곤율은 신뢰도가 낮아서 정책의 참고자료로서 활용되면 오류가 발생될 수밖에 없다. 21세기의 국정운영은 다른 어느 때보다 더 정확한 데이터에 근거하여 운영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절대빈곤율 추정에 쓰이는 빈곤선이 이렇게 들쭉날쭉하다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것으로서 이러한 문제점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는 위원회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을 위하여 발 벗고 나서야 할 것이다.

위원회 관계자들은 설령 2006년에 절대빈곤율이 낮아졌다고 하더라도 최저생계비 계측 직전 해는 빈곤선이 가장 낮아지는 이제까지의 추세로 볼 때 이 수치는 실제로 빈곤의 감소보다는 빈곤선 자체가 낮아졌기 때문에 나타나는 착시현상에 불과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그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다. 제대로 된 위원회라면 빈곤선 자체의 문제점을 지적했어야만 한다. 그러나 위원회가 그러한 문제점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을 회피한 채 절대빈곤율 감소에 대해서만 발표했다.

잘못된 절대빈곤 지표와 그에 의거한 잘못된 빈곤율은 우리 사회에 만연된 빈곤을 은폐하고, 빈곤율에 근거한 모든 사회정책을 오류로 유도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대단히 심각한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문제점에 대하여 그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는 위원회가 본래의 사명인 ‘빈부격차해소와 빈민에 대한 차별시정’을 외면하고 엉터리 지표를 마치 신빙성 있는 지표인양 발표한 것은 위원회의 존재 이유를 망각한 처사이자, 빈민에 대한 배반행위이다.

위원회가 본분을 잊은 채 빈곤선이 가지는 원초적인 문제점에 대한 개선의 의지를 은폐한 채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판단력을 흐리게 하고, 최저생계비 설정에 나쁜 영향력을 행사할 지표를 발표한 것은 스스로가 나서서 위원회의 존재 의미를 부정하는 처사로서 크게 문제 삼아야 할 일이다.

 

서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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