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시 산성동복지회관 이계존 관장

 요즘 시각장애인을 ‘봉사’라 칭하는 것은 하나의 결례이다. 그러나 그 유래에 의하면 봉사는 시각장애인을 참칭(僭稱)하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우리나라에서 시각장애인은 외물(外物)에 구애되지 않는 심안(心眼) 또는 영적인 눈을 가졌다고 생각되었었다. 많은 시각장애인이 심안과 영안으로 타인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점복에 종사하였는데, 국가에서도 봉사(奉事, 조선시대 관직품계로 종팔품관)라는 결코 낮지 않은 관직을 부여함으로써 이들을 우대하였었다. 한데 점복에 종사하는 시각장애인에게 관직을 부여한 것은 불쌍한 사람을 위한 일방적 배려만은 아니었다. 고래로 자신의 속마음을 쉬 드러내지 못하고 그저 억압하여야 했던 수많은 백성들이 있어왔다. 이들에게 시각장애인 봉사는 익명성을 보장받으면서도 억울한 바를 신원(伸寃)하는 유력한 언로였다. 또한 앞으로의 진로를 상담하고 조언하는 훌륭한 전문가였던 것이다. 이렇듯 충분한 기여가 인정되었기에 시각장애인 점복업자에게 봉사라는 관직이 부여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일제강점 이후 시각장애인 점복은 급격히 몰락하였다. 일제는 미신 혁파를 구실로 일체의 점복을 금하였다. 대신 점복 외에 마땅한 직업을 가지기 힘든 시각장애인을 위해서는 안마가 대안 직종으로 제시되었다. 시각장애인이 안마를 하기 위해서는 매우 혹독한 수련이 전제되어야 했다. 우선 촉각에만 의지하여 신체 각 부위를 감지하고 각 신체 부위의 이상 여부를 판단할 수 있어야 했다. 또한 문진에 따라 피시술자에게 차별적인 안마기법을 적용하여야만 했다. 그러기에 의료체계가 미비했었던 그 시절 시각장애인 안마는 일정 치료 효과를 가지는 탁월한 의료행위로 인정받았던 것이다.

상업자본이 기승을 부리면서 시각장애인 안마는 수익만을 목적으로 하는 음성자본에 의해 큰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다. 보다 많은 이익을 위해 안마 외의 여러 서비스가 부가되더니 종내에는 성매매가 유력한 부가서비스로 등장하였다. 성매매의 부가로 인해 치료적 안마는 급격히 훼절되었다. 치료적 안마가 시술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위안(慰安)적 수준의 안마가 시술되었다. 다수 시술공간에서는 안마가 오히려 성매매의 부가 서비스로 전락하게 되었다. 오늘날 대로변의 안마시술소에서 순수한 의미의 안마를 받고자 함은 하나의 난센스일 것이다.

윤락에 의한 안마의 훼절 외에도 시각장애인 안마는 끊임없는 도전에 직면해 왔다. 수요계층이 많지 않던 시절 안마는 시각장애인만이 배타적으로 점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안마관련 시장이 점차 넓어짐에 따라 비시각장애인들이 여러 형태로서 안마시장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비교적 최근 이들 유사 안마업자들은 시각장애인만이 안마를 할 수 있다는 법 규정이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헌법소원을 하였고 승소판결을 받은 바도 있었다. 헌법재판소 판결 직후 다수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의 치열한 투쟁의 결과, 아직까지 안마는 시각장애인의 전업직종으로 유보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유사 안마 관련자의 여전한 요구를 고려한다면 과연 언제까지 안마에 대한 시각장애인의 배타적 점유가 지켜질 것인지 불안할 뿐이다. 최근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이 안마수요를 독점하고자 무자격 유사안마사를 단속하라고 당국에 촉구한 것은 그 불안의 한 반증일 것이다.

유사안마 관련 종사자들이 주장하는 요구도 일견 타당하다. 이들에게 일방적인 양보만을 요구하는 것도 곤란한 상황이다. 그러기에 시각장애인 안마와 관련한 지금의 위기는 새로운 도전으로 반드시 극복되어야 할 것이다.

우선적으로 안마를 치료적으로 재정립하여야 한다. 예전 혹독한 수련으로 안마기법을 익히던 그 시절의 전문적 엄격함을 회복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여러 가지 유사안마가 있지만 그래도 예리한 촉각으로 문진하고 이에 따라 다양한 기법을 활용하는 시각장애인 안마가 최고라는 평판을 되찾아야 한다.

다음으로 시각장애인 안마수요를 진작하기 위한 다양한 대책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안마를 받고 싶어도 치료적 안마를 받을 수 있는 시술공간이 거의 없는 현실이다. 지역사회 복지관, 보건소, 관공서 등에 시각장애인 안마사를 고용하고 저렴한 요금으로 일반인에게 안마 서비스를 제공하다면 어떨까? 또는 격무에 시달리는 근로자를 위해 사무실이나 공장 밀집지역에 안마시술 공간을 설치하여 안마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초기 상당 예산이 소요될 것이다. 그러나 이용자의 요금 등을 감안한다면 그리 어려운 일만은 아니다.

시술공간을 확대하자는 요구는 고용되는 일부 시각장애인 안마사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안전하고 쾌적한 공간에서 누구나가 수준 높은 안마서비스를 체험함으로써 안마에 대한 의혹 해소 나아가 치료적 안마의 재정립에도 도움이 되는 것이다.

‘점복에서 안마로’ 또 ‘치료적 안마에서 위안적 안마로’ 그리고 ‘안마전업 위기’까지 이 모든 변화는 시각장애인의 생존에 직결되는 심각성을 가진다. 그러나 이 변화는 시각장애인의 입장과는 관계없이 정치적 격변에 의해 또는 이익만 추구하는 음성자본의 논리에 의해 무자비하게 진행되었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시각장애인 안마 정상화의 과업을 그들만의 요구로 치부하여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 모두가 동시대적 책무의식을 가지고 시각장애인 안마 정상화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

서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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