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여자대학 사회복지학과 이 계 존 교수

몇 해전 모 패스트푸드 광고가 큰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한 중견 연기자가 고깃배에 비스듬히 누워서 우스꽝스럽게 ‘니들이 게 맛을 알어’라고 내뱉는다. 햄버거를 선전하는 광고였는데, 당시 여기저기서 이 카피가 열렬히 회자 되었다.

광고는 상품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소비자에게 주기 위함이다. 따라서 해당 상품이 가지는 특성 그리고 경쟁 제품과 비교하여 나타나는 상대적 우월성 등을 제시함으로써 소비자의 선택을 유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요즘의 광고 시장을 보면 이러한 교과서적 원칙을 따르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오히려 소비자를 현혹하여 무조건 자사 상품을 선택하게 하는 것이 광고의 지상과제로 인식되고 있는 실정이다.

필자는 광고를 통해 생산자와 소비자의 실상을 절감하곤 한다. 소비자가 생산자로부터 독립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상품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정보 제공은 생산자로부터 전혀 의도되지 않는다. 생산자는 소비자를 정보로부터 차단한다. 나아가 그 정보를 교묘한 전략에 의해 왜곡하여 전달하기도 한다. 따라서 소비자는 정보 독점자인 생산자에게 철저하게 의존하여 결코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못하고 의존효과의 희생자로 전락하고 만다.

정보 왜곡 또는 구매 협박을 일삼는 대다수의 광고와는 다르게 보는 이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는 모 그룹의 이미지 광고들이 있었다.

명절 고향집을 찾아가는 기차간에서 아들은 여행의 별미인 삶은 계란을 먹고 있다. 이제 삶은 계란은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마침 차창 밖으로 한눈을 판 사이, 아빠는 하나뿐인 삶은 계란을 먹어버린다. 마지막 별미를 상실한 아들이 울먹이는 순간, 아빠는 삶은 계란과는 비교되지는 않는 먹음직스러운 전기구이 통닭을 내어준다. 일순 아들을 포함한 모두의 얼굴엔 웃음꽃이 피며 ‘또 하나의 가족’이란 카피로 마무리된다. 그저 있을 수 있었던 하나의 옛 장면에 은근하게 담겨진 의미를 읽는다. ‘우린 또 하나의 가족이다. 만일 당신이 나에게 하나의 계란을 투자한다면 난 당신에게 귀한 전기구이 통닭으로 되 갚겠다. 나의 이익은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우린 또 하나의 가족이니까.’

또 하나의 광고. 갓난아이가 울고 있다. 아빠가 달래보고, 누나와 형이 달래 보지만 여전히 아이는 울어댄다. 엄마가 필요하다. 마침 엄마는 출장 중이다. 엄마가 없는 한 아이는 계속 울어댈 것이다. 그러다 컴퓨터 모니터에 엄마의 모습이 나온다. 엄마임을 알아본 아이는 푸근한 엄마의 모습에 안심하고 이내 방실거린다. ‘대개의 디지털 가전은 차가운 속성을 갖는다. 문명의 이기로서 일체의 정이 배제된 차가운 기계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엄마의 따듯한 손길로 가전 제품을 만들고 있다. 그러기에 아이의 순진무구한 웃음마저 끌어내는 정이 담겨있는 것이다. 우리는 또 하나의 가족이기 때문이다.’ 

볼 때마다 잔잔한 미소를 짓게 하는 카피들이다. 필자는 이 그룹의 카피를 보면서, 또 하나의 가족이란 저들의 주장이, 생산자가 소비자를 보다 수준 높게 농락하는 ‘또 하나의 사기’는 되지 말아야 함을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생산자의 무자비한 횡포 그리고 이로 인한 소비자의 참혹함. 이는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복지 전반에서도 흔히 목격된다.

서비스를 매개로 하여, 서비스 제공자는 생산자가 되고, 서비스 수혜자는 소비자가 된다. 오랫동안 사회복지영역에서 '클라이언트 중심' 또는 '소비자 주권' 등이 강조되어 왔다. 그러나 실상 도움을 주고 또 도움을 받는다는 본질로 인해 사회복지 서비스에서도 수혜자와 제공자의 관계가 전혀 균등하지 않음이 역설적으로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사회복지 서비스가 전문적으로 세분화됨에 따라 수혜자는 스스로의 자율적 판단보다는 제공자로부터 주어지는 정보에 더욱더 의존하게 된다.

사실 상품 시장에서 소비자는 돈이라는 무기가 있기에 최소한 구매 당시에는 상당한 대접을 받는다. 또한 소비자 운동 등으로 인해 적잖게 대접받고 있음이 요즘의 추세이기도 하다. 그러나 과연 사회복지 현장에서도 이럴까.

실천현장에서 사회복지 업무에 종사하던 시절을 기억한다. 당시 필자는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연구원으로서 해마다 열리는 세미나에서 일정 역할을 담당하였다. 세미나는 직업재활의 실무 이론을 개발, 보급한다는 측면에서 큰 자부심을 가졌던 주요 업무였다. 하지만 이 행사에 임할 때마다 필자는 적지 않은 부담감으로 힘들어하곤 했었다. 장애인 직업재활 부진을 질타하는 대다수의 이구동성에 대해 필자는 명쾌한 답변을 제시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저 ‘열심히 하고 있다. 지켜봐 달라’는 상투적인 위로만으로 일관했었던 것이다.

모든 장애인 당사자에게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특히 정신지체 장애인의 부모에 대해서는 더 큰 죄스러움을 느꼈었다. ‘내가 죽으면 누가 우리 자식을 돌볼까’ 고민하며 세미나 장을 찾은 이들 부모에게 몇 해 동안 ‘노력하고 있으니 좀 더 기다려라’는 얘기만 반복하였었던 것이다. 장애인 그리고 그들의 부모 등이 가지는 직업재활 욕구에 대해 공감적 이해 없이 그저 책임 회피적 답변으로만 일관하였던 것이다.

‘당신들의 욕구는 이미 우리가 알고 있으며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다. 그러니 그저 참고 기다려라’는 얘기, ‘비록 니들이 게 맛을 아느냐’는 지독한 소비자 모독은 아닐지라도 결국 마찬가지. 서비스 공급자의 지독한 오만이 있을 뿐이었다.

사회복지 현장에서 소비자(수혜자)의 입장을 고려하는 전문가의 자세, 분명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소비자 중심이라는 선언적 명시보다는 진정 이들의 욕구와 문제에 대해 공감하고 접근하는 ‘또 하나의 가족’으로서 훈훈한 전문가를 대망(待望)한다.

 

 

윤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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