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어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노인인구가 급격히 늘면서 이들에게 ‘할일’을 만들어 주는 게 국가적 정책으로 떠오르고 있는 지금, 새 인생을 다시 시작하는 시니어들이 늘고 있다. 바로 인생의 2모작이다.

한 어르신이 전시회장 앞에서 있다.

노인종합복지관의 여러 강좌들은 은퇴한 노인들에게 새로운 경험들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은평노인종합복지관의 서양화반은 개원 때부터 지금까지 ‘화가’를 배출하고 있다.
복지관은 지난 12일부터 18일까지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복지관내 서양화미술반 어르신들의 작품전인 ‘꽃피는 황혼’전시회를 마련했다.

17일 전시회장에서 만난 이순례 씨는 올해 나이 71세. 이 씨는 은평노인종합복지관에서 6년 전 처음 서양화를 접하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지금은 여러 대회에서 입상 및 장려상 등 7차례의 수상경력을 자랑한다.

친구 따라 별 생각 없이 그림을 시작하게 됐다는 이 씨, 그림을 그리게 되면서부터 ‘색’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됐다며 ‘그림은 내 삶의 낙’이라고 말한다. 
“전에는 세상이 그냥 그렇다고 심드렁하게 느꼈죠. 그러나 지금은 나뭇잎 하나를 봐도 그 다양한 녹색에 절로 아름다움을 느껴요”


이씨는 작년에 항암치료라는 힘든 시기를 보냈다. 그러나 아프고 견디기 힘들 때마다 그림에 집중을 하면서 잘 이겨낼 수 있었다고 한다. 또 즐거운 마음으로 살다보니 건강해졌음을 느껴 주변에도 그림 그리는 것을 추천하고 다닌다는 이 씨. 항암치료를 위해 입원했던 병원에서도 그림을 그려, 의사의 부탁으로 자신의 그림을 병원에 기증했다.
“내 그림을 보면서 환자들이 희망을 갖길 바래요. 실제로 저는 치료가 힘들어도 그림을 그리면서 잊을 수 있었거든요. 덕분에 잘 이겨냈고요, 몸이 아파도 자신의 취미생활이 있다면 거기에 집중해보세요. 큰 도움이 된 답니다”

그림은 그녀의 건강 뿐 아니라, 가족관계에도 도움을 줬다. 돈을 주고 배운 것도 아니고 65세를 훌쩍 넘겨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그녀가 한국여성미술 공모전, 강남미술대전, 한겨레 미술대전 등에서 특선 및 장려상 등을 수상하자, 그녀의 며느리도 그림을 시작했다. 현재 집 근처 문화센터에서 이씨는 며느리와 함께 수업을 듣고 있다.
“친구처럼 친해 보여 처음에는 우리가 시어머니·며느리 사이인줄 아무도 몰랐대요. 취미생활을 함께 공유하고 같이 배우러 다녀서 너무 좋아요”

이씨는 나이가 들면 가족들에게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으로 취급 받기 쉬운데, 그림을 그리면서 가족 내에서 그녀 자신의 입지를 세웠다고 말했다. 손자들의 그림숙제를 도와주는 자신 있는 할머니가 됐다고 한다.

그렇다면 뒤늦게 자신의 재능을 알게 된 이씨에게 남은 꿈은 무엇일까. 그녀는 원래 아동교육을 전공했으나, 의상디자인을 배워 의상실을 운영했다. 특이하게도 서부아프리카 나이베리아에서 선교활동 겸 의상실을 했던 것. 그래서 그녀가 그녀의 그림에 원색을 많이 사용하는데 이는 아프리카에서 살았던 영향이다.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그림도 가르쳐 주고 싶고, 그 애들의 그림과 우리 노인의 그림을 합쳐 작품전시회를 여는 것이 나의 꿈”이라고 말하는 그녀는 인생의 황혼을 아프리카의 강렬한 태양처럼 밝게 물들이고 있었다.

 

윤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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